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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바다> 김지영 감독 - 데이터로 접근해 사실에 다가가야 했다
김성훈 사진 백종헌 2018-04-25

-3년 전 한겨레TV <김어준의 파파이스> 21화에 출연해 세월호가 침몰 직전 지그재그로 운항했다는 사실을 처음 공개했을 때 프로젝트 제목이 <화씨134>였다. 다큐멘터리 작업이 시작되면서 제목이 <인텐션>으로 바뀐 뒤 최종적으로 <그날, 바다>가 되었는데.

=굉장히 오래전 일인데 오랜만에 들으니 반갑다. (웃음) 세월호에 멋모르고 뛰어들었다가 세월호가 침몰하기 전 지그재그로 운항했다는 사실을 찾았고, 침몰 직전 134도 방향으로 한 바퀴 돌았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화씨134>는 <김어준의 파파이스> 21화에서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를 처음 만났을 때 김 총수가 프로젝트 이름을 지으라고 해서 평소 좋아하는 마이클 무어의 <화씨 9/11>(2004)에서 본떠 지은 제목이다. 하룻강아지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세월호라는 거대한 사건에 덤벼들었으니 정신 나간 거지. (웃음)

-134라는 코스값은 지금도 유효한 숫자인데.

=세월호가 침몰 직전 마지막으로 왼쪽으로 꺾을 때 방향이 병풍도 앞 해저 지형과 일치하는 값이다. 물론 그때만 해도 해저 지형이 어땠는지 몰랐지만 말이다. 세월호가 직진하다가 제주도를 향해 우회전하는 코스에서 왜 왼쪽으로 갔다가 오른쪽으로 간 뒤 마지막에 134도로 뱃머리를 돌렸을까. 배가 조류의 특성 때문에 좌로 꺾었다가 우로 꺾는 항해 방법이 따로 있는지 확인해봤더니 전문가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더라. 세월호의 선원 일부와 정부는 입을 맞춰서 140도로 유지하다가 오른쪽으로 방향을 전환해 사고가 났다고 주장하는데 밝혀진 항로가 그렇지 않다.

-세월호 침몰 원인을 추적해야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무엇인가.

=단순한 계기였다. ‘4·16세월호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 (이하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짧은 영상을 만들기 위해 세월호 사건에 뒤늦게 뛰어들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따라잡는 게 우선이었다. 당시 아무도 배의 침몰 원인을 알아내려고 하지 않았고, 모두 구조 문제에만 신경 쓰고 있었다. 언론은 정부가 발표하는 자료를 그대로 받아쓰기만 할 뿐이었다. 독립영화,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감독으로서 사람들의 관심에서 소외된 침몰 원인을 다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내가 세월호 선원 같은 중요한 증언을 해줄 만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겠나. 마침 JTBC <뉴스룸>이 세월호의 레이더 영상을 보도했는데 전자공학과 출신인 내 눈에 데이터가 들어오더라.

-세월호 AIS를 해도 위에 그린 뒤 지그재그로 운항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을 때 어땠나.

=감상적인 부분을 배제하자고 해서 완성본에 넣지 않은 장면이 있는데, 그게 데이터의 진실을 알게 됐을 때 그 충격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장면이었다. 다들 세월호 사건을 단순한 교통사고라고 했는데 그게 아니었으니까. 진실을 무조건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에 도움이 될 만한 짧은 영상을 만들어 알리든, 김어준이라는 영향력 있는 스피커의 입을 빌려 알리든 방식은 중요하지 않았다. 당시 세월호 선원에 대한 재판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그 재판에 영향을 줘야겠다’는 생각 하나뿐이었다. 그때 김 총수가 영상으로 만들면 좋겠다는 의견을 냈다.

-조사 과정에서 데이터를 크로스 체크하느라 꽤 애를 먹었겠다.

=제작 초반에는 자료의 질과 양이 얕았다. 우리 같은 독립영화인이 관련 자료들을 입수할 수 있는 경로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세월호 유가족들이 제작진이 구하기 힘든 자료들을 법원에 증거보전 신청해 얻어주었다. 다큐멘터리 감독이나 기자들이 관련 자료를 요청하면 공무원들이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데 유가족들이 압박하면 안 내줄 수가 없었으니까. 남들이 보지 못한 자료들을 입수할 수 있었던 건 모두 유가족들의 도움 덕분이었다.

-유가족들이 침몰 원인을 조사하는 데 도움을 준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유가족들을 만나 똑같은 얘기를 했는데 구조 문제로 접근하면 진상을 규명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거라고 보았다. 목격자나 증거가 나오더라도 해경이 발뺌하거나 오리발을 내밀면 처벌할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까. 구조 문제를 제기하면 한계가 있으니 AIS, 관제 자료 같은 데이터 조작 문제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유가족들에게 부탁드렸다. 데이터가 조작됐다는 사실이 인정되면 조작한 사람, 조작을 지시하고 기획한 사람을 타고 올라가면 최상의 지시자가 있을 것이고, 그를 잡아 그의 입을 통해 진실을 듣는 게 가장 빠르고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보았다. 3년 반 전에는 유가족들이 구조 문제만 얘기했었는데, 어제(4월 16일) 열린 세월호 정부합동추모식에서는 침몰 원인 문제를 구조 문제와 나란히 놓고 얘기하시는 걸 보고 너무 좋았다.

-정부는 왜 언론에 잘못된 데이터를 제공하면서까지 진실을 감추려고 했을까.

=외신 기자들 사이에서도 청해진이라는 일개 회사에서 벌어진 사고인데 왜 한국 정부가 잘못된 데이터를 언론에 발표하고, 조작을 해야 했을까라는 질문이 쏟아졌다. 김어준 총수와 나는 그 질문에서 진상 조사가 시작되어야 한다는 얘기를 하고 싶다. 그 이상의 추론을 꺼내지 않기로 했다. 그 추론을 꺼내는 순간부터 음모론 공격이 들어올 거라고 보았다.

-내가 아는 김 총수는 철저한 팩트 체커다. 대중에게 음모론자처럼 보일 뿐이다. 그럼에도 <그날, 바다>는 세월호 침몰 원인을 과학적으로 접근하는 다큐멘터리를 표방하는 데 대중에게 음모론자 이미지를 갖고 있는 김 총수를 출연시켜야 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김 총수는 데이터 결과에 대해 가장 많은 반론을 제기했던 사람이다. 그를 음모론자로 몰고 가는 사람들이 있으니 그런 그를 과학적 다큐멘터리에 넣는 건 마이너스가 될 수 있지 않냐는 의견도 있었지만, 총수를 출연시킨 건 지루하지 않는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내 연출 원칙 때문이었다. 작품의 처음부터 끝까지 데이터 얘기만 하면 얼마나 지루하겠나.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는데 김어준을 만나 세상에 널리 알려주었다는 내용의 서사를 통해 전달해야 일반인들도 어려운 정보를 쉽게 이해할 수 있지 않겠나.

-영화는 개봉 5일 만에 20만명 관객을 불러모았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본 이유가 뭐라고 보나.

=지금도 얼떨떨하다. 영화를 보신 분들이 주변 사람에게 “눈물을 짜내거나 고통을 떠올리게 하는 다큐멘터리가 아니야.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고 <명탐정 코난>보다 나아”라고 추천하시더라. 사람들은 즐거운 기억을 되돌아보고 싶어 하지만 슬프고 고통스러운 기억은 다시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 세월호 사건은 그 장벽이 아직도 존재하는데 영화를 보신 분들이 장벽을 허물어주시는 것 같다.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가 조사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 영화가 조사에 어떤 영향을 끼치리라고 기대하나.

=당연히 영향을 끼칠 것이다. 하지만 선체조사위는 세월호의 마지막 순간 위주로 조사하는 것 같아 진상을 완전히 규명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침몰 이전을 조사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 2기에 큰 기대를 가지고 있다. 특조위 1기는 청문회에서 영화가 제기한 데이터 조작 문제에 대해 명확한 판정을 내리지 못했다. 하지만 특조위 2기는 데이터 조작에 관심을 많이 보이고 있다. 영화가 제기한 데이터 조작은 대중이 이해하기 쉬운 것만 고른 것이고,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기술적으로 검증이 어렵고 좀더 과학적인 데이터 조작은 특조위 2기에서 전문가들과 함께 조사하고 검찰 수사까지 이루어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특조위 조사를 받으시는 분들은 자신을 위해서라도 빨리 양심 고백을 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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