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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호의 오! 마돈나] 유령처럼 비너스처럼, 신비한 이중 이미지

킴 노박 Kim Novak

영국의 영화전문지 <사이트 앤드 사운드>가 10년마다 발표하는 베스트영화 리스트의 부동의 1위는 <시민 케인>(1941)이었다. 1962년부터 내리 5년 연속 1위다. 말하자면 <시민 케인>은 50년 동안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그런데 세계의 평론가들을 대상으로 조사하는 이 리스트에 처음 변동이 일어난 게 최근에 발표된 2012년의 결과다. <시민 케인>을 50년의 왕좌에서 끌어내린 작품은 앨프리드 히치콕의 <현기증>(1958)이다. 이 결과에 많은 이유들이 제시됐다. 그 가운데 한 가지만 우선 기억하고 싶은 것은 히치콕이 말한 대로 시체애호증(necrophilia)이라는 무의식의 강박이다. 그 강박의 경이로운 대상으로, 유령 혹은 비너스처럼 스크린에 출몰한 배우가 바로 킴 노박이다. 시체처럼 죽은 듯 무표정하고, 동시에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야수처럼 도발적인 여성이라는 이중성으로, 누구도 닮을 수 없는 개성을 남긴 것이다.

히치콕의 ‘아름다운 시체’

트뤼포와의 인터뷰(<히치콕과의 대화>)에서 히치콕은 <현기증>을 한줄로 요약했다. “남자는 죽은 여자와 자고 싶어 합니다.” 그 남자로 제임스 스튜어트, 그리고 ‘죽은 여자’로 킴 노박이 나왔다. 매들린이라는 회색 투피스에 검정 구두를 신은 무표정한 여성이다. 얼핏 유니폼을 입은 관료처럼 냉담해 보일 수도 있는 인상이다. 그런데 남자는 그녀에게 첫눈에 반한다. 그러고는 유명한 ‘추적 시퀀스’를 통해 스튜어트, 곧 스코티는 10분이 넘도록 대사 한마디 없이 그녀를 따라간다. 오직 버나드 허먼의 죽음 같은 음악만이 들릴 뿐이다. 그 추적은 꽃집으로, 성당으로, 묘지로, 그리고 미술관으로 이어진다. 유령에게 혼 들린 남자의 모습을 상상하려면 스튜어트의 표정을 보면 된다. 매들린은 진짜 유령처럼, 어디론가 휙 사라지고, 또 나타나며 전직 경찰 스코티의 넋을 빼놓는다.

관음증적 시선의 대가인 히치콕의 테크닉에 넘어가지 않을 관객이 얼마나 될까? 아마 그때 세상의 거의 모든 관객은 스튜어트의 입장에서 킴 노박을 바라봤을 테고, 또 그처럼 혼이 빠졌을 것이다. 손에 닿을 듯 빠져나가고, 결코 잡히지 않을 거리에서 불현듯 출몰하는 매들린이 눈앞에서 투신자살하는 것을 봤을 때, 관객도 스코티처럼 경악했고, 나중에는 삶의 의욕마저 잃는다. 이때부터 죽은 여자를 애타게 원하는 스코티는 오르페우스였고, 기억 속에 등장하는 매들린은 에우리디케였다. 말하자면 스코티와 매들린은 시체애호증 드라마의 신화적 주인공이 됐다.

죽은 사람에 집착하는 것, 이런 병적 태도는 프로이트에 따르면 쾌락원칙의 한 부분이다. 그는 죽음을 ‘긴장의 완벽한 해소’로 해석하고, 당황스럽게도 이것이 궁극의 쾌락이라고 말한다(<쾌락원칙을 넘어서>). 그렇다면 ‘매들린과 자고 싶어 하는’ 스코티의 간절한 소원, 곧 네크로필리아는 결국 무의식의 본능이자 쾌락의 불가능한 목표인 것이다. 그 대상, 곧 ‘아름다운 시체’를 히치콕은 관음의 시선으로 잡았고, 가능하지 않아서 더욱 간절한 대상인 매들린은 유령처럼 반복하여 출몰하며 사랑의 영원한 이상형으로 군림하는 것이다.

배우로서, 특히 여배우로서 불가능한 대상으로 기억되는 것만큼 부러운 게 있을까? 그는 유령처럼 현실 너머에 존재하고, 죽지 않을 것이며, 그래서 영원히 기억 속에 출몰할 테니 말이다. <현기증>은 킴 노박이라는 배우를 초현실의 존재로 각인시킨 작품이다. 배우로선 이런 영광이 없다. 그래서인지 <현기증>은 마치 ‘백조의 노래’처럼 그의 연기 경력에서 정점을 찍었고, 이후로는 결코 <현기증>에 버금가는 작품을 내놓지 못했다. 그런들 어떤가. <현기증>이라는 걸작이 노박의 작품 목록에 기록돼 있으니 말이다. 이것 하나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피크닉>의 청순하고 육감적인 이중 이미지

킴 노박은 체코 출신 교사 부부의 딸이다. 어릴 때부터 미모로 유명했다. 10대 때부터 지역의 미인대회에서 상을 받으며, 광고지의 모델로 일하기 시작했다. 할리우드에서 엑스트라로 일하기도 했는데, 출세의 길이 열린 건 당시 컬럼비아 영화사 사장 해리 콘의 눈에 띄면서부터다. 해리 콘은 프랭크 카프라와 짝을 이뤄 소규모 스튜디오였던 컬럼비아를 메이저로 키운 할리우드 산업계의 전설이다.

노박은 1955년 조슈아 로건의 <피크닉>에서 윌리엄 홀덴의 파트너로 나오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다. 미국 소도시의 숨 막힐 것 같은 전통적인 질서에서 탈출하기 위해 모험을 감행하는 여성 역할이다. 지역 재벌의 아내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박차고, 미래를 알 수 없는 방랑자 윌리엄 홀덴을 따라가는 여성인데, 청순미와 관능미가 교묘하게 섞여 있는 이중적인 외모로 단번에 주목받았다. 그러고는 히치콕의 <현기증>을 만났다. 시나리오에 까다롭기로 유명한 노박은 처음엔 허점이 있는 시나리오에 크게 동의하지 않았다. 오직 감독에 대한 신뢰 하나로 제작에 합류했다. 해리 콘이 “히치콕은 대가”라고 추천해서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는 것이다. 시나리오를 다시 읽은 뒤, 노박은 매들린에 흠뻑 빠지고 말았다. 당시의 자신의 처지를 말해주는 것 같아서다. 다른 사람들, 특히 남자들의 시선에 맞게 모든 것, 곧 머리칼 등 외모는 물론이고 걷는 태도까지 바꿔야 하는 배우로서의 자신의 처지가 겹쳐 보였다.

<현기증> 이후에 노박은 점점 영화에 흥미를 잃는다. 불과 25살이었고, 미래가 창창할 때인데 말이다. 든든한 후원자였던 해리 콘의 죽음도 이유가 됐고, 노박에 따르면 이후에 마음에 맞는 시나리오를 만나지 못했다고 한다. 말하자면 <현기증>의 후유증 같은 것으로, 노박에게 다른 작품들은 시시해 보였다. 그래서인지 이후에는 작업을 할 때마다 시나리오의 해석을 놓고 감독들과 다투는 일이 잦았다. 노박은 사실상 그때 일에 대한 열정을 잃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그래도 이후에 감독에 대한 믿음으로 빌리 와일더의 <키스 미 스투피드>(1964)에 출연했는데, 감독이 원하는 건 ‘금발의 백치’였고, 노박은 하기 싫은 역할을 억지로 끝마쳐야 했다.

아쉽게도 이때 이후 노박의 배우로서의 경력은 사실상 끝난다. 이후에는 은퇴와 컴백을 반복했다. 1968년 로버트 알드리치 감독의 <라일라 클레어의 전설>에서 다시 한번 <현기증>의 ‘청순하고 육감적인 이중 이미지’를 요구받았지만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감독은 노박이 배우의 열정을 잃었다고 비난했다. 노박은 감독이 배우의 열정을 꺾었다고 맞받았다. 이런 볼썽사나운 일은 이후에도 반복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킴 노박은 행복한 배우다. 세상의 영화인들이 최고라고 꼽는 영화에서 주연을 하지 않았나. 배우로서의 많은 허물은 사실 부차적인 것이고, 걸작에서 연기했다는 것, 그것은 영원히 기록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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