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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윈 픽스>, 붉은 방으로 돌아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김보연 2017-07-26

<트윈 픽스> 시즌3 - 매주 금요일 밤 11시 두편 연속방송, 전 시즌 캐치온 VOD 독점공개

다들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정말 <트윈 픽스> 시즌3가 25년 만에 만들어졌다. 시즌2의 마지막 에피소드는 1991년 6월에 방송됐고, 다음해에는 본편 뒤에 숨은 이야기를 그린 <트윈 픽스> 극장판이 발표됐다. 그리고 22년이 지난 2014년, 케이블 채널 <쇼타임>은 <트윈 픽스>의 새 시즌을 제작한다고 공식 발표했으며 다시 3년이 지난 2017년 5월에 드디어 새로운 에피소드가 방송됐다. 그리고 한국에서도 드디어 18부작 <트윈 픽스> 시즌3가 7월 21일 캐치온을 통해 첫 방송을 시작했다.

이번 <트윈 픽스> 시즌3에는 놀라운 점이 세 가지 있다. 첫 번째는 전 시즌과 시간 차이가 무려 25년이나 된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데이비드 린치마크 프로스트 콤비뿐 아니라 시즌1, 2의 배우 40여명이 다시 뭉쳤다는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 놀라운 점은 새로운 이야기로 새 시즌을 시작하는 게 아니라 시즌2의 전개를 그대로 이어가기로 했다는 것이다. 즉 <트윈 픽스>를 모르는 시청자들이 느낄 수 있는 높은 진입 장벽은 아랑곳하지 않고 ‘트윈 픽스’라는 세계관, 혹은 이야기 자체를 계속 확장시키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 정도면 <트윈 픽스>가 도대체 어떤 시리즈인지 물어야 할 것 같다. 수많은 사람들이 <트윈 픽스>의 새로운 시리즈에 열광적인 반응을 보냈고, 방영 중에도 조기 종영을 결정하던 까다로운 제작사는 이례적으로 50분 분량의 에피소드 18개를 한꺼번에 할당했다. 그런가 하면 <카이에 뒤 시네마> 7~8월호는 영화나 배우의 이미지가 아니라 <트윈 픽스>의 ‘레드 룸’으로 표지를 장식하며 특집을 마련하기도 했다.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트윈 픽스>의 복귀에 열광하는 것일까?

25년 전, 트윈 픽스에 어떤 일이 있었나

시작은 한 소녀의 죽음이었다. ‘트윈 픽스’라 불리는 작은 시골 마을에서 로라 팔머라는 아름다운 소녀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충격에 사로잡혔고, 이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FBI 요원 데일 쿠퍼(카일 매클라클런)가 트윈 픽스에 도착했다. 이때까지는 다들 ‘평범한’ 수사물을 기대했을 것이다. 주인공은 열심히 증거를 찾을 것이고, 범인은 아마 마을 사람 중 한명일 것이다. 또한 수사 과정에서 인간의 뒤틀린 욕망과 충격적인 진실이 드러날 것이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데이비드 린치와 마크 프로스트는 이야기를 좀더 독창적인 방식으로 풀어나가려고 했다. 두 사람은 여기에 미국 정부가 개입된 음모론을 살짝 집어넣었고, 초자연적인 현상까지 끌어들였다. 트윈 픽스 마을은 어느 순간 ‘악령’의 존재가 등장하는 세계로 변하기 시작했다. 주인공은 꿈속에서 사건의 단서를 찾았고, 범인은 악령의 조종을 받아 움직였다. 게다가 <트윈 픽스> 시즌2의 악명 높은 마지막 에피소드는 주인공을 완전히 다른 세계로 보내버리기까지 했다.

데이비드 린치는 이 불균질한 요소를 깔끔하게 정리하지 않은 채 그대로 두었다. 물론 과감하고 독창적이었지만, 솔직히 말해 그리 친절한 방법은 아니었다. 사람들의 반응 역시 크게 나뉘었다. 일단 <트윈 픽스> 팬들은 이 이야기를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았다. <트윈 픽스>에는 수많은 비밀스러운 설정이 있었고, 설정 사이에 숨은 비밀은 그것보다 더 컸다. 팬들은 화면에 잠깐 등장하는 장면에서도 숨은 의미를 찾아냈고, ‘검은 오두막’이나 ‘레드 룸’, ‘밥’(BOB) 같은 공식 ‘떡밥’에 대해 끝나지 않는 토론을 벌였다. 이것은 그 자체로 <트윈 픽스>를 감상하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같은 이유로 <트윈 픽스>를 간단히 비판할 수도 있다. 이 작품은 너무 많은 에피소드를 산만하고 갑작스럽게 제시한 뒤 이를 수습하지 않았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의 좋은 예로 들 수도 있을 것이다. 수많은 등장인물은 화면에 나올 때마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진행시켰고, 그 과정에서 관객은 결말은커녕 바로 다음 장면의 전개도 짐작할 수 없었다. 게다가 오해를 무릅쓰고 말하자면 <트윈 픽스>가 지난 25년간 누린 컬트적 인기는 그 이상한 결말에 50% 이상을 기대고 있다. 범인을 쫓던 주인공은 갑자기 ‘레드룸’이란 곳으로 들어갔고, 그곳에서 범인이 아닌 다른 사람(혹은 존재)들과 기이한 만남을 가졌다. 그리고 얼마 후 다시 현실로 돌아온 주인공은 더이상 우리가 알던 인물이 아니었다. 심지어 그는 악마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당연히 이에 대한 설명이 필요했지만 감독은 아무렇지 않게 거기서 이야기를 끝냈다.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그런 결말이었다(참고로 다음해 발표한 극장판도 이 결말에 대해서는 속시원한 설명을 해주지 않았다). 이처럼 <트윈 픽스>는 재미와 논란의 요소를 함께 가진 작품이었고, 사람들은 자신들의 궁금증을 풀어줄 새로운 시즌을 긴 시간 동안 기다려야 했다.

<트윈 픽스> 시즌3에 대한 기대

시즌2의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로라 팔머가 신비스럽게 예언한 것처럼 25년이 흐른 뒤 <트윈 픽스> 시즌3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먼저 눈에 띄는 점만 짚어보자면 일단 시즌1, 2와 달리 데이비드 린치가 모든 에피소드의 연출을 직접 맡기로 했다. 그리고 시대의 변화에 맞춰 화면비는 4:3에서 16:9로 바뀌었고, 폭력과 섹스의 수위도 한층 강해졌다. 이야기의 무대 역시 트윈 픽스뿐 아니라 뉴욕과 사우스다코타, 라스베이거스 등으로 다양해졌다. 그리고 스포일러가 될까봐 자세히 얘기할 수는 없지만 나오미 와츠, 아만다 사이프리드 등 새로운 배우들이 주요 인물로 등장해 트윈 픽스의 세계에서 활약을 펼칠 예정이다.

변하지 않은 것들도 있다. 시청자의 긴장을 부드럽게 풀어주던 잔잔한 오프닝 테마는 그대로이며, 주인공 데일 쿠퍼와 로라 팔머를 포함해 보안관, 마을주민, FBI 요원(데이비드 린치 역시 그대로 출연한다!), 레드 룸의 인물 등 주요 배역을 연기했던 배우들도 다시 출연했다. 긴 세월이 흐른 만큼 그들의 현재 얼굴에서 옛 모습을 즉시 떠올리는 건 쉽지 않지만, 천천히 감상하다 보면 그들의 ‘정체’를 떠올릴 수 있는 장치들을 제작진이 친절하게 배치해놓았음을 알 수 있다. 또한 1990년대 느낌을 물씬 풍기는 당시의 특수효과까지 거의 그대로 구현해 보는 재미를 더한다. 특히 세련된 2017년의 뉴욕을 배경으로 악령이 ‘촌스럽게’ 등장하는 장면은 역설적으로 <트윈 픽스>가 우리에게 정말 돌아왔다는 느낌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그리고 가장 변하지 않은 건 <트윈 픽스>라는 세계 그 자체다. 앞서 말한 것처럼 트윈 픽스의 세계는 논리와 이성으로 움직이는 세계가 아니다. 여기는 초이성적인 존재와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직관이 활발하게 작동하는 곳이다. 이번 시즌3의 이야기 전개 역시 눈을 의심케 하는 사건으로 가득하다. 겨우 현실로 돌아온 주인공은 적어도 세명 이상의 존재로 나뉜 것 같으며,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 것 같은 강력한 악당은 사람들을 살해하며 도시를 뒤흔들고 있다. 트윈 픽스 마을의 주민들도 여전히 비밀스러운 사건을 벌이거나 경험하는 중이고, 시즌2의 악당으로 짐작되는 인물은 또 다른 거대 음모를 계획 중이다. 이렇게 거미줄처럼 얽힌 초자연적 사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내가 정말 <트윈 픽스>를 보고 있다는 흥분이 절로 찾아온다.

불면의 밤은 보장된다

그렇다고 걱정되는 점이 없는 건 아니다. 미리 예고하자면 트윈 픽스의 세계는 갈수록 어지러워져가고 있다. 우리가 궁금해하던 문제에 대한 답은 아주 일부만 주어졌고, 린치는 그보다 더 많은 문제를 매번 새롭게 던지는 중이다. 돌이켜보면 시즌1과 시즌2에는 로라 팔머의 죽음이라는 굵직한 사건이 이야기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시즌3에는 그런 흐름조차 잘 보이지 않는다. 다소 과감하게 말하자면 지금 <트윈 픽스>는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게 아니라 세계관을 야심차게 키우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동시에 <트윈 픽스>의 이런 특징을 걱정하는 건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따지고 보면 <트윈 픽스>는 원래 그랬다. <멀홀랜드 드라이브>(2001)와 <인랜드 엠파이어>(2006)의 감독 데이비드 린치는 옛날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출구가 없는) 미로의 이야기를 만들고 있는 중이다. 참고로 린치는 25년 전과 비교했을 때 뭐가 변했냐는 질문에 “변한 건 없다. 내가 25살 더 먹었을 뿐이다”, “기술은 변했지만 스토리텔링은 변하지 않는다”라고 덤덤하게 말하기도 했다. 적어도 린치는 예나 지금이나 자신만의 고유한 방법으로 <트윈 픽스>를 만들고 있는 중이다.

게다가 우리는 지금 유일하다고 해도 좋을, 굉장히 특별한 이벤트를 실시간으로 목격하는 중이다. 만약 데이비드 린치가 아니었다면, 그리고 <트윈 픽스>가 아니었다면 언제 다시 25년에 걸친 거대하고 허무맹랑한 미스터리를 즐길 수 있을까? 그러니 이번 기회를 절대 놓치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시즌3부터 보아도 나쁘지 않고, 시즌1부터 보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시즌2부터 보는 건 말리고 싶다). 일단 <트윈 픽스>의 세계로 뛰어들기를 권한다.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와 정체를 알 수 없는 ‘떡밥’으로 가득한 불면의 밤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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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캐치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