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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쓰는 영화인②] 조광희 변호사 - 다시 시작하기 위해 썼다
김성훈 사진 오계옥 2018-06-07

소설 <리셋>과 산문집 <그래봐야 인생, 그래도 인생> 출간

조광희, <씨네21> 독자라면 낯선 이름이 아닐 것이다. 변호사이자 영화 제작자(영화사 봄 대표 시절 홍상수 감독의 <밤과낮>, 이윤기 감독의 <멋진 하루> 등 여러 영화를 제작했다)이기도 한 그는 지난해 봄, 2년째 써오던 <씨네21> 칼럼 ‘디스토피아로부터’를 돌연 중단했다. ‘장미전쟁’(조기대선)을 앞두고 안철수 대선후보의 비서실장으로 캠프에 합류하는 바람에 더이상 글을 쓸 수 없게 된 것이다. 법조계와 충무로에서 초식남으로 통하는 그가 어째서 맹수들이 바글거리는 선거판에, 그것도 두번씩(안철수 대선캠프에서 18, 19대 대선을 연달아 치렀다)이나 뛰어들었을까. “당시 이명박, 박근혜 정권이 연장되는 것만은 막고 싶었다. 두번의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 주변에는 민주당을 포함해 그를 돕는 사람들이 많았던 반면, 안철수 의원 주변에는 그를 돕는 정치인이 적었던 까닭에 정치인은 아니지만 내가 도울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

그런 그가 선거가 끝난 지 1년 만에 첫 소설 <리셋>을 써서 나타났다. 마침 <씨네21>을 포함한 여러 매체에서 써왔던 글들을 엮은 산문집 <그래봐야 인생, 그래도 인생>도 출간됐다.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해왔지만 살면서 잊고 있었다. 2년 전쯤 트리트먼트를 썼는데 제대로 썼는지 감을 못 잡겠더라. 한동안 잊고 지내다가 대선이 끝난 뒤 이제껏 써온 글들을 모으고, 새로 글을 쓴 뒤 함께 엮으면 책을 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오래전 파일을 뒤지다가 그 트리트먼트를 찾았다. 다시 읽어보니 이야기가 말이 되는 것 같아 주중과 주말에 각각 한 챕터씩 써내려갔다.” 변호사로, 영화인으로 살던 그가 대선이 끝나자마자 지난해 연말까지 초고를 쓴 이야기가 <리셋>이다.

<리셋>은 주인공인 변호사 강동호가 현직 서울시장의 의뢰를 받아 전임 시장과 유력 정치인의 비리 의혹을 파헤치는 이야기다. 조사 과정에서 권력과 금력의 추악한 거래를 발견하면서 피의자로 몰린다. 동호는 정의롭고, 원칙이 분명하며, 윤리적인 데다가 꽤 현실적인 인물이라는 점에서 조 변호사와 닮은 구석이 많다. “첫 소설이라 캐릭터를 완전히 창조하기가 쉽지 않은 까닭에 나의 좋은 점을 좀 늘리고, 반대로 나쁜 점을 좀 줄여서 만들어낸 인물이다.” 스스로 생각하는 좋은 점과 나쁜 점이 무엇일까. “어려운 질문이다. (웃음) 동호는 나처럼 고민하긴 하지만 좀더 용기 있게 행동한다. 나쁜 점은… 나보다 생각이 좀더 순수한 사람이다. 그렇다고 그를 흠 없는 사람으로 그리고 싶지는 않았다. 여자 때문에 지질하게 구는 모습을 넣은 것도 그래서다.”

추리 장르의 외형을 띤 이 소설은 사건의 열쇠를 찾아가는 과정이 흥미진진하고 긴장감이 넘친다. 조 변호사가 이야기를 미스터리 구조로 풀어나가야겠다고 생각한 건 “독자들이 쉽게 읽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미스터리·추리 장르의 컨벤션들이 약점이 될 수 있겠으나 사람들에게 익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장르의 외형을 충실히 따라가되 그 안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자는 게 나름의 전략”이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는 비결은 장르에 충실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소설 속 사건과 인물이 현실 못지않게 생생하게 묘사된 덕분이다.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고, 선거를 두번 치러본 경험이 이야기를 쓰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조 변호사의 말대로 검찰과 기업간의 거래, 개발 비리 사건, 선거를 겨냥한 공작 등 동호가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직간접적으로 겪는 사건들은 현재 한국 사회와 여러 겹으로 포개진다. 소설에서 악당에 해당하는 검사나 장 회장이 선도, 악도 아닌 인물로 묘사된 점도 현실적이다. “그들을 악한 인물로 그리고 싶지 않았다. 장 회장은 악한 면모가 있긴 하지만 매력적으로 묘사하고 싶었다. 실제로 사악한 검사는 드물고 훌륭한 검사들도 많다. 스스로 악인이라고 생각하고 살아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 자신의 상황에 맞게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리셋>은 윤리적인 선을 넘지 않으면서 사회정의를 추구하는 동호를 통해 인생과 사회 시스템을 ‘리셋’하는 의미를 좇는 이야기다.

<그래봐야 인생, 그래도 인생>은 ‘이명박근혜’ 시절 그가 쓴 글 60여개를 묶은 산문집이다. 소재도, 내용도 저마다 다 다르지만 모아놓고 보니 조 변호사의 관심사가 크게 인생(1부 잠들기 전에), 법(2부 법을 믿습니까?), 정치(3부 한국은 내전 중), 영화(4부 그래봐야 영화, 그래도 영화) 등 크게 4가지로 나뉘었다. 그건 그가 살아오면서 해온 일이기도 하다. 인생과 영화에 관한 글들은 점잖고 차분하며 안으로 파고들어가는 반면, 법과 정치에 관련된 글들은 화가 많다. “지금 같았으면 좀더 차분하게 접근할 수 있었을 텐데 이명박근혜 시절에 썼던 글이잖나.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차례로 겪으면서 사회가 새로운 단계로 진입했다고 느꼈는데 이명박 정권 들어서 사회가 역주행하는 것 같아 너무 괴로웠다. 그 분노가 글에 묻어난 것 같다.” 특히 그가 변호인으로 참여한 한명숙 전 국무총리 재판에 대해 쓴 글(‘한명숙 재판 또는 5만달러라는 맥거핀’)은 답답함과 분노가 목구멍까지 차오른다.

다행스럽게도 <리셋>에 대한 반응이 좋아, 그는 소설을 더 쓸 자신이 생겼다. 다음에는 동물 해방에 관한 소설, 안드로이드가 살인 혐의로 재판을 받고, 인공지능이 판사를 보조하는 풍경을 그린 SF 법정 드라마를 쓰고 싶다고 한다. 늘 그래왔듯이 변호사 일도, 영화 제작도 계속할 생각이다. 그는 최근 후배 둘과 함께 영화 제작사 파이 엔터테인먼트를 차려 두 작품 정도를 기획·개발하고 있다. “변호사 일도 하고 있어 진행 속도는 느리다. 되게 적극적으로 영화를 만들려고 하기보다 꾸준히, 천천히, 좋은 영화를 만들고 싶어서 제작사를 차리게 됐다. <리셋>의 영화화도 고려하고 있냐고? 계약서에 사인한 곳은 아직 없고, 검토하고 있는 회사는 몇 군데 있는 걸로 알고 있다”는 게 그의 얘기다. 어쨌거나 ‘소설가’ 조광희의 다음 이야기를 빨리 보고 싶다.

소설 <리셋>, 산문집 <그래봐야 인생, 그래도 인생>

재미있게도 두책은 장르도, 내용도 전혀 다르지만 상호작용하는 구석이 있다. 인생, 정치, 법, 영화에 대한 조광희 변호사의 생각이 두책 모두에 공통적으로 묻어나 있기 때문이다. 조광희라는 사람이 궁금하다면 <그래봐야 인생, 그래도 인생>에서 들어가는 글로 실린 ‘당신의 인생은 정말 괜찮았나요?’를 읽기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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