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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

Ray Ray

2004 미국 15세 관람가

드라마 상영시간 : 152분

개봉일 : 2005-02-25 누적관객 : 250,900명

감독 : 테일러 핵포드

출연 : 제이미 폭스(레이 찰스) 케리 워싱턴(델라 베아 로빈슨) more

  • 씨네216.50
  • 네티즌8.29

나는 음악을 통해 모든 세상을 볼 수 있었다!

그의 음성엔 영혼이 담겨있고, 그 영혼은 모두의 가슴을 울렸다.

흑인 소년 레이는 시력이 급격히 나빠져서 7살 때부터 앞이 보이지 않는 시각 장애인이다. 그러나 아들이 혼자의 힘으로 당당히 살아갈 수 있기를 원했던 어머니 아레사의 엄한 교육 덕분으로 세상에 맞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창문 밖 벌새의 날개짓 소리까지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타고난 청각과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발판으로 흑인 장애인이 받아야만 했던 모든 편견을 물리치고 가수로서의 삶을 시작한 레이. 가스펠과 블루스를 접목시킨 새로운 노래로 젊은이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끈다.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가장 좋아하는 음악장르가 가스펠이라는 말 때문에 만나게 된 목사의 딸 델라와 결혼까지 하지만, 자유분방한 성격 탓에 밴드의 코러스인 마지와도 애인 관계를 만든다.

세상의 편견과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은 불멸의 거장

발매하는 음반마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음악인으로서 성공하지만, 6살 어린 나이에 목격한 동생의 죽음이 환영처럼 따라다니고, 앞이 보이지 않는 데서 오는 암흑 속의 공포, 철저히 혼자라는 지독한 외로움은 그를 마약의 세계로 빠져들게 만든다. 델라의 간곡한 부탁에도 불구하고 점점 마약의 늪에서 헤어나올 수 없게 된 그는 최고 유명인의 자리에서 검찰에 검거되는 파문을 일으킨다. 그러나 마약에 한 번 손을 댄 이상 도저히 그만 둘 수 없었고, 평생을 지키겠노라 약속했던 가정마저도 위태로워질 뿐. 하지만 자신의 영향으로 마약에 빠져든 마지의 죽음 소식을 접하게 된 레이는 지금껏 자신을 지탱하게 했던 음악마저 송두리째 빼앗길 수 있다는 위기를 느끼고 재활의 의지를 불태운다.

그리고 마침내...

흑인으로, 그것도 시각장애인으로 당당히 세상의 편견과 맞서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은 레이. 그가 바로 전 세계인들의 가슴속에 살아 있는, 영혼의 음성 레이 찰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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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별점 (4명참여)

  • 6
    이성욱그의 빼어난 음악은 마약의 조력 덕택이었을까, 아니었을까
  • 6
    박평식몸 전체를 악보로 만들어 리듬을 조절한 제이미 폭스
  • 7
    임범노래는 별 넷, 삶의 재해석은 셋, 그래서…
  • 7
    황진미인종, 장애 문제엔 예민한 귀와 촉수. 성차 문제엔 장님
제작 노트
Prologue
영화 [레이]는 2004년 6월 74세로 생을 마감한 전설적인 음악가 레이 찰스의 극적인 삶을 그린 드라마이다.
레이 찰스는 6살 때 동생의 죽음을 목격하고 7살에 시력을 잃었지만 육체적인 장애 때문에 정신적인 장애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마음가짐으로 장애를 딛고 일어섰다. 그는 모든 장르를 넘나 드는 새롭고 풍부한 음악을 선사하며 전 세계인의 가슴 속에 영원한 우상으로 남아있다.
영화 제작에 직접 참여했던 레이 찰스는 자신의 인생을 영화화함에 있어 보탬도 거짓도 없는 진실 그대로를 담아 달라고 감독 테일러 핵포드에게 부탁했다고 한다. 그는 미처 영화가 완성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지만, 영화 [레이]는 그의 뜻을 기리는 진솔한 드라마로 탄생하게 되었다.
이제, 이 영화에서 모든 장애와 인종적 편견을 극복하고 세상에 우뚝 선 레이 찰스의 위대한 음악뿐 아니라, 인생에서 그가 겪었던 슬픔과 절망 그리고 환희와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전설적인 음악가 레이 찰스의 생애를 그린 뜨거운 감동 드라마

영감 넘치는 천재 음악가 레이 찰스의 인생을 그린 영화 [레이]는 시작부터 끝까지 진한 감동으로 충만하다. 7살 때 시력을 잃으면서 암흑 속에 갇히게 되지만, 더욱 민감해진 청각에 의지해 꿋꿋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모습이 과장 없이 진실하게 펼쳐지며 보는 이들의 가슴을 울린다. 레이 찰스의 인생은 환상적인 여정이자 뜨거운 감동의 결정체라고 말한 테일러 핵포드 감독은 영화 [레이]를 통해 한 위대한 음악가의 생애를 있는 그대로 보여 주고자 했다. 그의 비상한 천재성과 대단한 용기는 물론, 시각장애라는 처절한 비극과 그를 항상 괴롭혔던 동생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 그리고 창조의 고통 등을 그대로 표현해낸 것이다.
레이 찰스는 사망하기 몇 달 전, 한 인터뷰에서 영화 [레이]에 대해 만족감을 표시했다. “테일러 핵포드 감독은 잘 해냈다. 나의 인생을 매우 잘 묘사했다. 이 작품을 통해 관객들이 나의 유년 시절부터 성공할 때까지의 모든 시련과 고뇌를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란다. 대단한 시련도 많았지만 기쁨과 행복도 수없이 많았던 나의 일생을 통해 어떠한 역경이 닥쳐도 좌절하지 않는다면 결국 모든 시련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진심으로 전하고 싶다. 그리고 아직 꿈이 있다면 절대 포기하지 말고 계속해서 자신의 꿈을 향해 달려가라고 말하고 싶다.” 이렇게 레이 찰스는 삶에 대한 열정과 강인한 의지를 갖고 자신의 숨결이 다 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치열하게 살아왔기 때문에, 그의 인생은 뜨거운 감동 드라마로 탄생할 수 있었다.

영화 속에 깃들어 있는 레이 찰스 영혼의 숨결

전설적인 음악가 레이 찰스의 인생을 그린 영화 [레이]에서 레이 찰스의 음악은 영화의 에센스로 작용한다. 영화 전체를 통해 무려 40곡이 사용되었고, 그 노래의 가사 자체가 관객들에게 레이 찰스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따라서 관객들은 영화 속에 삽입된 모든 음악들을 통해 레이 찰스가 인생에서 겪는 고난과 역경 그리고 행복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또한, 그의 초기 음악을 영화 속에서 되살려내기 위해 레이 찰스의 백 코러스 역할을 했던 뉴올리언즈 뮤지션들이 적극적으로 영화 음악에 참여해 한층 완성도 높은 영화음악을 선사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기적 같은 일은, 영화 속 음악을 위해 생전의 레이 찰스가 직접 음악 작업에 참여했다는 사실이다. 음악 감독 커트 소벨은 레이 찰스와 함께 작업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사건이었으며, 꿈이 실현된 것 같아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레이 찰스라는 거장이 어떻게 일하는지 옆에서 지켜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어 매우 운이 좋았다고 말했다. 녹음 작업을 할 때 레이 찰스가 스튜디오에서 어떤 노래든지 잠깐 듣기만 하면 곧바로 피아노로 연주해내 제작진이 새삼 그의 천재성에 감탄하기도 했다.
영화 음악이 완성된 후 주인공인 제이미 폭스는 레이 찰스의 강렬한 노래 스타일을 립싱크했다. 배우로서 제이미 폭스의 음악적 재능은 놀라울 만한 수준이었지만, 레이 찰스의 노래는 너무나 탁월하고 독특해 어느 누구도 모방이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이 모든 과정을 거쳐 완벽하게 되살아난 거장의 음악은 영화 곳곳에 깃든 레이 찰스의 숨결을 느끼게 한다.

레이 찰스로 되살아난 제이미 폭스의 완벽한 연기

15년에 걸쳐 진행된 영화 [레이]의 제작 준비 작업이 막바지에 이를 무렵, 제작진은 과연 이 전설적인 음악가 레이 찰스를 누가 연기할 수 있을 것인가 고민하고 있었다. 테일러 핵포드 감독과 제작자 스튜어트 벤자민은 [알리]와 [애니 기븐 선데이]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인 제이미 폭스에게 가능성을 발견하고 그에게 배역을 제안했다. 어느 누가 레이 찰스를 연기하든 그의 타고난 음악적 재능을 표현해야 하기 때문에, 연기력뿐만 아니라 음악에 대한 기본적인 감각과 자질은 필수적이었고 이런 점에서 제이미 폭스는 완벽한 배우였다. 그는 레이 찰스처럼 세 살 때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고, 피아노 특기생으로 장학금을 받고 대학에 입학했기 때문에 훌륭한 음악적 감각과 피아노 실력을 겸비하고 있었던 것. 또한 제이미 폭스는 레이 찰스와 직접 만나 함께 피아노를 연주하는 마지막 테스트까지 능숙하게 통과하여, 레이 찰스 자신도 캐스팅에 매우 만족했다고 한다.
주연으로 확정된 제이미 폭스는 연기를 위하여 모든 것을 던졌다. 레이 찰스를 만나면서 그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할 수 있는 독특한 몸동작을 익혀나갔으며, 레이 찰스가 피아노를 치는 건반 위의 손동작이 녹화된 테이프를 보면서 세밀하게 연구했다. 또한 음악에 관한 감각을 익히기 위해 소울, 재즈 그리고 블루스 등을 음악 학교에서 공부하고, 시각장애를 경험하기 위해 하루에 12시간씩 자신의 눈을 인공 눈꺼풀로 봉한 채 리허설에 임하는 등 각고의 노력을 다했다. 이러한 피나는 노력을 통해 제이미 폭스는 레이 찰스 자신도 놀랄 만큼 신들린 듯한 연기를 해냈다. 이는 단순히 레이 찰스의 겉을 모방하는 것을 넘어서 내면의 영혼을 포착하여 보여주려고 노력했기 때문이었다. 제이미 폭스는 레이 찰스로부터 세상을 떠나기 전 한 인터뷰를 통해 정말 대단한 배우라는 격찬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배우로선 처음으로 2005년 골든 글로브 3개 부문에 동시에 노미네이트되는 쾌거를 거두며, 유력한 수상후보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15년 간의 준비 기간을 통해 탄생한 살아있는 전설

테일러 핵포드 감독은 레이 찰스의 I’ve Got a Woman을 듣자마자 노래 속에 불같이 타오르는 정열에 깊은 영감을 받았고, 그 이후로 레이 찰스가 미국의 대중 문화를 대표하는 음악인으로 성장해가는 것을 지켜보며 영화화를 준비했다. 레이 찰스의 인생에는 훌륭한 음악뿐만 아니라 성공 뒤에 숨겨진 영혼의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테일러 핵포드 감독은 시각장애라는 비극과 약물중독, 인종차별이라는 편견 등에 맞서 이 모든 시련을 이겨 내고 천재적인 음악가로서 인생에서 승리하는 과정은 전 세계인들의 가슴을 뒤흔들 수 있는 감동적인 이야기가 될 수 있다고 확신했다.
레이 찰스를 영화화 하기 위해 1987년 처음으로 레이 찰스를 만난 테일러 핵포드 감독은 이후 15년 동안 영화를 준비하면서 그에게 매우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제작과정 동안 적극적인 협조를 아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의 모든 것이 거짓이나 과장 없이 그대로 보여지길 원했기 때문. 리치 발렌스의 삶을 다룬 음악영화 [라밤바]를 제작, 음악인들의 전기를 어떻게 영화화하는지 잘 아는 테일러 핵포드 감독은 레이 찰스의 천재적인 음악적 재능과 인생 역경, 그리고 그의 인간적인 매력과 카리스마까지 완벽하게 이해하며 15년이라는 오랜 기간동안 준비한 결과, 세대와 인종을 초월한 심도 깊은 드라마로 탄생시켰다. 아쉽게도 레이 찰스 자신은 영화가 완성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인생은 살아있는 전설이 되어 전 세계인의 가슴속에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Special Edition_01 : 레이 찰스의 음악

영화 [레이]에 담긴 레이 찰스의 노래

레이 찰스가 누구인가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영혼을 울리는 그의 음악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감독 테일러 핵포드가 그의 인생을 영화로 만들려는 결심을 하게 된 가장 큰 동기도 바로 레이 찰스의 음악의 힘이었다. 감독은 영화의 스토리에 맞춰 레이 찰스의 노래 중 주요한 12곡을 사용했는데, 이는 영화에 리듬을 부여할 뿐 아니라 그 노래를 만들었을 때 혹은 연주할 때의 레이 찰스의 심리 상태를 잘 나타내고 있다. 영화 속에 삽입된 레이 찰스의 명곡들을 통해, 관객들은 대사로 이해할 수 있는 것 이상의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I’VE GOT A WOMAN ♪
가스펠에 R&B를 혼합하여 음악사의 새로운 장을 열었으며 소울(Soul)이라는 형태의 음악을 탄생시킨 노래다. 1955년 R&B 인기 차트 1위에 올라갔을 때 엘비스 프레슬리의 관심을 받기도 하였다. 더불어 신성한 가스펠의 리듬을 이용해 성적 욕망을 노래했다는 이유로 신성모독이라는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 DROWN IN MY OWN TEARS ♪

1956년 최고의 히트곡으로, 원래 가수 룰라 리드를 위하여 헨리 글로버가 작곡한 음악이다. 이 노래는 영혼을 뒤흔드는 다운비트의 형식으로 가슴을 쥐어짜는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발라드의 고전이다.

♬ WHAT’D I SAY ♪
많은 사람들이 레이 찰스의 대표작으로 기억하는 1959년 히트곡이다. 이 노래는 최초로 관능적인 스타일을 시도했는데 레이 찰스가 노래를 리드하면 여성 백코러스들이 교태스러운 허밍으로 답하는 방식으로 노래를 진행했고, 레이 찰스가 전자 피아노 연주를 시도한 곡이기도 하다. 당시 관능적인 음악성 때문에 라디오에서는 방송이 금지되기도 했지만, 2003년 미국 국회 도서관에서는 미국 음악 레코드 역사상 가장 중요한 노래 중의 하나로 선정하여 보관 중이다.

♬ GEORGIA ON MY MIND ♪

그의 전체 작품 중 팝 레코드 부문에서 처음으로 1위를 차지한 노래이며, 후에 조지아 주의 공식 주 노래로 선정되었다. 이 곡은 그동안 레이렛이라고 불리우는 달콤하고 순수한 음색의 여성 백보컬들 대신, 합창단과 관현악 오케스트라를 사용해 레이 찰스의 새로운 연출력을 보여주었다.

♬ HIT THE ROAD JACK ♪

1961년 인기 차트에 1위를 차지하면서 대단한 성공을 거둔 노래로 그의 백 코러스들 중 레이에게 제발 떠나달라는 가사를 애원하듯 노래했던 마지 헨드릭스를 세상에 알리게 된 작품이기도 하다.

♬ UNCHAIN MY HEART ♪

짝사랑하는 마음을 알아달라고 간절히 애원하는 남자의 마음을 노래한 펑키 풍의 정열적인 노래. 레이 찰스의 풍부한 감정이 살아있으며, 라틴리듬과 3명의 여성 백코러스의 완벽한 하모니가 돋보이는 곡이다.

♬ I CAN’T STOP LOVING YOU ♪

전통 컨트리 음악에 레이 찰스의 정열적인 음색을 가미해 새롭게 창조한 곡. 10주 연속 빌보드 R&B 차트 상위권에 오르면서 당시로서는 기록적인 100만장의 앨범 판매고를 기록했다.

Special Edition_02 : 레이 찰스의 삶

전 세계인들의 영혼을 울린 불멸의 신화 레이 찰스의 음악 인생

미국음악 역사상 소울(Soul)의 탄생은 195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젊은 신예였던 레이 찰스의 노래로 아틀란틱 레코드사에서 제작한 싱글 음반 I’ve Got a Woman이 소울의 시초라고 할 수 있다. 이 노래는 가스펠에 블루스를 접목하여 섹시하고 신비로우면서도 부드럽고 경쾌한 곡으로 탄생시켰는데, 가스펠을 변형시켜 가요 가사를 붙이는 것은 당시에 금기시되었던 것으로 사회적으로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 곡은 듣는 이들에게 심장이 뛰는 듯한 느낌을 주며 한번 들으면 결코 잊을 수 없는 곡이었기 때문에, 세상을 뒤흔들어 놓을 정도로 큰 반응을 일으켰다. 이러한 독특한 음악은 당시 젊은이들이 처음 접하는 것으로, 엄청난 인기를 끌면서 새로운 미국 문화가 창조되는 시기로 이어져 로큰롤의 지평선을 열었다.
그 탁월한 음악성만큼이나 전설적인 인물인 레이 찰스는 소울의 천재라는 음반을 녹음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레이 찰스는 과연 어떤 사람인가? 전세계인들은 미국의 독보적인 음악 스타일인 재즈에서 컨트리 음악 모두를 총망라하면서 새롭게 재창조한 레이 찰스의 음악을 사랑하면서도, 소울의 천재라는 칭호를 얻을 때까지 그가 걸어왔던 힘든 여정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레이 찰스는 뛰어난 음악가였을 뿐 아니라 사업적인 수완도 있어서 자신의 음악과 앨범에 대한 모든 일에 있어 자신이 주체가 되어 결정권을 행사하는 사업 실력을 발휘했다. 이는 당시 어떤 음악가도 시도하지 못했던 것으로, 이후 모든 음악가들이 그 전철을 밟도록 길을 열어준 선구자의 역할을 했다.
레이 찰스는 동적이면서도 정적이고, 시골사람 같은 단순함과 도시인의 교활함을 지닌 복잡미묘한 성격이었으며, 이분법적이면서도 모순된 캐릭터를 지닌 독특한 미국인이었다. 그는 사람들 간의 차별이나 편견, 그리고 어떠한 형태의 장애도 거부했기 때문에, 그의 노래는 장르를 초월해 미국의 원조 음악 장르들을 폭 넓게 아우를 수 있었으며, 더욱 역동성과 감흥을 주는 독창적인 음악을 만들기 위해 가스펠과 컨트리, R&B 그리고 재즈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렸다.
이렇게 음악 장르간의 경계를 파괴함으로써, 그의 음악은 듣는 이들로 하여금 춤을 추면서도 가슴 시린 느낌을 갖게 하며, 깊은 외로움에 빠지게 하면서도 즐거운 감흥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며, 또는 이 모든 감정들을 동시에 모두 느낄 수 있게 하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레이 찰스, 그의 인생도 이와 마찬가지였다. 많은 고통과 슬픔 그리고 시련으로 가득했지만 그러면서 동시에 최고의 명예, 세상의 모든 행복과 기쁨을 누리면서 이 모든 고난으로부터 구원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미국 최대의 공황 시기였던 1930년 9월 23일 조지아 주 알바니의 아주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레이 찰스 로빈슨(Ray Charles Robinson)은 어릴적부터 음악과 사랑에 빠진다. 그는 침례교회에서 주로 불리던 화답식 찬송가를 접했으며, 다섯 살도 되기 전에 동네 블루스 음악가에게 피아노를 배우게 되었다. 이 때 그의 인생을 바꾸어 놓은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난다. 동생 조지가 물통 속에 빠져 익사하는 것을 직접 목격한 것. 동생을 구하지 못했다는 것 때문에 이 사건은 평생 그를 죄책감에 시달리게 한다. 레이 찰스는 이 사건을 목격한 지 1년 뒤부터 녹내장을 앓기 시작하면서 점점 시력을 잃게 된다. 결국 7살 때 완전히 시력을 잃은 레이 찰스는 강인하고 헌신적인 어머니의 교육과 훈련으로 스스로 일어서는 방법을 배운다. 이로써 미세한 소리의 움직임까지도 느낄 수 있을 만큼 발달한 청각을 지니게 되고, 지팡이나 맹도견 없이 오직 자신의 예민한 청력을 이용해 세상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시각장애인으로서 삶에 접근하는 자신만의 방법을 발견했던 것이다. 레이 찰스에게 있어서 인생을 통해 음악은 그를 지탱하는 유일한 힘이었다. 그래서 자신의 책 [Brother Ray]에서 음악은 나와 함께 탄생했고 세상에서 내가 알고 있는 유일한 설명이라는 말을 남겼다.
레이 찰스의 어머니는 그에게 좀더 낳은 미래를 열어주기 위해 집에서 160마일이나 떨어진 세인트 오거스틴(St. Augustine)의 맹인 주립학교로 유학을 보낸다. 그는 이 학교에서 악보 읽는 법과 몇 가지 악기를 다루는 법을 익히면서, 동네 사람들이 즐기는 재즈, 스윙, 가스펠, 블루스 그리고 컨트리 음악에 심취하게 된다. 이렇게 맹인학교에 적응하는 동안 그를 이 세상에서 혼자 살아갈 수 있게 만들어준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다. 어머니가 항상 그에게 말했던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말고 자기 힘으로 일어나라는 강한 메시지에 따라 그는 곧바로 음악계에 발을 들여놓는다. 청소년 시절에 플로리다 북부의 클럽과 연회장, 그리고 라이브 바에서 일하면서 다양한 장르의 음악과 접하고, Country & Western Band, The Florida Playboys와 함께 연주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시각장애인으로서의 삶은 쉽지 않았다. 더욱이 거친 유흥업소에서의 일은 더욱 힘들었지만 그는 잘 적응하면서 빠르게 성장했다.
17세가 되던 해인 1948년 3월, 당시에 유행하던 냇 킹 콜과 찰스 브라운의 노래를 부르는 가수이자 피아노 연주자로 일하기 위해 혈혈단신으로 시애틀 행 그레이하운드 버스에 몸을 싣는다. 그곳에서 노래하면서 스윙타임 레코드사(Swingtime Records)의 잭 로더데일과 레코드 제작 계약을 맺는 기회를 얻으면서 성공에 이르는 첫 걸음을 내딛게 되었다. 1949년 그는 스윙타임 레코드사에서 첫번째 싱글 앨범을 세상에 내놓는다. 잭 로더데일은 레이 찰스를 R&B 기타리스트인 로웰 풀슨의 순회공연에 동행하게 했다. 하지만 레이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음악을 만들기 위해 계속 노력하고 있었다. 그러한 혼자만의 노력은 아주 외롭고 힘든 여정이었다. 그는 풀슨 밴드에서도 재능을 인정 받았지만 순회공연으로 많은 시간을 혼자 보내면서 창조의 고통과 외로움을 잊기 위해 헤로인이라는 해로운 벗을 만나게 된다.
그가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된것은 1950년 새로운 목소리를 찾고 있던 아멧 에트건과 제리 웩슬러가 운영하는 아틀란틱 레코드사(Atlantic Records)와 계약을 하면서부터 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전설적인 루스 브라운의 Miss Rhythm을 연주하면서 다시 순회공연을 시작한다. 이어 레이 찰스는 교회 성가인 가스펠을 대중음악인 블루스와 함께 접목시켜 신성모독이라는 교회의 비난을 받으면서 당시에 대단한 논란을 일으켰다. 그 결과 대중들의 엄청난 반응을 불러 일으켰지만 당시 라디오 방송이 금지되는 시련을 겪었다.
논란 여부와 관계없이 그의 음악의 힘은 실로 막강해서 그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영혼을 뒤흔드는 듯한 감흥이 일어났다. 또한 그 당시 흑인 가수들의 앨범이 나오면 흑인 레코드라는 문구를 사용할 정도였지만, 레이 찰스의 음악은 인종과 장르를 초월하여 어느 한쪽의 음악이 아닌 흑인과 백인 모두를 아우르는 넓은 팬들을 갖게 되었다. 오늘까지 대중들에게 레이 찰스라고 알려진 그의 이름은 인기 권투 선수인 슈가 레이 로빈슨(Sugar Ray Robinson)과 혼동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로빈슨이라는 성을 없애버렸기 때문이다. 1956년 블루스와 가스펠을 혼합한 I’ve Got a Woman이 성공을 거둔 후 이어서 What’d I Say, Drown in My Own Tears, Unchain My Heart 그리고 Hit the Road Jack 등도 연속적으로 히트하였고, 레이 찰스는 이미 20세 초반에 연속적인 성공과 그만의 독특한 음악세계를 구축하며 당시에 듣기 어려운 소울의 천재라는 칭호를 듣게 된다.
1959년, 그는 헌신적으로 일했던 아틀란틱 레코드사를 떠나 ABC 파라마운트사(ABC-Paramount)로 이적한다. 모든 사업관계에 있어 레이 찰스 자신이 주체로서 선곡에 관여하며 재정관리를 할 수 있는 재정권을 받아냄으로써 당시로서는 매우 획기적인 계약을 체결했다. 또한 180도 다른 음악을 선보이기 위해 컨트리 & 웨스턴 음악을 독창적으로 재편성해, 현재까지도 널리 사랑받는 주옥 같은 고전 Georgia on My Mind, I Can’t Stop Loving You, Born To Lose 그리고 Busted 등의 명곡들을 세상에 내놓는다. 이 곡들을 통해 인기가 정절에 이르며 레이 찰스는 그의 음악경력에 있어 황금기를 만나게 된다. 1966년 라이프 매거진의 토마스 톰슨은 이렇게 말했다. “레이 찰스를 최고의 브루스 가수라 말할 수 있을까? 물론이다. 하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다. 그는 어느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컨트리 & 웨스턴, 가스펠, 그리고 재즈 가수이기도 하다. 레이 찰스는 모든 음악장르의 작은 시냇물들을 끌어들여 자신 혼자 마음대로 항해할 수 있는 강을 만드는 독보적인 존재이다.”
이렇게 치솟는 인기와 함께 그는 1960년에 시민운동가로서도 활동한다. 1950년은 주로 순회공연을 했던 시기로, 자신을 포함한 많은 흑인 음악가와 관객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아왔지만 어쩔 수 없이 이러한 인종 차별을 지켜보아야만 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1960년, 그는 인종 차별 때문에 백인과 흑인의 좌석이 구분되어야 하는 클럽이나 호텔에서는 과감하게 공연을 취소하는 용기 있는 행동을 보여준 최초의 음악가가 되었다. 그러나 이 행동으로 그는 재정적으로 큰 손해를 보았으며, 그가 공연을 취소했던 조지아주는 그의 행동에 분개하여 조지아주에서 평생토록 노래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금지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그러나 1977년 조지아주는 레이 찰스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했고 Georgia on My Mind를 조지아주의 공식 노래로 선포했다.)
1960년, 레이 찰스는 음악 인생의 황금기이자 인생에서 큰 혼돈을 겪은 시간이기도 했다. 계속되는 여자 문제로 가정생활도 흔들리기 시작했고, 1965년에는 몬트리올에서 보스턴으로 가는 도중 약물소지로 검거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계기로 그는 약물 중독이 자신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음악 인생을 송두리째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20년간 의지해온 마약을 끊기 위해 자발적으로 재활원에 들어간다. 레이 찰스에게 있어서 음악은 인생의 전부였기 때문에 약물 중독을 이기는 엄청난 고통을 이겨낼 수 있었고, 그 이후에 마약에 손대는 일은 결코 없었다. 약물 중독을 완전히 극복한 후 그는 활발한 음악 활동을 계속했다. 1970년에는 불후의 명작 America the Beautiful을 멋지게 다시 편곡해 그의 조국에 강렬하고 인상적인 애국가를 선사하기도 했다.
평생 동안 레이 찰스는 12개의 그레미 상을 받았으며 1988년에는 그레미로부터 평생 공로상을 받기도 했다. 그는 베스트셀링 차트에 76개의 싱글 앨범을 올려 놓았고, 75개가 넘는 앨범들을 발매했다. 또한 Kennedy Center Honor로부터 예술 부문의 국민훈장을 받았으며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간이 나빠지면서 활동 범위가 줄어드는 2003년 전까지는 1년에 200회에 이르는 순회공연을 진행하며 활발한 음악 활동을 계속했다. 과연 천재는 불멸의 존재인가? 그가 세상을 떠난 이후 2개월 만에 발매된 앨범 Genius Loves Company는 2005년 47회 그레미상 10개 주요 부문의 후보로 올랐으며, 현재 가장 유력한 수상 후보이다.
인생의 모든 장애를 슬기롭게 극복한 레이 찰스는 평생 흑인 어린아이들의 교육과 예술문화를 위해서라는 소명감으로 2천만 달러가 넘는 돈을 모금했다. 그가 이룬 업적 중에서도 가장 빛을 발하는 것은 그의 천부적인 음악적 재능이다. 컨트리, 가스펠, 재즈, 소울 그리고 로큰롤에 이르기까지 모든 음악 장르를 아우르며 어느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전설적인 음악의 거장으로 자리매김했다. 요즘 라디오에서 들려주는 거의 모든 노래마다 레이 찰스의 영향을 받은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그가 음악사에 미친 영향력은 놀라울 정도다.
레이 찰스는 2004년 6월 10일, 7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지만, 전세계 음악 팬들의 가슴 속에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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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

  • [제77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후보
  • [제77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주연상 수상
  • [제77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감독상 후보
  • [제77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편집상 후보
  • [제77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음향상 수상
  • [제77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의상상 후보
  • [제62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 작품상-뮤지컬코미디 후보
  • [제62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 남우주연상-뮤지컬코미디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