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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라이브러리에서> 프레더릭 와이즈먼 감독 - '그것'들이 영화가 되기까지...
김혜리 2018-10-11

<뉴욕 라이브러리에서>

<뉴욕 라이브러리에서>가 상영된 2017년 9월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프레더릭 와이즈먼 감독을 인터뷰할 수 있다는 희소식을 접했다. 와이즈먼의 영화들은 언제나, 뛰어난 영화감독 이상의 강인한 현자가 그 뒤에 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 요다를 만나게 된 루크의 마음이 이럴까? 약속 장소인 호텔 로비에 도착했을 때 와이즈먼 감독은 앞 순서의 인터뷰어에게 사운드와 관련된 복잡한 문제를 끈기 있게 설명하며 눈으로 당신을 알아봤다는 신호를 보냈다. 감독 곁에는 홍보담당자도 프로듀서도 없었다. 마침내 당신 차례라고 감독이 손짓한 순간 나는 노련한 명의의 진료실로 호명된 환자처럼 긴장해 결의를 가다듬었다. 대가의 기본적인 매뉴얼을 묻는 나이브한 질문에, 단호하고도 겸손한 감독은 명료한 답을 돌려주었다.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한 러시아 영화인이 와이즈먼을 알아보고 다가왔다. 엊그제 <뉴욕타임스>에 실린 <뉴욕 라이브러리에서>에 대한 호평을 읽었다는 인사였다. 와이즈먼 감독은 표정 변화 없이 답례했다. “으흠, 저도 그 평에 이의는 없습니다.” 다행히 그즈음 나는 대가의 시치미 뚝 뗀 유머에 익숙해져 있었다.

-<뉴욕 라이브러리에서>의 편집 전 촬영 분량은 몇 시간이었나.

=150시간이었다. 촬영 분량은 80시간부터 250시간까지 작품마다 다르지만 150시간이면 괜찮은 평균치다. 250시간을 찍은 영화는 <버클리에서>인데, 대학 교수들이 말이 많았기 때문이다.

-필름에서 디지털로 촬영 매체를 바꾼 것이 촬영 분량에 차이를 만들지는 않았는지.

=디지털카메라를 쓰면서 늘어난 길이는 5% 정도다.

-예상보다 미미한 차이다. 다양한 기관과 공동체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왔는데, 공공 도서관에 관해 영화를 찍어보자는 생각은 언제부터 가졌나.

=몇년 동안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사라졌다 했고 구체적인 실행은 없다가 2015년 봄에 가진 뉴욕 공립 도서관장 앤서니 막스와 미팅을 가졌고 긍정적 대답을 얻었다.

-그러니까 <뉴욕 라이브러리에서>는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된 미국 대통령 선거 전에 기획된 영화다. 한데 정확히 트럼프 정권을 비판하는 영화로 읽힌다.

=트럼프가 당선되고 이틀 후에 편집이 끝났다. 그를 염두에 두고 만든 영화가 아닌데, 트럼프의 정책들이 <뉴욕 라이브러리에서>를 실체보다 훨씬 정치적인 영화로 만들었다. 트럼프가 대변하는 가치는 공립 도서관이 대변하는 모든 것- 개방성과 포용성, 투명성과 민주주의- 의 반대이기 때문이다. 불관용, 독재, 비밀주의, 차별, 무지 등등.

-선거가 끝난 후 편집에 아무 변화도 없었나.

=전혀. 영화 속 토니 모리슨의 인용구가 말하듯 도서관은 가장 위대한 민주적인 기관이다. 그런데 트럼프는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다. 자연스럽게 둘은 충돌한다. 내 작심의 소산이 아니라 선거 결과에서 초래한 결과다.

-미국의 많은 도서관 가운데 뉴욕 공공 도서관이어야 했던 이유가 있나.

=우연히도 뉴욕 공립 도서관은 매우 훌륭한 도서관이다. 그러나 규모 차이가 있을 뿐 대부분의 미국 공공 도서관들은 같은 가치를 공유한다.

-현재는 파리에 거주하는 걸로 안다.

=주로 유럽에서 살고 있고 지금은(2017년 9월 당시) 10개월째 파리에 머무르는 중이다.

-<뉴욕 라이브러리에서>는 뉴욕이라는 도시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다. 그래서 뉴욕 도서관을 선택한 것이 우연인지 질문한 거다.

=맞다. 결과적으로 그런 영화가 되었다. 소도시의 도서관이었다면 달랐을 터다. 하지만 그 영화는 또한 해당되는 소도시에 관한 영화이기도 했을 것이다.

-도서관에서 드러나는 시민들의 상호 관계에 관한 영화니까.

=인간의 활동은 반드시 맥락 속에 존재하기 때문이고 내 영화의 대상이 되는 기관들은 말하자면 그 맥락이다.

-이 영화의 촬영 로케이션이 13곳이라고 들었다. 어떤 분관이 촬영이나 편집 면에서 가장 까다로웠나.

=많은 활동이 5번가에 위치한 본관에서 이루어졌지만 그 밖의 분관에서도 특별한 문제에 마주치진 않았다. 편집의 이슈는 종종 있었다. 예컨대 한 분관에서는 발레 수업이 아래층에서 열리는 중이라 위층으로부터 아래층으로 어떻게 매끄럽게 이행할까 고민했다.

-앞서 다른 기자와 사운드에 관해 나누는 이야기를 어깨너머로 듣게 됐다. 언제나 카메라 한대를 써서 찍는데, 사운드를 끊지 않고 다른 앵글의 숏을 붙여나간다.

=기본적으로 촬영은 말하는 사람을 따라간다. 하지만 그렇다고 항상 발화자를 찍을 필요는 없다. 인물이 라디오 마이크를 착용하기도 하고 현장 테이블에 마이크가 있는 경우도 있다. 도중에 카메라 위치를 바꾸게 되면 레코딩 장비의 위치도 바꾸어야 한다. 음향 장비가 화면에 잡히는 것은 원치 않는 바니까.(와이즈먼 다큐멘터리의 현장스탭은 보통 세명으로 감독이 사운드까지 담당하고, 존 데이비 촬영감독과 어시스턴트 한명이 전부다.-편집자)

-강연과 대화 중 리액션숏을 즐겨 쓴다.

=모든 것은 실시간으로 찍고, 시퀀스를 편집하고 압축하기 위해 컷 어웨이 숏을 수집해놓는다.

-이야기한 현장 운영을 포함해 섭외부터 편집까지 확고한 와이즈먼 다큐멘터리의 방법론이 있다. 형식적으로도 내레이션, 감독이 질문을 던지는 인터뷰, 음악을 쓰지 않는다. 언제부터 현재 방법론이 온전히 수립됐나.

=맨 처음부터다. 첫 장편 <티티컷 폴리스>도 방법론은 기본적으로 똑같았다.

-기자의 눈에는 지금 영화와 매우 달라 보이는데, 그런가.

=사운드와 편집의 테크놀로지는 발전했고 작품 역시 발전했기를 바라지만 영화가 향상됐느냐 아니냐는 내가 말할 입장이 아니다. 무대화되지 않은 이벤트를 촬영해서 편집 과정에서 스토리를 찾는다는 기본 아이디어는 최초부터 변한 적이 없다. 방법론을 더 효과적으로 실천하고자 할 뿐이다.

-영화를 보면 이야기가 흥미로워진다 싶을 때 카메라가 말하는 이에게 다가가곤 한다. 당신의 반응을 얼마간 카메라가 반영하는 것인가.

=줌 말인가? 그렇다. 나는 촬영 중에 판단을 하고, 존 데이비 촬영감독에게 정해진 시그널을 보내 숏에 변화를 준다. 보편적 이론은 없다. 내게 영화는 매우 실용적이고 본능적인 작업이다. 우리는 찍고 있는 사건의 어느 부분도 반복되지 않는 조건에서 영화를 만들기 때문에, 지금 눈앞에서 진행되는 현실과 과거 경험에 입각해 매번 소재를 포착하는 최선의 방법을 써야 한다.

-<라 당스> <크레이지 호스>처럼 프랑스에서 찍은 영화도 있지만 주로 미국의 기관이 영화의 대상이다. 찍고 있는 대상의 언어를 이해하는 것이 당신에겐 본질적인가.

=절대적이다. 내가 할 줄 아는 언어는 영어와 프랑스어뿐이다. 남미에서 찍지 않겠냐는 제안도 있었지만 내가 스페인어를 몰라서 불가능하다. 한국도 다른 어디도 마찬가지다. 내 방법론은 눈앞에서 일어나는 상황의 의미를 즉각 이해할 때만 적용 가능하다. 그렇다고 누가 귀에 대고 동시통역하는 가운데 찍을 수도 없다. 사운드트랙에 다 들어갈 테니. 무엇보다 무엇하러 나를 초청해서 다큐멘터리를 찍나. 뛰어난 감독들은 어디에나 있다.

-외계인이 20세기와 21세기 지구인의 생활양식을 궁금해한다면 당신의 다큐멘터리들이 최선의 가이드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웃음) 글쎄. 100년 후에도 지구가 살아남고 영화가 살아남는다면 사회 변화 정도에 따라 미래의 인류는 나의 영화를 코미디로 볼 수도 있을 거다. 솔직히 지금 봐도 좀 코미디다.

-하긴 <뉴욕 라이브러리에서>를 보면서도 많이 웃었다. 도서관 사서가 전화 문의하는 시민에게 “유니콘은 상상의 동물인 건 알고 계시죠?”라고 조심스럽게 묻는 장면이라든가.

=영화를 보며 웃었다니 반갑다.

-현장에서 촬영하는 동안에도 메모를 하는가.

=수첩을 사용하지만 무엇을 찍었는지 세세히 쓰는 게 아니라 아이디어와 앞으로 찍어야 할 것을 적는다. 기관 내부자들이 다가와 금요일 오후 2시에 스탭회의가 있다거나 내일 오전에 건물 앞에 군중이 모이는데 영화에 도움될지 모른다고 하면 메모해두는 것이다. 나는 최선의 의미에서 정보원을 이용하고 직원들의 제안에 주의를 기울인다. 매일 숏 리스트를 적거나 하진 않는다. 특히 디지털로 전환하고 나서는, 찍으면서 계속 메모리카드를 넘기고 다른 누군가가 파일을 하드 드라이브에 다운로드한다.

-파일을 날린 적은 없나.

=아직은 없다. 1986년인가 필름 러시를 실은 페덱스 수송기가 폭풍으로 콜로라도 아스펜 산맥에 추락해 일부 촬영 분량을 잃은 적은 있다. 수호천사 같은 건 없고, 항상 주의 깊게 보관하고 대비해야 하는데 말처럼 쉽지 않다. 종일 10시간에서 12시간 촬영을 하고 오늘 얻은 이미지를 새벽 2시에 돌려보고 나면 수면 부족이 되기 때문이다.

-매일 러시를 보는데도 편집실에서 못 봤던 것을 발견한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150시간의 매 순간을 기억할 순 없으니까. 내가 만든 영화의 주요 시퀀스를 전부 기억하지만 그 안의 모든 요소를 머리에 저장하긴 어렵다. 그보다 한편의 영화에 숏을 넣어보기 전에는 얼마나 말이 되는지 진정으로 알 수 없다. 스크린에서 다른 숏과의 관계 안에 넣고 보기 전에는 진상을 알 수 없다. 영화는 비주얼과 사운드와 컷의 총체이기 때문이다. 그림으로는 좋은 숏이라도 영화에서는 앞의 숏과 부딪힐 수 있다.

-본인을 역사가 내지 인류학자로 간주해본 적이 있나.

=나의 영화들이 가진 한 측면은 일종의 자연사라는 점이다. 내가 관심을 갖느냐 마느냐를 떠나서 그들은 있다. 그러나 그것이 영화(movie)의 형태로 존재하려면 극적 서사(dramatic narrative)가 필수적이다.

-인터뷰마다 꼭 하는 말이다.

=나의 믿음이니까 반복해서 말하는 거다. 나 자신에게도 거듭 거듭 말한다. 극적 내러티브가 없다면 관객이 마음을 둘 수 없다. 내 다큐멘터리에는 구조가 있고 나는 효과적 구조를 발견하려고 최선을 다한다.

-구조의 느슨한 밑그림을 염두에 두고 찍는다는 뜻인가.

=아니다. 구조는 내가 도착하는 마지막 정거장이다. 편집에 들어가면 촬영한 분량 전체를 6주간 리뷰하면서 노트를 만들고 그중 40, 50%를 제외한다. 이어 6~8개월 동안 최종본에서 사용할 모든 개별 시퀀스를 편집한다. 이렇게 찍은 것을 연구하고 개별 시퀀스를 편집하는 과정에서 구조가 천천히 드러난다. 개별 시퀀스들의 편집이 완료되면 초벌 어셈블리를 3, 4일 동안 만든다. 그즈음이면 모든 장면이 내 머릿속에 들어 있기 때문에 대안들을 신속히 시도해볼 수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1차 편집본은 최종본보다 보통 30, 40분 길다.

-최종본과의 차이가 고작 30, 40분이라니!

=그리고 다시 6~8주를 작업해 최종본을 완성한다. 이 작업은 시퀀스 내부의 리듬과 시퀀스들 사이의 외적 리듬을 잡는 과정이다. 영화가 비로소 완성됐다고 판단되면 모든 촬영 분량을 한번 더 본다.

-요약하자면 ‘6주-6주 내지 8개월-6주’ 일정이다. <창세기>의 천지창조랑 비슷한 건가.

=(폭소) 그건 7일 아닌가? 비교 대상이 못 된다. 가끔 내가 모든 동물을 두종씩 집어넣기도 하지만.

-각각의 단계 사이에 휴식을 취하나.

=보통 일주일에 7일 작업하는데 이따금 주말에 쉰다. 매년 겨울이면 스키를 타러 간다. 내가 만드는 영화들은 내 존재의 모든 측면을 요구한다. 장비들을 들고 뛰어다니려면 신체적으로 건강해야 한다.

-무례한 질문이지만 이제는 약간 벅차다고 느끼진 않나.

=아직은 아니지만 그런 날이 올 것이다. 말 그대로 나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몸을 단련한다.

-당신의 영화를 볼 때마다 나는 인간이 만든 사회에 대해 긍정적 감정을 재충전한다. 인간이 어떻게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 서로에게 의지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영화들이라서다. 영화를 보고 나면, 보기 전보다 쾌활해진다.

=오, 북한에 대해 잊게 되는 건가. (웃음)

-그래서 말인데 감독 본인의 정신에 지금까지 만든 42편의 영화는 어떤 영향을 주었나.

=어렵고도 재미있는 문제다. 나는 이 영화들을 만드는 작업이 즐겁다. 영화를 만들며 대부분의 인간들보다 세상의 많은 측면을 경험했고 경찰부터 발레리나까지, 그리고 그 사이의 무수한 사람들을 만났다.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이를테면 <뉴욕 라이브러리에서>를 찍기 전에 나는 도서관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었다. 마지막으로 도서관을 이용한 게 50년 전이었으니까. 학생 신분을 벗어난 후로는 읽고 싶은 책을 사서 봤기 때문에 도서관에서 하는 일의 범위와 깊이를 전혀 몰랐다.

-그렇게 배운 바를 나머지 인간과 영화로 공유하니 참 친절하다.

=뭘, 좋아서 하는 일이다. 가끔 내가 더이상 젊지 않음을 깨닫는다. 하지만 영화 찍는 일을 사랑하기 때문에 건강을 유지해서 마노엘 드 올리베이라를 이겨보려고 한다. 그이는 103살까지 영화를 만들었지 아마?

-디지털 시대가 온 후 한국에도 전보다 많은 젊은 다큐멘터리 감독이 활동하고 있으나 배급은 여전히 어렵다. 그들에게 전할 말이 있나.

=돈 많은 사람과 결혼해라.

-그것도 엄밀히 말해 쉬운 일이 아닌데.

=그걸 빼고 할 수 있는 조언은 계속, 그치지 말고 작업하라는 말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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