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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경이로운 소문' 김세정 - 넘어지고 상처받아도, 꽃길은 영원히
임수연 사진 오계옥 2021-01-14

<경이로운 소문>에서 무표정한 김세정을 보는 일엔 묘한 통쾌함이 따른다. <프로듀스 101>은 물론 아이오아이구구단의 멤버로 무대 위에 설 때도, 예능 프로그램에서 에이스로 주목받는 순간에도 김세정은 한결같이 웃음을 잃지 않는 소녀였다. 타고난 성격일까, 아이돌이 요구받는 감정노동의 산물은 아닐까 괜스레 의식하다가도 뭐든지 알아서 잘해내는 명민한 모습에 걱정을 거두곤 했다.

그랬던 그가 시큰둥한 표정으로 홀 서빙을 하고, 아픈 과거가 드러날 것 같은 순간엔 주저 없이 괴력으로 사람을 날려버리며, 몸에 딱 붙는 아이돌 의상 대신 펑퍼짐한 추리닝을 입고 발차기를 하는 카운터 도하나로 돌아왔다. 스스로의 ‘꽃길’을 능동적으로 개척해온 김세정은 <경이로운 소문>을 통해 자신이 성장할 수 있는 지점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시청자들이 <경이로운 소문>의 ‘잘생김 담당’이라고 하더라.

=부정하지 않겠다. (웃음) 처음부터 그렇게 알고 드라마에 들어왔다. 무대에 오를 때는 렌즈도 끼고 꾸미는 데 집중한다면 드라마에서는 편하게 내려놓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잘생겼다는 말 참 좋다. 예쁜 것보다 잘생긴 게 더 많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매력 아닐까?

-하나는 발차기를 잘한다. 발차기가 근사하게 보이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어차피 발차기는 나와 액션 배우님 컷을 같이 딴다. 중요한 건 이후 표정이다. 발을 차고 돌아설 때 눈빛, 돌려차기 후 헉헉거리며 카메라를 바라보는 것, 찰랑거리는 머리. 어떻게 보면 ‘엔딩 요정’으로서 표정을 잘 짓는 ‘아이돌 바이브’가 필요한 부분이다. (웃음)

-하나는 기대하지 않으려 애쓰는 성격을 가진 것 같다. 소문(조병규)이 카운터 제안을 수락하지 않을 거라고 하다가 막상 오니까 입술이 살짝 올라간다.

=예리한 지적이다. 상처를 많이 받은 사람일수록 상처받기를 두려워한다. 기대할수록 기대대로 되지 않았을 때 상처는 더 커진다. 기대하지 않는게 덜 상처받는 길이니 하나도 그걸 택한 거다.

-아무래도 무거운 과거를 가진 캐릭터니까. 그냥 무표정한 것과 아픔을 숨기기 위해 무표정을 가장하는 건 감정 상태가 다를 텐데 연기할 때 어땠나.

=예전에 어느 드라마 오디션장에서 준비한 연기를 보여줬는데 “사람이 어둡게 살았다고 꼭 어둡지만은 않다”라는 말을 들었다. 그때 이후로 ‘떡볶이는 언제나 맛있다’는 걸 생각한다. 떡볶이는 가난한 집에서 먹어도 부잣집에서 먹어도 슬플 때 먹어도 기쁠 때 먹어도 맛있다. 그러니까 슬픈 순간에 떡볶이를 맛있게 먹는 모습으로 연기할 수 있는 거다. 하나 역시 너무 어둡게만 표현할 필요가 없다. 누구나 어두움을 갖고 있지만 어쨌든 사람은 살아야 하기 때문에 살아가게 된다.

-작사·작곡 등에도 도전한 솔로 활동과 기획된 것을 잘 수행해야 하는 아이돌 활동, 그리고 연기는 어떻게 서로 보완하고 있나.

=무대를 많이 경험하다 보니 처음 맞닥뜨리는 일에 두려움을 덜 느끼는 건 확실하다. 역으로 연기를 하면서 너무 많은 감정을 담아 노래하기보단 힘을 풀고 가는 게 도움이 되겠다는 판단이 들 때가 있다. 또 작사·작곡은 경험을 많이 해보는 게 중요하다. 연기를 하면 세정이뿐 아니라 하나나 은호(<학교 2017>의 캐릭터 이름)로도 살 수 있다. 나보다 어린 나이대를, 어떤 아픔을 경험하면서 내가 쓸 수 있는 글도 더 다양해진다. 그건 어렴풋한 추측이 아니라 연기하면서 느낀 진심이다.

-조병규가 ‘여자 유준상’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고 하지 않았나. 김세정도 유준상 배우처럼 다양한 일을 하며 살 것 같다.

=지금은 발톱만큼도 못 따라가지만 유준상 선배님을 보면 내 미래가 그려진다. 마흔 되면 작곡도 연기도 뮤지컬도 트로트도 하면서 선배님처럼 지내고 있을 것 같다고. (웃음) 지난해에 ‘부캐’ 열풍이 일지 않았나. 부캐는 내가 이루고자 했던 또 다른 꿈인 것 같다. 그렇게 나만의 부캐들이 잔뜩 늘어나다 보면, 연기도 예능 프로그램도 하지만 늘 노래를 사랑하는 나로 성장할 수 있을 것 같다.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다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나만의 버라이어티한 점이 있고, 연기를 하다가 끄집어내는 혹은 절제해야 하는 나도 모르는 감정을 배울 때도 있다. 이런 걸 창작에 녹여내고, 그렇게 성장한 부분을 예능 프로그램에서 다시 말로 풀어내면 모든 걸 아우르는 유준상 선배님처럼 될 수 있지 않을까.

-2020년 초 발표한 솔로 앨범에 실린 에세이에 “괜찮은 줄 알았다. 하루는 적당히 흘러갔으니까. ‘긍정’에 지쳐 있었다”고 쓴 것을 보고 많이 웃는 만큼 내면에 어두움도 감추고 있는 친구가 아닐까 생각했다. 감정 표현에 대해 고민하던 시기에 연기를 하면서 좋은 영향을 받지는 않았나.

=오히려 반대였다. 눌러왔던 감정을 표출하다 보니 일부러 안 보려고 했던 나만의 기억을 다시 꺼내야 했다. 감정 기복이 심해진 적도 있어서 두번째 작품에선 기술적으로만 연기했다. 이번 드라마가 세 번째 작품인데, 두 가지가 잘 결합된 것 같다. 이제는 감정 신을 찍어도 크게 타격받는 일 없이 내가 느끼는 게 있고 연기로 받아들여진다. 아무래도 법이 바뀐 후 현장에 여유가 생기고 넷이 함께하는 작품이다 보니 스스로를 돌아볼 기회가 생긴 것 같다. 전에는 일로만 사람을 대하다가 관계가 발전하지 못한 적도 있는데, 이번 드라마에서 일로 만나도 관계가 발전할 수 있다는 걸 배워간다. 결국 연예계 일도 사람과 사람이 만나 이루어지는 건데 왜 진작 이러지 못했을까. 그리고 글로 남겨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건 내가 다 극복한 이후다. 지금 내가 짓는 이 웃음이 진짜 웃음이어서 참 좋다.

-아까 하나는 기대를 덜하는 성격이라는 말을 했는데, 혹시 김세정도 그렇게 감정을 다스려왔나.

=아무리 과정이 좋아도 결과가 따라오지 않을 수 있는 게 이쪽 업계 일이다. 어느 순간부터 기대를 덜하는 게 습관이 됐다. <경이로운 소문> 첫 방송 전 시청률 내기를 할 때도 혼자 ‘최고 시청률 4.5%’에 걸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렇게 좋은 과정을 가진 현장이라면 좋은 결과가 나와주면 좋겠다’라고 나도 모르게 빌고 있더라. 그리고 시청률이 잘 나오고 사람들과 관계도 깊어지면서 왜 그동안 꿈꾸기를 무서워했을까 하고 생각했다. 넘어지고 상처받아도 되는데, 어쩌면 주저했기 때문에 내가 꾼 꿈이 덜 이루어진 건 아닐까. 다시 꿈꾸게 해준 이 작품에 무척 고맙다. 이러니까 내가 술 먹다가 사람들 얼굴 하나하나 보면서 자꾸 울 수밖에 없는 거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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