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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퀴어영화를 만든다는 것
이주현 사진 최성열 2017-12-06

<어느 여름날 밤에> <열대야> 김헌 감독, <애정소년 잔혹사> 장기원 감독

김헌 감독, 장기원 감독(왼쪽부터).

올해 서울프라이드영화제에서 관객의 지지를 받은 한국의 퀴어영화는 김헌 감독의 <열대야>였다. 김헌 감독은 전작 <어느 여름날 밤에>를 통해 과감한 섹스 신과 노출 신의 퀴어영화를 선보인 바 있다. <열대야> <어느 여름날 밤에>에 조감독과 동시녹음 스탭으로 이름을 올린 장기원 감독 역시 동성애를 혐오하는 호모포비아를 주인공으로 한 ‘불량 퀴어영화’ <애정소년 잔혹사>를 만들었다. 이들은 모두 이상우필름 소속의 젊은 감독들이다. 우리에게 금기란 없다는 듯 세상의 다양한 사랑과 인간 군상을 스크린으로 불러낸 이들을 만나, 한국에서 퀴어영화 만들기의 고충과 의미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열대야>는 서울프라이드영화제에서 관객상인 핑크머니상을 받았고, <애정소년 잔혹사>는 루마니아에서 열리는 게이필름나이츠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받았다. 조금 늦었지만 축하 인사를 전한다.

=김헌_ 기쁘게도 첫 영화 <어느 여름날 밤에>에 이어 <열대야>로 서울프라이드영화제에 두 번째 초대를 받았다. 내가 잘 모르는 주제를 다루는 거라 불안감과 두려움이 컸는데 이번에 관객상을 받으면서 내가 하고자 한 이야기가 사람들과 공감할 수 있었다는 데 무척 기쁘다.

=장기원_ 기분은 좋았지만 영화제에서 감독은 초청해주지 않더라. 그래서 루마니아에는 미처 못 갔다. (웃음)

-<엄마는 창녀다>(2011), <비상구>(2013), <지옥화>(2014) 등 꾸준히 금기에 도전하는 영화를 만들어온 이상우 감독의 영화사, 이상우필름 소속 젊은 감독들이다.

김헌_ 장기원 감독과 처음 만난 것도 이상우 감독님의 영화 현장에서였다. 아직 개봉하지 않은 <변태소년>이란 작품에서 조감독과 연출부로 만났다. 그게 2014년 12월 31일이었다. 이상우필름의 직원이 총 3명인데, 이상우 감독 그리고 나와 장기원 감독이다. 나는 회사에서 제작, 배급, 연출, 홍보 등을 담당하고 있고.

장기원_ 나는 그외의 잡일을 맡고 있다.

김헌_ 대구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 재학 중일 때 이상우 감독님이 영화 특강을 온 적 있다. 그때 처음 인연이 닿았는데, 이상우 감독님의 영화 작업 방식이 내가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최적의 방식처럼 느껴졌다. 그 작업 방식이란 건 최소한의 스탭, 최소한의 조건으로 최적의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거다. 주변에 영화인도 없고, 상업영화 스탭 경력도 없는 상황에서 내가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적합한 방식 또한 그런 거였다.

장기원_ 20살까지 고향인 충주에 살다가 영화가 하고 싶어 무작정 서울에 왔다. 시나리오 교육기관에 등록해서 공부도 하고 영화강의도 듣다가 이상우 감독님을 만났다. 평소 김기덕, 이상우 감독님의 영화를 좋아해왔고, 이상우 감독님에게 영화를 배우고 싶어서 연출부를 시켜달라고 쫓아다녔다.

김헌 감독.

주류영화와 다른, 기존의 퀴어영화와도 다른

-<어느 여름날 밤에> <열대야> <애정소년 잔혹사> 세편의 퀴어영화를 연달아 내놓으면서 이상우필름이 레인보우팩토리에 대적할 퀴어영화 제작사로 거듭나려는 건가 싶기도 했는데.

김헌_ 그런 것보다 우리는 세상의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동성애자는 물론이고 살인범, 성폭행범, 간첩, 성폭행 피해자 등 우리가 다루는 캐릭터와 이야기에 금기는 없다. 온갖 군상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공통된 생각이 발전돼 세편의 퀴어영화를 내놓게 된 것 같다.

장기원_ 물론 퀴어영화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면 이런 영화를 만들지 않았을 거다. <가장 따뜻한 색, 블루>(2013), <브로크백 마운틴>(2005) 같은 영화도 좋아한다. 남들이 하지 않는 이야기, 색다른 시선을 보여주는 영화들을 좋아한다. <애정소년 잔혹사>도 새로운 소재와 시선을 담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작품이다. 기존의 주류 영화와 다른, 기존의 퀴어영화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퀴어영화를 만든다는 것 자체가 주류에서 하지 않는 마이너한 작업인 셈이다.

김헌_ 남들이 만들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경쟁력이 생길 수 있다는 생각도 했다. 물론 퀴어라는 주제에 대한 관심이 먼저였다.

장기원_ 만약 퀴어영화가 주류 장르였다면 아마 나는 퀴어영화를 만들지 않았을 거다. 감성이나 취향이 워낙 마이너하다. 사람들은 <애정소년 잔혹사>가 도발적이라 하지만 내겐 영화 속 호모포비아 캐릭터인 영택이나 게이들이 주위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라 생각한다. 그들을 꼭 성소수자로 규정하고 특별하게 그릴 생각은 없었다. 그들도 다양한 군상 중 일부라는 생각으로 접근하려 했다.

김헌_ 기원씨가 일반적인 캐릭터나 상황, 시선을 뒤집어서 생각하는 걸 잘한다. 내 영화도 그렇지만 대부분의 LGBT영화들이 성소수자들의 사랑과 인권을 얘기한다. 그런데 기원씨는 그것을 뒤집는 아이디어를 많이 낸다. 그러다보니 호모포비아 캐릭터가 영화의 주인공으로 설정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물론 퀴어영화이기 때문에 더 민감하게 접근해야 하는 지점이 있지만 <애정소년 잔혹사>는 불편한 시선이 아닌 새로운 시선을 담은 영화라는 점에서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포스터에도 ‘불량 퀴어영화’라는 문구를 내걸었다.

-LGBT 커뮤니티의 반응도 살피는 편인가.

장기원_ 그러진 않는다. <애정소년 잔혹사>의 경우 국내 영화제에서 상영된 적이 없기도 하고, 아직 직접적으로 관객의 반응을 살필 자리가 없었다. 지인들 중엔 ‘왜 이런 영화를 만든 거야?’라는 반응을 보인 사람들도 있지만. (웃음)

장기원 감독.

퀴어영화에 들이대진 이중잣대

-<어느 여름날 밤에>는 주인공의 전라 섹스 신 등 성적 표현의 수위가 굉장히 세다. 한국에서도 이런 퀴어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나.

김헌_ 그런 마음이 가장 컸다. 도발적인 영화를 만들기 위해선 큰 결단이 필요했다. 기존의 한국 퀴어영화에서 보여주지 않은 수위에 도전하기로 했고, 성적 표현에 제한을 두지 않고 찍었다. 팍팍한 현실에 갇혀 있는 인물들의 상황을 폭력적 섹스 신에 대입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느 여름날 밤에> 속 섹스 신은 결코 달달하지 않다.

-결국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았고, 모자이크 처리를 해서 재심의를 받았다. 퀴어영화의 등급과 관련해 아쉬운 점도 있겠다.

김헌_ 첫 심의 때 제한상영가 등급을 예상하긴 했다. 역시나 제한상영가 등급이 나왔고, 노출 장면에 블러 처리를 해서 다시 심의를 넣었다. 그런데 블러 처리가 약했는지 등급이 수정되지 않았다. 조금은 화가 났다. 그래서 화면에 구멍이 난 것처럼 새하얗게 블러처리를 했다. 안타깝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더라.

장기원_ 김헌 감독의 영화 중에서 첫 번째 영화 <어느 여름날 밤에>를 더 좋아하는데, 과감한 표현이 좋았다. 그건 대단한 용기라고 생각한다. 나라면 그렇게 과감하게 연출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

김헌_ 노출에 관해 엄격하게 심의를 하는 건 한편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퀴어영화를 만드는 감독 입장에선, 단순히 퀴어라는 이유만으로 등급이 상향 조정된다는 게 안타깝다. 주변에 퀴어영화를 만드는 감독들의 이야기를 들어봐도 비슷하더라. LGBT 이슈를 다룬다는 것 자체에 특별한 잣대를 적용하는 건 아닌지 싶다. 동성애를 다루는 드라마도 방송되는 마당에 더 많은 표현의 자유가 주어져야 할 영화에서 동의할 수 없는 보수적인 잣대를 들이대는 건 문제라고 생각한다.

장기원_ 유럽과 비교하면 확실히 한국의 영화 등급은 보수적이다. 그렇다고 영화제작 단계에서 등급과 심의를 고려해 생각을 가두려 하진 않는다. 표현하고 싶은 대로 표현하되 그것이 문제가 되면 사후에 해결하려고 하는 편이다.

-그런데 <열대야>에는 노출 신도 섹스 신도 없다.

김헌_ 스스로도 첫 영화가 충분히 셌다고 생각한다. 충분히 도발적이었기 때문에 두 번째 영화에선 또 다른 퀴어영화를 선보이고 싶었다. 또 영화가 타이를 배경으로 하는데, 타이의 푸른 바다와 초록의 풍경을 배경으로 순수하고 온화한 퀴어 멜로를 찍고 싶었다.

-그 어떤 장르보다 배우를 캐스팅하기 어려운 장르가 퀴어영화가 아닐까 싶다. 캐스팅과 관련해 난관에 부딪힌 적은 없나.

김헌_ 그동안 이상우필름에서 여러 영화를 만들었기 때문에 나름 알고 지내는 배우들이 있다. 그들에게 퀴어영화 출연 의사를 물어보면 기꺼이 하겠다는 친구들이 있다. 그런 친구들 위주로 캐스팅을 진행했다. <어느 여름날 밤에>에서 주인공 용준을 연기한 김태훈 배우는 아는 매니지먼트를 통해 소개받았다. 김태훈 배우를 캐스팅하기 전에 몇몇 배우들과 미팅을 했는데 영화의 성적 표현 수위에 대해 얘기하면 다들 못하겠다고 하더라. 그런데 김태훈 배우는 의지가 있었다. 그런데도 막상 촬영이 다가오니 두려워하는 게 느껴졌다. 힘든 작업이었고 큰 도전이었을 텐데, 서울프라이드영화제에서 영화를 보고 나서 김태훈 배우가 진심 어린 표정으로 영화 좋았다고, 고맙다고 말해줘서 내가 더 고마웠다. 상대역으로 출연한 신원호 배우는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께>(2014), <스타박’스 다방>(2016) 등 이상우 감독의 영화에 출연했던 친구였고 역시나 기꺼이 작품에 공감해줘서 함께하게 됐다.

장기원_ <애정소년 잔혹사>의 주인공인 김영택 배우도 역시 이상우 감독의 영화 <비상구>(2013)에 출연했던 배우이고, 연기 내공이 깊은 배우라 언젠가 같이 작업하고 싶었다.

김헌_ 애초 대형 매니지먼트사에는 캐스팅 연락을 돌리지 않는다. 우리의 작업 방식이 저예산 게릴라식이라 이런 작업 방식을 이해할 수 있는 배우면 좋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배우들은 대개 열정이 넘치는 신인배우들인 경우가 많다. 소속사 없이 각개전투로 활동하면서 영화도 하고 연극도 하는 배우들이거나. 그들과 서서히 관계를 쌓아오면서 작품 들어갈 때마다 캐스팅을 타진하곤 한다. <열대야> 때는 총 4명의 배우 중 민기 역의 유동균 배우만 오디션을 보고 뽑았다. 그런데 <열대야>는 성적 수위가 세지 않아서 캐스팅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장기원_ <어느 여름날 밤에>에도 출연하고 <애정소년 잔혹사>에도 나오는 최재성 배우도 현장에서 에너지가 넘쳤다. 으 으 힘을 북돋아주는 역할까지 해줬는데, 그런 열정 때문에 한번 더 눈이 가곤 한다.

김헌_ 그렇게 열정 가득한 배우들이 우리와 함께 성장해가면 정말 좋을 것 같다. 일단 나부터 더 성장을 해야겠지만. (웃음) 내 영화가 계기가 돼서 배우들이 다른 감독들의 영화에 캐스팅되면 감독으로서 정말 기쁠 것 같다.

촬영부터 배급까지, 퀴어영화의 관객 만나기

-‘저예산’ 퀴어영화로서 가지는 한계도 있다. 기술적 투박함을 극복하기 위해선 어떤 시도를 했나.

장기원_ 내가 생각한 답은 연기였다. 아무리 좋은 카메라로 찍어도 연기가 좋지 못하면 아마추어 영상처럼 보인다. 반면 DSLR로 찍어도 배우의 연기가 좋으면 영화적인 화면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배우의 연기에 의지를 많이 했다.

김헌_ 주제의식과 새로움이라고 생각한다. 카메라, 조명, 사운드 등 기술적인 부분에선 한계가 많은 영화들이지만 주제와 새로움으로 단점을 극복하려고 했다. 실제로 각본, 연출, 촬영, 편집 등 1인다역을 소화하면서 영화를 찍었다. 스탭을 최소화하기 위함인데 한편으론 감독이 1인다역을 하는 건 영화를 위해서 좋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영화는 원맨쇼를 하는 게 아니니까. 내가 여러 파트의 일을 소화했다고 해서, 그걸 훈장처럼 여러 개 달고 있다고 해서 대단하다고 박수받을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관객은 작품만 본다. 감독이 10명의 몫을 했다고 해서 인정해주지 않는다. 어제 차기작 영화 촬영을 끝냈다. 이번에도 혼자서 카메라를 잡고 연출도 했다. 만약 촬영감독이 따로 있었다면 시간을 훨씬 절약할 수 있었을 텐데, 연출에만 더 집중할 수 있을 텐데 싶더라. 여러 사람들이 모였을 때 나오는 아이디어의 힘 역시 무시하지 못한다. 그런데 1인다역을 해야 하는 현장에선 혼자서 많은 것을 판단해야 한다. 그런 데서 오는 아쉬움이 있다.

장기원_ 동의하는 얘기지만, 혼자서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세상이기에 지금처럼 내가 영화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수백명의 스탭들이 모여 영화를 만드는 현장도 있지만 혼자서 뚝딱뚝딱 자신이 이야기하고 싶은 걸 이야기하고, 표현하고 싶은 걸 표현하면서 훌륭한 예술을 할 수도 있는 거니까.

-퀴어영화를 만드는 것도 어렵지만 관객을 만나는 과정 역시 쉽지만은 않다.

김헌_ 서울프라이드영화제가 있어서 그나마 퀴어영화가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 같다. 감독으로선, 이렇게 구심점 역할을 해주는 LGBT영화제가 있다는 것 자체가 든든한 힘이 된다. 그리고 이상우필름에선 자체 배급을 하고 있지만 주변의 퀴어영화 만드는 감독들은 배급과 관련해서도 고민이 많더라. 레인보우팩토리 같은 퀴어영화 전문 제작·배급사가 있지만 아직은 배급 창구가 넓지 않은 게 현실이니까.

-다음에 만들 영화도 퀴어영화인가.

김헌_ 어제 촬영을 마친 세 번째 영화는 가족 이야기다. 제목은 <가족주의>(가제)이고, 죽음을 앞둔 할머니와 이기적인 가족들의 이야기를 그리는 작품이다. 대구 다양성영화제작지원사업에서 지원받았다.

장기원_ 나 역시 두 번째 영화는 퀴어영화는 아닐 것 같다. 고향이 충주인데, 충주라는 공간을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들려고 한다. 개인적으로 장우진 감독의 <춘천, 춘천>(2016)을 재밌게 봤다. 그렇다고 제목이 <충주, 충주>가 되진 않을 거다. (웃음) 앞으로도 계속 새로운, 실험적인, 뻔하지 않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

김헌_ 물론 기회만 되면 언제든지 퀴어영화를 만들 생각이다. 퀴어영화를 만들 땐 다른 영화작업을 할 때보다 고민하고 좀더 긴장하게 된다. 그런 에너지를 느끼며 영화를 만드는 과정이 즐겁다. 관객 역시 퀴어영화를 즐겁게 받아들여줬으면 좋겠다. 영화의 질적인 차이 때문일 수도 있지만, 해외 퀴어영화에 대한 수요나 팬층은 확실히 있다. 그만큼 국내 퀴어영화도 잘 만들면 대중과 더 넓은 접점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2016)가 엄청난 팬덤을 일으킨 것처럼, 상업영화 진영에서도 퀴어영화 제작이 지금보다 활발히 이루어졌으면 한다. 대중적으로 알려진 감독들이 퀴어영화를 만든다면 관객이 퀴어영화를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문화의 흐름이 바뀌고 인식이 바뀌는 것 아닐까.

이상우필름의 퀴어영화

<어느 여름날 밤에>(2016)

감독 김헌 / 출연 김태훈, 최재성, 신원호, 이광수, 문승훈

철책선 인근 초소에서 인민군 용준(김태훈)과 재성(최재성)은 격하게 섹스를 나눈다. 하지만 이들의 행위는 상급자에게 적발되고, 용준은 재성을 두고 혼자 탈북한다. 남한에 정착한 용준은 군입대를 앞둔 철없는 남자친구 태규(신원호)와 함께 살고 있다. 태규가 친 사고를 수습하느라 용준은 힘이 들지만, 헌신적으로 사랑을 이어간다. 그러던 어느날 뒤이어 탈북한 재성이 용준을 찾아온다. 탈북 동성애자의 위태로운 사랑과 현실을 그린 <어느 여름날 밤에>는 배우들의 전라 노출 및 과감한 섹스 신으로 화제가 된 퀴어영화다. 노출과 섹스 신은 분명 충격적이지만, 영화는 그것 이상으로 삼각관계에 놓인 인물들의 감정에 집중한다. 그것이 이 영화가 관음증적 포르노그래피가 아닌 멜로영화인 이유다.

<열대야>(2017)

감독 김헌 / 출연 박현수, 유동균, 이근주, 최홍준

형 민훈(최홍준)의 죽음 이후 민기(유동균)는 형이 그토록 가고 싶어 했던 타이로 향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형의 애인이었던 재희(박현수)를 만난다. 재희는 피가 섞이지 않은 형제 태경(이근주)과 함께 지내고 있으며, 시한부 선고를 받은 태경은 동생 재희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숨기고 있다. 한편 민기는 재희에게 형의 죽음에 대해 책임을 묻고, 재희는 민훈을 생각나게 하는 민기에게 마음이 끌린다. <열대야>는 민기, 민훈, 재희, 태경 네 인물의 관계를 통해 사랑의 다양한 형태를 보여준다. 김헌 감독이 전작에서 과감한 노출 신으로 표현의 금기를 깼다면, 두 번째 영화 <열대야>에선 사랑의 금기를 깬다. 방콕과 파타야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퀴어멜로영화다.

<애정소년 잔혹사>(2017)

감독 장기원 / 출연 김영택, 김요한, 서현석, 최재성, 박다래, 이상우

동성애를 혐오하는 호모포비아 영택(김영택)은 자신의 삶이 어그러진 게 게이인 아버지(이상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버지 태림은 고등학교 선생님이다. 어느 날 영택의 집으로 찾아온 같은 학교 친구 요한(김요한)은 태림이 자신의 애인이라고 말한다. 아버지의 성 정체성을 까발린 요한을 시작으로, 자꾸만 추근대는 대학 선배와 군대 선임까지, 영택은 자신의 삶에 무단 침입하는 게이들과 부딪힌다. 그리고 그들에게 복수를 다짐한다. <애정소년 잔혹사>는 동성애를 부정하고 희화화하는 방식으로 현실을 풍자하고 동성애를 긍정한다. 영화 속 게이와 바이섹슈얼은 평범한 존재로 그려지는데, 누군가의 사랑이 특별히 더 아름다운 것도 추한 것도 아니라는 태도와 시선이 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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