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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 경제학자의 코로나19 시대 정책 제언, "소극적 방식으로는 한국영화의 복원 요원하다"
우석훈(경제학자) 2020-05-04

영화계의 복원성 유지를 위한 긴급지원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 어느 때보다 머리를 맞대야 할 시기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영화계는 구체적인 피해 사례를 조사하고, 정부 또한 영화진흥위원회를 통해 피해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과정에서 금융지원이나 스탭 고용 지원 등 여러 방안들이 나오고 있지만 마땅한 해결책 또한 없는 게 사실이다. <씨네21>은 영화산업 밖의 분야별 경제·정책 전문가들에게 의견을 구했다. <88만원 세대>를 포함해 30권 넘는 책을 썼고, 최근 두 번째 소설 <당인리>를 쓴 우석훈 경제학자, 민간경제 싱크탱크인 LAB2050 윤형중 정책팀장, 김영훈 더불어민주당 문화체육관광 수석전문위원, 세 사람이 전무후무한 위기에 처한 한국 영화산업에 대한 처방전을 제시했다.

영화의 복원성을 위한 1조원

코로나19가 처음 등장했을 때, 나는 역대급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바이러스가 인체 내에서 인큐베이팅되는 기간이 2주로 너무 길다. 그리고 사망률은 사람들이 두려워서 활동을 정지하기에는 적당히 낮다. 게다가 팬데믹은 더욱더 강해져서 다시 돌아올 수 있다. 극장이라는 밀폐된 공간에서 발생하는 영화 관람이 이 산업의 ‘본원상품’이다. 영화 <아웃브레이크>에서 바이러스가 폭발하는 장면도 극장 안에서 벌어진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상반기 내에 끝날지, 가을에 다시 대유행이 돌아와서 실질적으로 1년 내내 계속될지, 그 끝을 알기 어렵다. 저강도의 사회적 거리두기가 내년까지 계속될 가능성을 아예 배제하기도 어렵다.

손실분 회복에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현재 100억원 이상의 제작비를 들인 영화나 대형 수입영화 모두 개봉일자를 못 잡고 있는 것은 물론, 촬영 현장 역시 마비된 상태다. 극장이 정지하고 현장이 정지한 이 기간이 얼마나 이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정부가 아무 지원을 하지 않는 상태로 1년 이상이 지나면 그 손실은 극장과 제작사가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 2019년 기준으로 30억원 이상의 제작비가 들어간 영화의 추정 수익률은 5.7%다(영화진흥위원회 추정). 단순하게 이걸 영화산업의 기대수익률로 계산하면 1년 동안의 손실분을 회복하는 데 20년 가까이 걸린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극장과 달리 제작사는 이 손실을 모든 제작사가 균등하게 받는 것은 아니고, 재수 없게(!) 이 기간에 개봉이나 제작이 걸려 있는 곳에 손실이 집중될 것이다.

피해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1인당 연간 극장 관람 4.37회라는 세계적으로도 높은 수치가 유지된다고 하더라도 밀려 있던 영화들이 한꺼번에 개봉하면서 일정한 기간 내에 충돌하게 되기 때문에 예상 수익률 자체는 지금보다 많이 내려갈 것이다. 정상화를 가정하더라도 2~3년 내에 일반 수익률로 돌아가기는 어렵다.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극장에서의 영화 관람 행위가 유지될지도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OTT(Over The Top)라고 부르는 셋톱박스 등 디바이스를 활용한 시장으로 상당 부분 전환될 가능성도 있다. 이 상황에서 우리는 영화산업의 본질에 대해서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영화의 근본은 극장이냐 아니면 그걸 만드는 사람이냐? 극장이 없어도 영화는 상관없다는 시선과 결국 극장이 있으니까 영화라는 산업이 존재한다는 시선이 부딪친다. 제한된 자원으로 영화에 지원해야 한다면 단순하게는 극장을 지원할 것이냐, 사람에게 지원할 것이냐, 그런 선택에 부딪히게 된다. 그런데 영화산업이 그렇게 철학적 본질을 고민해야 할 정도로 국민경제에 부담이 가는 산업인가, 다시 질문을 해볼 수는 없을까?

한국영화의 특징으로 이 산업을 분류하면 ‘스몰 스케일 특수 시장’ 정도가 될 것이다. 규모는 아주 작고,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일반 제조업 혹은 서비스업과 다른 특수성을 가지고 있다. 한국은행에서 산업연관성을 분석하는 투입산출표에는 ‘영상·오디오물 제작 배급’에 섞여 있어 독자 항목도 아니다. 그 시장이 2017년 기준 8조6천억원 정도 되는데, 대략 1/4 약간 안되는 규모가 영화산업이다. 역대 최대라는 2019년을 기준으로 하면 2조5천억원 정도 되는 시장인데, 그중 극장 매출이 1조9천억원으로 76%이다. 디지털 온라인 매출이 5천억원 정도, 수출은 860억원으로 오히려 줄었다. 2016년에 수출이 1천억원을 넘어선 게 기록적인데. 그해에는 <부산행>이 있었다. 참고로 6~7살의 영유아 사교육 시장도 영화산업보다 크다. 규모로만 보면 정부가 영화산업만을 떼어서 별도로 대책을 세우기에는 ‘스몰 스케일’이다. 만약 정부에서 영화산업만 떼어 별도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면, 그건 GDP 기여도나 고용률 등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또 다른 영화산업만의 특수성이 있는 경우일 것이다. 영화산업은 문화산업이고, 미래산업이다. 규모에 비해 국민경제에 대한 기여도가 클 수 있다.

다른 문화산업은 많은 충격을 받더라도 원래대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은데, 영화산업은 그래 보이지 않는다. 특수 요소들을 감안해서 영화에 지원한다고 할 때, 충격이 아예 없는 것처럼 흡수하는 최대 금액은 1조8천억원이다. 극장에서의 매출액 그대로다. 관객이 아예 없다고 가정하고, 관객이 극장에서 지불한 금액 전체를 보존하면 이렇게 된다. 이걸 가지고 제작사와 투자사 등 나머지 산업이 그대로 돌아간다고 배분하면 충격률 제로가 된다. 물론 여기에는 제작비 등 원가가 포함되어 있다. 수익을 제외하고 극장의 고정비, 제작사의 확대 인건비 등을 감안하면 대략 1조원 미만의 돈으로 영화 분야의 충격을 거의 흡수할 수 있을 것이다. 지원 금액이 결정되면 영화코로나위원회 같은 지원 기구를 만들어 분야별로 제원하는 메커니즘을 만들면 그만인 일이다.

충격 이후의 완충 역할을 기대한다

1조원 미만의 돈, 이건 가치중립적 혹은 정책중립적인 금액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결정은 이 사회가 영화의 복원성을 위해서 1조원을 쓰는 것이 많으냐, 적으냐, 영화산업에 대한 사회적 결정이다. 코로나19에 대처하는 한국 경제의 규모로 볼 때, 사실 이건 돈도 아니다. 영화산업의 잠재성과 미래성을 생각하면 해볼 수 있는 논의다. OTT 분야에서 어느 정도 흡수해줄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지만, 1조8천억원짜리 시장이 5천억원짜리 시장으로 들어가는 것은 아무리 발전성을 감안한다고 해도 무리다.

이렇게 하면 좋겠다. 정부에서 8천억~1조원 정도의 예산을 영화에 투입하고, 가능한 한 공정하고 효율적인 메커니즘 설계를 통해서 영화계의 복원성을 유지하는 단기 조치를 할 수 있다. 물론 그게 좋겠다는 사회적 논의는 별도다. 그리고 영화진흥위원회 기금은 영화의 다양성을 높이고 독립성을 높이는 장기적 복원성 위주로 바이러스 충격 이후의 완충 역할을 하면 좋을 것 같다. 제작사에는 융자, 영화인에게는 영화진흥위원회를 통한 단기 임금지원, 이런 소극적 방식으로는 한국영화의 복원은 요원하다. 1조원, 크다면 큰 돈이지만 경제 전체로 보면 아무것도 아닌 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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