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피플 > people
[people] 거짓과 진실의 위태로운 관계 맺기 - <립반윙클의 신부> 이와이 슌지 감독
이화정 사진 오계옥 2016-10-06

금단현상이라는 말로 설명이 될까. 장편영화 <뱀파이어>(2011)와 다큐멘터리 <3·1 1: 이와이 슌지와 친구들>(2011)이 영화제를 통해 공개되었고, 애니메이션 <하나와 앨리스: 살인사건>(2015)을 만났지만, ‘이와이 월드’를 이어줄 장편영화에 대한 갈증은 점점 커져만 갔다. <립반윙클의 신부>는 <하나와 앨리스>(2004) 이후 비로소 맞게 된 이와이 슌지 감독의 신작이다. SNS를 통해 모든 것이 표면화되는 현대사회. SNS를 통해 알게 된 남성과 손쉽게 만나 결혼한 후 파혼한 여성 나나미가, 자신이 만든 거짓 포장을 벗고 새로운 관계를 구축해나가는 과정을 좇아간다. 영화에서 나나미는 두번의 결혼을 하고, 두번의 신부가 된다. 나나미가 겪는 거짓과 진실의 아슬아슬한 의식 속에서 이와이 슌지는 지금의 사회에서 맺는 인간관계, 소통 그리고 정체성 문제를 제기한다. 사실적인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지만 이 깨질 것 같은 조심스러운 지켜보기에는 <러브레터>(1995)와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1996), <릴리 슈슈의 모든 것>(2001) 등을 통해 보여준 이와이 슌지 특유의 감수성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립반윙클의 신부>를 연출한 계기는 무엇이었나. 캐나다에서 만든 <뱀파이어> 이후 해외 활동을 계획했다가, 다시 일본으로 와서 일본의 현재를 그린 점에서 새로운 결심이 엿보이는 작품이다.

=계기를 찾자면 3·11 대지진이었다고 생각한다. 2011년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나는 일본에서 더이상 실사영화를 만들지 않고 해외 활동에 집중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지진과 원전사고로 내가 태어난 나라가 큰 상처를 입게 됐다. 그렇게 상처 입은 사회에서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그 사건이 작가로서의 나를 크게 변화시킨게 사실이다. 내 조국, 내가 태어난 고향이 재해를 입었다는 데서 오는 책임감, 이곳에 머물면서 작품을 만들어야겠다는 의지가 더 강렬해졌다. 그런 의미에서 <립반윙클의 신부>는 내 작가 인생에서 가장 특별한 시기에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느낀 이 사회의 불안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SNS라는 관계망으로 구축된 현대사회의 인간관계를 말하고자 한다. SNS로 연인을 만나고 결혼까지 한 나나미는, 그 관계에서 상처를 입지만 다시 그 익명의 사람들에게서 위안을 얻고 새로운 희망을 찾는다. 영화의 모티브가 된 단편 <립 반 윙클>(W. 어빙의 단편집 <스케치북>에 수록된 단편으로, 1775년 미국 독립전쟁이 일어나기 전 카츠킬 산맥 주변 마을에 살던 게으른 남성 립 반윙클이 산에 올라가서 낯선 이를 만나 술을 얻어 마신 후 하룻밤 만에 20년이 흘렀다는 동화 같은 이야기)에서 포착했던 지점은 어떤 것이었나.

=단편소설 <립 반 윙클>은 시간이 흘렀고, 그 시간으로 남자를 둘러싼 모든 관계가 변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주 오래전 이야기로, 세월의 흐름으로 모든 관계가 변한다는 것이 판타지로 받아들여지던 시절이다. 한편의 동화 같은 설정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다르다. 오늘날엔 <립 반 윙클>에서 몇 십년이 걸려야 기적적으로 느낄 수 있었던 그런 변화가 갑자기 찾아오기도 한다. 문자나 인터넷 서비스 등을 통해 사람들간의 만남과 헤어짐이 짧은 시간 안에 이루어지는 게 지금의 세상이다. 순식간에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변해가는 현실 속 사람들의 모습을, 나나미라는 인물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

-소심한 성격 탓에 학생들에게까지 휘둘리는 나나미는 현실에서는 불완전한 존재다. SNS 서비스 ‘플래닛’이라는 인터넷 공간만이 안식처가 된다.

=나나미는 다른 사람한테 버림받고, 다시 또 다른 사람과 조우하는 인물이다. 그 관계를 만들어가는 데 통신망이라는 현대적인 기기들과 서비스의 도움을 받고 인간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나나미가 적극적으로 의도하지 않아도 지금의 사회에서는 그런 관계들이 형성되고 쌓여간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나미는 별다른 특징이 없는 사람이다. 사실 뭐든 잘 안 풀리고 뜻대로 잘 안 되는 인물이자 자기 힘으로 일어서서 맞서지 않고 도망치는 성격이다. 하지만 싫고 피하고 싶을 때 도망가는 게 나쁜 일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도망침으로써 자신의 삶이 꼭 불행해지는 것도 아니다.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이 나나미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일부러 그렇게 평범한 인물로 설정했는데, 그런 사람이 어떤 계기와 관계를 통해 점점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

-플래닛 서비스를 통해 나나미가 만나고 의지하는 ID: 아무로(아야노 고)는 이 영화의 미스터리를 가중시키는 역할을 한다. 아무로는 나나미의 순진함을 활용해 그녀에게 파멸과 구원을 전달한다는 점에서 현실적인 인물이라기보다는 판타지물의 고약한 요정 같은 인상을 준다. 인터넷에서 ‘손쉽게 구한’ 남편에 대해 곧장 불신을 가지는 나나미는, 정작 아무로에 대해서는 전적인 믿음을 표하는데, 이 남자의 정체가 끝까지 밝혀지지 않는다.

=아무로는 나나미와 마시로(고코)라는 두 여주인공이 만날 때, 그들을 유도하는 제3자 역할을 하는 인물이다. 영화에서는 정체가 없어 보이지만 그 역시 이 사회에서 본인이 견지하는 삶의 의미를 가지고 살아간다. 영화에서는 나나미를 중심으로 주변의 인물들을 바라보니, 아무로가 진실된 사람인지 아닌지 혼동을 느낄 뿐이다.

-나나미의 상황은 공간으로도 구획된다고 볼 수 있다. 전반부에서 방황하던 나나미는 거대한 도심, 누구 하나 없어져도 아무렇지 않을 도쿄의 도심에 위치하고 있었다면, 후반부로 와 영혼의 짝인 마시로와 함께할 때는 고딕양식의 기괴하고 판타스틱한 건물에서 생활한다.

=나는 영화는 연극과도 유사하다고 본다. 무대장치가 중요하다. 그래서 배경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다. 후반부의 저택을 어떤 형태의 집으로 설정할지 많이 고민했다. 기본적으로는 크고 넓은 곳을 보여주고 싶었다. 처음에는 일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부유한 집을 배경으로 하려고 했는데 리얼리티가 없어 보였다. 사진을 찍는 스튜디오라고 한다면 오히려 리얼리티가 살 것 같았다. 원래는 레스토랑인데 촬영장소로 썼다.

-아오이 유우와의 지속적인 협업 이후 신예 구로키 하루를 발굴했다. 작품의 변화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구로키 하루와는 원래 TV프로그램(<마이 리틀 영화제>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이와이 슌지 감독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을 같이 했다. 한달에 한번 정도 만나 일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작품을 소개하곤 했다. 그래서 구로키 하루는 캐스팅했다기보다는 같은 밴드의 일원, 멤버 같은 느낌이 드는 배우다. 구로키 하루는 표현력이 굉장히 뛰어나다. 어떤 인물이든 연기든 주문할 수 있었다. 가령 마시로를 연기한 고코와 맞붙는 장면에서는 화려하고 적극적인 퍼포먼스를 해야 하는데 스스럼없이 그걸 표현해내더라.

-<하나와 앨리스>를 제작하던 당시, 일본에서 제작 투자 문제가 쉽지 않았다고 하는데, 십년이 지난 지금의 환경은 어떤가.

=지금도 그런 환경은 변함이 없다. <러브레터> 이후 20년간 작품을 만들어왔는데, 제대로 매진해서 만든 건 6년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실현되지 않고, 결과물로 이어지지 않은 작품들이 많았다. 그런데 성사되지 못하는 기획이 있을수록 하나의 작품이 풍성해지는 것 같기도 하다. <립반윙클의 신부>에도 내가 생각하는 대여섯개의 기획이 섞여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여건이 되지 않아 만들어지지 못하고 엎어지는 기획들이 마냥 없어지는 건 아니다. 작가 입장에서 보면 뭐든지 원하는 걸 자유롭게 만드는 건 결코 좋은 환경이 아니라고 본다. 안 되는 작품이 있을수록 열심히 주워모아 지금 같은 작품을 만들게 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차기작 계획은 어떤가. 영화뿐만 아니라 TV드라마 제작, 각본, 애니메이션 연출, CF 작업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립반윙클의 신부>에서 나나미가 겪는 날들을 어떤 날은 절망, 또 어떤 날은 희망적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다. 그녀가 맞이하는 모든 날이 귀중한 날로, 뜻대로 안 풀린다고 나쁜 날은 아니다. 나 역시 내가 맞은 어떤 날에도 치우치지 않으려 노력한다. 중요한 건 ‘오늘 무엇을 했느냐’다. 가능하면 내가 하는 모든 작업의 형태에 평등하려고 노력한다. 깊이 생각하지 않고 쉽게 얻은 싸구려 가치관을 나 편할 대로 관객에게 제공해서는 안 된다. 작가로서 항상 내가 가려는 길이 옳은지 의심하려고 한다. 다음 작품은 또 어떤 환경에서 만들어질지 모르지만 이런 가치관을 견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관련영화

관련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