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피플 > 커버스타
<결백> 배종옥 - 여자, 때때로 엄마
임수연 사진 최성열 2020-06-10

배종옥은 늘 시대의 평균보다 훌쩍 앞선 자리에 있었다. 쉽게 지지 않는 여성 캐릭터가 거의 재현되지 않았을 때부터 그를 거친 여성들은 반짝이는 눈으로 카메라 앞에서 자기 얘기를 했다. <결백>에서 남편의 장례식장에 온 손님들을 농약 막걸리로 죽였다는 혐의를 받는 화자(배종옥) 역시 억울한 사연을 가진 노모 이면에 흥미로운 화두를 담는다. 60대 치매 노인을 연기하기 위해 두 시간 넘는 특수분장을 감행했지만 “외적인 변화는 현상일 뿐이고 전체 스토리로 가기 위한 과정일 뿐”이라고 배종옥은 말한다. 그가 전하는, <결백>이 진짜로 하고자 했던 이야기를 들었다.

-치매 연기는 다른 베테랑 배우들도 많이 고민하며 연기할 만큼 쉽지 않은 것 같더라. 어떤 준비를 했나.

=드라마 <원더풀 마마>에서 치매 걸린 엄마를 연기해 치매에 대한 공부는 그때 했었다. 당시엔 현실을 인식하다가 점차 치매가 진행되는 캐릭터였는데 <결백>의 화자는 현실과 치매 상태가 왔다 갔다 하는 대목이 있어서 이를 계산하는 게 조금 힘들었다.

-엄마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고향에 내려오는 변호사 정인 역의 신혜선과 일부러 잘 안 만났다고.

=한동안 떨어져 있는 모녀 관계다. 연기는 아무리 연기라고 해도 연기만으로 100% 갈 수가 없다. 친하면 친한 게 화면에 표시가 나고 싫으면 싫은 게 티가 난다. <결백>은 특히 나와 혜선이의 거리감을 표현하는 게 중요했다. 그래서 현장에서 혜선이를 거의 보지 않고 그렇게 친한 척도 하지 않았다. 요즘 영화 홍보를 할 때는 서로 친해도 되니까 훨씬 더 편해졌지만. (웃음)

-<결백>의 스틸컷만으로는 유추할 수 없을, <결백>에서 볼 수 있는 배종옥의 모습이 있다면.

=정인이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엄마라는 여자에 대해 이해하게 된다. 엄마의 모성보다는 한 여자의 이야기가 부각될 거다. 우리가 엄마라는 단어에서 느끼는 희생이나 포근한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다. 엄마를 엄마로만 보는 그런 문화가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환절기>(2018) 역시 한 여자가 자신을 찾아가고 아들을 품의 자식이 아닌 하나의 인간으로 이해하는 과정을 담지 않았나. 이렇게 정서적으로 성숙한 영화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십수년 전 기사들을 보니까, 당차고 자기주장 강하고 남자들에게 지지않는 캐릭터를 연기해온 배우라는 식으로 묘사돼 있더라. 이런 캐릭터는 오히려 요즘 각광받는 것 같다.

=미국에선 페미니즘 운동이 진작 시작됐지만 한국은 여자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면 드세다고들 했던 시대다. 여자들은 날 멋있다고 했고 남자들은 힘든 여자라고 생각했다. 당시 여자들은 날 통해 대리만족하며 자기들이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해주길 바랐고 뒤에서 응원했다. 얼마 전 영화 <작은 아씨들>을 봤는데 엔딩이 너무 좋았다. 그 시대에 여자가 그렇게 앞서 나간 고민을 했으니 얼마나 고독했겠나. 나는 이게 옳은 거 같은데 세상은 아니라고 하니까. 젊었을 때 나 역시 그렇게 고독한 시간을 보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내가 가진 힘이 됐다. 사람들에게 찬양받는 캐릭터만 했다면 굳이 발전하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예능 프로그램 <전지적 참견 시점>에서 매니저에게 책 선물을 하며 읽으라고 하는 등 독서에 애정을 표했다. 최근에 읽은 책을 추천해준다면.

=최근에 책장에서 우연히 발견한 비스와바 심보르스카의 시집 <충분하다>를 정말 맛있게 읽고 있다. 아까워서 조금씩 읽고 있다. 밖에서 일이 끝나면 그 책을 보기 위해 빨리 집에 가는, 그런 시간이 참 좋다. 그전에는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에 빠졌다.

-두 여성배우가 <씨네21> 표지를 장식하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 흔치 않은 그림인 만큼 영화가 더 잘됐으면, 나아가 배종옥 배우가 <씨네21>과 더 자주 만났으면 좋겠다.

=기자들이 그런 말을 할 때마다 얘기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캐릭터나 영화가 없어서 그런 거라고. 그래도 가능성 있다고 생각한다. <집으로…>(2002)가 잘되던 시절이 있었던 것처럼 좀더 다양한 영화가 나올 수 있다. 내가 코미디 연기를 무척 하고 싶어 한다고 기사에 꼭 써달라. (웃음) 최근에 한 연극도 코미디였고 사람들이 오면 많이 웃고 간다.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같은 시트콤이 다시 만들어지면 꼭 하고 싶다. 그리고 천만 영화에 출연하는 게 소원이다. 예전에는 ‘그런 게 중요한가?’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더라. 나도 그렇게 폭발적인 인기가 있는 작품을 해보고 싶다.

관련영화

관련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