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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이 선물한 느긋함, <후아유>의 조승우
사진 오계옥김현정 2002-05-22

“오디션 운이 좋은가봐요”

이 남자, 독한 구석이라고는 없어 보인다. 곧잘 초승달 모양으로 웃는 눈매는 매운 눈물 한번 흘려보지 않았을 것처럼 맑기만 하고, 느긋하게 풀어놓는 지난 이야기에선 그늘 한 자락 찾아볼 수가 없다. “오디션 운이 좋은가봐요”라며 겸손한 척 귀엽게 자랑하는 조승우. 반짝거리는 외모로 뜬 반짝 스타도 아니면서 성큼성큼 굵직한 역할과 무대를 거쳐온 얄미운 케이스에 속하는 배우다. 그러나 아직 앳되기만 한 조승우가 느닷없이 추레한 이십대 후반으로 나타났을 때, 누가 그를 얄밉다고 할 수 있었을까. 무서워서 달아났다가 오기로 돌아온 조승우는 여유와 패기가 기묘하게 교차하는, 참 정감 가는 젊은이였던 것이다.

계원예고에 다니던 시절부터 잘 나갔던 것 같긴 하지만, 조승우는 “인생에 찾아오는 세번의 기회 중 첫 번째 기회”를 스무살 때 벌써 낚아챘다. 떨어질 것이 분명하다 확신하고선 삼촌 한복 빌려입고 나간 <춘향뎐> 오디션에 붙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났더니 덜컥 겁이 났다. “나는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칸영화제 레드 카펫을 밟았더니 막막해졌어요.” 그래서 몰래 뮤지컬 오디션을 봤더니 역시나 문제없이 통과했다. 시나리오가 맘에 들어 결정한 <와니와 준하>, 이도령이 어떻게 와니의 옛사랑을 연기하느냐는 제작사의 우려도 오디션으로 밀어붙여 깨뜨렸다.

<후아유>는 이렇게 잘 나갈 수가 없는 어린 청년이 드디어 겁을 먹게 된 영화였다. “최호 감독님은 ‘네가 했으면 좋겠다’고만 하셨어요. 그런데 시나리오를 보니까 이렇게 기복이 심한 역을 내가 어떻게 할까 싶더라구요. 오기로 선택한 영화예요.” <후아유>의 형태는 평소 몹시 뺀질대면서 속물 근성을 뿌리지만 알고보면 차분하게 귀기울여 상처를 감싸줄 줄 아는 젊은이. <와니와 준하>의 영민처럼 조용하게 집에만 틀어박혀 지내던 조승우에겐 가끔 벅찬 감정을 분출하기도 하는 인물이었다.

형태와 조승우가 닮은 점이 있다면 인생 건 일에 목숨도 거는 열정일 것이다. 예고에 다니던 누나의 공연을 보곤 10분 동안 눈물 흘리다 제 갈 길을 찾은 조승우는 같은 학교에 진학한 뒤 미친놈 소리 들어가면서 뮤지컬에 몰두했다. 가방에 책 한 권 넣지 않고 뮤지컬 CD만 잔뜩 챙겨 다녔고, 공연 준비에 돌입하면 거의 날마다 학교에서 먹고 자다시피했다. 아직도 뮤지컬이 좋은 조승우가 닮고 싶은 배우는 뜻밖에도 조용하게 도발하는 멜로영화 <비포 선라이즈>의 에단 호크다. “지루할 수도 있는 내용인데 배우의 연기가 영화를 너무 재미있게 살리더라구요.” <후아유>의 시사회 도중 조승우가 한마디 할 때마다 웃음을 터뜨렸던 관객이라면 두손 들어 그 소망을 응원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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