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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화의 충무로 클래식] 청년영화를 향한 임권택의 응답

<왕십리>

제작 우성사 / 감독 임권택 / 상영시간 105분 / 제작연도 1976년

윤애(전영선)에게 전차에 관해 얘기해주는 준태(신성일).

임권택의 60번째 영화 <왕십리>는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도, 한국영화 미학의 역사에 있어서도 주목해야 할 작품이다. 정성일 평론가는 임권택 감독과의 대담집에서 이 영화를 “작가영화의 신호탄”으로 규정하고 1970년대 중반 청년영화를 향한 임권택의 대구(對句)로 설명한다. 직관적이지만 예리한 분석이다. 현실적인 삶에 천착한 영화를 시도하며 “진정한 의미에서 데뷔작”이라고 생각한 <잡초>(1973)가 흥행에서 외면받은 후, 임권택은 영화진흥공사가 제작한 국책영화와 개봉관에서 상영 기회를 잡을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 장르영화를 만들며 1970년대를 버티고 있었다.

이때 청년 세대의 감독들은 새로운 한국영화를 만들겠다며 ‘영상시대’를 결성했고, 이장호가 <별들의 고향>(1974)을, 하길종이 <바보들의 행진>(1975)을 성공시키며 어둡고 혼탁한 시기를 돌파하고 있었다. 임권택 역시 본인이 하고 싶은 이야기와 이미지를 전하기 위해 끈질기게 영화를 만들었다. 그때까지의 임권택 영화와 1960년대 후반의 모더니즘영화, 1970년대 중반의 청년영화가 직조된 <왕십리>는 1980년대 뉴웨이브 영화의 단초까지 발견할 수 있는 풍부한 텍스트다.

1970년대의 임권택

이 영화가 1970년대라는 문화적 자장 속에 놓여 있는 것은 분명하다. 조해일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했고 정성조가 음악을 맡았으며 주제가는 최병걸이 불렀다. 임권택의 영화 세계로 청년영화의 기획 요소가 들어온 셈이다. 1975년 10월 시나리오 심의를 받을 때는 이원세 감독이 연출할 예정이었으나, 당시 심의 서류에 의하면 “보다 밝고 알찬 내용으로” 시나리오를 다시 쓰는 과정에서 임권택에게 기회가 왔다. 영화사로부터 왕십리라는 서울 변두리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를 의뢰받은 그는 이 영화가 꼭 하고 싶었다고 한다. 고향에 대한 이미지에 끌렸기 때문이다.

이듬해 구정 특선 프로였기 때문에 시나리오도 완성되지 않은 채 촬영에 들어갔지만 임권택 특유의 순발력으로 영화를 무사히 완성시켰다. 1976년 1월 수정한 시나리오 심의와 상영 허가를 연이어 받았고, 1월31일 국도극장에서 개봉했다. 완성된 영화는 범죄와 관련된 설정이 순화되고 희망적인 결말로 수정되었다. 이는 검열의 결과로 단정하기보다 임권택의 세계관 속에서 어떻게 의미를 만들어내는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영화는 활주로에 비행기가 내리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같은 방향으로 달리는 차창 밖 풍경이 오버랩되는데, 김포공항에서 왕십리로 가는 택시에 남자가 타고 있다. 그의 이름은 민준태(신성일)인데 14년 만에 고향에 돌아왔다. 그는 택시기사에게 전차가 보이지 않는다고 얘기하고, 기사는 전차가 없어진 지 10년은 되었다고 말한다. 서울의 노면전차가 운행을 중단한 것은 1968년 11월의 일이다. 그 전차를 담은 영화가 바로 <휴일>(감독 이만희, 1968)인데, 막차를 타고 원효로 종점에 내려 머리를 깎아야겠다고 되뇌는 허욱(신성일)의 모습이 마치 준태의 과거처럼 겹치는 이유다. 이 영화의 촬영은 <휴일>의 촬영기사 이석기가 맡았다.

준태는 왕십리의 작은 호텔에 여장을 푼 후 산책에 나선다. 그는 마치 외국에서 용병 생활을 하다 돌아온 것 같은 분위기인데, 이후 사사키(윤양하)가 찾아오면서 일본의 야쿠자 조직원임이 드러난다. 최병걸의 주제곡이 흐르며 뒤늦게 오프닝 크레딧 화면이 등장하는데, 왕십리의 이곳저곳을 찾아보는 그의 시선으로 애인이었던 정희(김영애)와 함께 지내던 회상 장면이 보인다. 초반부 영화는 반복적으로 영화 속 현재와 플래시백의 과거를 교차시킨다. <안개>(감독 김수용, 1967)의 그것과는 결이 다르지만, 준태의 과거를 설명하는 동시에 그의 현재적 감정을 실어낸다는 점에서 근사한 화법이다. 무엇보다 이 영화의 중요한 가치는 1975년 연말 왕십리의 풍경이 기록된 것이다.

변두리 삶에 건네는 위로

준태가 콘크리트 빌딩으로 자리를 옮긴 당구장으로 올라가는데 목조 계단을 올라가는 그의 운동화 신은 발이 말 그대로 플래시백(flashback) 된다. 당구장에 들어선 준태는 왕씨(최불암)와 해후한다. 그곳에서 일하던 정희와의 추억이 겹치면서 관객에게 그가 고향으로 돌아온 목적을 이해시킨다. 당구채를 잡은 준태는 왕씨로부터 어릴 적 친구들의 근황을 듣다 충근(백일섭)의 소식을 묻는다. 큐대를 잡은 준태의 클로즈업이 충근의 숏으로 바뀌고, 경쾌한 신시사이저 음악과 함께 충근이 준태에게 당구공을 던져 부상당하는 장면이 나온다. <바보들의 행진>이 대학생들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었다면 임권택의 영화에서는 그가 알고 있는 청년들의 모습으로 표현된다.

고향에 돌아온 준태는 두명의 여자를 만난다. 친구들과 회포를 풀고 돌아온 호텔 방에 호스티스 윤애(전영선)가 찾아온다. <별들의 고향>을 상기시키는 “선생님, 추워요. 꼭 안아주세요” 같은 윤애의 대사는 영화의 상업적인 지향을 드러낸다. 그녀는 자신을 룸펜이라고 소개하는 준태에게 호감을 느끼고 적극적으로 구애한다. 윤애와 준태가 등장하는 장면에서 흐르는 감각적인 테마곡 역시 당대성을 부여한다. 사실 준태는 유산상속 문제로 계모와 재판이 붙어 상속권을 포기한다는 의사로 한국을 떠났다. 그는 정희를 다시 만나기 위해 신문광고까지 내고, 충근이 찾아와 정희의 집에서 일하고 있다며 만남을 주선한다. 정희의 남편이 사업에 실패해 경제적으로 힘들다는 사정을 들은 준태는 충근을 따라 그녀가 사는 셋방에 가보는데, 이때 영화의 명장면이 등장한다. 비련의 여주인공인 줄 알았던 정희가 준태가 나가자마자 본모습으로 돌아온다. 이제 영화는 멜로드라마에서 변두리 서민들의 삶으로 급전환한다.

준태는 정희에게 집을 사주고, 충근과의 관계를 알고도 결혼까지 시킨다. 하지만 정희는 결혼식이 끝나자마자 도망가고 호텔 방으로 찾아와 준태의 돈을 훔쳐간다. 여의도 광장에서 준태의 돈을 두고 정희와 충근이 악다구니를 벌이는 모습은 <바보들의 행진>에서 병태와 영철이 달리던 동일한 공간을 다른 각도로 바라보게 한다. 정희를 떠나보낸 준태가 성동교 밑 윤애의 집으로 찾아가니, 그녀는 모친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윤애는 자신을 이해해주는 고향 남자와 선을 보러 간다고 하지만, 이내 준태에게 돌아와 그 남자는 아무것도 모른다며 다 얘기하겠다고 말한다. 소박한 사람들의 삶을 지지하는 감독의 낙관이 묻어나는 감동적인 순간이다.

<휴일>에서 찬란하게 빛나던 신성일의 얼굴에 매혹되었다면 이 영화에서 그의 얼굴도 꼭 확인하길 바란다. 고향에 남기로 한 준태가 살곶이다리에서 왕씨와 부둥켜 우는 듯 웃는 장면 역시 무척 아름답다. 국가가 아닌, 개인의 행복한 삶에 가치를 두는 임권택의 진심이 묻어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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