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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재의 기억> 이승준 감독 - 고통은 여전히 그곳에 있다
김성훈 사진 백종헌 2020-01-27

<기생충>과 함께 미국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른 한국영화가 또 있다. 이승준 감독이 연출한 다큐멘터리 <부재의 기억>이 지난 1월 13일 아카데미상 단편다큐멘터리 부문 후보 다섯편 중 하나로 올랐다. 세월호 참사를 다룬 이 작품은 그 흔한 내레이션과 음악에도 기대지 않고, 2014년 4월 16일 바다에서 벌어졌던 일을 인터뷰와 자막만으로 담담하게 펼쳐낸다. <달팽이의 별>(2012), <달에 부는 바람>(2014) 등 여러 다큐멘터리를 연출한 이승준 감독은 미국 비영리 온라인 다큐멘터리 제작·배급 단체인 ‘필드 오브 비전’과 함께 제작을 진행했고, <뉴요커>가 지난해 4월 이 영화를 유튜브에 올려 현재 240만명이 넘게 보았다. 이승준 감독은 “기쁜 일은 맞지만 세월호 사건이 소재다보니 마음이 복잡미묘하다. 그렇지만 세월호 사건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는 기회”라고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른 소감을 밝혔다.

-후보로 올랐을 때 세월호 유가족들의 반응이 어땠나.

=굉장히 좋아하셨다. 세월호 사건을 소재로 한 까닭에 마냥 좋아할 순 없었다. 그럼에도 유가족들이 “고맙다”, “잘했다”고 축하해주셨다.

-세월호 사건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게 됐으니까.

=유튜브 생중계로 봤는데 발표됐을 때 다행이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영화를 먼저 본 세월호 유가족들이 영화를 더 많이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는 이슈들을 다룬 작품들을 온라인에서 배급하는 ‘필드 오브 비전’이 연출을 제안하면서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다. 왜 세월호 사건인가.

=세월호 사건은 다루기가 많이 조심스러웠다. 이 사건을 카메라에 담은 동료 감독, 프로듀서들이 주변에 많았고, 그들보다 이 사건을 잘 다룰 자신 또한 없었다. 함께 일하는 프로듀서들이 세월호 사건을 다뤄보자고 수차례 제안해왔지만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았다. 그럼에도 프로듀서는 “이 감독, 이거 해야 된다. 고통이, 트라우마가 여전히 저곳에 있지 않나”라고 거듭 제안했다. 그러던 차에 필드 오브 비전이 연출을 제안해왔다. 마침 세월호 유가족들 또한 세월호와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어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진실을 파헤치는 탐사보도가 아닌 세월호 사건을 차분하게 되돌아보는 작품이 필요하다고 했다. 2016년 9월쯤, 세월호유가족협의회의 한 관계자가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를 찾아 전작 <그림자꽃>의 피칭을 봤고, 세월호를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줬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프로듀서에게 전했다고 들었다.

-영화를 보니 <부재의 기억>이라는 제목이 국가가, 재난 대응 시스템이 부재했다는 뜻으로 느껴졌다.

=제작을 시작했던 2017년은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지 3년째 되던 해였다. 유가족과 구조작업에 참여했던 잠수사들의 트라우마는 여전히 바다에 있었다. 당시 어떤 사람들은 “세월호 얘기는 그만하라”고 하고, 어떤 정치인들은 “세월호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고 말하지 않았나. 이게 뭐지? 고통이 그곳에 있는데? 고통이 어디서, 어떻게 시작됐고 2시간 동안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재구성해 차분하게 지켜보게 하고 싶었다. 그렇게 정리해보니 국정 운영 철학도, 재난 대응 시스템도 없는 대한민국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왜 잠수사들이 아직도 고통스러워하는지 보여줘야 했던 것도 그래서다.

-세월호유가족협의회와 4.16 기록단으로부터 많은 영상 자료들을 제공받았는데 편집 전 이 영상들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

=카메라를 들고 기록한 사람들 대부분이 친한 동료들이다보니 카메라에 담긴 피사체보다는 카메라를 든 사람부터 눈에 들어왔다. 매체에 등장하지 않은 미공개 영상들까지 다 보았다. 적절한 장면을 찾거나 편집할 때는 어떤 생각도 안 들다가, 작업을 멈추고 잠깐 멍하게 있으면 오만 가지 생각이 들었다. 어른으로서 미안하기도 하고… 말로 표현하기 힘든 복합적인 생각이 들었다.

-촬영 소스도, 직접 찍은 영상도 많은데 왜 30분짜리로 만들었나. 장편으로 만들 생각은 없었나.

=필드 오브 비전은 단편을 보여주는 플랫폼이다. 제작이 진행되면서 그들과 여러 의견들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30분이 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나왔고, 그것을 따랐다. 결과적으로 좋은 결정이었던 것 같다. 길지 않아서 사람들이 보기 편하니까. 탐사보도가 아닌 ‘긴 시’ 같은 영상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는 내레이션도, 감상을 강요하는 음악도 없이 바다 인서트컷과 사건 당시 상황을 설명하는 자막 그리고 유가족, 잠수사 등 여러 사람들의 인터뷰로 전개된다.

=감정을 직접적으로, 많이 드러내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마음과 감정이 잘 드러나야 훌륭한 시퀀스, 나아가 한편의 영화가 탄생한다고 생각한다. 굳이 드러내지 않아도 이 사건에는 거대한 감정이 있다고 생각했다. 공동 제작한 미국쪽 파트너들 또한 유가족, 특히 어머니가 오열하고 소리 지르는 모습을 다 들어냈다. 음악에 의존하면 감정이 쉽게 끓어오르되 금방 식는다. 담담한 것에 슬픔이 있다고 믿는다. 세월호 사건은 그래야 오래간다.

-그래서 세월호 유가족, 고 김관홍 잠수사 등 당시 참사를 겪은 사람들이 어떤 고통을 겪고, 무엇을 그리워하는지를 담아내는 데 더욱 공을 들인 것 같다.

=세월호유가족협의회의 한분이 세월호의 어떤 얘기를 하려고 하는지 물은 적이 있다. 그때 내가 “유가족 어머님들께서 웃고 떠들다가도 침묵하는 순간이 있는데 그게 인상적이었고 눈에 들어왔다. 침묵의 순간에 그들의 고통이 얼마나 큰지를 카메라에 담아내고 싶다”고 대답했다. 세월호 참사를 차분하게 바라본다는 점에서 그간 만들어온 작품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영화의 방향도 전혀 헷갈린 적 없다.

-해외 관객의 반응은 어떤가.

=미국과 유럽의 암스테르담에서 상영한 적이 있다. 상영이 끝나고 불이 켜지면 많은 관객이 충혈된 눈으로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당시 청와대가 해경에 전화를 걸어 사고 영상을 보내달라고 얘기하는 장면에선 객석에서 웅성거렸고, 또 어떤 장면에선 “미친 거 아냐?”라고 즉각적으로 말하기도 했다. 국적은 달라도, 세월호 참사는 그들에게 보편적으로 공분을 자아냈다. 영화를 본 관객은 자신의 국가사례를 들면서 “우리 또한 국가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해 고통받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차기작은 뭔가.

=아직 고민하고 있어 자세하게 얘기할 수 없지만 자기반영적인 다큐멘터리가 될 것 같다.

-아카데미상을 수상할 것 같나.

=모르겠다. 다만, 이번 노미네이트를 계기로 전세계의 더 많은 사람들이 세월호 사건을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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