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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프리드 히치콕 (Alfred Hitchcock)

1899-08-13

참여작품 평점평균

씨네217.3

/

네티즌7.9

기본정보

  • 원어명Alfred Hitchcock
  • 다른 이름알프레드 히치콕; 알프레드 히치코크
  • 직업감독
  • 생년월일1899-08-13
  • 사망1980-04-29
  • 성별

소개

# 대표작 <39계단> <영 앤 이노센트> <라이프 보트> <살인> <파괴 공작원> <마니> <찢어진 커튼> <너무 많이 알고 있는 사나이> <다이얼 M을 돌려라> <현기증>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사이코> <새> 등

앨프리드 히치콕은 영화역사에서 가장 먼저 등장한 스타감독일 것이다. 서스펜스 스릴러 장르의 거장으로 평가받는 히치콕은 처음에는 상업영화의 대가로서, 그리고 시간이 흐른 후에는 영화매체의 시청각적 본질을 가장 잘 이해하고 실천한 탁월한 형식주의자로 비평의 만신전에 들어섰다. 히치콕은 가장 상업적인 장르인 미스터리, 스릴러, 공포영화 장르에서 작업했지만 절묘한 기법으로 관객의 도덕 의식을 희롱하는 데 장기를 보였다. 히치콕의 영화를 본 관객은 마음을 교묘하게 조종하는 그의 솜씨에 눌려 허우적거리며 재미와 공포를 절반쯤 섞은 감정을 맛봐야 한다. 히치콕의 영화에는 언제나 히치콕다운 표식이 있다. 히치콕은 서스펜스영화를 만드는 법에 대해 수많은 효과적인 아이디어를 개발했다. 그중 한가지가 ‘맥거핀’(Macguffin)이다. 이건 관객이 줄거리 전개에 계속 헛다리를 짚게 만드는 히치콕의 속임수 장치를 가리키는 말이다.

소심하고 겁많았던 히치콕 소년이 관객과 비평가를 마음대로 쥐었다 놨다 하는 스릴러-공포 서스펜스영화의 거장이 됐다는 사실은 아무리 생각해도 재미있는 운명의 장난이다. 가톨릭계 학교에 다녔던 히치콕은 항상 어떤 나쁜 것에 관련되지는 않을까라는 소심한 생각에 질려 살았다. 어린 시절의 히치콕은 여행 지도, 오리엔트 특급열차의 정거장들, 뉴욕의 완전한 지형 등을 암기하는 것과 같은 혼자만의 게임을 즐겼으며 10대 후반부터 영국 런던에 지사를 둔 파라마운트 스튜디오에 취직하면서 영화일에 뛰어들었다. 거기서 그는 소도구, 편집, 각본 등의 일을 하며 차근차근 승진했다. 1925년에 첫 장편영화를 만들었고 <협박 Blackmail>(1929년) 때부터 영화감독의 재능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히치콕이 영국 시절에 만든 영화는 프세볼로트 푸도프킨의 몽타주와 프리드리히 무르나우의 카메라 움직임을 결합한 가장 모범적인 영화로 평가받았다. 히치콕의 영국영화에 주목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제작자 데이비드 O. 셀즈닉이 그를 할리우드에 불렀고, 1940년에 로렌스 올리비에와 조안 폰테인이 출연한 <레베카 Rebec-ca>의 감독으로 히치콕은 할리우드에 무사히 입성했다.

히치콕을 추앙했던 영화감독 프랑수아 트뤼포는 히치콕이 미국에서 만든 영화가 영국영화보다 강렬하고 성숙한 표식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사실 그의 대표작들은 다 미국 시절에 나왔다. <오명 Notorious>(1946) <의혹의 그림자 Shadow of a Doubt>(1943) <이창 Rear Win-dow>(1951) <현기증 Vertigo>(1958) <사이코 Psycho>(1960) <새 The Birds> (1962) 등은 히치콕의 대표작일 뿐만 아니라 할리우드영화의 대표작이고 현대영화의 대표작이기도 하다. <사이코>에서 관객은 처음에는 돈을 훔치고 도망을 치는 여주인공 마리온과 동화된 뒤에 마리온을 끔찍하게 살해하는 노만 베이츠에게 공감했다가 나중에는 마음속에 죽은 어머니의 영혼을 감추고 있는 노만의 또다른 자아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보는 사람을 당혹스럽게 만드는 히치콕의 이 복합적인 도덕적 감수성은 선과 악이 상호 연관되어 있어서 사실상 분리될 수 없다는 주장을 함축하고 있다.

50년대에 처음 프랑스영화잡지 <카이에 뒤 시네마>가 ‘예술가’ 히치콕을 발견한 이래 히치콕은 가장 널리 연구되는 영화감독으로 떠올랐다. 영국 출신의 영화평론가 로빈 우드의 지적처럼 히치콕은 가장 대중적인 화법인 서스펜스 스릴러 장르의 어법으로 동시대의 도덕적 무의식을 파고들면서 현대의 셰익스피어라 부를 만한 업적을 쌓았다. 특히 히치콕의 영화는 편집과 카메라 움직임만으로 함축적인 의미와 감정을 축적하는 기교의 대가라는 점에서 우드는 그의 영화를 ‘순수영화’(Pure Cinema)라 불렀다. 순수영화라는 말은 그럴듯했다. 히치콕 자신도 이 말을 자주 썼다. 그리고 그는 무엇보다도 자신이 시각적인 인간이라는 점을 강조하려 애썼다. “나는 문어체에 관심이 없습니다. 내 생각은 철저히 시각적입니다. 도시의 거리나 교외를 묘사한 글을 읽을 때면 조바심이 나서 참을 수가 없어요. 나 같으면 카메라로 그것을 보여주겠습니다.”

살인을 즐길 만한 것으로 보는 히치콕의 부조리한 유머 정신이 인간조건에 물음을 던지는 형이상학적인 것인지, 자본주의와 냉전 시대와 가부장 체제의 잘 만들어진 부산물인지를 따지기 위한 갑론을박은 늘 있었다. 그러나 히치콕은 이런 현상에 개의치 않았다. “어떤 영화들은 인생의 조각이라고 하지만 내 영화들은 케이크의 한 조각이다.”

그외 주요 작품: <살인 Murder>(1930) <나는 비밀을 안다 The Man Who Knew Too Much>(1934) <39계단 The 39 Steps>(1935) <사보타주 Sabotage>(1936) <영 앤 이노센트 Young and Innocent>(1937) <사라진 여인 The Lady Vanishes>(1938) <해외특파원 Foreign Correspondent>(1940) <서스피션 Suspicion>(1941) <파괴공작원 Saboteur> (1942) <라이프보트 Lifeboat>(1944) <스펠바운드 Speell bound>(1945) <로프 Rope> (1948) <열차의 이방인 Strangers on a Train>(1951) <다이얼 M을 돌려라 Dial M for Murder>(1954) <나는 비밀을 안다>(1956, 리메이크)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North by Northwest>(1959) <마니 Marnie>(1964) <톤 커튼 Torn Curtain>(1966) <토파즈 Topaz> (1969) <프렌지 Frenzy>(1972).

[씨네21 영화감독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