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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 인터뷰] 작은 권력간의 연대로 이루는 통쾌한 승리 - <조작된 도시> 박광현 감독

“너무나 오랜만에 돌아와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박광현 감독이 데뷔작 <웰컴 투 동막골>(2005)에 이어 두 번째 작품 <조작된 도시>(2017, 개봉 2월9일)를 내놓기까지는 무려 12년의 시간이 걸렸다. 박광현 감독은 지난 3년간 <조작된 도시>에 몰두해왔다. 감독이 두 번째 작품으로 오래도록 가슴에 품었던 <권법>은 그사이 감독의 중요 문서 보관함의 맨 위 서랍에 잠정적으로 올려두고 시간을 기다리는 듯하다. <조작된 도시>는 온라인 게임 속 팀플레이를 하던 팀원들이 게임 밖 현실에서도 하나의 팀이 돼 악당들과 맞서는 영화다. 이야기는 이렇다. 전직 태권도 국가대표였던 권유(지창욱)는 현재 컴퓨터게임에 빠져 사는 백수다. 게임 세상에서 그는 아이디 ‘권대장’으로 불리며 팀 ‘레쥬렉션’을 성공적으로 이끈다. 그런 그가 현실 세계에서 누군가의 조작으로 살인범 누명을 쓰게 된다. 이때 게임 속 동료들이 현실의 권유 앞에 하나둘 모여들어 권유, 아니 권대장 살리기에 합심한다. 게임과 영화의 경계를 아예 허물고 보여주고 싶은 것들을 향해 가보는 것, 박광현 감독식 판타지가 세운 ‘조작된 도시’다.

-방금 전, 언론 배급 시사 무대에 올라 첫마디를 떼는 데도 한참이나 말을 고르는 것 같았다.

=영화를 만드는 게 감독으로서의 나의 쓰임인데 그걸 못했으니 자학의 시간이 길었다. ‘사람들에게 잊힌 건 아닐까, 이렇게 끝나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싶었다. 그러면서도 새로운 걸 만들어보려고 또 부단히 시도하는 시간이었고. 영화 한편 만드는 건데, 너무 부담이 컸다. 힘들게 돌아온 만큼 매 순간이 긴장이고 감격이다. 그래서, <조작된 도시>가 잘됐으면 좋겠다.

-차기작으로 얘기돼왔던 <권법>에 오랜 시간을 쏟아부었기에 <조작된 도시>는 언제, 어떻게 시작된 기획인지 궁금하다.

=업계에서 꽤 회자되던 원작 시나리오 <조각된 남자>가 내게 온 게 2014년 4월 무렵이다. 사회적 상황이 워낙 힘들어서인지 원작의 주인공은 억울한 누명을 쓴 후 격한 복수심에 차 있었다. 복수의 끝은 허무가 아닌가. 모두 자신을 살인자, ‘인간 쓰레기’라고 할 때 누군가가 손을 내밀어준다면 어떨까. 그렇게 바꿔가다가 뭔가 해보고 싶어졌다. 나는 오랫동안 ‘젊은 영화’를 만들고 싶었는데 당시의 나는 맥을 못 추고 있고. 젊은 세대들 역시 힘든 상황이다 보니 내가 그들에게 동질감을 느낀 거다. 젊은 사람들을 위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그렇게 10개월간 시나리오 작업을 했다.

-주인공들이 FPS 게임에서 팀으로 모였다가 현실 세계에서까지 팀이 된다는 설정이다. 게임을 직접적으로 영화적 현실 공간에 끌어왔다.

=게임 영상이 이 정도로 발전한 줄 몰랐다. CG로 만들어낸 세계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대단하더라.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 영화를 보고 나를 좋아하게 됐다는 오랜 팬이 있다. 그런 마음이란 어떤 걸까. 만약 게임과 현실도 그런 관계가 가능하다면 어떨까. 그때 <글래디에이터>(2000)를 떠올렸다. 거대한 군대를 이끌던 장군이 억울하게 노예가, 검투사가 된다. 콜로세움에서 장군일 때 쓰던 무술과 전략, 전술로 이 과정을 이겨내잖나. 그가 만약 영화나 게임 속 영웅이라면 그의 힘과 세력으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해가면 어떨까. 여기에 흔히 사회에서 ‘게임이나 하는, 모자라고 지질하고 한심하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능력을 발견하고 그 능력으로 기득권을 확 꺾어보고 싶었다. ‘나는 이걸로 가겠다!’ 마음먹게 된 거지. “그건 불가능하다, 말도 안 된다”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나는 그럴 때 약간의 도전 욕구가 생긴다. (웃음)

-<조작된 도시>는 게임과 현실의 경계를 의도적으로 지웠다. 현실 세계가 마치 게임의 연장 같달까. ‘저것이 가능한가?’라고 생각할 틈을 주기보다는 만화적 상상으로 밀어붙이고 컷 사이의 공백을 일일이 설명하기보다는 ‘이 세계는 원래 이렇다’는 식이다. <조작된 도시>만의 리얼리티가 따로 있다는 투다.

=흔히 핍진성이라고 말하잖나. 현실 속 사람들처럼 말하고 입으면 ‘현실적’이라고 한다. 나의 리얼리티는 이야기 안에서의 진실, 사실성을 뜻한다. 게임 세계에 있던 멤버들이 게임 밖에서 만나서 문제를 해결한다고 하면 그 자체로는 비현실적이라 할 거다. 비현실과 현실을 나란히 두면 비현실적인 게 너무 튄다. 반면 주변을 다 비현실적으로 만들어버리면 오히려 모든 게 현실적이 된다. 이게 내가 하는 방식이다. 이야기를 푸는 방식으로써 판타지성을 활용한다. <웰컴 투 동막골>에서처럼 남북한, 연합군이 한 동네에 모일 가능성? 굉장히 희박하다. 가짜 같기도 하고. 근데 그곳을 상징으로서의 공간으로 만들고 인물들을 밀어넣으면? 가능해진다. ‘내가 애초에 설정한 게 약간 비현실적이야’라고 설정하고 들어가면 관객이 보기도 조금 편해질 거다. 솔직히 나는 판타지물을 좋아하진 않는다. (웃음) 작품을 만들 때 자료 조사를 다 하고 현실에서 존재 가능한 것들 이외에는 넣지 않는다. 사람들은 자기가 아는 범위의 것만을 현실이라고 믿지 않나. 인간의 불완전성인데, 내가 생각하는 진실의 범위 내에서 내 영화의 세계를 구축했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리얼리티다. 판타지성이 영화를 좀더 탄력적으로 만든다고도 생각하니까.

-게임 속 대장을 따르는 팀원들이 현실 공간에 그대로 들어와서 대장을 따른다. 이때 그들을 움직이는 건 권대장을 돕겠다는 순수한 마음과 의협심, 정의감뿐이며 갈등은 없다. 주인공들과 악의 무리 사이에 엄청난 정보력과 기술력의 차가 눈에 보이는데도 결국 주인공들이 이기는 방식인데.

=게임을 좋아한다고 현실에서도 그 팀에 대한 애정이 생기겠나, 라고 의문을 품으면 한계가 있다. 하지만 그런 애정이 가능한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은 자기 잇속을 따지기보다 그냥 자기가 하는 일이 좋아서 계속하려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 덕분에 세상이 조금은 바뀐다고 본다. 레쥬렉션 팀원들도 그런 사람들이다. 순수한 청년들을 영화에서 만나고 싶었다.

-감독의 인간관인가.

=힘들 때 손을 뻗어줄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판타지가 내게도 있는 거지. 사악한 인간들에 대한 영화는 차고 넘치고 훌륭한 작품도 많다. 거기에 숟가락을 얹기보다는, 큰 권력보다는 작은 권력들간의 연대와 같이 내가 애정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그리고 싶다. 영화적으로도 그게 더 효과적이다. 힘센 사람이 잘 싸워 이기는 것보다는 약한 사람들이 힘을 합쳐서 싸워 이기면 더 통쾌하다. 외피는 다양하게 가져가되 이러한 이야기의 원형만은 변하지 않을 것 같다.

-영화가 설명적이기보다는 서사나 상황을 시각화하는 쪽이다. 감독 데뷔 전부터 CF 광고 연출을 하며 업계에서 비주얼 감각을 인정받아왔는데. 이번에도 권유가 고초를 겪는 교도소, 조작자의 거점인 빅데이터가 있는 큐브형 공간, 여울(심은경)의 해킹 아지트 등 인물의 중요 거점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데 주력했을 것 같다.

=뜻밖일 수 있겠으나 나는 이야기로부터 이미지를 생각한다. 그림을 보여주기 위한 게 아니라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들기 위해 비주얼을 쓴다. 교도소에서 권유는 지옥을 겪어야 하는데 기존의 교도소는 너무 익숙한 그림이라 긴장감이 생기지 않았다. 그래서 권유가 가는 곳을 ‘흉악범’ 교도소라 이름 붙였다. 산속 깊은 곳에 있는 군 요새를 리모델링했다고 가정했다. 탄광촌을 하나 발견하고 그걸 확대해 만들었다. 여울은 대인기피증이 있으니 팀원들이 모여앉은 테이블에 모니터를 잔뜩 붙여놓고 멀리서 화상으로 대화를 시도한다. 이렇게 캐릭터, 스토리가 시각화된다.

-액션 어드벤처를 표방한 만큼, 게임 속 전투 신, 게임 같은 현실의 추격전 등을 보여줘야 해 CG와 특수효과에 상당한 물량 공세가 있다. 어떤 장면은 3D로 구현하고 싶었을 것도 같고.

=(웃음) CG팀에 “이걸 3D라고 생각해봐!”라고 여러 차례 설명했다. 3D로 했으면 좋았겠지만 이 정도로 나오기까지도 어려웠다. 관객이 영화의 만듦새 때문에 관람하는 데 방해받지 않길 바랐다. 순제작비가 85억원인데 내 머릿속에는 100억원짜리 영화다. (웃음) 그래도 정태성 CJ엔터테인먼트 영화사업부문 대표님이 힘이 돼줬다. 정 대표님이 쇼박스 본부장이던 시절 <웰컴 투 동막골>을 만들 때도 지지를 보내주셨다.

-최봉록 무술감독(서울액션스쿨)과 함께한 액션은 근래 한국영화에서 보지 못한 시도들이었다. 예컨대 교도소에서 권유가 보여주는 종이 화살 쏘기나 동양 무술의 동작을 응용한 듯한 어둠 속의 액션이 그러하다.

=액션 하면 류승완 감독인데 내가 어떻게 이기나. (웃음) 액션의 외피를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는 법을 생각했고 최종 표현만 바꿔봤다. 종이로 화살을 만들어 쏜다는 건 미국의 교도소 관련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알게 된 내용이다. 또 극한의 상황에 몰리면 인간의 감각이 최고조로 발현되는 듯할 때가 있지 않나. 권유가 어둠 속에서 청각에 의존해 쌀알을 무기 삼아 던지는 장면은 그런 걸 보여주고자 했다. <웰컴 투 동막골>의 팝콘 장면처럼 마법 같은 방식으로 관객에게 선물을 주고 싶었다.

-권유 역의 지창욱은 드라마로 얻은 스타성에 비하면 영화계에서는 좀처럼 소개되지 않은 배우다.

=시나리오를 쓰고 보니 비현실적인 것들이 죄다 모였더라. 한국의 톱스타들은 연기 스타일이나 얼굴에서 핍진성이 강한 편인데 <조작된 도시>와는 톤이 맞지 않을 것 같았다. 우연히 드라마 <힐러>의 클립 영상을 보는데 창욱씨의 눈빛이! 얼굴은 꽤 만화적인데 에너지가 대단했다. 만나서 얘길 해보니 이해력도 굉장히 좋고 운동신경도 발달했고. 감이 정말 좋은 배우라 앞으로 영화에서도 자주 볼 수 있지 않을까.

-<웰컴 투 동막골>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무정부주의적인 기질과 가치관이 엿보인다. 이번에는 좀더 나아가 국가 시스템은 아예 설 자리를 주지 않고 개개인의 좋은 심성이나 기질이 발현돼 그들만의 연대와 공동체(<조작된 도시>에서는 팀 레쥬렉션)를 이루는 듯하다.

=인간의 좋은 덕목을 유지하며 사는 게 특정 세력에 국한되는 것보다 더 좋다고 생각한다. 함께하는 이들과의 연대를 중시하기도 하고. 물론 나도 나이를 먹다보니 보수적이 되지만. 그래도 내 성향이 영화에도 나오나 보다. <조작된 도시>의 시나리오를 쓰던 당시 ‘진정한 리더는 어떠해야 할까’라는 고민이 컸다. 각자의 능력을 발견해주고 위험에 처한 이들을 방치하지 않는, 애정과 연민으로 팀원을 대하는 리더. 그 역할을 <조작된 도시>는 젊은이들에게서 발견한 것이다.

-게임 속 팀명이 ‘레쥬렉션’(resurrection), ‘부활’이다.

=밟아도 밟아도 절대 죽지 않고 살아나는 민초들을 생각했다. 작명 후에 보니 게임 속 팀원들의 의상을 만든 이주영 디자이너가 운영하는 브랜드명이 레쥬렉션이더라. 이렇게 맞아떨어지는 걸 좋아하는데 잘됐다 싶었다. 여리고 착한 여울에게 털보라는 아이디명을, 온순하고 정 많은 데몰리션(안재홍)에게 강한 의미의 아이디명을 준 것도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지 말라는 얘기를 하는 것이기도 하다.

-<권법>은 계속 진행되고 있는 건가.

=물론. 내 인생의 숙제 같은 작품이다. <조작된 도시>가 잘돼야 <권법>도 만들 수 있다. (웃음)

-다음 작품은 12년보다는 좀더 빠르게 만나야 하지 않겠나.

=그래서 요즘은 시나리오도 내가 직접 안 쓴다. 훌륭한 작가분들과의 작업의 문을 활짝 열어뒀다. 현재 진행 중인 작품은 사극 액션 판타지로 조선시대의 영웅들을 모아볼 예정이다. 또 하나는 베트남을 향한 한국인들의 사죄에 관한 것이다. 우리의 잘못을 사죄하고 미래로 나아가는 이야기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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