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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 이성민 - 연기는 언제나 어려워
이주현 사진 백종헌 2018-07-31

“내적으로 아주 강인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공작>의 시나리오에 쓰인 리명운에 대한 설명 중 일부다. 중국에서 북한의 외화벌이를 책임지고 있는 대외경제위원회 처장 리명운은 대북사업가로 위장한 스파이 흑금성(황정민)을 만나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캐릭터다. 이성민은 진심을 드러내지 않는 포커페이스 리명운에게 바위 같은 묵직한 존재감을 덧입힌다. 이 땅의 가장 보편적인 중년의 얼굴을 하고 진솔한 감정을 토해냈던 이성민은 <공작>에서만큼은 섣불리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고도의 심리전이 쉽지 않았다고 말하는 이성민의 포커페이스는 그래서 더욱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지난 5월 남북정상회담 뉴스를 접했을 때 <공작>의 장면들이 떠올랐을 것 같다.

=두 정상이 도보다리를 걷는 장면 등을 보면서, 어쩜 우리 영화와 이렇게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나 싶었다. 영화와 현실이 이처럼 포개지는 게 신기해서, 남북 두 정상이 만나는 모습을 캡처해서 윤종빈 감독한테 보내기도 했다. (웃음)

-<공작>의 시나리오를 건네받고는 어떤 생각들을 했나.

=우선 함께하자고 해줘서 고마웠다. 당시 대학로에서 공연할 때였는데, 윤종빈 감독이 직접 시나리오를 건네줬다. 당시는 남북 관계가 지금과 같은 화해 분위기가 아니어서 조심스럽게 시나리오를 전달받았다. 내가 연기했으면 하는 인물이 북한 사람이라 했고, 참고할 만한 영화로 <폭스캐처>(2014)를 추천받았다. <폭스캐처>를 보면 인물들이 가만히 앉아서 대화만 하는데도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지 않나. 그런 정중동의 느낌을 참고하라고 한 것 같다. 시나리오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연기하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웃음)

-북한의 외화벌이를 책임지는 리명운은 좀처럼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인물이다.

=속을 알 수 없는 인텔리, 지적이고 냉철한 북한의 인텔리다. 흑금성을 비롯한 모든 인물과의 일상적 대화도 교묘한 심리전으로 이루어져 있다. 인물의 속내가 무엇인지 관객이 쉽게 눈치채지 못하길 바랐다. 리명운을 연기하면서 느낀 건, 북한의 체제가 불합리하고 세계적인 추세를 따라가지 못하다는 걸 알면서도 그가 자신의 조국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걱정한다는 거였다. 조국을 사랑하는 마음이 리명운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자 동시에 리명운을 딜레마에 빠지게 하는 요인이라고 생각했다.

-<공작> 얘기를 하면서 계속해서 연기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웃음)

=대체 얼마나 대단한 연기를 했기에 그러느냐고 할까봐 걱정이다. (웃음) 사실 대단한 건 아니었는데 이상하게 잘 안 되더라. 늘 연기가 어렵다는 생각은 하지만 이렇게 극단적으로 절망감을 느낀 건 오랜만이다. 그래서 오히려 그 감정이 반가웠다. 순수하게 연기적인 순간을 연기하는 건 오랜만의 경험이었다. 매 장면 고도의 심리대화를 해야 했다. 좋은 걸 좋다고, 슬픈 걸 슬프다고 표현할 수 없었다. 진실이 아닌 걸 진실인 것처럼 얘기하는 연기를 해야 했다. 그래서 많이 부대꼈다. 나는 포커도 못 치는 사람이다. 얼굴에 감정이 다 드러나서. 그러니 얼마나 어려웠겠나.

-북한 사람을 연기했다. 사투리 등 캐릭터의 리얼리티와 관련해 신경 쓴 지점은 무엇인가.

=사투리 지도를 해주는 스탭에게 의견을 많이 구했다. “이게 맞아요?” “진짜 이래요?” 이러면서 모르는 게 많아 질문을 많이 했다. 사투리와 관련해선 타협한 지점도 있다. 정확한 사투리 구사가 중요한지 대사의 전달력이 더 중요한지. 윤종빈 감독과 상의해서 내린 결론은 리얼리티가 조금 떨어지더라도 대사 전달력에 집중하는 거였다. 기본적으로 사람 사는 모습은 비슷하다고 생각하고 연기했다. 다만 당시의 북한 체제에선 끊임없이 감시가 이루어졌다. 일상화된 감시가 있고, 많은 비선으로 이루어진 독특한 체제이다 보니, 행동이나 말이 조심스러울 것 같았다.

-황정민, 조진웅, 주지훈 등 연기에 대한 열의가 대단한 배우들과 오랜 시간 동고동락하며 촬영했다.

=처음엔 외로웠다. 난 왜 이렇게 못하나 싶어서 외롭고 힘들었는데, 어느 순간 다들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때부터 서로 많이 의지했다. 누군가가 진지한 상황에서 엔지를 내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반가울 정도였다.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싶어서. (웃음) 숙소에서 잠자는 시간 빼곤 계속 붙어다니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연기할 땐 다들 뜨겁지만 평상시엔 나른한 사람들이다.

-<목격자> <마약왕>이 올해 개봉을 앞두고 있고, 최근에 <미스터 주> 촬영을 시작했다.

=한 영화에만 집중하고 싶었지만 공교롭게도 <공작>과 <목격자>의 개봉 시기가 겹쳤다. <미스터 주>에선 동물의 말을 알아듣는 능력을 얻게 된 인물을 연기한다. 실제론 개와 친하지 않은데, 어쩌다 셰퍼드와 버디무비를 찍고 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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