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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대결
김혜리 2017-12-13

2017년 스크린의 기억할 만한 듀엣들을 돌아보았다. <옥자> <문라이트> <러빙> 등 피부색, 국적, 생물학적 성, 심지어 종(種)의 벽을 넘어 사랑을 실현하기 위해 긴 여정을 거친 커플이 유난히 많다는 점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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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 시인에 관한 영화치고 <조용한 열정>은 뜻밖에도 다량의 위트와 유머를 포함하고 있다. 이는 테렌스 데이비스 감독이 에밀리 디킨슨의 가족생활을 일부 전기 작가보다 훨씬 긍정적으로 해석했기에 가능했다. <조용한 열정>에 따르면 하원의원이자 법조인이었던 시인의 아버지 에드워드 디킨슨은 기본적으로 보수적인 가부장이었지만 삼남매를 자유로운 정신으로 키우고자 했고 딸들도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도록 독려했다. 일례로 19세기 중반 점잖은 가문 여성의 독신생활은 희귀했는데도 불구하고 디킨슨가 양친은 에밀리의 선택을 이해 못할지언정 용인했다. <조용한 열정>이 재현하는 디킨슨 집안의 대화는 점잖지만 도발적이라, 마치 꽃과 레이스에 감싸인 비수 같다. 상대의 말을 비유 섞인 완곡화법으로 받아치는 속도는 조금 과장하면 에런 소킨 수준이다. 가족을 방문한 완고한 집안 아주머니가 신앙에 대해 힐문하자 삼남매는 예의를 갖춰 불경한 답을 내놓는다. 자작시에 대한 에밀리의 능글맞은 비판에 아주머니가 재차 묻자 젊은 시인은 “모든 좋은 평은 모호하죠”라며 미소짓는다. 이어 오빠 오스틴은 “미덕은 가장한 악덕일 뿐이죠”라며 눙친다. 남매의 불손함이 거슬린 아주머니가 디킨슨 부인에게 의견을 묻자 “전 듣기만 하겠습니다. 편견을 의견이라 우기지 않기 위해”라는 철벽방어가 돌아온다. 이 대목에서 유의해야 할 포인트는, 아주머니 역시 사상은 딴판이지만 뼈 있는 농담에서 뼈를 파악하는 총기의 소유자라는 사실이다.

가부장 아버지와 맏딸 에밀리의 관계는 절묘한 선 위를 걷는다. 아버지는 에밀리의 재능을 존중하지만 딸이 선을 넘지 않길 바란다. 에밀리는 개명한 아버지의 관용이 그녀가 이번 생에서 누릴 수 있는 최대의 자유임을 잘 알았다. 예컨대 에밀리는 새벽 3시부터 동이 틀 때까지 홀로 깨어 시를 쓰고 싶다고 아버지의 허락을 구하고(“여긴 아버지의 집이잖아요.”) 아버지는 딸의 사려깊음을 기꺼워하며 “네 집이기도 하단다”라는 말로 답례한다. 그러나 에밀리는 때로 만만치 않았다. 아버지가 교회에 나가길 권유하며 딸의 영혼을 염려하자 에밀리는 “저도 잘 알아요. 제 영혼이 너무 소중해서 그 독립성을 지키려고 제가 이렇게 노력하잖아요”라고 방어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어느 날은 아버지가 식탁의 접시가 덜 깨끗하다고 타박하자 바로 식기를 깨버리고 “이젠 안 더럽죠?”라고 일축하기도 한다(에밀리 디킨슨은 빵 굽기, 정원 가꾸기 등 가사노동에 많은 시간을 들였고 그것이 얼마나 보람없는지에 대해 오빠의 아내 수잔과 공감하곤 했다). 요컨대 에밀리 디킨슨은 가족들 사이에서 완벽히 자유롭지 않았지만 다른 어떤 가족의 일부가 되더라도 그녀의 언어로 대화하기 힘들 것임을 알았고, 당대 어떤 남편도 아내에게 새벽의 창작을 허하지 않을 것임을 알았기에 결혼의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조용한 열정>은 전한다.

가족에 대한 에밀리의 불안한 애착은 저녁 식사 후 한방에 모여앉아 각자의 일을 하는 가족을 둘러보는 느린 360도 패닝숏에 아름답게 함축돼 있다. 오빠는 독서하고 동생은 바느질을 하며 우울한 어머니는 촛불을 응시한다. 시간은 어김없이 연소되고 있다. 언젠가 방 안의 이들은 늙고 하나씩 사라져갈 것이다. 카메라가 방 안을 한 바퀴 돌아 다시 에밀리에게 도달한 순간 그녀의 얼굴은, 남은 생에서 상실만 남아 있음을 각성한 자의 공포와 슬픔을 드러낸다. 이 숏은 테렌스 데이비스 감독의 초기작 <먼 목소리, 고요한 삶>의 한 타블로를 불가피하게 연상시킨다. 죽은 아버지를 제외한 식구들이 가족사진을 찍는 듯한 대열로 서서 카메라를 똑바로 쳐다보는 해당 장면에서 카메라는 천천히 벽을 향해 트래킹하고 식구들은 하나씩 프레임 밖으로 빠져나간다. 마지막에 남는 이미지는 벽에 걸린 액자 속 죽은 아버지의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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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 휘틀리 감독의 <프리 파이어>는 전작 <하이-라이즈>에 이어 폐쇄 공간에서 벌어진다. 이번 장소는 1970년대 보스턴 인근 폐공장. 무기를 사기 위해 아일랜드에서 건너온 크리스(킬리언 머피) 패거리는 브로커 저스틴(브리 라슨)의 안내로 이곳에서 판매자들을 만난다. 상대편의 구성원은 유들유들한 언변의 오드(아미 해머), 허세덩어리 버논(샬토 코플리) 등이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전날 밤바에서 우연히 싸움을 벌였던 양쪽 그룹의 하부 조직원 스티보(샘 라일리)와 해리(잭 레이너)가 서로의 정체를 알아본 순간 거래는 물건너가고, 마구잡이 총질이 시작된다. 어차피 총기 거래라 각자 무기를 소지한 채 공장에 들어온 덕분에, 모두의 탄창이 떨어질 때까지 총성은 계속된다. 말하자면 보통의 영화라면 클라이맥스 20분을 차지할 최종 총격전으로 장편 한편을 만든 케이스다. 다시 보통의 영화라면 스티보가 바에서 벌인 소동, 아일랜드 공화국군(IRA)의 개입, 보스턴 시내를 누비는 카 체이스 등이 펼쳐지겠지만 그런 맥락은 대사를 통한 언급과 암시로 끝내고 공장 안에서 나가지 않는 영화다(참고로 플래시백도 없다). 짐작할 수 있겠으나 주제, 플롯, 교훈 그런 건 다른 영화에 가서 알아봐야 한다. 물론 최소한의 갈등은 설정돼 있다. 이 와중에 크리스는 저스틴에게 데이트를 신청하고, 그런 둘을 버논은 질투한다. 뺀질이 오드는 연신 아일랜드를 얕보고 프랭크(마이클 스마일리)의 나이를 놀리는 농담을 거듭하고, 하부 조직원끼리는 끈끈한 우정이 있어 친구가 총을 맞으면 격분해서 폭주한다.

감독은 13살 아들과 동반해 블록버스터란 블록버스터는 억지로 다 보다가 “왜 나는 도시가 파괴되고 행성이 폭파되는 요즘 액션이 시큰둥할까?”라는 고민에 빠졌다고 한다. 그러다 벤 휘틀리는 왕년에 그를 매료시킨 70년대 액션영화는 요즘보다 훨씬 휴먼 스케일에 가까웠다는 점을 상기했다. 즉, 지구가 산산조각나는 액션보다 손이 철문에 끼이거나 얼굴이 바늘에 찔릴 때 관객은 심한 상상의 통증을 느낀다는 데에 착안한 것이다. 그리하여 만들어진 <프리 파이어>의 사격은 거의 다 빗맞는다. 아무도 한번에 죽지 않아야 영화가 성립하기 때문이다. 모두가 가벼운 총상을 수없이 입고 신음하며 버틴다. 러닝타임의 대부분을 바닥에 배를 깔고 기어다니며 촬영한 배우들에게 동정과 경의가 샘솟는다. 지지부진한- 영화적으로 재미없다는 뜻이 아니다- 총격은 어찌 보면 매우 인위적으로 보이는 이 영화가 보유한 리얼리즘이다. 실제의 범죄자들은 영화 속의 그들처럼 용의주도하지도 않고 명사수도 아니라는 현실을 반영한 셈이다. 아니나 다를까, 벤 휘틀리 감독은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서 40분간 쌍방이 불을 뿜었으나 적중률이 제로였던 마이애미의 한 총격 사건에 대한 FBI의 보고서로부터 도움을 얻었다고 한다. <프리 파이어>는 90분의 간결한 논스톱 엔터테인먼트가 될 잠재력이 충분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영화의 촬영과 편집은 공장 안 곳곳에 몸을 숨기고 굴러다니는 각 인물의 위치와 동선을 100% 명쾌히 전달하지 못한다. 그나마 각 캐릭터가 식별하기 쉬운 색과 스타일의 의상을 입고 있으니, 눈썰미 있고 집중력 강한 관객이라면 추천할 만하다.

<빌리 진 킹: 세기의 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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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증

<빌리 진 킹: 세기의 대결>의 공동감독 조너선 데이턴과 발레리 패리스는 시대적 배경인 70년대 빈티지 스타일로 영화를 찍었다. 서두의 폭스 서치라이트 로고도 고풍스럽게 디자인해서 썼고 테니스 경기 장면 재연도 숨가쁜 접사 대신 위에서 게임 전경을 내려다보는 당시 중계화면풍이다. 빌리 진 킹(에마 스톤)과 연인 마릴린(앤드리아 라이즈보로)이 처음 성적으로 이끌리는 미용실 장면에서는 초점이 몽환적으로 이동하고 후방에서 낭만적인 흰 조명이 비춘다. 무엇보다 70년대 백인 남성들이 일상적으로 남발한 성차별적 코멘트가 곳곳에 튀어나온다. 보비 리그스(스티브 카렐)가 도발 목적으로 떠들어댄 여성 혐오 발언은 차치하고, 중계 중에도 “저 선수 남자처럼 걷네요”, “빌리 진 킹도 머리를 기르고 안경을 벗으면 미인인데 말이죠” 정도는 보통이다. 관객의 실소를 의도해서 배치됐을 이 시대착오적 코멘트들을 최근 1년간 미국과 전세계의 성차별 사태로 인해 웃으면서 들을 수만은 없다는 점이 함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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