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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숲> 이수연 작가 - 공식에서 벗어난, 인간의 다면성을 그리다
임수연 2017-08-09

* <비밀의 숲>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비밀의 숲>의 배우들.

올해 가장 인상적인 데뷔가 아닐까. 작품성은 물론 침체기에 빠졌던 tvN 드라마의 부흥을 다시 이끌어냈다는 평을 받고 있는 <비밀의 숲>은 이수연 작가의 첫 작품이다.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그가 쓴 대본은 작가의 이름값 없이도 드라마에서 만나기 힘들었던 조승우, 배두나가 출연을 결심하게 만들었다. 지극히 현실적이지만 희망을 놓지 않는 결말의 태도 역시 이 신인 작가에 대한 호기심을 한층 더 증폭시킨다. 마지막 회 방송 후 그와 서면으로 인터뷰를 나눴다.

-드라마 각본을 쓰기 전에는 어떤 일을 했나.

=일반 기업에 다니는 회사원이었다. 직장에 다니던 어느 날 드라마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원래 상상하는 걸 좋아했으니까. 회사를 그만두고 습작 생활을 시작했다.

-처음 드라마를 구상한 것은 3년 전이라고.

=법정물을 만들자는 생각이 먼저였다. 그 과정에서 검찰을 주요 무대로 삼고, 내부비리에서 촉발된 조직 문제에 눈을 돌렸다. 취재 과정 중 대검찰청을 견학할 기회를 얻기도 하고 어느 정도 대본 작업을 해놓았다. 뒷부분 작업을 다시 시작한 건 편성이 구체적으로 얘기된 지난해 가을부터다. 그래서 쓰는 데 걸린 시간은 1년정도 되는 것 같다. 집필은 혼자 했지만 공동 제작사인 씨그널엔터테인먼트그룹의 민현일 대표와 처음부터 많은 얘기를 나누면서 쓴 작품이다. 민현일 대표에게 감사한다.

-검사의 세계를 그리겠다고 처음 결심했을 때 가장 관심이 간 부분이 무엇이었나.

=다른 드라마와의 차별 포인트는 “극중 사건이 왜 일어났는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었다. 반드시 반영해야겠다고 생각한 부분은 특정 에피소드나 행태가 아닌 일반적인 월급검사들의 존재였다. 평범한 직장인처럼 열심히 일하면서 살아가는 보통의 검사들이 더 많다.

-다른 장르 드라마와 달리 회별로 완결되는 에피소드가 아닌 하나의 거대한 사건을 향해 달려가는 구성을 갖고 있다. 시청자들에게 다소 진입장벽이 높은 형식일 수 있는데.

=검찰청이란 커다란 조직을 설정하고 이 안의 이야기를 끌어내려고 했기 때문에 1, 2회에 끝나는 에피소드 형식으로는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내가 갖가지 양념을 치거나 중간 유입이 쉽도록 쓸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뚝심 있게 쓰느라 이러한 형식을 취한 건 아니다. 나 역시 시청률이 높게 나오게 쓰고 싶지만 이런 얘기를 중간 유입이 쉽게 쓰는 방법을 아직 터득하지 못했다. 경험이 더 많이 쌓이면 방법을 알게 되기를 바란다.

-주인공 황시목(조승우)에게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설정을 부여한 이유는 무엇인가.

=스스로가 감정 없이 기능만 남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감정이 거추장스러워서이고, 넓은 세상으로 보자면 감정이 없어졌을 때 모든 갈등, 충돌이 없어질 것 같아서다. 인간이 가지는 가장 강렬한 감정은 “자기 자신을 가장 아낀다”는 것이라고 보는 편인데, 결국 이 때문에 사람들이 다투게 되는 것 같다.

-반면 공감능력이 뛰어난 한여진(배두나)은 황시목과 가장 대립되는 인물이다. 그외에도 다양한 인간 군상이 등장한다.

=<비밀의 숲>은 자기애가 넘치는 사람, 자기애가 옅어서 그로 인한 손익이 모두 적은 사람, 혹은 자기애를 잘못 해석한 사람들이 움직이는 이야기다. 거의 모든 등장인물이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다른 복안을 지녔다. 다면성이 설득력을 지니는 동시에 각각의 복안들이 너무 표가 나지 않게 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 악인은 이러하다, 정의로운 주인공은 반대로 저러하다는 공식이 적용되지 않는 인물로 만들려고 했다. <비밀의 숲>에 나온 등장인물들, 황시목, 이윤범(이경영), 이연재(윤세아), 이창준(유재명), 박무성(엄효섭) 등 누구 하나 딱히 나쁜 사람이라고 단편적으로 얘기할 순 없다. 각자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것뿐이다. 박무성도 누군가의 애틋한 아들이란 점에서 쉽게 나쁜 사람이라고 단정 짓기가 나에겐 어렵다.

-영은수(신혜선)의 충격적인 죽음은 시청자들에게 안타까움을 안겨줬다.

=영은수의 죽음이 아버지 영일재의 침묵에 대한 대가라고 하는 리뷰들을 보았다. 물론 그 의미가 맞다. 여기에 더 보태자면 황시목이 후배의 시체를 봤을 때의 마음이 시청자들에게도 전달되기를 바랐다. 그동안 그녀를 대했던 태도에 대한 뒤늦은 미안함, 그렇게 애만 쓰다 죽어간 여자를 오해했던 것에 대한 가엾음 같은 것들. 영은수가 다소 무모하고 저돌적으로 행동하는 캐릭터라 걱정해주는 시청자들도 있었는데 막상 그녀가 죽은 이유는 앞서 보여준 행동과 무관한 것이지 않나. 갑자기 떨어진 벼락 같은 불행, 밑도 끝도 없는 종말의 충격도 함께 전해지기를 바랐다.

-검찰 비리를 증명하는 자료를 남기고 자살한 이창준에 대해 ‘다크 나이트’에 비유하는 일부 반응도 있지만, 황시목이 그를 “괴물”이라고 지칭함으로써 그가 영웅시됐던 분위기를 뒤집지 않나. 결국 이창준이라는 인물을 통해 작가가 보여주고 싶은 건 어떤 것이었나.

=먼저 의(義)와 불의(不義)의 분별. 얼핏 보기엔 강퍅한 불의가 더 강해 보이는 세상에서 편법 없이 진실을 향해 나아가는 꾸준한 걸음의 가치를 이야기하고 싶었다. 우리가 손으로 남을 가리킬 때 손가락 하나는 상대를 향해 뻗어 있지만 나머지 손가락은 모두 나를 향해 있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 결국 모든 것은 나로 인해 비롯된다. 이외에는 이창준과 황시목이 16부에서 하는 말에 기획의도가 담겨 있다.

-마지막 회의 서동재(이준혁)를 통해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연재의 후일담 역시 한국 사회가 쉽게 변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을 안겨주고 말이다. 그럼에도 이 드라마는 희망을 잃지 않는다.

=사람이 자살하는 건 지금 처한 상황이 너무 힘들어서가 아니라고 한다. 아무리 힘들어도 내일, 아니 10년 후에라도 개미손톱만큼 나아질 거라는 희망이 있다면 목숨까지 끊진 않는다고 읽었다. 그런데 더 고통스러울 일만 남았다는 결론을 내려버리면 막을 수 없는 지경이 될 것이다. 희망을 잃지 않은 게 아니라 희망조차 없으면 안 되기 때문이었나 보다. 드라마에서조차 그러면 너무 깜깜할 것 같았다.

-그외 소소한 질문도 하고 싶다. 황시목이 ‘혼밥’하는 상황이 외롭지 않게 그려지는 것이 흥미로웠다.

=누군가와 밥을 먹는다는 건 매우 일상적이지만 실은 정말 내키지 않을 수도 있고 제일 좋은 시간일 수도 있다. 특히 시목처럼 늘 혼자였던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나.

-그런데 황시목은 항상 어디선가 연락이 오는 바람에 매번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한다. 작가의 짓궂은 의도인가. (웃음)

=이 드라마는 밥 먹고 수다 떨고 누워서 자는 일상적인 그림들이 많이 제거된 드라마라 주인공의 작은 일상이 의미를 갖기를 바랐다. 황시목을 바라보던 사람들이 ‘아, 드디어 먹었다’ 하는 안도감을 느끼도록 말이다.

-구체화되지 않았더라도 준비하는 차기작이 있나. 제작사에 의하면 5~6편의 작품을 더 만나볼 수도 있다던데.

=습작을 오래한 사람은 누구나 몇개의 시놉시스는 갖고 있다. 써놓은 게 몇편 더 있다고 알려졌는데 공개하기엔 아직 좀 시기상조다. 그럴 정도로 잘 썼다면 더 일찍 데뷔했겠지. 후속작은 역시나 전문직 드라마가 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 특정 직업군이 모인 가운데 벌어지는 기 싸움, 수 싸움이 개인적으로 쓰기 제일 편하기 때문이다. 다만 피는 그만 흘렸으면 좋겠다. 내가 쓰는데 내가 무서울 때가 있어서다. 사람의 감정만으로 끌고 가는 멜로나 가족극은 스스로 취약한 부분이라 아무래도 이번처럼 어른들의 파워게임 내용이 많지 않을까 생각한다. 시대극이나 사극도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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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tv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