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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타] 풍요 이후의 고민들 - <부산행> 연상호 감독 & 김의성
이화정 사진 최성열 2016-07-12

“사실 내 말만 들었으면 많이 살 수 있었을 텐데….”

김의성이 자신이 맡은 용석 캐릭터를 변호하고 나선다. 좀비 바이러스 때문에 사람들이 변해가는 아비규환의 상황. KTX 특실 칸에 석우(공유)와 함께 타고 있던 용석은, <부산행> 유일의 전담 악역이다. 번듯한 슈트 차림으로 부산 출장쯤 가는 듯한 중년의 남자는, 아마 이 난리통이 아니었다면 그저 적당히 교양 있는 사람으로 우리 곁을 스쳐 지났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소동이 거듭될수록 저 살기에 급급해 나 몰라라 하는 냉혈한의 모습을 보이며, 같은 칸의 사람들을 선동하는 데 앞장선다. ‘악’을 대변하는 용석에 대해 연상호 감독은 이렇게 말한다. “용석이야말로 거의 유일하게 이성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이 아닐까. 실제로 사회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고 치자. 나머지 착한 역할은 개개의 캐릭터로 등장하니 많아 보일 뿐이지 아마 90%의 사람들이 용석과 같은 얼굴을 보일 것이다.” 겁에 질린 용석의 클로즈업 컷을 시발점으로, 점점 추악하게 변해가는 집단의 모습이야말로 재난 상황의 ‘리얼’이다. 김의성은 결국 <부산행>이 좀비라는요소가 등장함에도 현실을 반영하는 영화로 자리매김하게 만드는 단단한 접착제다. 석우나 상화(마동석)같은 10%의 착한 인물이 암울한 우리 사회의 희망이라면, 용석은 바로 연상호 감독이 바라보는 현실 그 자체를 대변하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더한다.

연상호 감독은 처음에 용석을 중학생으로 설정했다고 한다. “급박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어린 소년에 의해 움직이는 거다. 그런데 너무 나간 것 같더라. 받아들이기에는 지나치게 그로테스크할 것 같아서 설정을 바꿨다.” 블록버스터영화 속 초능력을 가진 카리스마 넘치는 악역의 설정도 버렸다. “<쥬라기 공원>(1993)을 보면 저임금에 노동하는 게 짜증나는 시스템 엔지니어가 등장한다. 가진 능력이 없는 그런 인물이 악역을 하면 어떨까. 그 사람이 가진 공포심, 이기심. 딱 두 가지만으로 굉장히 무시무시한 악역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돼지의 왕>(2011) 때 그는 잘살고 못사는 이들로 나뉘는 이분법이 아니라 비슷한 상황의 아이들 사이의 패배적인 심리를 그렸고, <사이비>(2013) 때는 신을 빌려오지만, 신과는 별개인 인간세상의 아등바등 복닥거림을 끝까지 밀어붙였다. <부산행>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용석은 사람들 앞에서 잘난 척을 하지만 그냥 보통 회사의 상무 정도 직책이 그가 과시할 수 있는 수준이다. 공권력도 아니고 이 혼란을 잠재울 해결책을 가진 사람도 아니다. 용석이 가방에서 백신을 꺼내고 ‘안심하라. 내가 처리할 테니’라고 하는 그런 장면은 우리 영화에 아예 존재하지 않는 거다. 용석에게 힘을, 통제권을 주는 사람들은 결국 대단한 권력이 아닌 겁에 질린 평범한 우리 같은 사람들이다.” 그 평범함 속에 존재하는 민낯의 얼굴. 그가 용석의 역할을 두고 김의성을 주목한 데는 배우 김의성이 가진 젠틀함이 컸다. “처음 볼 때 누가 봐도 악역처럼 보이지 않는 사람이었으면 했다. (김의석) 선배님은 평소 사람을 대할 때 굉장히 교양 있고 젠틀한 느낌을 준다. 그런 사람이 변해가는 모습을 포착해나가는 게 관건이었다.” 연상호 감독이 요구한 건 딱 하나였다. “단순하고 장르적인 인물이 될 것!” 김의성은 초반, 그 요구를 받아들이는 게 그리 쉽지는 않았다고 한다. “레이어가 겹겹이 있는 복합적인 인물로 표현하고 싶었는데, 단순한 인물을 요구하더라. 연 감독의 애니메이션에 가까워 보였다. 이 사람이 실사영화는 처음이지, 믿음이 가지 않더라. 첫 촬영 하는 날 두 테이크 가고 ‘끝났습니다’하는데, 이걸 오케이해도 돼? 불안하기도 하고. 이렇게 비주얼이 중요한 영화를 하면서 감독 책상에 그림이나 사진 하나 없고…. (웃음)” 김의석은 5회차를 찍고 나서 편집까지 모두 고려한 감독의 마음을 알게 됐고,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연기를 하는 즐거움에 푹 빠졌다고 한다. 연상호 감독은 그 지점을 배우의 공으로 돌린다. “용석이 가진 공포에 질린 얼굴을 끝까지 가져간다면 분명 캐릭터가 풍부해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촬영을 하다 보니 배우들이 그 안에서 어떤 뚜렷한 상황이 없더라도 변화할 수 있는 동력을 가지고 있고 그걸 표현해내더라. 그래서 오히려 내가 설명을 하려고 넣은 신을 중간에 많이 뺐다.” 연상호 감독은 “물질적 풍요 이후에 우리가 다음 세대에 무엇을 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서 <부산행> KTX를 출발시켰다고 말한다. 끝이 보이지 않는 용석의 이기심이 가득한 열차 안에서 이제 우리가, 그 거대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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