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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철 편집장] 설리를 추모하며
주성철 2019-10-18

“연기자를 꿈꾸는 최진리양.” 설리가 세상을 떠난 후 옛 영상들이 여럿 돌아다니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띈 것은,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어린 설리가 <밥상천하>라는 TV 요리 프로그램에 출연한 영상이었다. 그때도 큰 자막으로 저런 자막을 넣은걸 보면 제작진과의 사전 인터뷰 때, 분명히 연기자의 꿈을 얘기한 것이리라. <씨네21>에서도 설리를 인터뷰한 적이 두번 있다. 굳이 가장 최근의 인터뷰라면, SM엔터테인먼트 소속 가수들이 2011년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가졌던 <SMTOWN 라이브 월드 투어> 실황을 담고 있는 최진성 감독의 <I AM.> 개봉 당시 가졌던 인터뷰다. 최강창민, 은혁, 티파니와 함께한 인터뷰였기에 단독 인터뷰는 아니었다. 당시 인터뷰 시간 절약을 위해 그들에게 빈칸을 스스로 채우게 하는 공통 질문을 던졌고, 기억에 남는 설리의 문답 몇개를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어머니]다.” “가수가 되지 않았다면 [연기자]가 되었을 것이다.” “지금 당장 생각나는 사람은 [친구]이다.” “살면서 가장 크게 울었던 때는 [엄마한테 혼났을 때]다.” “함께 영화를 찍어보고 싶은 사람은 [안성기 선배님]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시 태어난다면 [나]로 태어나고 싶다”.

TV드라마 <서동요>에서 배우 이보영이 연기했던 선화 공주의 아역으로 처음 연기를 시작한 설리의 영화 데뷔작은 <펀치레이디>(2007)였다. 귀여운 공주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펀치레이디>에서는 하은(도지원)의 반항적인 딸 춘심으로 출연해 비중도 꽤 컸고, 무엇보다 소주잔을 씹어먹는 연기는 지금도 회자되는 장면 중 하나다. 강풀 원작의 <바보>(2008)에서 배우 하지원이 연기한 지호의 어린 시절 역할로 나오기도 했는데, 에프엑스가 2009년 활동을 시작했으니 설리는 ‘배우 최진리’로 먼저 활동을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I AM.> 이전 <새미의 어드벤처>(2010)에서 샐리 목소리 연기를 하면서 <씨네21>과 최초 인터뷰를 했을 때 직접 만난 적이 있는데, 그때도 역시 함께 목소리 연기를 한 빅뱅대성과 동석했기에 단독 인터뷰는 아니었다. 흥미로웠던 것은 <새미의 어드벤처> 오리지널 버전에서 <오펀: 천사의 비밀>(2009) 포스터의 주인공으로도 유명한 배우 이사벨 퍼먼이 샐리의 목소리 연기를 했었는데, 자신과 같은 캐릭터의 목소리를 연기한 이사벨 퍼먼이 실제로 음악인으로 활동한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무척 반가워했었다는 점이다. 그렇게 자신처럼 연기와 음악을 병행하는 사람이라는 것에 신기해했고, 심지어 자기보다 더 어리다는 사실에 자극을 받는다고도 했다. 그래서 더 부지런해져야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렇게 설리는 매번 만날 때마다 ‘연기자 최진리의 꿈’을 얘기했었다. 그 꿈을 이루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계획했던 목표에 대한 그 스스로의 갈증은 이제 어떻게 더 해소될 방법이 없다. 안타까운 일이다. ‘믿고 싶지 않은 설리의 죽음을 애달파하며’라는 제목으로 녹색당이 낸 보도자료의 내용을 일부 인용하는 것으로 글을 마칠까 한다. “여성 아이돌 연예인에게 요구되는 성차별적 규범과 억압에서 조금씩 벗어나려 하였고, 자신의 취향과 생각을 부러 감추지 않고 대중과 소통하고 싶어 했으며, 여성주의 이슈에도 용기내어 목소리를 보태주었던 그다. 부당한 관습과 편견에서 벗어나려 한다는 이유로 그에게 가해졌던 모욕과 모멸, 비난은 이 사회의 상식과 양식을 돌아보게 하기에 충분했다. 늦기 전에 이를 엄히 성찰하지도 그를 보호하지도 못한 씻을 수 없는 과오는 남겨진 우리가 함께 짊어져야 할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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