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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의 개념을 고민한다”
송경원 사진 백종헌 2015-10-07

<당나라 승려> 차이밍량 인터뷰

차이밍량

차이밍량은 <서유>(2014)를 끝으로 당분간 영화 연출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하지만 차이밍량의 영화가 끝난 게 아니라 극장에서의 영화 작업을 잠시 쉴 뿐이다. 지금도 차이밍량의 시간은 극장이란 공간 너머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펼쳐지고 있다. <행자>(2012), <서유>의 시간을 스크린 너머로 펼쳐낸 <당나라 승려>도 그 중 하나다.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이하 예술극장)에서 삼장법사의 느린 걸음을 마무리 중인 차이밍량 감독을 만났다. 당신에게 영화란, 시간이란, 극장이란 무엇인가요.

-어제 <당나라 승려>의 한국 첫 공연을 마쳤다. 어땠나.

=빈 페스티벌, 브뤼셀의 쿤스텐 페스티벌, 대만 아트페스티벌에 이어 네 번째 공연이지만 새로운 공간인 만큼 처음이나 다름없었다. <당나라 승려>는 종이와 목탄만 있으면 어디서든 할 수 있는, 관객을 집중시키는 형식의 공연이다. 쿤스텐 공연 때는 이강생의 목이 많이 아파서(이강생은 4번의 공연 내내 목에 마비가 와서 깁스를 하고 있다) 느리게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2시간인 공연이 3시간40분이 넘어서야 끝났는데 결과적으로 그래서 더 만족스러운 표현을 할 수 있었다. 어제 공연에서는 이강생이 근래 보기 드물게 몸 상태가 좋았기 때문에 아름다운 걸음을 보여줄 수 있었다.

-전통적인 공연인 <당나라 승려>, 관객과 함께 체험하는 <떠돌이개>, 상시 상영하는 <차이밍량의 영화관>까지 세 작품을 각기 다른 형태로 선보인다.

=김성희 예술감독이 직접 그 세편을 요청했다. 빈에서 공연할 때부터 그렇게 세트로 구성했다. 일부러 그렇게 만든 건 아니고 내가 영화감독이다 보니 공연을 올릴 때 기존 작품들도 함께 올리길 원하는 경우가 있다. 공연마다 상영 영화는 조금씩 달라도 개념은 일맥상통한다. <당나라 승려>는 빈, 쿤스텐, 대만 아트페스티벌, 예술극장이 공동제작했고 광주가 종착역이다.

-<당나라 승려>는 한폭의 종이 위에서 모든 공연이 이뤄진다. 좁고 집중력 있는 무대가 대극장의 규모와 대비해 도리어 강한 인상을 준다.

=솔직히 극장에서는 하고 싶지 않았다. 다른 나라에서도 폐기된 극장, 창고 등지에 관객석을 설치해서 했다. 광주에서 공연을 결심한 것도 한쪽 벽면이 개방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벽면을 열면 거대한 스크린처럼 하늘이 펼쳐진다. 이 공연을 야외에서 하고 싶었던 이유는 가능한 한 현대적인 기술과 소품의 도움을 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술극장의 경우, 아시아에서 제일 큰 극장에서 가장 단순하고 순수한 형식의 공연을 한다는 생각에 아직도 흥분이 가시지 않는다. 이런 방식으로 공간을 사용한다는 게 쉬운 발상이 아닌데 김성희 예술감독이 대담한 결정을 했다.

-한폭의 종이는 하나의 스크린 같다.

=스크린이 바닥에 뚝 떨어져 있는 셈이다. 이 종이는 하나의 창문이다. 내게 영화는 아직도 완벽히 이해할 수 없는 세계, 신비한 시간을 허락하는 장르다. 사각의 막힌 프레임 안에서 무한한 반응이 일어난다. 종이를 보면 창작 행위가 원시로 돌아가는 것 같다. 공업화된 어떤 방식이 아니라 투명하게 나를 바라볼 수 있도록 해주는 순수한 조형이다.

-이강생의 몸으로 발현되는 느림은 관객의 시간마저 느리게 만든다. 이강생은 당신에게 어떤 배우인가.

=20년간 나의 모든 작품을 함께했다. 다들 내 영화를 느리다고 말한다. 이강생은 다른 어떤 배우보다 느리다. 고등학생 때 그를 길거리 캐스팅했는데 처음엔 나도 이 느림이 익숙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새 그를 따라 내 영화도 느려졌고 나도 그 속도가 점점 좋아졌다. 이번 공연에서 불과 5m 남짓을 걸어가는 데 20분 가까이 걸리기도 한다. 그 걸음걸이는 무언가를 표현한 것이 아니지만 모든 것을 보여준다. 만약 그가 연기를 그만두면 나의 창작도 끝날 것이다. 그건 확실하다.

-계속 극장 밖, 스크린 바깥으로 나가려 하는 것 같다. 당신에게 극장은 어떤 의미인가.

=창작의 개념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갖고 있다. 현재 모든 공연, 영화들은 공업화, 기업화, 공식화되어 간다. 관객은 공간이 제공하는 방식에 몸을 맞추고 있다. 이를테면 극장, 무대, 전시장마다 각기 공간에 맞는 규율과 형식에 묶여 있다. 아무리 예술적인 작업을 해봐도 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공간에서 새로운 형식을 발견해나가려는 시도, 상상력이 사라진 시대다. 극장에서 보는 무대극, 무대에서 보는 영화, 공연장 바깥의 공연. 새로운 개념을 창작하는 것이 최근 나의 관심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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