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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장애인 이동권의 현실: 장애인 없는 매끄러운 사회?
강혜민 2022-04-21

영화 <복지식당> 속 재기(조민상)는 장콜을 타지 못한다. 장애 5급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그는 장애 1급인 병호(임호준)에게 거듭 신세를 지게 된다. 영화의 마지막, 병호와 사이가 갈라지면서 더는 장콜을 탈 수 없게 된 재기는 전동휠체어를 타고 한겨울에 바닷바람을 맞으며 집으로 돌아간다.

2019년 7월 장애등급제가 폐지됐다고 하나 이는 절반만 진실이다. 1~6급으로 나뉜 장애등급제는 사라졌지만, 장애 정도가 심한 장애인(기존 1~3급)과 심하지 않은 장애인(4~6급)으로 이원화됐다. 그리고 여전히 ‘장애 정도가 심하지 않은 장애인’ 재기는 장콜을 탈 수 없다. 장애 정도가 심한 장애인 중 보행상 장애가 있는 사람만 장콜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휠체어 탄 사람은 이동권이 크게 제약된다. 대부분 버스에는 계단이 있어 휠체어 탄 사람은 탑승할 수 없다. 국토교통부는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에 따라 5년마다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이 계획에는 저상버스와 장콜 도입 계획 등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을 위한 내용이 담긴다. 3차 이동편의 증진계획(2017~2021년)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전국의 시내버스 10대 중 4대(42%)는 저상버스여야 했다.

하지만 2020년 기준, 전국 저상버스 보급률은 27.8%에 그친다. 재기가 사는 제주도의 저상버스 보급률은 전국 평균보다 살짝 높은 32.9%다. 10대 중 3대만 저상버스다. 그러나 모든 노선에 저상버스가 골고루 분포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특정 노선에만 몰려 있기도 해서 어느 노선에는 저상버스가 단 한대도 없다. 종종 통계는 현실을 가린다.

장콜, 얼마나 알고 있나요?

제주도엔 지하철도 없으니 휠체어 탄 장애인이 이동할 수 있는 수단은 장콜이 유일하다. 그런데 재기처럼 이용 대상이 아니라면? 사실상 이동할 방법이 없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처럼 전동휠체어로 차도를 휙휙 달리는 수밖에.

그래서 장콜은 비장애인의 콜택시와는 개념이 다르다. 장콜은 휠체어 탑승설비가 장착된 특별교통수단으로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에 명시된 이동수단이다. 장애인들에겐 대중교통과 같다. 이러한 이유로 서울의 경우, 장콜 요금은 대중교통 요금의 3배를 넘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이는 서울에 한정된 이야기다. 지자체에 운영이 떠맡겨진 장콜은 대부분 민간위탁으로 운영된다. 그로 인해 경기도 31개 시군의 경우, 31개 시군의 운영주체, 운행요금, 운행시간, 운행지역이 제각각이다.

장콜을 이용하려면 우선 해당 지자체에 장애인등록증과 신분증 등의 서류를 내고 이용자 등록을 해야 한다. 등록했다고 해서 필요할 때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특별교통수단은 장애 정도가 심한 장애인 150명당 1대를 법정대수로 정해놓고 있어 수요 대비 공급이 턱없이 부족하다. 법정대수를 채우지 못하는 지자체가 부지기수다. 한두 시간 걸리는 긴 대기시간도 문제지만 언제 올지 모른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이동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예측 가능성과 정확성인데 그 어떤 대중교통수단도 장애인에겐 예측 가능하지 않다. 내비게이션에 찍히는 분 단위의 시간은 장애인에겐 해당하지 않는다. 휠체어 이용자가 탈 수 있는 시외·고속버스가 없는 현실에서 장콜은 그나마 인근 거리의 시외간 이동을 할 수 있는 유일한 교통수단이다. 그러나 이 또한 지자체 재량에 맡겨져 있다. 경기도 이천시 장콜의 경우, 시외 운행은 병원진료와 장애인단체 방문만 가능하다. 즉, 장콜 예약 시 관련 서류를 제출해서 병원(혹은 장애인단체)에 간다는 것을 증명해야만 시외로 이동할 수 있다. 반면, 김포에 사는 장애인은 이천으로 장콜을 타고 한번에 갈 수 있다. 김포 장콜은 수도권 전역을 운행하기 때문이다. 그러자 수도권을 이동하려는 장애인들이 김포에 와서 환승하는 일이 잦아졌고, 그래서 김포시는 외지인들의 장콜 탑승을 막기도 했다.

장애인과 함께 살아가기

이렇게 쪼개진 이동권을 통합하고자 장애인들의 지난한 투쟁으로 지난해 12월31일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이 개정됐다. 그런데 개정안에서 광역이동지원센터에 대한 국비 지원이 ‘할 수 있다’로 통과됐다. 광역이동지원센터란 경기도 31개 시군의 장콜 운영을 통합하여 운영하는 곳이다. 지자체마다 다른 운영 기준으로 이동에 제약을 겪는 장애인 입장에선 반드시 필요한 지원이다. 그런데 국비 지원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안 해도 된다’는 말과 같다. 국비 지원이 보장되지 않으면 지자체가 운영비를 온전히 감당해야 하니 제대로 운영될 리 만무하다. 따라서 전장연은 보조금법 시행령을 개정하여 국가가 서울의 경우엔 절반을, 재정이 열악한 지방의 경우엔 70%를 광역이동지원센터 운영비로 지원하라고 요구 중이다.

이게 바로 2022년 장애인 이동권의 현실이며, 장애인들이 지난해 말부터 매일 아침 출근길 지하철 시위를 한 주된 이유 중 하나다. 이동할 수 있어야 학교에 가고 일도 할 수 있다. 달리 말하면, 장애인은 이동할 수 없어 학교에도 갈 수 없었고, 학교에 갈 수 없었으므로 노동도 할 수 없었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쓸모없는 존재가 된 장애인은 거주시설에 수용됐다. 그러므로 이동권에 대한 요구는 지역사회에서 살기 위한 모든 조건을 요구하는 목소리로 연결된다. 이것이 바로 현재 전장연이 말하는 ‘장애인권리예산’으로 기획재정부에 예산 보장을 촉구하고 있다.

사람들은 장애인을 차별하자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차별 없이 살기 위해 예산이 필요하다고 하면 꼭 지금이어야 하느냐고 묻는다. 그렇게 늘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김순석 열사가 ‘거리의 턱을 없애달라’는 유서를 남기고 죽은 지 38년, 이동권 투쟁이 시작된 2001년을 기준으로 2021년,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에 이동권이 명시된 지 17년이 흘렀다. 예산이 보장되지 않은 권리는 힘없는 선언에 불과하다.

권리가 유예된 사회에서 장애인이 보이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장애인이 없는 사회, 비장애인 중심으로 만들어진 사회에서 비장애인의 이동만은 늘 매끄러웠다. 그곳에 장애인이 나타나자 지하철이 멈추고 세상이 뒤집혔다. 욕설과 혐오가 온오프라인 경계 없이 폭우처럼 쏟아진다. 장애인들의 요구는 단순하다. “장애인도 지역사회에서 살고 싶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장애인과 비장애인간의 ‘관계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다. 동정과 시혜의 관계가 아닌, 동료 시민으로서의 ‘관계 맺기’가 가능할까.

영화 <복지식당>에서도 장애인은 장애인들끼리만 논다. 왜 장애인은 비장애인과 함께 놀 수 없는가. 남자와 여자가, 어린이와 노인이, 흑인과 백인이 왜 함께 살아야 하느냐고 묻지 않는다. 장애인도 마찬가지다. 함께 공부하고, 함께 일하고, 함께 놀자. 그래서 요즘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관계에 혐오를 쑤셔넣는 이준석의 정치는 매우 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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