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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일] “연기란, 나의 고유한 가치를 스스로 존중하는 것”
이주현 사진 오계옥 2016-04-13

<대배우> <태양의 후예> 배우 강신일

“평소엔 어린 친구들한테 사인받을 일이 없는데 요즘은 꼬맹이들한테 사인을 받기는 한다. <태양의 후예>의 인기가 대단하다는 걸 그때 실감한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의 3성장군 윤 중장을 연기하는 강신일은 드라마의 시청률이 올라감에 따라, 서대영(진구)과 윤명주(김지원) 커플의 인기가 높아짐에 따라 더불어 인기를 누리는 중이다. 하지만 인기니 명예니 하는 세속적 욕망의 산물들에 그는 큰 관심이 없다. <공공의 적>(2002) 출연 당시 강우석 감독이 누구인지 잘 몰랐다는 그답게 그는 <태양의 후예>의 김은숙 작가에 대해서도 실은 잘 몰랐다고 한다. 연극 이외의 것에 대한 적당한 무관심이 그를 여태껏 연극에 매진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대배우>는 그런 ‘연극’배우 강신일의 아우라를 적극 차용한 영화다. 20년 넘게 연극 무대에서 ‘정통연기’를 하고 있는 장성필(오달수)을 통해 꿈을 먹고사는 배우 이야기를 전하는 <대배우>에서 강신일은 장성필과 스타배우 설강식(윤제문)의 극단 선배 대호를 연기한다. 연극배우들이 존경하는 배우답게 강신일은 차근차근 자신이 생각하는 ‘대배우론’을 들려주었다.

-<대배우>에 어떻게 출연하게 되었나. 중요한 역할이지만 분량이 적어 고민이 있었을 것 같은데.

=영화를 너무 하고 싶었다. 한동안 영화를 많이 못했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나를 잘 안 찾더라. 이유가 뭔지 생각해봤다. <공공의 적>이나 <실미도>(2003)에서의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 있어서 캐릭터의 한계 같은 게 느껴지나, 아니면 한동안 TV드라마를 많이 해서 영화와는 거리를 둔다고 생각하는 건가. 어찌 됐든 영화를 많이 하고 싶은데 그동안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또 하나는 (오)달수가 처음으로 주인공을 맡는다 하니 뭔가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싶었다. 달수와 함께 연극을 한 적은 없는데 대학로 연극판에서 서로 알고 지낸 지는 꽤 됐다.

-<대배우>에선 극단 봉봉의 고참 배우, 설강식과 장성필의 대선배 대호로 출연한다. 실제로 연극 무대를 오랫동안 지킨 존경받는 선배이기도 하기에 캐릭터가 더 강렬하게 와닿는 측면이 있다. 석민우 감독도 그런 점을 고려하지 않았을까.

=글쎄, 그건 감독한테 들어봐야 할 것 같다. 사실 후배들에게 특별히 잘해준 것도 없는데 고맙게도 많은 배우들이 나를 잘 따랐다. 적어도 예전엔 그랬다. (웃음) 연극에 매진하고 있을 때는 그 자체로 행복했다. 어쩌면 무식하고 미련하게 연극판에 파묻혀 살았는데, 그 모습이 후배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주지 않았나 생각한다. 아마 그렇게 마련된 나의 바탕이 대호라는 역할과 맞아떨어진 게 아닐까 싶다.

-영화 중반 넘어, 설강식의 과거가 밝혀지는 장면에서 히든 캐릭터로 첫 등장한다. 가발을 써서인지 배우 강신일인 줄 못 알아볼 뻔했다.

=그런가? 사람들이 못 알아볼까?

-헤어스타일이 지금과 달라서….

=(웃음) 가발 쓰고 촬영하는 게 스스로도 어색했다. 거울 앞에서 매일 사는 건 아니지만 하루하루 내 모습을 확인하는 나로서는 조금씩 변해가는 모습을 잘 못 느끼고 산다. 하지만 10년 만에 만나는 사람들은 머리가 왜 그렇게 많이 빠졌냐고들 한다. 사실 많이 빠지긴 빠졌지. (웃음) 나도 20대 때는 영화에서만큼 머리숱도 많았고, 대학 시절엔 장발이었다.

-석민우 감독은 <대배우>라고 제목을 지은 것에 대해, 연극영화과 친구들이 서로를 ‘대배우’라 장난치듯 칭하는 것을 보면서 대배우가 되길 꿈꾸는 어린 친구들의 그 모습이 귀엽고 풋풋했다는 말을 했다. 연극에 처음 매료된 젊은 시절 당신도 대배우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꾼 적이 있나.

=21살에 연극을 시작했고, 대학 마치고 군대에 가서 제대할 때 27살이었다. 군대에 있는 동안 앞으로 나는 무얼 해야 하나, 잘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제대를 3, 4개월을 앞두고는 연극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그나마 연극할 때는 잘한다는 얘기를 종종 들었으니까. 제대하자마자 극단 연우무대에 들어갔다. 그런데 그때 무슨 큰 배우가 되겠다는 생각을 갖지는 않았다. 연우무대를 택한 이유는 창작극을 하는 극단이자 민주적인 극단이고 추구하는 가치도 잘 맞았기 때문인데,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연극을 할 수 있다면 설령 내가 무대의 중심에 서지 못하더라도, 스탭으로 뒷일을 감당하며 10년을 보내더라도 상관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극단에 들어가자마자 또 주인공을 하게 됐다. 그렇게 연우무대에서 쭉 주요 배역을 맡다보니 스스로 참 연기 잘하는 배우구나, 하는 생각에 알게 모르게 빠졌던 것 같다. (웃음) 그러고 보면 나는 굉장한 행운아였고, 그래서인지 큰 배우가 되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이후에도 그랬나.

=살아 있는 동안 몸이 허락하는 한 무대에 서야겠다는 생각은 했는데, 이후에도 큰 배우가 되겠다는 꿈은 가져본 적 없다. 영화와 드라마 출연 제의도 있었지만 그런 쪽으로도 관심이 없었다. 연극을 하면서 행복했고, 이곳에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으니까.

-얘기한 것처럼 처음부터 늘 중요 배역을 맡았고 연기로 주목받는 배우였는데, 혹 젊은 시절 연기 못한다는 소리를 들은 적은 없었나.

=한번도 없었던 것 같다. (웃음)

-타고난 배우였던 건가.

=그건 아닌데, ‘너 연기 못해’ 그런 얘기는 들어본 적 없다. 솔직히 말하면 대배우란 얘기는 많이 들어봤다. (웃음) 그런데 연극이란 건 배우와 연출과 스탭이 여러 달 동안 함께 작품에 대해 고민하고 땀 흘리고 에너지를 주고받으면서 완성되는 작업이다. 배우 한 사람의 능력이 특출나서 캐릭터가 돋보이는 게 아니다. 함께 작품을 만들어간 배우와 스탭의 공이 있었기 때문에 배우가 칭찬받을 수 있다.

-<대배우>에서 재밌었던 장면 중 하나는 장성필이 <악마의 피> 첫 촬영날 영화 현장에 적응하지 못하고 100번에 가까운 테이크를 가는 장면이었다. 당신의 경우, 연극만 20년 가까이 해오다 마흔에 첫 출연한 <이재수의 난>(1999) 현장에서 어땠는지 궁금하다. 예전 인터뷰에서 본인의 첫 영화는 <이재수의 난>이 아닌 <공공의 적>이란 말도 했는데.

=<이재수의 난>은 80년대 후반 무대에 올렸던 연극 <변방에 우짖는 새>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었고, 그 연극에서 내가 이재수 역을 맡았었다. <이재수의 난>을 제작한 기획시대 유인택 대표나 연출한 박광수 감독 모두 연우무대와 인연이 깊어서, 연우무대 배우들이 <이재수의 난>에 대거 참여했다. 나 역시 박광수 감독으로부터 참여하면 좋겠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렇게 감독도 아는 사람이었고 현장에 연극배우들도 많아서 영화 현장이 불편하거나 어렵진 않았다. 한편 강우석 감독의 <공공의 적>은 내가 영화를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만난 첫 작품이라 애정이 큰데, <이재수의 난>을 하면서 익힌 현장 경험이 <공공의 적> 때 많은 도움이 되었다.

-연극판에선 최고 대우를 받는 배우였지만 영화에선 신인이고 조연이었으니 초기엔 그 대우의 차이도 컸을 것 같다.

=자체 극단 작업을 할 때는 개런티를 고려하지 않는다. 식사가 해결되고 교통비가 해결되면 그걸로 족하니까. 타 극단에서 연기할 때는 어느 정도 개런티를 책정해준다. 그런데 그렇게 연극하며 받은 개런티와 첫 영화의 개런티 차이가 많이 났다. 영화가 더 많은 돈을 줬다. 하지만 영화 경력이 없었으니까 대학 갓 졸업한 신입사원, 아니 비정규직 인턴 임금 정도 받았던 것 같다. (웃음) 그렇다고 내가 20여년 헌신했던 연극판의 경력을 인정해달라고 얘기할 수는 없다. 장르가 다르고 환경이 다르니까. 그러면서 생각한 게, <대배우>와도 연결되는 이야기인데, 꼭 큰 역할을 맡거나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지만 대배우인 건 아니라는 거다. 좀더 확장해 얘기하면, 지금의 우리 사회는 늘 성공을 얘기한다. 성공을 꿈꾸게 한다.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들만 주목한다. 하지만 주어진 자리에서 묵묵히 제 역할을 해내는 사람들을 조명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가 아닐까. 많은 이들이 외면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을 가치 있게 여기며 붙들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대배우’이고 그들이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화나 드라마에선 주로 후배들이 믿고 따르는 정 많은 리더, 청렴하고 강직한 리더 역할을 해왔다. 현재 방영 중인 <태양의 후예>의 윤 중장 역시 그 범위 안에 속한 캐릭터다.

=크게 보면 그렇다. 예전엔 작품을 많이 재기도 하고 따지기도 했는데, 내가 늙어가는 건지 누군가가 ‘같이 합시다’ 하고 손 내미는 것이 굉장히 감사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태양의 후예>의 함영훈 PD는 오래전부터 연극판을 많이 찾아다니면서 드라마에 연극배우들을 많이 출연시킨 친구다. 이 친구가 지난해 여름쯤 <태양의 후예> 얘기를 하더라. 신은 많지 않고 빠지는 회차도 있는데 형님이 좀 해줬으면 좋겠다고. 그래서 고맙다고 했다. 캐릭터가 중복되는 것에 대한 염려는 물론 없지 않다. 고정된 이미지로 연기한다는 것은 배우로서 마이너스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그런 이미지를 깨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나의 다른 모습을 기대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은 것뿐이다. 내 안에는 무수히 많은 캐릭터가 존재하고 있다. 내 안의 다른 캐릭터를 계속해서 찾아가고 끄집어내는 것, 나에게 있어 연기란 그런 거다. 그러니 여태껏 굳어진 이미지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보다, 그건 그 모습대로 가치 있게 놔두고 나의 다른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만나서 또 다른 작업을 했으면 좋겠다. 연극에 비해 영화나 드라마에선 그런 기회를 갖기가 힘든 게 사실이지만, 언젠가 그런 기회가 올 거라 생각한다.

-지적이면서도 신뢰를 주는 목소리가 기존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일조한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 ‘당신은 참 발음도 좋고 목소리도 좋고 부럽습니다’라고 말한다. 감사하다. 그런데 그것이 나에겐 일종의 핸디캡일 수 있다. 목소리가 좋거나 발음이 좋다고 해서 연기를 하는 데 꼭 유리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발음이 좀 어설프더라도, 목소리가 따뜻하거나 정감 있지 않더라도 캐릭터의 감정을 100% 전달할 수 있다면 그게 진짜 배우라고 생각한다. 학생들이 혹은 젊은 후배들이 ‘어떻게 해서 그런 목소리를 가지게 되었냐, 훈련을 한 거냐, 나도 그런 목소리를 갖고 싶다’고 그런다. 그러면 ‘네가 가진 고유한 것의 가치를 스스로 존중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해준다.

-2007년에 간암 판정을 받았는데, 지금은 몸 상태가 어떤가.

=아주 좋다.

-당시 수술 2주 후 바로 드라마 촬영에 임했다. 왜 좀더 회복기를 가지지 않았나.

=영화 시작한 지 5년, 드라마 시작한 지 3년째 되던 해였다. 사람들은 내가 화면에 많이 비치니까 경제적으로 여유 있을 거라 생각했겠지만 생활이 풍족하지 않아 일단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뿐 아니라 암 판정을 받기 전에 찍고 있던 드라마(<황금신부>)가 있었다. 수술을 해야 한다, 그 뒷일은 모르겠다, 죄송하지만 제가 맡고 있는 역할을 마무리지어주셨으면 한다, 라고 감독님께 이야기했다. <강철중: 공공의 적 1-1>(2008)도 촬영이 예정돼 있어서 강우석 감독님한테 아직 촬영이 시작되지 않았으니 새로운 배우로 대체하는 게 어떠냐고 말씀드렸다. 그런데 모두 “아닙니다, 괜찮을 겁니다, 기다리겠습니다” 하시더라. 나를 향한 두 감독의 믿음 그리고 애정 때문에 하차할 수가 없었다. 사실 그분들도 얼마나 불안했겠나. 그런데도 믿어주고 기다려주고 배려해줬으니 너무 감사했다.

-가장으로서의 책임과 배우로서의 책임을 모두 져야 하는 상황이었다.

=돌이켜보면 미친 짓이었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웃음)

-현재 배우로서 꾸고 있는 꿈은 무엇인가.

=무대에서 쓰러져 죽는 게 아니라 살아 있는 동안 최상의 컨디션으로, 건강한 모습으로 무대에 서고, 카메라 앞에 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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