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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세자매'가 된 배우 문소리·김선영·장윤주를 만나다
김소미 사진 오계옥 2021-02-01

우리 사이? 서로의 재능을 계속 보고 싶은 사이

문소리, 김선영, 장윤주(왼쪽부터).

달라도 너무 다른 세 자매가 각자의 삶에 치여 바쁘게 살아간다. 돌아오는 아버지 생일에 곧 모일 예정인 전씨 자매들 사이엔 표피부터 선명하게 저마다의 불행이 새겨져 있지만, 영화가 주목하는 건 그 안에 가리워진 뜻 모를 그림자다. 유년 시절 한집에서 자라난 자매가 원가족의 뿌리를 벗어나 제각기 다른 삶으로 향할 때, 어느새 아득히 벌어진 생활상의 격차만큼이나 마음의 무덤은 깊이 패어가기 마련. <세자매>는 그 공동에 처박힌 소리 없는 말들이 어느덧 흘러넘치는 광경을 바라본다.

우리 주변에서 지금도 살고 있을 것만 같은 여성들, 희숙(김선영), 미연(문소리), 미옥(장윤주)을 연기한 세 배우 문소리, 김선영, 장윤주를 만났다. 외양에서 풍기는 분위기에서부터 진짜 자매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은근한 어울림을 풍기면서도 제각기 독보적인 개성을 잃지 않는 여자 셋의 아우라가 돈독한 수다 속에서 펼쳐졌다. 그들로부터 배우라는 직업의 타고난 천성, 그리고 기막힌 앙상블의 묘미를 실감했다. 조심스레 활기가 감돌기 시작한 새해 극장가의 돋보이는 한국영화 <세자매>는 서로 고르게 바통을 주고받는 여자들의 전력과 협심으로 힘차게 달리고 있다.

김선영

“언니가 해요! 난 언니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때 되면 나타나 돈 뜯어가는 남편, 마요네즈가 주식인 고스족 딸 앞에서 내내 기죽어 사는 <세자매>의 희숙은 자매들의 아픈 손가락이다. “내가 미안하다”는 말을 달고 살던 여자는 어느 날 암 선고를 받고서야 겨우 용기를 내 사는 게 ‘무섭다’고 말할 수 있게 된다. 이동은 감독의 <당신의 부탁>에서도 속세를 등진 사람의 기이한 홀연함으로 스크린의 순간을 채갔던 김선영은, <세자매>에서도 욕심내어 살기를 체념한 사람의 속없는 웃음, 비실한 무표정을 범상치 않게 재현한다.

캐스팅 당시 문소리에게 “더 잘 맞는 배우가 있다면 꼭 내가 첫째를 연기할 필요는 없다”고 조심성을 내보였던 김선영이지만, <세자매>를 보고 나면 어떤 대안도 그다지 떠올리고 싶지 않게 된다. 처량한 중년 여성의 클리셰는 온데간데없이 희숙은 김선영에 의해 대체 불가한 기운으로 그려진다.

문소리

“‘우린 뭘 만들 수 있을까? 우린 저기까진 아직 멀었나? 그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

성격이 곧 운명이라 했던가. 교양과 품위를 중시하고 완벽주의자적 면모를 갖춘 미연의 매일은 보이지 않지만 반드시 지켜야 할 어떤 선을 넘느라 아등바등 정신없다. “그거 다 자기가 선택한 거야”라고 맥없는 희숙을 힐난하면서도 시간 내어 큰언니와 밥 먹는 것 또한 그다. 신실한 신앙심의 소유자인 동시에 현실의 원리에 기민한 수완가인 미연에게서 기득권의 속물성도 넌지시 풍자된다. 인간의 평범함 혹은 애처로운 모순을 연기하는 문소리는 <여배우는 오늘도>에 이어 여전히 옳다. 드라마와 코미디의 이상야릇한 줄타기를 하면서 문소리는 관객에게 <세자매>라는 세계를 굳건히 믿게 만든다.

장윤주

“세 자매로서 사는 삶 자체를 살아왔기 때문에 내 안에 이미 잔뜩 묻어 있는 것들이 있었다.”

재능이 부족해 괴롭고 알코올중독은 이미 한창이다. 셋째 미옥에게 다행인 점이라면 언니들과 달리 유별난 순애보를 장착한 남편이 있다는 것뿐. 배우 장윤주가 과감히 탈색을 감행하고 시종 얼굴에 홍조를 띤 모습으로 구현한 미옥은 연극판에서 너무 오래 구르다 성격마저 망가진 예술가의 초상이다. 절망으로 한껏 괴팍해진 얼굴이 신선하고, 어느덧 다시 마음을 다잡는 부단한 노력에선 때 아닌 사랑스러움마저 묻어난다. <베테랑>에서 시원한 발차기를 날리던 장윤주가 필드에 등장한 의외의 에이스였다면, <세자매>의 장윤주는 이미 오래 함께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믿음직한 수비수다. 쇼 프로그램에서 각인된 화려한 에고 대신 연약한 살갗을 드러내는 장윤주의 모습이 무척 반갑다.

-세 사람, 어떻게 모였나.

문소리 김선영 배우와의 인연은 2018년 부산국제영화제에 내가 배우상 심사위원으로 참여해 <소통과 거짓말>을 보면서 시작됐다. 그해에 올해의 배우상을 장선 배우가 받았지만 시상 무대에 올라가서 내가 김선영 배우도 언급했었다. 그의 너무나 놀라운 연기가 고민과 질문을 던졌다고. 그때 독립영화의 밤 행사에서 우리 부부(장준환 감독)와 이승원 감독님, 김선영 배우 부부가 처음 만났다. 이후 이감독님이 나와 선영이가 함께할 수 있는 이야기를 구상 중이라 들었고 내가 “쓰는 게 어렵지 주는 게 어렵나요? 언제든 주세요”라고 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빨리 초고가 날아왔다. 그 행동력에 일단 놀랐지. 우리 남편은 몇년씩 걸리거든. (웃음) 감독님은 처음부터 내게 둘째 역할을 제안했고 첫째 역엔 김선영 배우를 염두에 둔 상태였다. 막내를 찾다가 장윤주 배우가 물망에 올랐는데, 나와 선영이 모두 띵~ 하고 감이 왔다. 완전히 다른 에너지를 우리에게 불어넣어줄 것 같은 느낌이었달까. 본인은 아무래도 선택이 망설여질 테니 셋이 다 같이 만나자고 제안했는데, 내심 막상 만난 뒤에 나와 선영이가 무서워서 안 한다고 하는 건 아닐까 걱정도 했었다. (웃음)

장윤주 <베테랑>으로 처음 영화에 출연했고 그 뒤 이런저런 작품들이 들어왔는데, 아직 스스로 연기에 대한 마음이나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계속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 시간들이 좀 길었다. 실제로 딸 셋 중 막내로 자라서 <세자매>에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지만, 언니들과 앙상블을 이뤄내야 하는 큰 역할이라 처음엔 자신이 없기도 했다. 고민이 많았던지라 언니들과 처음 만날 때부터 방송에서 뿜어내는 에너지를 흉내내지 않고 그냥 평소의 나답게 행동했다. 결국 작품을 고사하고 난 뒤엔 이상하게 마음이 너무 힘들더라. 그때 우연히 시사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아버지가 오랫동안 세자매를 폭행하는 내용을 보게 되면서 영향을 받았고, 친한 친구로부터 완전히 탈색한 머리로 캐릭터에 접근해보면 어떻겠냐는 조언을 들은 것도 큰 도움이 됐다. 거절한 지 3일 만에 소리 언니한테 전화해서 탈색하겠다고 했더니 언니는 “얘가 갑자기 뭔 소리야” 하고 웃었다.

김선영 처음 소리 언니에게 시나리오를 전달하고서 며칠 뒤 우연히 밤에 지나가다 만난 적이 있었다. 코로나19 전이었고, 그때는 서로 그렇게 친하지도 않았다. 차에서 내리는 언니를 보고 내가 달려가서 와락 안았다. “언니 저 좀 살려주세요” 하면서. 시나리오를 주고 아직 답을 못 들은 절묘한 타이밍이었는데, 언니가 “그래 우리 같이 좀 살아보자”라고 했다. 문소리 배우가 오케이를 안 했으면 시작되지 못했을 프로젝트다.

상처받은 이들을 향한 따뜻한 시선

-작품 속 캐릭터와 배우 사이에 괜히 연결 고리를 걸어보고 싶은 부류의 영화다. 이를테면 공동 프로듀서인 문소리 배우가 연기한 둘째 미연은 극중에서도 가족의 프로듀서 역할을 자처한 살뜰하고 시원스러운 인물이다. 얼마 전 홍보차 출연한 <아는 형님>에서는 김선영 배우가 크랭크업 후 회식 끝자락에 구구절절 장윤주 배우에게 예찬과 격려를 더한 뒤 그에 맞는 답사를 기대했으나 체력이 다한 장윤주 배우가 “언니 저 이제 가볼게요…”라고 대답했다는 에피소드가 압권이었다.

장윤주 하하하. 요새 만나는 사람마다 나에게 “윤주야! 나 이제 가볼게…”한다. 얼마 전에 염혜란 언니도 헤어질 때 “나 이제 가볼게” 하더라.

김선영 어머 내가 너한테 유행어 하나 만들어준 거야!

장윤주 너, 어쩌면 그럴 수가 있냐며 사람들에게 타박 듣는다니까 요새.

김선영 유행어 하나 더 있잖아. (문소리와 함께) “언니~ 어머어머어머!”(일동 웃음)

-세 자매의 가족 드라마라고 평범하게 수식하기엔 삶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들추는 이승원 감독의 세계가 한껏 날을 세운다. 김선영 배우는 이미 <소통과 거짓말> <해피뻐스데이> 등을 함께한 오랜 동지이지만, 이승원의 세계를 처음 경험한 두 배우는 어땠나.

문소리 이승원 감독의 전작들도 워낙 충격적으로 봤다. 감독님이 연극을 할때도 매번 가서 봤는데 정말 한결같은 스타일이 있다. 일부러 다듬어내지 않은 부분들이 래디컬하게 다가왔는데 이상하게 돌아서서 계속 생각이 나더라. 그 이유를 되짚어보니 작품 기저에 깔려 있는 생각이 굉장히 따뜻했다. 상처받은 사람들, 우리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소외받은 사람들에 대한 시선이 있고 그 힘이 마음에 남아서 나를 자꾸 건드리는 듯했다. <세자매>는 그런 바탕에서 자매 이야기를 한다고 하니까 이승원스러우면서도 사람들을 더 많이 껴안을 수 있겠다는 믿음이 생겼다. 우리끼리는 요르고스 란티모스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김선영 그게 누구였더라?

장윤주 <킬링 디어> <더 랍스터>….

김선영 아! 근데 닮았나? 잘 모르겠는데….

문소리 작품의 색깔은 다른데 과정이 비슷해 보인다. 기이한 초기작들을 거쳐서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에서는 드라마를 조금 더 쉽게 풀었잖아. 란티모스의 스타일은 살아 있으면서도 쉬운 구조의 이야기를 했을 때 또 다가오는 게 많았달까. 이승원 감독에게도 좀더 쉬운 이야기로 훨씬 감독님스러운 시도를 해볼 수 있지 않겠냐고 제안했고, 나도 그렇게 감독님을 도왔다. (김선영 보며) 어때? 나 <씨네21>스럽게 잘하고 있니?

김선영 좋아. 앞으로도 요 정도 유지해주세요. (웃음)

장윤주 처음에 나뿐 아니라 회사 사람들이 다 같이 이승원 감독님의 전작들을 챙겨 봤는데, 어떤 부분에서는 불편할 수 있겠다는 반응들이 나왔다. 나는 그래서 더 좋은 게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다 소리 언니에게 솔직하게 그런 반응들을 전했더니 언니가 프로듀서로서 내게 줄 수 있는 안심을 심어주고, 이 영화가 가고자 하는 방향성을 제시해줬다. 우리가 얼마만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될지, 그러면서도 가장 중요한 이승원 감독만의 컬러는 또 어떤 것이 될지에 대한 세심하고 정확한 가이드였다.

김선영 내 시선엔 전작들이 전혀 세지 않다. 그저 재미있다. 연극도 워낙 오래 함께한 사이인데 연극은 더 세다. 적나라한 나체, 욕, 섹스 신! 그런 것들이 불편하다고 느낀 적이 없다. 연극이나 영화나 늘 가슴 아플 뿐이다. 대개 한참 울면서 보고 있고. 그런 스타일을 굉장히 좋아한다.

문소리 내가 보기에는, 세상에서 김선영이 이승원의 색깔을 가장 좋아한다. 1부터 10까지 다 좋아하는 것 같아.

김선영 하하, 맞다. 아마 대한민국에서 이승원의 영화를 내가 가장 좋아할거다. 나는 이 사람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가정을 바라보는 방식은 말고 (일동 웃음)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무척 좋아한다.

장윤주 (멀찌감치 앉아서 대화를 지켜보고 있던 이승원 감독을 부르며) 감독님, 그냥 이리 와요.

문소리 아이참, 앞담화가 재미있네!

-세 배우의 조합 자체가 흥미롭기에 영화 후반부에 다 함께 부딪치는 대단원이 마련된 구조가 더욱 만족스러웠다. 연극 무대처럼 호흡이 긴 장면에 저마다 카타르시스나 어려움을 느꼈을 법하다.

김선영 개인적으로는 이런 장면을 아주아주 좋아한다. 내 마음 같아선 두시간 내내 이랬으면 좋겠어! (웃음)

문소리 그런 장면일수록 배우들의 동선, 카메라 모든 것의 합이 잘 맞아야 하고 여건도 잘 갖춰져 있어야 한다. 우리끼리 고민도 많이 하고, 리딩 상태에서는 아직 잘 안 나온다고 걱정하기도 했다. 현장에선 시간 여유가 그리 많지는 않아서 생각보다 테이크를 많이 못 갔는데 감독님이 흡족스러운 결과가 나왔다고 해서 다행이다.

김선영 언니가 특히 에너지를 많이 썼지. 실은 지금까지 한번도 말을 안 한게 있는데… 그 장면에서 문소리 배우가 앞에서 연기하는 동안 상대적으로 뒤편에 서 있는 내 시선에 보이는 것들이 있었는데, 눈물흘리며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장윤주 배우의 연기에서 정말 뛰어난 면모를 발견했다. 둘째에게 포커스가 가는 장면의 설정상 장윤주 배우의 연기가 온전히 다 담기지 못한 점이 아쉽다.

장윤주 정말? 나의 어떤 모습이 그렇게 좋았나. 더 더 자세히 듣고 싶다.

김선영 얘는 항상 이런다니까. 그만 물어봐. (웃음)

-<세자매>를 보고 나면 여러 군상의 여성들, 특히 가족관계로 얽힌 주변 여성들의 초상을 떠올리게 된다. 관찰이 연기의 중요한 과정이라면 배우들 각자에게 혹시 영감의 대상이 된 주변 여성들이 있었나.

문소리 난 미연 캐릭터를 준비하면서 교회도 따라다니고 찬송가도 연습하고 성가대 지휘도 배우는 등 할 수 있는 건 다 했지만 뭐랄까 핵심 고리가 안 잡히는 것 같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가끔 선영이가 자기 언니 이야길 할 때 자매가 없는 나는 그 느낌이 궁금했었다. 왠지 그 언니를 꼭 한번 만나봐야겠다는 촉이 들어서 선영이에게 소개해달라고 부탁했고, 그렇게 선진 언니를 초면에 만나서 우리 외할머니 이야기부터 온갖 가족사까지 다 털어놨다. 그분이 내게 열쇠가 되어주었다. 그 밖에도 엄마, 할머니, 고모 등 내 삶의 모든 여성들의 조각을 모으다보니 결국 나의 이야기라는 점도 깨달았다.

장윤주 딸 셋이 살다보면 첫째는 첫째대로 둘째는 둘째대로 막내는 막내대로 각자의 아픔과 사연이 있다. 영화에선 내가 연기한 미옥이 먼저 자기 감정을 터뜨리지만, 실제의 나는 가족을 조율하는 둘째 미연에 가까웠다. 세 자매로서 사는 삶 자체를 살아왔으니 영감 이상으로 내 안에 이미 잔뜩 묻어 있는 것들이 있었다.

김선영 인물을 캐리커처할 때 비주얼적인 영역에서 직접적인 아이디어를 얻는다. 인간의 내면이라는 것은 실은 모두가 공통의 분모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연기를 할 때는 바깥의 사람보다 내가 만든 상상 속 인물에 주력한다. 그 상상 속 인물을 만들어낸 내가 이미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부대끼며 살아온 사람이니까 그 안에 무언가가 담겨 있을 수밖에 없고.

문소리 김선영 배우는 첫 의상 피팅 때 이미 머리부터 발끝까지 정확하게 극중 인물이 되어 있다. 그 사람의 양말, 하다못해 팬티 색깔까지. 의상을 입는 순간 그냥 그 사람이 되어버릴 정도로 아주 꼼꼼하고 명확하게 컨셉을 연구해서 가지고 오는 배우다. 그것이 캐릭터의 출발이라고 하더라.

*본 기사는 <'세자매'가 된 배우 문소리·김선영·장윤주를 만나다 ②>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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