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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여성의 선택에 대해 말해보자 - <피의 연대기> 김보람 감독
윤혜지 사진 백종헌 2016-11-14

생리는 여성이라면 꼭 해야 하는 것일까. 네덜란드인 친구들과 각자의 생리의 경험을 얘기하던 중 “생리의 고통에 관해 다루는 다큐는 있는데 생리대 자체를 다루는 다큐는 왜 없는 걸까” 궁금해진 김보람 감독은 생리와 생리대를 말하는 다큐멘터리를 찍기로 결심했다. “미국의 공영방송들과 코스모폴리탄은 2015년을 생리의 해로 규정했다. 최근 들어 미국, 호주, 캐나다, 영국, 한국까지 생리대 무상 지급을 요구하는 시위를 했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어떤 상품이 유통되고 소비되는 과정은 그 사회 구성원의 생활과 수준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생리대라는 아이템을 통해 여성들이 지금 살고 있는 사회, 여권 신장의 역사를 다시 살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피의 연대기>는 오랜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논의돼온 생리와 생리용품의 역사를 훑으며 여성들이 어떻게, 왜 특정 생리용품을 선택하고 사용하는지를 살핀다. 미디어가 생리와 생리용품을 어떤 방식으로 다루는지, 그로 인해 대중은 무엇을 학습하는지, 어떤 생리용품을 고르느냐에 따른 생리 컨디션의 변화 양상을 보여주고 끝에서는 현대 여성이 자연적으로 생리를 꼭 치러야만 하는지까지 논의를 밀고 나간다. “네덜란드는 보건소에서도 시술을 해줄 정도로 (팔에 칩을 주사해 수년간 피임 상태를 유지하는) 임플라논이 보편적이다. 자연히 생리가 멈추게 되는데 그래도 친구들 몸에는 아무 이상이 없더라.” 이를 바탕으로 여러 군데서 피칭을 해왔지만 반응은 차가웠다고 한다. “그렇게 관심을 끌고 싶냐, 세상을 도발하고 싶냐는 역질문을 받는다. 어디서나 생리를 도덕의 문제와 연관 짓더라. 난 단지 생리를 하고, 하지 않는 것에도 선택지가 필요하는 걸 말하고 싶을 뿐이다.” 물론 그의 생각을 존중하는 의견도 많았다. 뉴욕에서 생리대 무상 지급 시위를 촬영한 직후 휴식차 커피를 마시고 있던 김보람 감독과 오희정 프로듀서는 길 가던 노인에게서 호기심 어린 질문들을 받는다. “바리바리 촬영 장비를 싸들고 있으니 궁금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취지로 무엇을 찍고 있는지 얘기해주니 ‘개인적으로는 피를 흘리든 흘리지 않든 여성의 신체엔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선택은 아름다운 것이다. 나는 산부인과 의사다’라고 말해주더라. 뜻밖의 응원이었다. (웃음)” 생리와 생리용품의 역사를 말하다보니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여성들의 현재가 과거와는 어떻게 다른지도 중요했다. “1950년대만 해도 여성들은 생리를 늦게 시작하고 빨리 끝냈다. 아이도 많이 낳았다. 지금 여성들은 생리를 일찍 시작해서 오랫동안 한다.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여성도 많다.” 결국 김보람 감독이 말하고 싶은 건 개인적 성향과 신체 상태, 삶의 가치관에 따라 생리대를 쓰느냐, 탐폰(체내형 생리대)을 쓰느냐, 나아가 생리를 하느냐 마느냐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까지 40% 촬영이 완료돼 제작 속도는 조금 더디지만 김보람 감독과 오희정 프로듀서는 내년 6월 국내 공개를 목표로 숨차게 달리고 있다. 보편적인 이슈인 만큼 전달 언어로는 애니메이션을 선택했다. “나는 영화를 ‘시네마’로 접한 사람이 아닌, 넷플릭스 키드”라면서 <피의 연대기>를 “박진감 넘치는 야구 중계를 관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도록 유머러스하고 스피디하게” 구성해볼 생각이라고. “더 다양한 국가의 여성들의 목소리를 넣는 것도 고려 중이다. 이 많은 정보를 어떻게 분류하고 효과적으로 보여줄 것인지가 최대 과제가 될 것 같다.”

한줄 관전 포인트

당장 출산을 계획하는 여성이 아니라면 한번쯤은, ‘내가 왜 이런 소모적인 고통을 평생에 걸쳐 겪어야 하는 것일까’ 의문을 가져본 적이 있을 것이다. <피의 연대기>가 그 답을 찾는 과정에 약간의 실마리가 되어줄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