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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수살인> 김윤석 - 영화적인 에너지
김성훈 사진 최성열 2018-10-02

‘또 형사야?’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김윤석은 여러 유형의 형사를 연기해왔다. 그런데 <암수살인>에서 그가 맡은 김형민은 이제껏 맡았던 형사와 많이 다르다. 범인과 육탄전을 벌이는 대신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다면 포기하기 않고 사건의 실마리를 진득하게 풀어나가는 ‘진짜’ 형사다. 요행을 부리지 않고 정면 돌파하는 모습을 보니 배우 김윤석을 쏙 빼닮았다.

-김형민은 수사가 진행되면서 성격이 하나둘씩 드러난다는 점에서 양파 같은 남자다.

=상황을 차분차분 바라보되 단서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정보를 수집해 사실과 강태오(주지훈)의 증언 사이에 널린 퍼즐들을 꿰맞추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캐릭터가 어떤 인물인지 서사 초반에 설정하거나 하드보일드한 장르 속 형사 캐릭터로 접근하지 않아서 좋았다.

-용의자나 범인과 뒤엉키거나 육탄전을 벌이는 여느 형사영화와 달리 액션은 없지만 태오가 던져준 단서를 세심하게 수사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더라.

=강태오가 하는 말이 거짓이면 나 하나 바보 되면 그만이지만, 만에 하나 억울한 피해자가 세상의 관심을 받지 못한 채 사라지면 생명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으로서 가슴 아픈 일이지 않나. 형민은 숨겨진 방문을 하나씩 열고 들어가 확인하고, 방 안이 텅 비어있더라도 범죄의 흔적을 찾는 인물이다. 치밀한 동시에 여유가 있다. 태오가 접견 거부 신청을 하면 단서를 찾기는커녕 만나는 것조차 어려우니까.

-그럼에도 그간 형사 역할을 많이 맡았던 까닭에 ‘또 형사야?’라고 생각하진 않았나.

=이 영화에 도전하기 힘들었던 점 중 하나는, 미국 드라마처럼 몇 부작이 아니라 2시간 안에 승부를 내야 하는 영화인 데다 범인이 체포된 상태에서 사건을 시작한다는 것이다. 서사를 전개시키는 동력을 잃은 채 시작하는 셈이다. 영화적인 에너지를 어디서 찾을 것인가. 그게 형민과 태오 사이의 빈자리에 있는 피해자다. 형민이 피해자를 찾아다니는 과정이 치밀해야 하는 것도 그래서다. 관객과의 머리싸움에서 이긴 영화가 없으니 관객을 이기려 들지 말고 몰랐던 사실을 함께 밝혀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육체적인 끈기가 아닌 의지와 정신을 가지고 사건을 끝까지 풀어나가는 과정을 이 영화만큼 밀도 있게 그려낸 영화를 본 적이 없다.

-그나마 형민과 가까운 캐릭터가 <극비수사>(2014)에서 맡았던 공길용 형사인데.

=그간 맡았던 형사 캐릭터가 대체로 외톨이였다. (웃음) <거북이 달린다>(2009)에선 서울에서 잘려 시골에 내려가 혼자 사건을 수사하고, <극비수사>에선 다른 관할서 사건에 손을 댔다는 이유로 시위를 진압하는 기동대로 전출돼 왕따처럼 유괴사건을 수사한다. 서울 형사는 맡아본 적도, 대기업 재벌을 만나본 적도, 룸살롱에서 범인을 체포해본 적도 없다. 항상 지방을 전전하며 범인을 잡았다.

-김형민이 누구인지 조금씩 드러나면서 서스펜스가 쌓이고, 진실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진다.

=영화는 한 사건을 종결시킨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되묻는다. 범인을 체포해 재판을 받게 하고 징역을 살게 하기 위해 사건과 관련된 모든 사람들을 일일이 만나 확인하며 파헤쳐야 사건이 종결된다. 범인을 재판정에 세우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가. 심증은 가지만 물증이 약하면 사건 성립이 안 된다. 이것을 다룬다는 법에서 영화는 위험한 구조인 동시에 굉장히 매력적이자 미덕이자 용기라고 생각한다.

-그게 형민을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겠다.

=이 친구의 가장 큰 매력은 결코 포기하지 않는 의지, 인간 승리, 이런 것보다는 마음 한구석에 공간을 두고 이 사건을 관조하는 여유를 가진 채 퍼즐을 계속 맞추어나간다는 것이다. 의지만 강하면 사람이 부러질 수 있다. 하지만 형민은 휘어질지언정 부러지지 않고 끝까지 하는 사람이다.

-접견실에서 태오를 만나 단서를 빼내는 장면이 여러 차례 등장하는데 집중력이 꽤 필요했을 것 같다.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 꺼내며 단서를 끄집어내는 게 중요한데 접견신에서 그걸 어느 정도까지 보여줄 것인가 계산하는 게 중요했다. 특히 태오가 형민을 형사로만 느끼게 해서는 안 됐다. 입을 닫게 되니까. 때로는 형님처럼, 또 때로는 이상한 동질감을 느끼게 해주어야 했다. 태오에게 더 물어보고 싶지만 일부러 안 물어보기도 하고. 서로 이렇게 밀당을 해야 해서 굉장히 신경 써서 찍었다.

-접견실 신을 찍을 때 신경이 예민했겠다.

=대사가 항상 길었다. 촬영장에 가는 길에 대사를처음부터 끝까지 속으로 복기해야 했다. 어떤 카드를 꺼내야 할까. 오픈 세트에서 찍어야 해서 방음도 어려웠고, 앵글 사이즈도 타이트해서 나뿐만 아니라 모든 스탭들이 긴장해서 찍었다.

-첫 영화 연출작인 <미성년>은 촬영을 다 마쳤나.

=지금 후반작업하느라 정신없다. 촬영은 언제나 아쉽다. 좀더 생각했어야 했는데, 치밀했어야 했는데 싶고.

-‘좀더 젊을 때 찍을걸 그랬나’ 하는 후회는 안 됐나.

=전혀. 자세한 얘기는 그때 가서 하자.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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