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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웅원의 영화와 건축] <컨택트>와 인간의 언어 체계, 그리고 도시를 상상하는 또 하나의 방법
윤웅원(건축가) 2017-03-30

<컨택트>

아이를 키울 때 잊을 수 없는 순간이라고 흔히 말하는, 아이가 ‘엄마’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말할 때나 첫걸음을 내딛는 순간 대신에 나는 아이가 울면서 집으로 들어온 날을 가장 잘 기억한다. 아이는 놀이터에서 자신보다 힘센 아이와 다투고, 울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울고 있는 아이를 바라보며 앞으로 그가 겪게 될 슬픔과 수치심과 고통을 모두 ‘기억해’ 냈다.

나는 아이에게 세상은 유형으로 설명되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사람은 성격이라는 유형 안에서 주어진 삶의 길을 선택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나의 말에, 아이는 수긍하지 않는다. 아이에게 올 매 순간은 나에게 기억으로서의 미래지만, 아이에게는 모두 개별적이고 오지 않은 시간이다.

아이의 앞날을 기억하기

드니 빌뇌브의 영화 <컨택트>(2016)는 테드 창의 단편소설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언어는 사고를 지배한다”는 문장은 <컨택트>의 이야기를 끌고 가는 중요한 개념이다. 12개의 외계인 비행물체 중 하나가 미국 몬태나주의 외진 벌판에 착륙한 후 외계 비행선 주위에 임시 본부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비행선이 지구에 온 목적을 알아내기 위해 외계인의 언어를 배우는 지난한 과정이 진행된다. 외계인과의 대화를 위해 차출된 언어학자 루이스 뱅크스(에이미 애덤스)는 초보적인 단어와 제스처를 사용해 외계인과의 대화를 수행해 나간다.

그녀는 외계인의 언어에 익숙해질수록, 마치 외국어로 꾸는 꿈처럼, 미래를 기억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외계인의 언어를 배우면서 기존의 인식체계가 변화되는 것이다. 영화에서 외계인의 언어는 인과관계가 지배하는 선형적인 시간 개념을 갖고 있지 않다. 그들은 미래를 기억하면서 현재를 살아가는 것으로 설명된다. 소설에서는 외계인의 삶은 미래의 기억을 현재에 ‘수행하는’ 이라고 표현한다.

루이스 뱅크스가 자신의 미래, 특히 생기지도 않은 아이의 앞날을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은 영화의 중요한 모티브다. 자신의 아이가 어린 나이에 죽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그 삶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질문한다.

나에게 영화와 소설의 가장 큰 차이는 루이스 뱅크스의 미래의 딸이 죽는 방식에 있다. 소설에서 등반 중 사고사라면, 영화에서는 불치병에 의한 죽음이다. 영화에서 불치병을 선택한 이유는 자유의지가 개입하는 상황을 없애려는 의도로 보이지만 이런 선택은 소설이 갖고 있는 근원적인 질문을 약화시키고 있다. 딸의 죽음을 알면서도 그 길을 택하는 것이 가능한지, 죽음을 기억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것이다. 이것은 과거만을 기억하고 산다고 믿고 있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사실 우리 모두는 미래의 죽음을 ‘기억’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예민한 사람들은 이러한 기억이 공황장애 형태로 나타나고, 덜 예민한 사람들은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만 그 기억을 떠올린다. 진부한 표현이 되겠지만 ‘죽음을 기억한다’는 것은 현재의 순간을 가치 있게 한다. 삶은 슬픔, 수치심, 죽음까지 포함해서 살아가는 것이다.

<컨택트>의 외계인이 지구보다 나이든 문화로부터 왔다면, 지구인의 미래를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들이 지구인에게 자신들의 말을 배울 기회를 주는 이타적인 행동은 아이에게 말을 가르치는 것과 같은 행위가 될 수 있다. 부모는 아이의 미래를 걱정하지만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오직 세상을 보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뿐이다.

수직으로 서 있는 거대한 비행물체의 모습과 외계인의 언어 덕택에 세계가 소통하게 되는 <컨택트>의 이야기는, 인간이 다른 언어로 나누어져서 분열됐다는 바벨탑의 신화를 연상시킨다. 그리고 인공지능 번역으로 언어가 통합되는 미래를 환기시킨다. 외계인은 이미 우리 안에서 말을 걸고 있을지도 모른다. 숲 안에 있을 때는 숲을 보지 못한다는 말처럼, 우리는 우리 삶을 바꿔나가는 변화의 크기를 쉽게 간과한다.

흥미롭게 본 최근 기술에 ‘what3words’라는 이름의 새로운 주소 체계가 있다. 이 주소체계는 세계를 각 변의 길이가 3m인 정사각형으로 나누고, 각각의 위치에 3단어를 사용해서 이름을 부여하는 것이다. 세계의 모든 위치가 이름을 갖기 위해서는 약 2만5천개의 단어가 필요하다고 하는데, 이 시스템은 바다 위같이 잘 사용하지 않을 장소에는 덜 익숙한 단어를 사용하는 원칙을 갖고 있다. 집, 사무실같이 주소를 외울 필요가 몇개 안 된다는 사실은 이 방식의 효용성을 증명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주소 방식인 국가, 시, 구, 동, 지번이 근대국가의 위계를 갖고 있는 구조라면, ‘what3words’는 그 위계가 사라진 체계이다. 이러한 방식의 주소 찾기가 가능해진 것은 GPS 시스템과 모바일 기기의 결합을 통해서다. 위계를 통해서 사고할 필요 없이, 기계는 우리를 정해진 장소에 즉각적으로 인도한다. 어쩌면 이것은 현실에서도 독립적이고 동등한 개체가 만들어내는 세계가 준비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현상일지도 모른다.

시노부 하시모토의 ‘Chip City’ 프로젝트.

유토피아일까 디스토피아일까

실제는 아니지만 GPS 시스템이 자동차와 결합한다면 도시계획에 어떤 변화가 생길 것인지를 고민한 시노부 하시모토의 ‘Chip City’라는 프로젝트도 같은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자동차가 모두 자동운전으로 전환되면 위계로 이루어진 도로체계가 더이상 필요 없어진다는 것이다. 실시간으로 끊임없이 피드백되는 정보는 위계가 사라진 동등한 도로체계를 만들어내고, 결국에는 대로변과 소로변의 차이도 없고, 차도와 인도의 차이도 없는, 개별적인 건물들로 구성된 도시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한다. 도시를 이루는 변수들을 너무 단순화한 면이 있지만 기술이 만들어내는 도시의 변화에 대한 새로운 시선이다.

크리스토퍼 알렉산더는 <도시는 나무가 아니다>라는 제목의 1965년 에세이에서 도시를 다이어그램으로 설명하고 있다. 제일 친한 친구를 호명하게 하면 서로 공유되어 쉽게 닫힌 그룹이 형성되는 전통사회와 친구가 겹쳐지고 분리되는 현대사회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그는 단순한 위계로 정리되지 않는 현대사회를 나무 구조가 아닌, 이형이 생성되는 ‘세미 래티스’ 구조라고 명명했다. 크리스토퍼 알렉산더의 방식으로 우리 시대의 삶을 정의한다면 나는 지금 사회가 ‘what3words’의 구조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인터넷 시대의 특징은 이렇게 위계가 아닌 독립적이고 개별적인 개인이 만들어내는, ‘하나의 세계’에 대한 전망을 보여주고 있다. 유토피아가 될지 디스토피아가 될지 모르지만 어쨌든, 새로운 세계의 언어는 인간은 혼자 서 있는 존재이고, 외로움을 견뎌내는 것을 숙명으로 하는 존재일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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