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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고양이> 1권이 한국에 처음 번역 소개된 것이 2016년 12월이었으니 이 시리즈가 한국 독자들과 만난 지도 어느 5년이 되었다. 그사이 고양이와 시바견은 여러 작가들에 의해 재창작되고, 이모티콘으로도 출시되어 일상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인기 캐릭터가 되었다. 특히 고양이의 팬덤은 5년 사이에 더 확장되어 가히 대중적인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고양이를 키우는 가정이 늘어났을 뿐 아니라 유튜브에는 ‘랜선집사’를 자청하는 구독자들에게 사랑받는 고양이 채널이 여럿이다.
8권 이후 2년 만에 출간된 <콩고양이> 9권을 읽으면서 동물이 주인공인 시트콤을 지켜보는 듯한 착각이 드는 것은 아마도 <콩고양이> 속 동물들 역시 수년간 독자들과 함께 변화무쌍하게 성장했기 때문일 것이다. 권수를 더할 때마다 이 집에는 시바견 두식, 비둘기 부부와 닭 마당이, 거북이까지 사이좋게 한 가족이 되었다. 이미 동물농장에 가까운 집이건만 9권에는 더 희한한 동물 친구가
씨네21 추천도서 <콩고양이 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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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대한 최초의 기억’에 배꼽이라고 답한 사람이 있다. 유치원에도 들어가기 전의 일이다. 이모부가 “갑자기 제 이름을 부르더니 이불 속으로 들어와보라고 하더라고요. ‘왜 이불 속으로 들어오라고 하지’라고 생각하면서 들어갔죠. 그러더니 ‘배꼽 좀 보여줘’라고 하는 거예요. 사실 이모부가 보고 싶었던 건 제 성기였을 거예요. 그걸 말하지 못하니까” 일단 배꼽을 보자며 웃옷과 바지를 벗으라고 한 것이었다. 이모부는 둘이 있을 때는 집요하게 배꼽을 보여달라고 했고, 본인도 배꼽을 보여주겠다고 하며 이불 안에서 옷을 벗었다. 그렇게 몇년이 지났다. 성인이 되고서야 잘못됐다는 걸 알았다.
이 이야기를 들려준 사람의 이름은 ‘오드리’로 되어 있고, ‘화장품 카운슬러’로 일한다고 한다. 여성이 몸에 대한 말을 들려주는 팟캐스트 <말하는 몸>에 출연한 사람 중 88명의 말을 글로 다시 정리해 펴낸 <말하는 몸> 1, 2권을 처음 볼 때 눈길을 끄는 대목들은 누구나 이름을
씨네21 추천도서 <말하는 몸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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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고픈 푸근한 공간으로 고향을 기억하는 사람과 결코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고 그럴 수도 없는 공간으로 기억하는 사람 사이에는 깊은 틈이 있다. 그리고 후자의 경우, 디디에 에리봉의 <랭스로 되돌아가다>를 읽으면 복잡다단한 감정을 느낄 것이다. “동성애자로 살아가려는 젊은 게이에게 대도시나 수도로 탈주하는 일은 아주 흔한 고전적인 여정이다.” 미셸 푸코 전기 및 레비스트로스 회고록으로 이름을 널리 알린 프랑스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인 디디에 에리봉은 퀴어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고향 및 가족과 적극적으로 단절했다고 생각해왔지만 난폭했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오랜만에 어머니와 깊은 대화를 나누면서 자신에게 질문한다. 스스로 노동자 가정 출신임을 부정한 적은 한번도 없지만 현실에 존재하는 노동자계급과 멀어지려고 애쓴 것은 아니었을까 하고 말이다.
그래서 저자는 부모의 삶과 사상을 결정지은 사회·역사적 변화를 짚어나간다. 먹고살기 위해 학업을 포기하고 어려서부터 노동
씨네21 추천도서 <랭스로 되돌아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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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미술 관객은 작품의 형태며 색상, 전시 공간에 관심을 기울인다. 하지만 과거 교회나 사원, 유적지 등의 미술 작품은 감상용으로 제작된 것이 아니고, 종교적인 차원에서 믿음을 강화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래서 조각상으로 가득한 인도 사원을 보려고 현지인도 거북해하는 불편한 길을 달리거나, 르네상스 시대의 거장 미켈란젤로와 그를 좇는 근사한 경쟁자 라파엘로의 작품들을 보러 시스티나성당으로 가는 일은 완전히 다른 목적을 품고 일종의 타임머신을 타는 행위다. 공간 이동인 동시에 수백, 수천년을 가로지르는 시간 이동. 그런데 이 여행을 통해 관객 스스로 작품에 집중하면서 변화하기 때문에 더 의미 있다고 저자 마틴 게이퍼드는 단언한다. <예술과 풍경>은 호크니와의 대담집으로 이름을 알린 미술비평가인 저자가 세계를 오가며 작품을 감상하고 작가와 대담을 나눈 경험을 담은 책이다.
화가 고(故) 질리언 에어스는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빌어먹은 그림은 벽에 걸 때마다 달라
씨네21 추천도서 <예술과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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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을 때마다 달력의 공휴일을 먼저 확인하는 이들에게 2021년은 가혹한 해다. 거의 모든 공휴일이 주말이라서, 설 연휴가 끝나고는 도리 없이 까만 숫자로 표기된 공부와 노동의 시간을 맞이해야 할 판. 이럴 때일수록 놀기 위해서, 공부하기 위해서 책을 가까이 두고 평정심을 찾으면 어떨까. 어느 쪽이든 유쾌한 2월의 책들.
씨네21 추천도서 - <씨네21>이 추천하는 2월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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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우리에게 익숙한 ‘미드’나 ‘영드’와 달리 ‘프드’라는 단어는 아직 어색하다. 거센소리에 같은 모음이 중복되어 발음하기 매끄럽지 않다는 일차적인 이유가 아니라 프랑스 드라마가 국외 팬들에게 그만큼 영향력이 없었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것일 테다. 실제로 프랑스인들도 자국 드라마나 시리즈물에 그다지 높은 기대를 하지 않고, 감독과 제작사, 배우들도 드라마/텔레비전에 대해서는 장편/극장보다 ‘쉬운 차선책’, 좀더 막말로 하자면 ‘변절’과 연관지어왔다. 단적인 예로 2015년 넷플릭스가 제작한 첫 프랑스 드라마 <마르세유>(출연 제라르 드파르디외)는 찬반이 엇갈린 애매한 시청자들의 반응과 달리 “산업 재난”(<르몽드>), “경이롭기까지 한 놀라운 실패작”(<텔레라마>) 등 평단의 일관적인 비판을 받고 결국 시즌3 방영이 취소되었다.
그리고 넷플릭스가 제작한 봉준호 감독의 <옥자>가 2017년 칸국제영화제에 초청됐을 당시 이 영화를 극장
[파리] 프랑스 영화인들 대거 참여한 넷플릭스 시리즈 '뤼팽' 시즌2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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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드라마 <선배, 그 립스틱 바르지 마요>의 첫 방송을 기다리는 동안, 제목으로 삼은 대사를 입 밖으로 내도 괜찮을 상황을 생각해보았다. 후배의 화장품 파우치에서 립스틱을 빌리는 선배가 하필 사용 기한이 한참 지난 채로 굴러다니던 립스틱을 집었을 때 정도? 물론 저런 내용이라면 제목으로 뽑히지 못했을 것이다. 제목의 도발은 어떤 이들에겐 짜릿한 상상의 재료가 될 것이고, 나 같은 이들에겐 짜증 섞인 관심을 끌기 적당하다.
화장품 회사 마케터 윤송아(원진아)를 따르는 후배 채현승(로운)은 송아가 같은 팀 상사 이재신(이현욱)과 비밀리에 사내연애 중임을 알게 된다. 선배가 행복해 보이니 짝사랑을 접을 찰나, 재신이 다른 여자와 웨딩드레스를 고르는 것을 목격한 현승은 이를 송아에게 고해바친다. 제목이자 첫회의 엔딩 대사는 저따위 남자를 만난다고 거울을 보며 립스틱을 고쳐 바를 필요 없다는 뜻. 매회 엔딩마다 로맨스 장르에서 골백번 반복된 대사가 감미로운 중저음으로 나
드라마 '선배, 그 립스틱 바르지 마요', 연애가 전부는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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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 화면 안에 두 소녀가 밤길을 달리고 있다. 조그만 아이의 손을 꼭 붙든 조금 더 큰 소녀의 몸짓은 불안하며, <세자매>를 열고 있는 이 밤은 불길하다. 겉옷 하나 걸치지 않은 내의 차림의 아이들이 차가운 겨울밤을 달려야 하는 상황적 배경이 밝을 리는 없다. 하지만 더 암담한 사실은 두 소녀가 언젠가 이 밤을 다시 대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장면을 설명하는 장면이 바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게다가 플래시백의 한 부분이라면, 이 밤 속으로 영화의 감정들이 고여들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세자매>의 서사를 복기한 결과가 아니다.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는 전개다. 영화의 시작부에 등장하는 플래시백 장면이 인물들의 현재와 동떨어져 기능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현 상태의 징후로서 기능하든 기원으로서 작동하든, 그것은 대개 현재와 과거 사이의 인력을 형성한다.
인물들의 온갖 기행을 나열하며 세상의 보편적인 감정에 기어코 다다르려 하는 이승원 감독 역시 인물들의
'세자매'가 감정을 분출하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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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탄하면서 봤다. 아마도 한국영화 역대 최고의 가성비 영화일 것이다. 이만한 예산에 이만한 결과물을 뽑아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꼭 극장에서 봐야 할 영화를 집에서 보는 아쉬움을 삼키며 이 영화가 지닌 초월성에 대해 썼다.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의 말순이가 초월적으로 귀여웠다면 <승리호>의 꽃님이는 초월적으로 사랑스럽다. 그리고 순이.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난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네버랜드와 원더랜드 사이 어딘가에서
<승리호>를 싫어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우주를 무대로 한 영상의 완성도는 한국영화에서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빼어나고 공간을 휘젓고 다니는 속도감은 경쾌하고 유려하다. 우주 쓰레기 청소선 승리호를 운항하는 승무원은 모자란 듯 꽉 차 알뜰하게 배치되어 있으며 배우들의 연기는 귀엽고 사랑스럽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참 쉽고 친절하며 착하다. 조성희 감독의 영화가 언제나 그랬듯 <승리호>는 인간에 대한 믿음
'승리호'를 마냥 좋아하기도 싫어하기도 힘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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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개국에서 출간된 독일 동화를 원작으로 한 <리틀드래곤 코코넛2: 정글대탐험>은 드래곤들의 방학캠프를 통해 포용과 화합의 여정을 따라간다. 주인공은 날개를 달고 불을 뿜을 수 있는 드래곤 코코넛과 그의 친구들. 코코넛은 드래곤들의 캠프에 참여할 수 없는 고슴도치 친구 마틸다가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마틸다를 상자에 몰래 숨겨서 동행할 정도로 따뜻한 마음씨를 지녔다.
그런 코코넛이 탄 배가 침몰하면서 모험이 시작된다. 이때 영화는 주인공들과 생김새가 다른 종족인 자이언트 드래곤, 워터 드래곤 등을 차별받고 오해받는 캐릭터로 묘사함으로써 뜻밖의 만남과 갈등을 그려낸다. 인물들이 각자의 방식대로 나와 다른 존재를 마주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아이들의 시선에서 이해할 수 있다.
영화 '리틀드래곤 코코넛2: 정글대탐험' 따뜻한 마음씨를 지닌 드래곤과 친구들의 모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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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뒤늦은 명성을 얻은 화가인 헬렌 쉐르벡의 삶과 사랑을 그렸다. 전쟁과 가난이 담긴 역사적 풍경에서 자화상으로 차츰 관심을 옮겨온 화가 헬렌 쉐르벡은 그의 그림만큼이나 고요하고 내면적인 삶을 살았다. 영화 <헬렌: 내 영혼의 자화상>은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그의 삶에 숨은 격정과 동요를 살핀다. 1862년에 태어난 화가의 일생 중 1915~23년 무렵을 중심으로 다루며, 이 시기에 만난 아마추어 화가 아이나르 로이터와의 관계에 초점을 맞췄다. 고독과 소외, 전통의 억압 속에서 헬렌은 사랑을 통해 예술적 영감을 회복한다.
전기영화로서 시선의 치밀함은 부족하지만 멜로드라마적 정서를 강조해 몰입도와 매력을 높였다. 1900년대 초반 핀란드의 화실 풍경에 자연광을 강조해 회화적인 아름다움을 부각했다. 뮤직비디오 감독으로도 잘 알려진 안티 요키넨의 신작이다.
영화 '헬렌: 내 영혼의 자화상' 화가 헬렌 쉐르벡의 삶과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