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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관의 <미지와의 조우> 경이로운 빛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 출연 리처드 드레퓌스, 프랑수아 트뤼포 / 제작연도 1977년

어릴 때 난 멀미가 심했다. 버스에 타기 위해서는 구토용 비닐봉지를 한손에 챙겨야 할 정도였다. 영화를 보러 가던 그날도 그랬다. 집이 종점 근처라 버스에 앉아 출발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라디오에서 영화 광고가 나왔다. 어머니였던가 아버지였던가 “지금 저 영화를 보러 가는 거야”라고 말씀하셨다. 시흥동에서 광화문 국제극장까지 상당한 장거리 여정,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마 그날도 난 멀미를 심하게 했을 것이다. 잔뜩 지쳐서 극장으로 들어갔고 의자에 앉자 곧 주위가 어둑해졌다. 그리고 무슨 영화인지도 모를, 버스 라디오에서 광고로 들었던 그 영화가 시작됐다. 부모님이 내 멀미를 감수하고라도 꼭 보여줘야겠다고 했던 그 영화가.

저학년 초등학생이 보기에 그 영화는 무척 길었다. 웃긴 장면도 없었고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지 알 길이 없었다. 되레 으스스했다. 밤 장면이 많았고 날아다니는 불빛이 많이 나왔다. 나보다도 어린 극중 꼬마애가 불빛 중 하나를 가리키며 “아이스크림이야”라고 했던 대사를 똑똑하게 기억한다. 고작 아이스크림이라니…. 어린아이에겐 그게 그렇게나 와닿는 대사였던 것이다. 그러곤 주인공으로 보이는 미친 아저씨가 자꾸 어떤 모양에 집착하는데…. 어휴, 역시나 으스스한 영화였다.

아마 장거리 버스 이동에 지친 나는 중간에 슬쩍 졸았던 것 같다. 졸았건 졸지 않았건 영화의 이야기를 따라잡을 수 없었으니 큰 문제는 아니었지만 영화는 어느덧 결말을 향해 달렸고 난 두 가지 커다란 경험을 하게 된다. 하나는 소리. 다섯 음계가 반복되었다. 과학자들이 우주인과 대화하기 위해 음계를 사용했고 우주선이 그에 응답한 소리는 ‘레미도도솔’ 다섯 음계였다. 응답하는 순간 바로 두 번째 경험, 그것은 빛이었다. ‘레미도’를 지구의 과학자들이 보내자 나머지 두개 음을 외계인의 우주선이 뽜앙 하며 요란하게 응답하는데 그 순간 거대하고 아름다운 우주선의 빛들이 그 큰 스크린에 가득 찼다. 아니 실은 그전, 거대 우주선이 데블스 타워에 내려앉을 때부터 그 빛의 화려함이 시작되었다. 나에게 그것은 경이로움이었다. 엄청나게 많은 빛이 스크린으로부터 시작해 내 눈을 뚫고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난 멜로디언으로 우주인과 교신하기 위해 다섯 음계를 만날 쳐댔다. 하지만 빛은 어쩔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늘 마음에 품고만 있었다.

얼마 후에 이 영화가 <미지와의 조우> 혹은 <클로스 인카운터>라고 불리며 혹자는 <제3종 근접 조우>라고도 말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역시 제목마저도 뭔지 모를 영화였다. 하지만 그 영화를 본 순간이, 아이스크림과 다섯 음계, 그리고 거대한 빛이 앞으로 꽤 오랜 시간 지속될 나의 영화에 대한 애정의 시작임을 그리고 초대였음을 난 알지 못했다. 그 후로 난 어쩌면 스크린에 가득했던 거대한 빛으로부터 받은 충격을 계속 경험하고 싶어 극장을 찾았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유효한 스티븐 스필버그에 대한 팬심의 시작이기도 하고, 아직도 극장에서 잘 조는 내 관람 습관의 시작이기도 하다. 어쨌든 여러모로 내 인생의 영화인 셈이다. 이 영화가 벌써 40주년이 되어 4K 리마스터링된 블루레이가 나온다고 한다.

유성관 한국영상자료원 경영기획부, 온라인 사업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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