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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 영원한 제임스 본드를 보내며

로저 무어, 지난 5월 23일 향년 89살로 타계

숀 코너리가 킬러라면 나는 연인이다.”(Sean is a Killer, I’m a Lover.) 인터뷰에 대한 응답으로 남긴 이 말만큼이나 로저 무어(Sir. Roger Moore:1927~2017) 본드의 정체성을 잘 함축하는 표현은 없을 것이다. <007 죽느냐 사느냐>(1973)로 3대 제임스 본드 역을 맡은 이래 <007 뷰 투 어 킬>(1985)을 마지막으로 물러나기까지, 로저 무어는 장장 12년간 007 시리즈에 출연하면서 큰 발자취를 남겼다. 실사판 제임스 본드의 캐릭터를 처음 구축했던 숀 코너리가 배역에서 하차하고, <007 여왕폐하 대작전>(1969)으로 투입된 조지 래젠비가 별 호응을 얻지 못한 채 일회성에 그친 반면, 로저 무어는 숀 코너리의 그림자에 짓눌리지 않고 자신만의 본드를 선보이며 007을 대중문화의 일부로 각인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본드 역을 맡을 무렵 로저 무어는 이미 45살을 넘긴 중년이었다. 심지어 그는 코너리보다 3살 연상이었으며, 전임 본드인 래젠비는 29살이었다. 액션 활극의 주인공에게 요구되는 육체적 역량이 쇠퇴할 시점에서 본드를 연기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무어는 이러한 약점을 도리어 역이용해 특유의 연기톤과 재해석으로 극복해냈다. 옥스퍼드 영어를 정확히 구사하는 귀족적 품격, 185cm의 장신에 육군 대위 출신답게 몸에 밴 절제된 동작과 부드러운 인상에서 풍기는 여유, 신사적 매너와 위트 넘치는 대사로 본드 캐릭터의 이미지를 토대부터 재구축한 것이다. 오늘날 제임스 본드 하면 연상되는 로맨티스트로서의 인상이 상당 부분 로저 무어 시기에 잡힌 것이란 점을 상기하면 그가 남긴 영향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2004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62%의 득표율로 ‘역대 최고의 본드’에 선정되는 등 영원한 제임스 본드로 기억되던 무어는 1991년 유니셰프 홍보 대사가 된 이래, 일선에서 은퇴한 후의 삶을 자선과 기부 등 인도주의적 활동에 매진하는 데 바쳐왔다(여기에는 무명 시절부터의 친구 오드리 헵번, <007 죽느냐 사느냐>의 본드걸 제인 세이무어의 권유와 더불어 <007 옥토퍼시>(1983) 촬영 당시 로케이션 현장에서 인도 빈민층의 비참한 현실을 생생히 목격한 것이 동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런 그가 지난 5월 23일, 스위스에서 눈을 감았다. 향년 89살. 시신은 모나코로 옮겨져 비공개로 장례가 치러진다. 영화에서 악당을 물리쳐 위기로부터 세계를 구하던 제임스 본드는 현실에서도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헌신하다가 마침내 영면에 들었다.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

무명배우에서 제임스 본드로

무어의 연기 경력은 데뷔 이후 영화와 TV시리즈를 전전했던 초반기(1945~72), 제임스 본드 역에 몰두하는 틈틈이 <지옥의 특전대>(1978)와 <캐논볼>(1981) 등에 출연하며 전성기를 누렸던 중반기(1973~85), 본드의 영향에서 벗어난 후반기로 나눌 수 있다. <시저와 클레오파트라>(1945)의 로마 병사 엑스트라로 출연해 연기 인생을 시작한 무어는 그의 잠재성을 엿본 영화감독 데스먼드 브라이언 허스트의 재정적 도움으로 왕립연극원(Royal Academy of Dramatic Art)에 진학해 연기를 전공한다(재미있는 건 재학 시절의 동기가 바로 007 시리즈의 초대 머니페니 역을 맡은 로이스 맥스웰이었다는 사실이다. 둘은 <007 죽느냐 사느냐>에서 재회한다).

<내가 마지막 본 파리>(1954), <기적>(1959), <크로스플롯>(1969) 등에서 괄목할 연기를 선보였고, <아이반호>(1958~59), <알래스카>(1959~60), <매버릭스>(1960~61)와 같은 TV시리즈 출연과 모델 활동으로 지명도를 높이던 무어는 TV시리즈 <세인트>의 의적 사이먼 템플러 역을 맡으면서 일약 스타 반열에 오른다. 시즌6까지 이어지며 승승장구한 이 드라마는 그로 하여금 메이저급 배우로 발돋움하게 한 기점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다음에 그를 기다리고 있을 불멸의 영광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세인트>에서 보여준 재치 넘치고 정의로운 성격의 도둑 연기는 이후 로저 무어 본드의 성격에 고스란히 녹아들게 되기 때문이다.

<007 문레이커>

본드의 새로운 전형을 확립하다

이온 프로덕션의 창립자 앨버트 커비 브로콜리가 로저 무어를 눈여겨본 건 첫 영화인 <007 살인번호>(1962)부터였다. 유력한 본드 후보 중 한명이었던 무어는 <007 썬더볼>(1965) 때 다시 캐스팅 제안을 받았고 <007 두번 산다>(1967)의 후속편이 <007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1974)였을 무렵에는 계약 직전까지 갔지만 촬영예정지인 캄보디아가 내전에 휩싸여 <007 여왕폐하 대작전>으로 기획이 변경되고, <세인트>가 연장 방영되면서 무산되고 만다. 마침내 <세인트>가 종영되고 <위장 게임>(1971~72)이 한 시즌에 그치면서 무어는 오랜 시간 허공에 떠 있던 제임스 본드 역을 꿰차게 된다.

로저 무어 본드의 우선 과제는 숀 코너리 본드와의 차별화였다. <007 죽느냐 사느냐>부터 제작진은 보드카 마티니 대신 돔페리뇽 샴페인으로, 궐련을 시가로 바꾸고 당시로선 드물었던 에스프레소 머신을 구비하는 등 본드를 고급 취향의 신사 이미지로 탈바꿈시키고자 했고, 귀족스러운 인상과 유머 감각을 지닌 무어의 캐스팅은 이런 의도에 부합한 것이었다. 또한 무어가 본드를 맡을 즈음 007 시리즈는 점차 B급 첩보 액션 스릴러에서 스펙터클한 볼거리를 과시하는 세미 SF 블록버스터로 변모해가는 시점이었다. 이런 흐름에 발맞춰 무어는 기상천외한 신무기와 장비, 로맨스와 재치로 위기로부터 유유히 빠져나와, 세계정복을 꿈꾸는 과대망상증 악당을 물리치는 식의 만화적인 색채를 지닌 제임스 본드를 선보인 것이다.

<007 나를 사랑한 스파이>

1980년대에 접어들어 로저 무어의 본드는 다시 한번 일대 전환점을 맞는다. <007 문레이커>(1979)의 비현실적인 황당함에서 벗어나 본래의 첩보 액션으로 방향을 되돌리고자 한 존 글렌은 <007 유어 아이즈 온리>(1981)부터 특수장비의 남발을 줄이고 상대적으로 현실적인 목표를 지닌 악당을 등장시켜 기존의 무어표 본드에게 부족한 현실감을 부여하고자 했고, 무어 역시 절벽에 걸린 악당의 차를 발로 밀어버리는 장면에서의 비정한 연기로 낭만적인 로맨티스트이지만 본질은 엄연히 킬러인 본드의 냉혹함까지 표현해냈다.

첩보영화의 르네상스가 찾아온 지금, 로저 무어의 유산은 도처에서 발굴되고 있다. 매튜 본의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2015)는 로저 무어 본드의 21세기적 재해석에 다름 아니며, 샘 멘데스 또한 <007 스카이폴>(2012)의 해골 이미지로 <007 죽느냐 사느냐>를, <007 스펙터>(2015)의 오프닝 시퀀스에서 헬기를 동원한 <007 유어 아이즈 온리>를, 열차 객실에서의 격투에서 <007 나를 사랑한 스파이>(1977)를 오마주하는 등 그에 대한 애정을 유감없이 과시한 바 있다. 클래식 본드의 시작은 숀 코너리였지만 본드 캐릭터를 완성한 건 바로 로저 무어의 공로였다. 첩보영화의 역사가 계속되는 한 로저 무어가 남긴 본드의 이미지는 팬들의 가슴속에 길이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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