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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라기 월드>가 스티븐 스필버그가 창조한 <쥬라기 공원> 세계의 유산을 흠집 없이 계승하는 데 성공했다면, <쥬라기 월드: 폴른 킹덤>은 주된 무대인 테마파크를 지양하고 공룡을 도시로 진출시켜 인간과 공룡의 공존이라는 생태와 환경에 관한 숙의의 탑을 쌓은 공로가 있다. 또 시리즈의 마지막인 이번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은 인간과 공룡의 공존을 둘러싼 스펙터클한 갈등이 전시될 것처럼 여겨진 터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는 부분적으로만 들어맞는다. 다른 한편으로 작품은 인간의 본능을 자성하는 제스처를 보인다.
문제는 늘 인간의 탐욕이다. 서식지 이슬라 누블라 섬의 화산 폭발을 피해 바깥세상으로 몰린 공룡과 인간의 불편한 동거가 이어지는 시기, 바이오 기술 회사 바이오신은 선사시대 DNA를 조작해 대형 메뚜기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대형 메뚜기가 지닌 DNA의 불완전성으로 말미암아 광대한 지역의 경작물이 초토화되고, 다급해진 바이오신은 이를 무
[리뷰] 스펙터클 내셔널 지오그래픽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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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군의 자질을 갖추고 모두에게 수려한 용모를 상찬받는 사극 로맨스 남주인공이 주류인 판. KBS2 드라마 <붉은 단심>은 그 전형을 깬다. “생각보다 얼굴이 까무잡잡한디?” “키가 별로 안 커.” “성격이 좀 더러울 것 같아.” “눈빛이 쎄해.” 신분을 감추고 보름마다 죽림현 수장 유정(강한나)을 만나러 잠행을 나가는 왕 이태(이준)는 유정을 따르는 똥금(윤서아)과 향이(서혜원)에게 가차 없는 인물평을 당한다. 좌의정 박계원(장혁)이 평하는 이태는 “어질진 않으나 담대하고 지혜롭기보단 간교하며 덕은 없으나 인내는 강하니 이 또한 군왕의 자질”이란다. <붉은 단심>의 인물들은 저마다 입장과 상황에 따라 이태를 다르게 파악한다. 또한 박계원의 평은 세자 시절 자신에게 무릎까지 꿇었던 이태를 비로소 치열한 수 싸움을 벌일 만한 상대로 두는 지점이기도 하다.
상대의 변화를 수용하며 평가가 변화하는 이야기는 평하는 쪽과 대상, 양측 모두의 캐릭터를 두텁게 한다. 이태
[유선주의 드라마톡] '붉은 단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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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ST’는 매주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에게 취향과 영감의 원천 5가지를 물어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이름하여 그들이 요즘 빠져 있는 것들의 목록.
<폭스캐처>
인간의 심연과 욕망을 파고드는 수작이다. 주인공 마크 슐츠와 악역인 존 듀폰의 욕망이 서로 소통되지 않고 결국 파멸에 다다르는데 이야기 전개 방식과 연출이 무척 강렬하다. 인간의 감정에 대해서 조용히 곱씹어보게 된다.
<실비아 플라스 시 전집>
실비아 플라스 지음 | 마음산책 펴냄
평소에 시를 잘 읽지 않는다. 그런데 이 시집은 사놓고 곁에 두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든든했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문장으로 가득하다. 특히 창작자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
<믿을 수 없는 이야기>
추천받고 한동안 보지 않고 있다가 한번에 몰아서 본 작품. 성폭행당한 소녀의 말을 누구도 믿어주지 않으며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믿음과 불신의 양극으로 출발하는 지점이 독특하게 느껴졌다. 마지막에 소녀가 경찰에
[LIST] 신수원 영화감독의 리스트 '오마주'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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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부부, 외출했던 남자는 부인 명의 카드로 124만원짜리 명품 운동화를 사서 룰루랄라 귀가한다. 가장으로서 생활을 책임지는 부인이 과도한 소비를 지적하자 남자는 화를 낸다. 두 번째 부부, 남자는 툭 하면 짜증을 내며 ‘X발’, ‘죽인다’, ‘돌빡’ 같은 말을 내뱉는다. 권위적인 성격의 그는 자신의 문제를 부인 탓으로 돌리는 궤변에도 능하다. 세 번째 부부, 시부모로 인한 갈등과 남편의 폭언 때문에 부인은 몹시 지쳐 있다. 하지만 남자는 말한다. “저는 화목한 가정을 꾸리는 게 꿈이거든요.” 네 번째 부부, 서로 신경을 긁는 대화 끝에 싸움이 벌어지자 불안해진 아기가 울며 엄마에게 매달린다. 남자는 한탄한다. “아이는 너무 예쁜데, 우리 인생은 거지 같아요.”
<결혼과 이혼 사이>는 ‘네이트판 결시친(결혼/시집/친정)’ 게시판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관찰 예능이다. 돈, 육아, 시부모, 성격 차이 등 결혼 생활의 주된 갈등 요소가 담겨 있고 차라리 연기라면 다행
[최지은의 논픽션 다이어리] 결혼과 이혼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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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아 안개를 걷어가다오 / 넷플릭스, 웨이브 외
살면서 엄마의 노래를 들어본 적이 몇번이나 있을까. <바람아 안개를 걷어가다오>에선 이 흔치 않은 기회가 두번 있다. 영화의 1·3부와 2부에 나눠 김혜정, 노윤정 배우가 2인1역으로 연기한 엄마 혜정이 아들 동민에게 각각 정훈희의 <안개>, 김추자의 <님은 먼 곳에>를 불러준다. 김혜정 배우는 신동민 감독의 실제 어머니고 아들 동민은 감독의 이름을 그대로 따왔다. 즉 같은 이름의 엄마, 다른 얼굴들. 그리고 같은 이름의 아들, 다른 얼굴들. 영화 안팎에서 가공인물과 실존 인물의 구분이 흐려지고 무의미해지면서 영화는 모든 어머니와 아들의 보편적인 이야기로 수용되기에 이른다. 4:3의 화면비, 정적인 카메라, 삶을 벗어나지 않을 만큼의 일상적인 서사는 현실에 가까운 모자(들)의 느린 시간을 해치지 않는다.
미스터 존스 / 왓챠, 티빙 외
역사는 반복된다. 1930년대 초반 우크라이나에서는 대기근
[리뷰 스트리밍] '바람아 안개를 걷어가다오'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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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데스 + 로봇>엔 절대적 강자가 없다. 요거트가 인류를 지배하거나(시즌1 ‘요거트가 세상을 지배할 때’) 온갖 초자연, 기계적 힘이 인간을 절망으로 몰아갈지라도(시즌1 ‘무덤을 깨우다’) 인간은 종종 통렬한 카운터펀치를 날린다(시즌1 ‘슈트로 무장하고’, ‘시즌2 ‘자동 고객 서비스’). <러브, 데스 + 로봇>엔 이토록 다양한 존재들의 상호 관계를 단순히 서열화하거나 도식화하여 결론내는 오만이 없다. 대신 말초적 쾌감과 질문의 여운을 남기는 단편영화의 미덕을 시즌3에서도 고수한다. 물론 피칠갑은 필수다.
2화 ‘어긋난 항해’, 망망대해에서 거대 해양 괴물이 선상을 습격한다. 압도적인 공포에 선원들이 서로를 배신하며 생존을 꾀한다. 먹이로 던져졌으나 괴물과의 협상으로 목숨을 부지한 영리한 선원이 괴물, 선원들, 시청자의 뒤통수를 차례로 가격한다. 트롤리 딜레마에 얽힌 생명 윤리의 문제, 독재에 가까워지는 간접 민주제의 한계, 정당방위의 당위성 등 여
[리뷰 스트리밍] '러브, 데스+로봇' 시즌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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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켓몬 마스터를 꿈꾸는 지우(마쓰모토 리카)와 피카츄(오오타니 이쿠에)가 이번에는 현실 세계의 이면으로 향한다. 포켓몬 세계에는 현실 세계와 그 짝패인 반전 세계가 존재한다. 반전 세계는 현실 세계의 혼란함을 받아안음으로써 현실 세계를 지탱하는 공간이다. 만일 현실에서 어떤 사건이 펼쳐진다면 반전 세계에는 독을 품은 검은 구름이 피어나고, 이를 조정함으로써 현실 세계는 안전하게 유지된다. 하나처럼 붙어 있지만 누구도 함부로 오갈 수 없는 두 세계는 기라티나가 관장해오고 있다. ‘신이라 불리는 포켓몬’ 중 하나인 기라티나는 마치 지옥문을 지키는 하데스처럼 현실과 반전 세계를 관통한다. 그러던 어느 날 기라티나와 반전 세계에 위험이 닥친다. 전작 <극장판 포켓몬스터DP: 디아루가 vs. 펄기아 vs. 다크라이>에서 아라모스 마을을 위험에 빠뜨린 디아루가와 펄기아가 펼치는 전쟁 탓이다.
‘시간의 신’인 디아루가와 ‘공간의 신’인 펄기아는 서로의 영역을 침범했다고 오해해 전쟁
[리뷰] 포켓몬과 신화적 장치의 흥미로운 앙상블 '극장판 포켓몬스터DP: 기라티나와 하늘의 꽃다발 쉐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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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코콜라 지역의 제빵사 올리 마키(야르코 라티)는 프로 권투 대회 출전을 위해 연인 라이야(우나 아이롤라)와 함께 헬싱키로 떠난다. 올리의 훈련을 돕는 코치 엘리스(에로 밀로노프)의 전략은 올리의 체중을 줄여 계체량 시 체급을 페더급으로 변경하는 것. 이를 위해 엘리스는 올리가 훈련에 매진하길 바라지만, 올리는 엘리스에게 “저 사랑에 빠진 것 같아요”라고 하며 라이야와의 연애가 선사하는 환희에 취해 있을 뿐이다. 올리와 엘리스의 지향점이 어느새 달라진 것을 눈치챈 라이야는 고향으로 돌아가고, 상심한 올리는 훈련을 뒷전으로 미룬다.
<올리 마키의 가장 행복한 날>은 유호 쿠오스마넨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자 제69회 칸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대상 수상작이다. 그는 이후 <6번 칸>으로 제74회 칸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거머쥔 바 있다. 영화는 여러 미덕을 고루 갖추고 있다. 우선 각본이 우수하다. 올리의 연애담과 훈련담은 번갈아 진행되는데,
[리뷰] 순정만은 헤비급인, 트뤼포풍의 제이크 라모타 '올리 마키의 가장 행복한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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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저 아직 30대예요.” 딱 남들만큼 깜빡깜빡하는 변호사 수진(서현진)은 교통사고를 내고 찾은 병원에서 알츠하이머 치매를 진단받는다. 충격으로 굳어버린 수진 대신 의사에게 침착히 궁금한 점을 묻는 사람은 함께 온 아버지 인우(안성기)다. 유학을 앞둔 어린 딸 지나(주예림)를 혼자 키우며 일하느라 정신없는 수진의 부탁을 받고 손녀를 돌보러 딸의 삶에 들어왔다 나가길 반복하던 인우는 수진의 치매 판정 이후 딸의 삶에 아예 들어가기로 맘먹는다.
<카시오페아>는 아버지로서의 실패를 만회할 기회를 얻은 남자가 이제야 쓰는 육아 일지다. 장기 해외 근무로 수진의 인생 대부분에서 부재했던 인우는 속죄하듯 딸의 병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그의 간병인을 자처한다. 밥을 챙겨 먹이고, 놀이 모임에 데려가고, 분리수거를 가르친 뒤 돌아오는 인우의 일상은 어린 자식을 키우는 부모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치매를 겪는 중심인물이 발산하는 혼란한 에너지가 상당한데도 이 극은 전체적으로 차분
[리뷰] 아버지로서의 실패를 만회할 기회를 얻은 남자가 이제야 쓰는 육아 일지 '카시오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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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K. 딕의 소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에서 현상금 사냥꾼 릭 데커드는 “안드로이드도 꿈을 꾸나?”라고 묻는다. <애프터 양>에서 코고나다 감독은 바꿔 질문한다. 안드로이드도 기억하는가? <애프터 양>이 그리는 근미래는 고도로 발달한 테크노 사피엔스가 보편화된 사회다. 이들은 다인종·다문화 가정에 보급되어 세계 각국의 유산을 일깨워주는 ‘세컨드 시블링스’로 활약하는 지성체이고, 고장난 채 오래 방치되면 부패하는 유기체다. 차(茶) 상점을 운영하는 제이크(콜린 패럴)와 회사 중역인 키라(조디 터너스미스) 부부 역시 입양한 중국인 딸 미카(말레아 엠마 찬드로위자야)를 위해 중국인 안드로이드 양(저스틴 H. 민)과 가족을 이룬다. 영화는 원작인 알렉산더 와인스타인의 소설 제목처럼 어느 날 갑자기 ‘양과의 작별’이 가족에게 당도한 이후의 여파를 천천히 관찰해나간다. 수리업체를 전전하던 제이크는 양의 중심부에 숨겨진 기억 장치가 있으며,
[리뷰] 인간과 로봇 사이, 영화라는 기억 장치 '애프터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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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ST’는 매주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에게 취향과 영감의 원천 5가지를 물어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이름하여 그들이 요즘 빠져 있는 것들의 목록.
《Whack World》와 하이쿠처럼 짧은 노래들
요즘 티에라 왝의 곡들을 많이 듣는다. 그중에서도 전곡이 1분짜리 트랙으로 이루어진 《Whack World》(2018) 음반을 통째로 듣는 게 좋다. 우울과 분노, 우정과 성장에 관한 결코 가볍지 않은 테마들을 하이쿠처럼 딱 잘라내는 쾌감과 재능에 탄복하며. ※자매품: 《69 Love Songs》(1999) 마그네틱 필즈.
브라이언 드 팔마의 <캐리>
1967 | 오프닝
범람하는 기능적 영상 콘티들로부터 마음을 정화하고 싶을 때 돌려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시퀀스 하나로 필요한 모든 소개를 끝내버리는 빈티지한 즐거움이 있다. 피로 시작해서 피로 끝날 영화 속에 내내 여린 소녀의 마음이 느껴진다는 점도.
<변화하는 세계질서>
2021 | 레이 달리오
[LIST] 남궁선 영화감독 '십개월의 미래' 연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