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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포토푀’ 트란 안 홍 감독, 미식과 로맨스의 시네마틱한 상관관계
김소미 2023-06-09

“나는 ‘시적’으로 표현한다는 생각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주 정밀하게 만듦으로써 그 안에서 시적 효과를 얻는 것을 좋아한다. 시적인 아름다움은 완벽한 조화 속에서 선물처럼 얻는 것이지 그것 자체를 구현하려고 해서는 도달 불가능한 것이다.” <포토푀>에서 한 그릇의 음식은, 우주에 버금가는 부엌은, 20년의 세월 동안 묵혀둔 은은한 사랑은 트란 안 홍의 철저한 세공 속에서 시적으로 변모한다. 요리에 동반하는 시각, 후각, 미각, 촉각의 극대화를 추구한 영화지만 ‘요리 영화’라고 말하기엔 부족하고, 차라리 섹스 대신 요리하는 오랜 커플로부터 사랑의 한 태도를 실험하는 로맨스영화라고 말하는 편이 정확해 보인다. 프로방스 저택을 중심으로 하루가 저물도록 이어지는 길고 긴 코스요리의 시간을 플랑 세캉스로 구현한 트란 안 홍은 식재료를 끓이고 졸이고 익히는 과정을 빙자해 영화의 시간성을 실험한다. 칸은 그 조용한 장악력과 심미안을 음미하면서, 1993년 데뷔작 <그린파파야 향기>로 황금카메라상을 받은 지 20년 만에 돌아온 트란 안 홍에게 감독상을 안겼다.

- 장면마다 음식의 시각적인 완성도를 어떻게 유지할 수 있었나. 혹시 단 한번씩만 찍은 것인가.

= 그럴 리가. (웃음) 방법은 요리의 순서대로 결코 찍지 않았다는 것이다. 완성된 음식부터 찍고 날것의 재료로 돌아가는 경우도 많았다. 특히 포토푀를 만드는 장면은 약 40kg의 고기를 사용할 정도로 여러 번 찍었다. 어떻게든 고기와 야채, 물과 불, 요리와 관련된 모든 것을 만지는 과정을 노출하고자 했다. 중요한 것은 부엌에 머무는 한 남자와 여자가 일궈온 긴 시간의 관계였으므로 그 과정에서 배우의 연기를 위해 오히려 음식을 희생시킨 장면들도 많다.

- 영화의 첫 장면인 긴 요리 장면은 아름다운 안무처럼 유려하다. 어떻게 접근했고 어떤 효과를 얻고자 했나.

= 음식을 다루는 영화들은 대부분 요리하는 장면으로 시작하지만 곧 언제 그랬냐는 듯 이야기에 더 집중하기 시작한다. 나는 요리의 풍경이 그 자체로 재미있게 볼 수 있고 신선한 영화적 재료이기를 바랐다. 오프닝 신은 롱숏이 많고 편집점도 많았기 때문에 큰 도전이었다. 사람들이 가능한 한 주방에서 많이 움직이고, 그들을 따라 카메라가 생동감 있게 유영하고, 주방의 여러 도구들이 악기처럼 소리를 내 음악을 만드는 풍경을 스케치하고 싶었다. 이것을 성취하려면 한마디로 고도의 정밀성이 요구된다. 배우는 많은 것을 만지고 사용하기 때문에 대단히 복잡한 제스처와 동선을 익혀야 하고 모든 도구들이 올바른 위치에 있어야 한다. 겉보기엔 유유자적하고 편안해 보이지만 정말로 경쟁이 치열한 행위다. 그러니 아름다운 춤처럼 보여도 사실상 내게는 자동차 레이싱에 가까웠다.

- 마르셀 루프의 소설 속 미식가 도댕 부팡(브누아 마지멜), 그의 곁에서 20년간 요리를 하고사랑을 키운 셰프 유제니(줄리에트 비노슈)의 관계는 내내 은은한 뉘앙스에 머물기 때문에 더욱 성숙하게 느껴진다.

= 이 관계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는 쪽은 유제니다. 그는 오래전부터 도댕과 사랑에 빠졌지만 동시에 이 사랑을 지켜내려면 어떻게 조율해야 하는지도 알고 있다. 사랑 앞에서 저항하기 때문에 지금의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사람이다. 유제니는 결혼을 원하지 않고 그의 요리사로 남고 싶어 한다. 그리고 도댕은 무려 20년 가까이 그녀를 설득하기 위해 그저 함께 요리를 한다. 사랑하지만 언제나 적정한 거리감 속에서 긴 시간 동행하는 관계가 세상엔 분명히 있다. 나는 그들의 심오함과 찬란함을 들여다보길 원했다. 영화라는 언어를 통해서만 정확히 발견할 수 있는 관계이고 어떤 면에선 대단히 프랑스적이기도 하다.

- <그린파파야 향기> <씨클로> 등에서 보여주었듯 실내에 깃드는 자연광을 아름답게 활용하고, 카메라워크도 전원의 미풍을 따라 움직이는 것만 같다.

= 촬영감독에게 내가 주문하는 바는 간단하다. 언제나 빛이 영화의 아름다움이라고 말한다. 그외 내가 신경 쓰는 중요한 부분은 바로 프레이밍이다. 카메라를 어디에 둘지, 어떻게 움직일지가 영화의 의미와 속도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나는 자연스러운 것을 원하지 않는다. 인생이 경험이라면 영화는 표현이다. 반드시 특정한 방식과 수준의 표현에 도달해야 한다. 이번 작업 중 배우들에게는 카메라의 속도에 맞추어 가급적 천천히 말해달라고 몇번이고 지시했다. 대사를 하기 전에 마치 아주 깊은 맛을 음미하는 것처럼 연기해달라고도 했다. 관객은 미묘하게 달싹이는 배우의 입술을 보면서 그들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숨죽여 지켜볼 것이다.

- 데뷔 무렵부터 꾸준히 스토리텔링에 국한되지 않는 영화언어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 변함없다. 나는 아이들이 학교에 가서 스크린에 나오는 이미지를 읽는 방법을 배울 수 있으면 좋겠다. 우리 시대에 정말로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 세계에서 영화를 만드는 사람의 언어와 비평가의 언어는 완전히 달라야 한다는 것도 말해두고 싶다. 우리는 영화제에 와서 수많은 평단의 반응을 접하지만 만드는 과정 동안엔 철저히 분리되어 있고 또 그래야만 한다. 더 본능적이고 감각적인 차원에 머물 필요가 있다.

- 젊은 세대들에게 이미지를 읽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다고 했는데, 마침 영화 속에 유제니의 제자로 들어와 미식의 세계를 배우는 소녀 폴린이 나온다.

= 그렇다. 폴린은 미각, 후각, 촉각과 같은 느낌의 전수자다. 영화언어가 그렇듯 요리에서도 일상적 언어로 전하기 힘든 어떤 느낌, 우리 상태를 괴로울 정도로 몰아붙여야만 알 수 있는 거의 영적인 품질에 가까운 무언가가 있고 그것은 매우 미묘한 방식으로만 공유된다. 유제니와 폴린, 도댕과 폴린 사이에선 그런 소통이 일어난다.

- 이전 영화에서도 종종 요리 장면을 아름답게 비췄다. 당신은 개인적으로 음식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나.

= 내가 왜 예술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은지 그 의문을 따라가다보면 언제나 거기에 음식이 있다. 내 부모님은 베트남의 일꾼이었다. 노을녘의 빛이 부엌 한편에 서성거리기 시작할 무렵 어머니가 시장에서 돌아오면 그녀가 무엇을 사왔는지 보려고 안달을 냈다. 그러고선 준비된 재료를 기반으로 그날 저녁과 다음날 점심에 만들어질 요리들을 상상하곤 했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생김새나 체중 면에서 보통의 남자들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을 듣곤 했기 때문에 부엌에서 여자아이들과 있는 시간이 즐겁기도 했다. 그 시절에 부엌에서만큼은 엄청난 위엄을 갖고 보스가 되는 여자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좋았다.

- 미식이 인생의 중요한 가치인가.

= 물론. 식사를 위해 몸을 준비한다. 단식을 한다는 뜻이다. 매일 저녁 8시에 식사를 하면 다음날 정오까진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 술만 조금 마실 뿐이다. 그러면 다음날 오후엔 배가 몹시 고프고 내 몸은 무엇을 먹든 깨끗이 음미하고 감사할 수 있는 상태가 된다. 몸과 영화 모두 완전히 조율하는 일이 내 성미에 맞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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