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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꾼> 장창원 감독 - 통쾌하게 즐기고 기분 좋게 극장을 나서길
송경원 사진 오계옥 2017-11-23

<>은 따뜻한 영화다. 사기꾼을 속이는 사기꾼을 전면에 내세운 하이스트 무비가 따뜻하다는 게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영화에는 사람을 향한 애정과 이야기가 품은 낙관적인 상상력이 묻어난다. 이준익 감독의 연출부로 첫발을 디딘 지 12년 만에 첫 연출작을 선보인 장창원 감독을 직접 만나보니 이해가 됐다. 그는 영화처럼 따뜻한 사람이었다. “2시간 동안 재미있게 즐기고, 극장을 나섰을 때 찜찜함이 남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만든 영화 <>은, 그래서 경쾌한 장르영화이면서 동시에 진한 사람 냄새가 난다.

-이준익 감독의 <왕의 남자>(2005)로 영화계에 입문했고 오랜 시간 연출부 생활을 거친 후 드디어 첫 데뷔작을 선보인다.

=항상 뒤에서 바라보다가 전면에 나서려니 아직 어색하다. 아직까지 주변에서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주신다. 포커페이스라 그런지 너무 여유 있는 거 아니냐는 말도 종종 듣고. (웃음) 걱정도 있지만 후회 없이 작업했기 때문에 설레는 마음이 더 크다. 부디 재밌고 가볍게 즐겨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희대의 사기꾼 조희팔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

=조희팔 사건을 출발점으로 삼은 건 아니다. 처음에는 사기꾼 잡는 사기꾼에 대한 이야기를 구상했다. 2011년 <평양성> 조감독을 마치고 입봉을 위해 꾸준히 시나리오를 썼는데 비슷한 이야기가 나와서 엎어지기도 했다. 그중 하나가 왕과 내시 사이의 갈등에 대한 드라마였는데 얼마 뒤에 <역린>(2014)이 나왔다. 하필이면 현빈 배우가 주연이었던. (웃음) 주요 코드가 너무 비슷해서 어쩔 수 없이 포기했다. 그러다 착수한 <>의 하이컨셉은 통쾌함이었다. 어떻게든 2시간 동안 즐기고 기분 좋게 웃으면서 나올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이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조희팔 사건을 모티브로 차용했다.

-일종의 하이스트 무비라고 할 수도 있는데 원래 관심이 있던 장르였나.

=나를 아는 사람들은 내가 이런 장르에 도전할 거라고 생각도 못했을 거다. 취향은 이준익 감독님과 비슷하다. 내겐 스승이나 마찬가지인 분이라 코드가 맞는 것 같다. 기본적으로는 사람 냄새가 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이번 영화를 준비하면서 나도 몰랐던 취향을 발견한 기분이다. 1년 정도 시나리오를 쓰고 초고를 선보였을 때 이준익 감독님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 좋아서 깜짝 놀랐다. 사실 시나리오 작업이라는 게 외로움과의 싸움이지 않나. 첫선을 보였을 땐 늘 발가벗겨진 기분이 든다. (웃음) 다행히 기대 이상으로 좋아해주셔서 용기를 얻었다. 아마 이번 영화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이지 않았나 싶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구성이 매력적이다. 한편으론 반전이 쉬지 않고 계속돼 지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반전을 위한 반전에 매달리진 않았다. 마지막 장면을 먼저 그리고 그 장면에 도달하기 위해 달려간 영화다. 허를 찌르고 서로를 속이는 반전들은 악당을 응징하는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발생한 효과라고 보는 편이 적절할 것 같다. 비유하자면 도미노가 일거에 무너지는 것처럼 그동안 스스로 믿어왔던 걸 모두 무너뜨리는 파괴력이 필요했다. 이를 위해 큰 줄기를 먼저 짜가고 이음매를 구체화하다보니 자연스럽게 퍼즐이 맞춰졌다.

-범죄를 소재로 한 영화지만 기본적으로 따뜻하다. 결말도 거칠게 몰아붙인다기보다 낙관적이고 낭만적인 해결처럼 보인다.

=그게 내 성향인 것 같다. 착하다는 의미는 여러 가지로 쓰일 수 있겠지만 그런 따뜻함이 내가 생각하는 영화의 미덕 중 하나다. <>은 계란들을 모아 바위를 깨트리는, 소시민이 시스템을 깨부수는 이야기다. 그 자체가 비현실이라면 비현실인데 그런 요소들마저 웃으면서 볼 수 있는 게 영화적인 상상이라 생각한다. 날카로운 맛이 떨어질 수 있다는 건 내부적으로도 지적된 부분이지만 그건 감수해야 한다고 봤다. 결국 선택의 문제다. 좀더 다수가 편안하고 통쾌하게 즐길 수 있는 방향에 중점을 뒀다.

-그렇다고 영화의 긴장이 떨어진다는 건 아니다. 반전이 거듭되면 지칠 법도 한데 끝까지 밀어붙이는 힘이 있다. 아무래도 눈 돌릴 틈을 주지 않는 속도감 덕분인 것 같다.

=편집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특정 부분을 강조하거나 순간의 감정, 캐릭터의 사연에 집중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면 호흡이 망가질 것 같았다. 결국 속도감 있게 달려가야 엔딩에서 파괴력을 더 얻을 수 있다고 봤다. 여러 가지 편집 버전을 구상했는데 결과적으로는 지금의 호흡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판단했다. 열쇠가 되는 장면은 마지막 반전과 숨겨뒀던 사연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이 영화 속 사기극이라는 게 상대를 찾아가 말로 설득하는 게 아니라 목표 대상이 제 발로 덫에 뛰어들도록 판을 짜는 일이다. 관객도 자연스럽게 그 판으로 유도하고 싶었다. 다소 개연성이 떨어지거나 인물의 드라마가 흐려져도 마지막 한방이 자잘한 아쉬움들을 해소할 수 있을 거라고 봤다.

-멀티 캐스팅에 눈길이 갈 수밖에 없는 영화다.

=조화가 제일 중요했다. 지성 역의 현빈을 제일 먼저 캐스팅했고 그에 맞춰 박 검사 역의 유지태, 그리고 나머지 인물들이 차례로 구성됐다. 하나씩 퍼즐 조각을 맞춰가는 기분이었다. 제일 마지막으로 캐스팅한 건 나나다. 사실 걸그룹 멤버라는 건 알았지만 구체적으로는 몰랐는데 드라마 <굿와이프>를 보고 영화 속 춘자 역에 적격이라고 보고 제안을 했다. 하나를 알려주면 두개를 소화하는 배우다. 나머지 배우들이야 워낙 베테랑들이라 처음부터 믿고 갔다. 이런 배우들과 호흡을 맞춘다는 건 감독으로서 행운이다.

-모든 배우에게 각자 다른 연기지도를 했다고 들었다.

=당연한 거다. 배우들마다 준비하는 방식, 표현하는 성향이 모두 다르니까. 대부분은 시나리오상의 이미지와 내가 바라는 것, 배우들 각자가 준비해온 모양이 거의 일치해서 특별히 어려운 지점은 없었다. 나나의 경우, 영화는 처음이라 초반엔 긴장을 했는데 자주 호흡을 맞춘 박성웅 배우가 편하게 연기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줬고 그러고나면 나나는 매번 기대 이상의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대화를 가장 많이 한 사람은 유지태 배우다. 사전에 자주 만나 대사 톤도 맞추고 역할에 대한 토론도 자주했다.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라는 마인드가 확고한 배우라 토론을 거쳐 어느 정도 모양이 잡히고 나서는 철저히 그걸 구현하는 데 충실했다. 원래 박 검사는 차갑기만 한 캐릭터였는데 내면의 열정과 욕망까지 부글거리는 복합적인 캐릭터로 완성시켰다.

-멀티 캐스팅이 화려해 보이지만 어려움도 많았을 텐데.

=스케줄 관리가 제일 힘들었다. 외부 장면을 찍을 때마다 하필이면 비가 와서 자주 촬영이 밀렸는데 결과적으로는 자잘한 부분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도 있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배우들의 앙상블을 보는 게 무척 즐거웠다. 현장의 즐거움이 영화에 녹아든다는 걸 이야기로만 듣다가 직접 체험해보니 이런 게 시너지 효과구나 싶어 현장의 에너지를 따라가는 나를 발견했다.

-연출부를 거쳐 조감독까지 차근차근 밟아온 케이스다.

=예전엔 이게 당연한 코스였는데 최근엔 곧장 데뷔하는 친구들이 많아 나같은 경우가 오히려 드문 것 같다. 연출부를 한 단계씩 거쳤을 때의 장점은 현장을 잘 알 수 있다는 거다. 배우, 스탭들의 이야기와 에너지를 취합해서 현장에서 새로운 것을 녹여낼 수 있는 법을 배운다고 해도 좋겠다. 최근엔 각 스탭들이 자기 파트에만 몰두하는 것 같아 아쉬움이 있다. 영화는 결국 함께 만드는 일이다. 스스로 생각할 때 나는 재기발랄한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를 쓸 수 있다는 자신감은 있다. 현장에 갈 때마다 끊임없이 배우는 중이란 사실을 자각한다. 현장의 에너지를 영화로 바꾸는 순간의 희열이 있다. 그런 부분을 계속 갈고닦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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