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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R영화①] 세계의, 한국의 VR영화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나
김현수 2018-04-05

가상과 현실 그 사이의 영화

<기억을 만나다>

가상현실(VR)의 미래, 즉 VR의 현실화에 따른 영화의 변화를 막연하게 걱정하던 시기는 꽤 오래전에 지난 것 같다. 세계적으로도 많은 감독들이 이미 VR 기술을 영화에 접목하는 유의미한 시도를 하고 있다. 특히 오큘러스 스튜디오가 내놓은 VR애니메이션 <디어 안젤리카>, 지난해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처음 신설한 VR 경쟁부문의 최우수상을 수상한 펜로즈 스튜디오 대표 유진 청 감독의 애니메이션 <아르덴즈 웨이크> 같은 VR영화 등은 솔직히 영화의 미래 중 일부를 이들에게 맡기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만드는 혁신적인 감동을 안겨준다. 한국 역시 이에 발맞춰 VR 기술이 지닌 매체적 속성은 물론 배급 방식까지도 다각적으로 고민해 세계 최초 4DX VR 영화 <기억을 만나다>를 국내 멀티플렉스 극장에서 개봉시켰다(3월 31일 CGV 개봉).

국내에서 처음으로 VR 기술로 촬영하고 4DX 상영방식을 택해 극장에서 개봉하는 영화 <기억을 만나다>는 이벤트 행사장이나 VR 게임을 주로 즐기는 각종 테마파크존을 이용하지 않고 극장에서 만날 수 있는 VR영화다. 극장 관람 사례는 지난해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상영한 김진아 감독의 <동두천 VR>이나 롯데시네마의 VR영화 특별전을 통해 선보인 <나인데이즈> 같은 선례가 있긴 했다. 할리우드에서 VFX분야 전문가로 활동했던 구범석 감독은 <기억을 만나다>를 통해 VR의 기술적 특징과 영화적인 문법의 교집합을 이뤄내기 위해 고심했다.

<넛잡2>

영화의 문법을 확장 또는 변주하다

우선 <기억을 만나다>는 일반적인 단편영화와 동일한 구조 안에서 사건을 전개해나간다. 관객이 헤드셋을 쓰고 영화를 관람할 때 느끼는 감각이란, 대학교에 다니는 주인공 연수(서예지)와 우진(김정현)이 우연히 버스 안에서 만나 호감을 갖게 되고 연인이 되는 과정을 만져질 듯 가까이에서 몰입해 체험하는 것이다. 이때 관객은 스스로 인물의 시점이나 사건의 상황을 선택 혹은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작품이 이끄는 대로 따라간다. 전통적인 영화보기 방식과 다르지 않다. 다만 형식적으로 사각 프레임의 한계를 떨쳐버리고 고개를 사방으로 두리번거려도 영화 속 시간이 계속해서 흐르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기타 4DX 효과 역시 사건과 공간으로의 몰입을 도와준다는 점에서 <기억을 만나다>는 아직 VR을 낯설게 느끼는 전통적인 영화 보기에 익숙한 관객과 신기술의 접점을 고민한 결과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VR을 접할 때, 관객 혹은 사용자가 헤드셋을 쓰고 사방을 둘러보며 특정 공간을 유람하듯 체험하는 것을 중요한 가치라고 상상하곤 한다. <기억을 만나다>가 흥미로운 것은 관객이 극장에 앉아 뒤를 돌아볼 수 없다는 가정하에 좁혀진 시야각 안에서 얼마나 실재감과 몰입감을 줄 수 있는 영상을 만들 것인가를 고민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연출을 맡은 이브이알스튜디오의 구범석 감독은 “연극 무대를 가까이에서 직접 체험하듯 보는” 느낌을 통해 VR영화의 특징을 극대화할 아이디어를 찾았다. 연극 무대를 관객이 자세히 그리고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듯 실재감(presence)과 몰입감(immersive)을 제공한다는 것. VR의 매체적 특성에 맞는 스토리텔링 역시 영화와 크게 다르지 않게 가려고 한 점, 즉 VR만의 상호작용성(interactive)에 대한 고민도 VR과 영화 사이의 접점을 찾으려고 한 결과다.

물론, VR영화가 일반 2D영화와 가장 직접적으로 다르다고 할 수 있는 상호작용성을 극대화한 사례도 있다. 애니메이션 <넛잡>의 제작사 레드로버가 에이펀인터랙티브와 손잡고 만든 인터랙티브 VR애니메이션 <버디 VR>은 완결된 서사 안에서 캐릭터와 공간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이 아니라 캐릭터와 공간의 기본 설정만을 관객에게 부여하고 알아서 체험하게끔 만든다. 영화의 스토리와 게임의 미션을 모두 떠오르게 할 수 있는 ‘상황’이 부여된다. 주요 무대는 영화의 배경인 과자 매장. 이곳에서 관객 혹은 사용자는 헤드셋과 컨트롤러를 이용해 영화 캐릭터인 외톨이 쥐 버디와 친구가 되는 과정을 겪는다. 체험 시간은 10분 내외이며, 여러 상황 설정에 따라 시간은 달라진다.

이를 연출한 채수응 감독은 “단순하게 현실(혹은 영화)의 재현이 아니라 행위의 축적으로 만들어지는 감동을 전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극장 안의 관객은 두 시간여의 상영시간 동안 머릿속에 축적된 장면들을 통해 감동을 느낄 것이고, 게임의 사용자는 그 게임을 실행하는 동안만큼은 보다 영화적인 액션 쾌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둘은 엄연히 다르지만 현재의 매체 개념을 적용하면 “상호작용성이라는 것은 영화보다는 게임의 매체 속성에 가깝다고 이해되기 때문”에 자연스레 영화와 게임의 공존을 고민할 수 있다. 또 한 가지, <버디 VR>은 영화가 편집을 통해 시간과 공간을 다루게 되는 반면 VR의 세계에서는 관객이 감독이 되어 설계된 세계 안에서 다양한 정보를 취사 선택할 수 있게 된다는 차이점을 살리는 방법도 고민했다.

VR의 중요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상호작용성과 몰입감, 실재감은 사실 어느 하나 따로 떨어뜨려 극대화할 수 없는 복합적인 의미를 지닌다. 상호작용성이란 결국 내가 실제로 그 공간에 존재한다는 가상의 존재감을 보다 사실적으로 느끼게끔 해주기 위한 장치일 것이고, 그것은 그 자체로 실재감의 의미를 가지기도 한다. 몰입감과 상호작용성, 거기에 더해 VR이 선사할 수 있는 실재감에 대해 위의 두 작품보다 집중한 작품이 최근 만들어졌다. CJ VR/AR Lab 프로듀서인 최민혁 감독의 <공간소녀>는 공간과 교감하는 감각을 가진 소녀가 주인공으로, 소녀의 추억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공간에서 소녀가 느끼게 되는 노스텔지어를 주제로 한 작품이다.

이 영화는 1인칭 시점의 사용자 혹은 관찰자가 VR 공간을 유영하듯 돌아다니면서 소녀의 마음을 직접 체험해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3가지 챕터로 구분되는 소녀의 꿈을 따라가며 각기 다른 공간과 그 안에 담긴 기억을 체험하는 판타지 드라마. 연출을 맡은 최민혁 감독은 “VR은 단지 프레임의 확장뿐만 아니라 영화적 공간의 근본적인 변화”를 일컫는다고 말했다. <공간소녀>의 설정은 구글 틸트 브러시를 이용해 드로잉한 가상공간과 전소니 배우가 연기하는 실사의 인물 소스를 합성해 만들었으며 배경 공간에 따른 시점 변화와 사운드 효과 등을 활용해서 VR에서만 느낄 수 있는 공감각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연출됐다.

<버디 VR>

VR과 다큐멘터리의 만남

최근의 이 세편의 VR영화의 공통점은 결국 극영화의 모양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위치에서 VR 기술과의 접목 가능성을 고민했다는 것이다. 다큐멘터리 역시 극영화에서의 고민과 문제를 공유하고 있다. 지난해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인 김진아 감독의 VR단편 <동두천>은 1992년, 미군에 잔인하게 살해당한 한 여성 성노동자의 이야기인 ‘윤금이 피살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VR다큐멘터리다. 김진아 감독은 ‘동두천 외국인 관광특구’라고 불리는, 한국 내 미군기지 주변에 자리한 기지촌이라는 특수한 지역을 관객으로 하여금 어떻게 ‘경험’하게 할지를 고민했다. 360도 영상으로 촬영된 동두천 기지촌 어느 골목에 놓인 듯한 카메라(관객의 시선)가 낮과 밤이 바뀌는 골목 사이를 헤매다가 최종적으로 도착하는 공간은 어느 여성의 좁은 방이다. 관객으로 하여금 갑갑하고 우울한 거리와 안타까운 죽음을 맞을 수밖에 없었던 한 여성의 쪽방에서의 삶을 눈앞에서 ‘경험’하게끔 하는 것이 이 다큐멘터리의 목적이다. “동두천이라는 공간을 이야기하고 싶었고, 관객이 그 속에서 주도적으로 이야기를 읽어내길 바랐다”는 김진아 감독의 말은 영화와 VR 사이의 접점을 찾는 과정에서의 질문이다. 다큐멘터리 영역에서 VR의 실재감에 주목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이와 유사하게 VR의 기술적 한계를 극복하고자 시도했던 다큐멘터리도 있다. 지난해 8월에 열린 EBS 국제다큐영화제에서는 ‘VR 특별전’ 섹션을 새로 만들어, 현재 만들어지고 있는 국내외 VR 다큐멘터리를 소개했다. 그중 박규택 감독의 <바람>은 평창 동계올림픽을 주제로 장애인 올림픽팀인 파라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의 동계훈련 현장을 VR영상으로 담았다. 데뷔작 <터널 3D>을 만든 박규택 감독은 “장애인 스포츠 경기가 일반 경기에 비해 박진감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VR영상을 통해 보여주겠다”는 연출 의도를 갖고 선수 입장에서 경기에 실제 참여하는 느낌을 최대한 살리는 방향을 모색했다. 일반 스포츠영화가 경기의 박진감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하는 일반적인 촬영기법, 예를 들면 빠른 편집이나 카메라의 패닝, 돌리숏, 줌인과 줌아웃 등의 기법을 동원하는 반면에 VR은 이러한 카메라 연출을 할 수가 없다. 카메라 시점이 좌우로 조금만 흔들려도 헤드셋을 쓰고 보는 관객이 심한 멀미를 느끼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바람>이 선택한, 사람이 아니라 경기 도구인 ‘퍽’의 시점에서 경기를 경험하게 하는 아이디어나 전지적 시점에서 선수들의 로커룸 준비 과정을 볼 수 있는 장면 등은 일반적인 사각 프레임의 영상에 담을 수 없는 풍부한 정보를 담아낼 수 있어 다큐멘터리로서도 흥미로운 접근이다.

<공간소녀>

VR영화, 누가 만들고 있나

앞서 소개한 영화를 포함해 현재 국내에서 제작되는 모든 VR영화는 사실상 창작자 개인이 제작하는 것은 쉽지 않다. 가장 큰 이유는 아직 상업적인 콘텐츠 시장이 형성되어 있지 않다는 점, 쉽게 말해 만들어도 판매할 곳이 없기 때문에 큰 제작비를 감당할 수 없다. 일반 영화와는 달리 특수 촬영 장비와 전문 기술 인력의 교육 양성이 제작에 필요한 이유도 포함한다. 물론 일반 영화에도 해당되는 내용이지만 VR 시장은 현재 시작 단계이므로 정부 지원 사업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일례로 박규택 감독의 <바람>은 정보통신산업진흥원에서 운영하는 가상현실산업육성 사업의 제작지원을 받아 만들어졌다. 정보통신산업진흥원의 제작지원 프로젝트는 영화진흥위원회 등의 영화 지원사업과 달리 기술연구개발(R&D)을 목적으로 제작되는 콘텐츠를 지원하는 사업이다. <바람>은 VR 콘텐츠의 생방송 송출, VR 전용 애플리케이션 개발 등에 따른 결과물이었다. 최민혁 감독의 <공간소녀> 역시 CGV 스크린X를 포함한 ‘다면콘텐츠 기술연구조합’이 2016년 미래창조과학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관한 가상현실 선도 프로젝트에 선정되어 모팁이미지너리, 나타남, 미루픽처스 등의 중소기업들과 협력해 만든 동반성장 연구 과제의 결과물이다. 앞서 소개했던 <기억을 만나다>와 <버디 VR>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마련한 2017년 가상현실콘텐츠제작 지원사업에서 각각 6억8천만원과 3억2천만원의 지원을 받아 만들어졌다. 또한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올해 문화체육관광부와 함께 우수한 가상현실콘텐츠 제작과 해외 진출, 생태계 조성을 위해 총 119억원을 지원할 계획이며 그중 ‘2018년 가상현실콘텐츠제작 지원사업’에는 총 67억원을 지원한다.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도 2017년부터 VR 영화제작교육 입문과정 교육생을 모집해 본격적으로 VR 영화 인력 양성과 콘텐츠 제작에 뛰어들고 있다. 한국영화아카데미는 이미 2016년에 자체 예산을 편성해 두편의 VR 단편영화, 김영갑 감독의 <기억의 재구성>과 이승무 감독의 <붉은 바람>을 제작한 바 있다. 두 영화 모두 해외 여러 영화제에서 상영되며 국내 VR영화의 현주소를 알리기도 했다. 곧 완성될 박현철 감독의 <고스트>, 홍재균 감독의 <호로마루>, 성지혜 감독의 <그녀도 떠났다> 등 3편은 지난해 상반기 입문과정을 거쳐 심화과정에 참여한 3명의 연출자가 11주의 교육기간 동안 각각 1억5천만원 내외의 제작비를 지원받아 완성한 VR 단편영화들이다. 올해에도 ‘KAFA+ Next D’를 열어 VR 단편영화제작교육 입문과정과 심화과정을 운영할 계획이다.

<화이트래빗>

덱스터스튜디오에서도 진작부터 디지털 휴먼&VR 연구소를 꾸려 VR영상 콘텐츠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덱스터에서는 현재 3편의 영화를 만들고 있으며 올해 안에 CJ CGV에 VR영화 8~10편을 공급할 계획이다. 현재 제작 중인 VR영화는 이미 완성된 채수응 감독의 <화이트래빗>을 비롯해 장형윤 감독의 <프롬 더 얼스>와 김주환 감독의 <지박령>이다. 유태경 디지털 휴먼&VR 연구소 소장에 따르면 “이 영화들은 덱스터의 노하우를 살려 실사 기반보다는 게임엔진을 이용한 상호작용성을 가미한 애니메이션 및 포토리얼리스틱한 영상으로 꾸밀 예정”이다. VR영화에 대한 유태경 소장의 가장 큰 고민은 “게임적인 요소가 들어간 상호작용성”인데 “스토리텔링이냐, 상호작용성이냐를 두고 밸런스를 잡아가는 상황”이라고 한다.

영화는 아니지만 올해 초 CGV와 VR 콘텐츠 공급계약을 체결하고 덱스터가 네이버 웹툰과 함께 호러 웹툰을 기반으로 제작한 <DEY 호러채널> 중 <살려주세요>편을 VR TOON으로 공동제작한 것도 덱스터의 다양한 도전과 시도를 보여주는 한 사례다. <살려주세요>는 쉽게 말해, 평면 모니터에서 스크롤을 내려야 볼 수 있는 웹툰 형태를 360도로 ‘들여다볼’ 수 있는 VR 영상으로 제작했다. 독자가 웹툰 속으로 얼굴을 들이밀고 둘러보는 순간, 시야각과 컨트롤러 조작 등을 이용해 영화에서 느낄 법한 공포 효과를 극대화한다는 전략이다. 이처럼 영화 장르의 외연을 넓히면서 동시에 시장성을 고려하는 전략을 취하는 대표적인 사례는 매크로그래프의 <선유기-불사의 섬, 제주> 프로젝트다. 이는 진시황의 명을 받아 불로초를 찾으러 떠나는 역사적 여정을 체험형 VR 3D 어드벤처 애니메이션으로, 헤드셋을 쓴 사용자가 불로초를 찾아 떠나는 여정단의 일원이 되어 제주 땅을 밟게 되는 이야기를 마치 테마파크 어트랙션을 타고 직접 경험하듯 게임과 이야기가 교묘하게 결합한 콘텐츠를 선보인다. 게임과 영화의 경계 사이에서 VR영화가 누리게 될 속성은 앞으로 영화가 고민해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

지난 몇년 동안 VR 영상 콘텐츠의 미래를 고민하면서 수많은 제작자, 아티스트들이 머리를 맞대고 매체의 특성에 최적화한 이야기와 형식을 고민해왔다. 사용자 혹은 관객이 홀로 방에 앉아 헤드셋만 쓰면 시공을 초월한 세계를 경험할 수 있게 해주는 VR은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VR 안에서도 현실과 똑같은 관계를 맺으며 살 수 있는 관계지속성도 고민하기에 이르렀다. VR영화를 고민한다는 것은 이제 단순히 영화라는 장르의 형식 변화를 걱정하는 것을 넘어 인류가 영화를 보는 방식, 나아가 영화를 보는 행위의 근간까지도 어떻게 변해갈지를 함께 고민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재미있는 점은 모두가 이를 ‘다른’ 형태의 영화 내지 시각 정보를 통해 어떤 ‘경험’을 안겨주는 영화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게임과 영화의 경계 외에 최근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것은 소셜 VR이다. VR 세계 안에서 함께 영화를 보고 함께 대화를 나누고 SNS로 ‘미투 운동’에도 동참하는 등 현실과 똑같은 방식으로 관계를 이뤄나가는 것.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이 보여주는 근미래의 풍경처럼 VR을 통한 인류의 삶이 모두 시간문제로 보인다. 현실의 관계 혹은 욕망이 결국 VR 세계로 이어지도록 기술 개발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의 외형은 조금 달라질지 몰라도 기본 틀은 변함없이 유지될 거라고 상상한다면 너무 섣부른 판단일까. 영화 보기의 욕망 역시 VR의 현실화가 도래해도 본연의 흥미를 잃을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적어도 그때까지는 다양한 실험과 도전을 통한 영화의 형질변경 시도는 끊이지 않을 것 같다.

스티븐 소더버그 <모자이크>

VR영화 형식에 상응하는 스토리텔링을 연구하는 시도는 많은 창작자를 괴롭히는 요소다. 몰입감이나 실재감은 기술에 맡겨두고 상호작용성을 이야기로 책임지겠다는 것인데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요소가 현재로서는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이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 애플리케이션을 만들어 시청자 혹은 사용자가 임의대로 이야기 전개 방식을 선택하면서 볼 수 있는 드라마 <모자이크>를 만든 것도 같은 맥락에서의 시도다. 그는 꽤 오랫동안 ‘진실’을 주제로 사람들이 서로 읽고 쓰고 말하는 방식이 시대를 반영하며 변화한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TV드라마도 영화도 아닌 다른 무엇을 만들어볼 목적으로 시작했다. 현재 아이튠즈에서 누구나 다운로드할 수 있는 ‘모자이크’ 애플리케이션을 실행하면 한편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배우 샤론 스톤이 아동책 작가로 등장하는 미스터리 스릴러. <모자이크>를 보기 위해서는 시청 방법이 아니라 조작 방법을 먼저 익혀야 한다. 장면과 장면이 실타래처럼 얽혀서 직관적인 조작만으로 해당 장면을 실행할 수 있다. 시청자는 드라마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를 본 뒤에 어떤 인물의 이야기를 전개해나갈지를 선택할 수 있다. 또 드라마의 세계 안에서 펼쳐지는 메시지나 가상뉴스 기사를 따로 볼 수도 있게 꾸며 나름대로 몰입감이나 실재감을 느끼게 구현했다. 이때 소더버그는 드라마가 비디오 게임처럼 느껴지지 않도록 균형을 맞추는 것에 노력을 기울였다. 이는 VR영화, 나아가 새로운 뉴미디어의 형태에 적합한 스토리텔링 시도 사례 정도로 볼 수 있다. 이미 오래전부터 소설책이나 그림책 등 아날로그 매체에서도 시도해봤던 스토리텔링으로 굉장히 복잡한 경우의 수의 이야기를 모두 만들어 찍어 모아놓은 인상을 받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 안에서 어떤 예술성을 획득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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