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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아침, 월우(박진영)가 죽은 채로 발견된다. 온몸에 폭행 흔적이 있지만 경찰도 사회복지사도 월우의 죽음을 단순 사고로 처리한다. 쌍둥이 형 일우(박진영)는 동생을 죽인 범인을 찾아 똑같이 되갚아주기 위해 복수에 나선다. 집요한 추적 끝에 일우가 용의자라고 확신하는 문자훈(송건희) 일당이 소년원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일우는 제 발로 소년원에 들어간다. 일우에게는 어떤 작전도, 계략도 없다. 일우가 소년원에서 문자훈 일당을 만나자마자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맨몸으로 달려들었다가 맞고 끌려 나가는 장면에서 관객은 일우가 가진 건 오직 처절한 분노와 복수심뿐이라는 걸 알게 된다. 일우는 목숨을 걸고 온몸을 내던지지만, 소년원이라는 작은 사회에서 작동하는 힘과 자본의 논리에 또다시 당할 수밖에 없다.
소년원은 폭력으로 자신을 증명하고 보호해야 하는 세계다. 일우는 이곳에서 힘없는 자는 복수가 아니라 용서해야 살아남는다는 것을, 폭력의 강도를 높일수록 더 센 반격이 되돌아온다는
[리뷰] '크리스마스 캐럴', 서럽고 불편하게 울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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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ST’는 매주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에게 취향과 영감의 원천 5가지를 물어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이름하여 그들이 요즘 빠져 있는 것들의 목록.
고레에다 히로카즈, <키키 키린의 말>
작가로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작업 태도를 알 수 있었던 책. 한 사람을 바라보는 느리지만 존중 담긴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시선이 잘 드러나 있다. 특히 키키 키린 할머니의 당당하고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적극적인 태도가 좋다.
톰 웨이츠의 노래들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음악을 접하는 게 힘들다. 어린 시절 무작정 탐험하던 청취 세계와는 많이 달라졌다. 요즘엔 톰 웨이츠 노래를 많이 듣는다. 정규 노선을 벗어나지 않던 사람이 자유롭게 일탈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 좋다.
하마구치 류스케 <해피 아워>
하마구치 류스케의 모든 필모그래피를 보는데 감독의 뚝심이 느껴져 좋았다. 특히 <해피 아워>에서 여성배우들을 매력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이 인상 깊었다. 다만
[LIST] 배우 권해효가 말하는 요즘 빠져 있는 것들의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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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이 더럽혀질까 봐 대충 싼 맛에 쓰고 때 타면 벗어던지는 흰 목장갑.” 순양그룹 오너 일가의 지시라면 거절도 질문도 판단도 하지 않는 미래자산관리팀 팀장 윤현우(송중기)는 자신에 관한 모멸적인 뒷말을 듣고도 눈 하나 까딱 않는다. 해외 비자금을 회수하러 갔다 살해당하는 충성스러운 순양맨의 허무한 삶은 별안간 1987년으로 회귀해 순양가의 막내 진도준(송중기·아역 김강훈)으로 이어진다. 산경 작가의 웹소설을 원작으로 한 JTBC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의 시작이다. 진도준은 귀여운 11살 어린이의 얼굴에 40대 아저씨의 말투로 미래 정보를 활용하고, 순양 창업주 진양철(이성민)은 돈으로 못 사는 서울대 법대 합격증을 안겨드리겠다는 손자에게 홀딱 반한다. 흰 목장갑이 재벌 창업주의 목숨을 구하고 조언하며 인정을 얻는 전개가 짜릿한 한편, 원작과 드라마가 갈리는 지점이 흥미롭다.
순양가의 머슴으로 살다 언젠가 집사가 되기를 꿈꾸던 원작의 윤현우는 두 번째 삶을 머슴의
[유선주의 드라마톡] ‘재벌집 막내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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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터츠: 마음을 다스리는 마스터>
넷플릭스
필 스터츠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정신과 의사이자 심리삼당사다. 배우이자 감독인 조나 힐이 스터츠를 처음 찾았던 이유는 더 행복해지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 때문이었다. 스터츠의 독특한 요법을 통해 안정을 얻은 조나 힐은, 이제 많은 이들에게 그 방법을 알리고자 다큐멘터리를 찍겠다는 결심을 한다. 그렇게 둘의 대화가 시작되지만 조나 힐은 영화를 잘 만들고 싶다는 마음에 사로잡혀 또다시 불안에 빠진다. 그 불안은 스터츠를 잃을 수도 있다는 불안에까지 연결되는데, 그 이유는 스터츠가 파킨슨병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영화 내내 확신에 찬 모습으로 자신의 이론을 말하는 스터츠의 말은 분명 마음을 울리는 측면이 있으며, 동시에 대화 내내 끊이지 않는 농담으로 웃음을 주기도 한다.
<더 페리퍼럴>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때는 2032년. 플린은 미국의 한 작은 마을에서 VR 게임에 빠져 있는 오빠와 함께 아픈 어머
[OTT 추천작] ‘스터츠: 마음을 다스리는 마스터’ ‘더 페리퍼럴’ ‘서부 전선 이상 없다’ ‘미스틱 리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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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 / 감독 애덤 섕크먼 / 출연 에이미 애덤스, 패트릭 뎀시, 제임스 마즈든, 이디나 멘젤, 마야 루돌프 / 플레이지수 ▶▶
2007년 공개되어 디즈니식 운명적 사랑 이야기에 대한 클리셰를 스스로 뒤집었다는 평가를 받은 작품 <마법에 걸린 사랑>의 속편이다. 전편에서 마녀에 의해 마법의 왕국 안달라시아에서 뉴욕으로 쫓겨났던 지젤(에이미 애덤스)은 우여곡절 끝에 변호사 로버트(패트릭 뎀시)와 행복한 결말을 맞이한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지금, 지젤은 불행을 느낀다. 오랜 뉴욕에서의 생활이 부부를 지치게 만들었고, 사춘기를 맞은 의붓딸 모건과의 갈등도 잦아졌기 때문이다. 부부는 새로운 행복을 찾아 교외로 거처를 옮겨보지만 그곳에서의 삶도 이들에게 충분한 만족을 주지 못한다. 답답한 지젤은 마침내 소원의 지팡이를 사용하여 주문을 외운다. “우리에게 동화 속 삶이 펼쳐지게 해주세요.” 그러나 이 소원이 지젤이 새엄마라는 설정과 결부됨에 따라 문제가 생긴다. 많은 동
[OTT 리뷰] '마법에 걸린 사랑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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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 10년의 발걸음>은 2011년 출범한 시각장애인 관현악단 혜광브라인드오케스트라의 창단 이후 10년의 궤적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이 오케스트라를 출범한 이는 시각장애 특수학교인 인천혜광학교 교장을 역임한 명선목 광명복지재단 이사장이다. 그는 시각장애인은 현악기를 다루기 어렵다는 통념을 깨고 시각장애 학생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고자 이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혜광브라인드오케스트라는 전 단원이 장애 연주자로 구성돼 있고, 전 단원은 보면대 없이 교향곡의 전 악장을 암보해 연주한다. 영화는 혜광브라인드오케스트라의 10년을 담은 기록물답게 단원들의 연주 실황을 무편집본으로 담는다. 시간 순서에 따른 혜광브라인드오케스트라의 발전 과정을 찬찬히 따라가다 보면 단원들의 연주 기량과 이들이 공연에서 다루는 레퍼토리가 시간에 비례해 진보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를 입증하는 것이 음대 출신 혜광학교 졸업자, 협연자, 후원자, 언론 관계자 및 국회의원 등으로 구성된 다양한 인터뷰
[리뷰] '동행: 10년의 발걸음', 마음의 눈을 틔우는 선율과 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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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베이의 젊은 남녀 유팡(문리)과 장둥링(임철희)이 6년 만에 우연히 재회하여 사랑에 빠진다. 그러던 어느날 갑작스러운 사건이 발생한다. 자신이 유팡의 전 애인이라고 말하는 밍량(린바이홍)이 한낮의 기차역에서 유팡에게 칼부림을 시도한 것이다. 장둥링은 유팡을 지키려 몸을 던지고, 큰 자상을 입는다. 그리고 밍량이 범죄를 저지르기 전 유팡과 유팡의 동성애인 모니카(천팅니)를 집요히 스토킹했던 사실이 밝혀진다. <청춘시련>은 영어 제목 <Terrorizers>가 지시하듯 에드워드 양의 <공포분자>(The Terroriser)나 <타이페이 스토리>처럼 도시의 청춘들이 엇갈리며 자아내는 불안을 그려낸다. 기차역 칼부림 사건에 얽힌 이들의 치정과 일상을 인물 각각의 입장에서 담담히 반복하는 플롯을 통해서다. 다만 이러한 레퍼런스의 활용은 작품 고유의 개성을 재창조하기보다는 전술한 대만 뉴웨이브의 감성적인 성취와 생경한 서사 구조를 다소 안일하게 모
[리뷰] '청춘시련', 무의미, 무성의하게 반복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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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뉴욕타임스>에 기고된 한편의 기사는 할리우드의 오랜 침묵을 거대한 외침으로 바꾸어놓았다. <펄프 픽션> <셰익스피어 인 러브>등의 제작자로 잘 알려진 하비 와인스틴이 90년대부터 지속적으로 저지른 성폭력에 대한 탐사보도였다. 여성배우에 대한 할리우드의 왜곡된 인식, 영화 관계자의 묵인과 옹호, 피해자를 보호하지 않는 사법제도 등 와인스틴의 성범죄를 가능케 한 조건들에 대해 끈질기게 추적한 <뉴욕타임스>의 조디 캔터와 메건 투히 기자의 취재기가 <그녀가 말했다>에 담겼다. 영화는 현실과 재현의 경계를 자연스레 넘나든다. 성범죄 당시의 녹취록을 직접 들여오거나 실제 피해자를 등장시키는가 하면 사건 관계자와 가장 유사한 배우를 기용해 설득력을 배가한다. 재현과 실제가 겹친 자리에서 가해자에게 빼앗긴 여성들의 목소리는 거대한 울림이 되어 미투(MeToo) 이후의 시간으로 연결된다. 그리고 그 첫걸음에 자리한 조디 캔터와 메건
[리뷰] '그녀가 말했다', 두 여성 기자의 끈기와 용기에 박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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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한 식성을 가진 소녀 매런(테일러 러셀). 그녀는 자신의 독특함을 숨긴 채 아빠와 단둘이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사건이 터지고 아빠마저 그녀를 떠나버린다. 홀로 남겨진 매런. 그녀는 어렸을 때 가족을 떠났기 때문에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엄마를 찾아 나서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열여섯 소녀가 홀로 떠나는 여정은 쉽지 않다. 친절한 듯 기묘한 사람들도 마주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길 위에서 자신과 닮은 소년 리(티모시 샬라메)를 만난다. 서로의 아픔을 공유하며 가까워지는 둘. 리는 매런이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한다. 아름다운 듯 위태로운 두 사람의 여정은 어디로 향할까.
<콜 미 바이 유어 네임>(2017)으로 국내 관객의 사랑을 받은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신작이다. 그는 이번에도 자신만의 비밀을 간직한 채 보이지 않는 곳에 머무는 이들을 응시한다. 소재는 어느 때보다도 파격적이다.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이런 소재를 통해 영화는
[리뷰] '본즈 앤 올', 외로움, 사랑, 그리고 받아들여짐에 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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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꺼진 방에서 한 사람이 노트북에 연신 무언가를 적어 내려가고 있다. 그 내용은 음성으로 변환되어 방 안에 울려 퍼진다. 영화감독인 노동주는 단편영화 <그냥 걸었어>의 시나리오를 집필 중이다. 노동주는 “사랑에 대한 힘이 힘에 대한 사랑을 능가할 때 세계 평화가 온다고 굳게 믿고 있는 세계 최초 평화주의 시각장애인 영화감독”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그의 직업은 다양하다. 치료 안마사, 영어 강사, 장애인 인권 강사 등으로 벌어들인 수익으로 자신의 상상을 영상으로 구현해내는 영화 작업에 투자한다. 단편영화 <그냥 걸었어>에 참여한 스탭들이 한자리에 모이고 본격적인 제작 회의가 시작된다.
<영화감독 노동주>는 시각장애인 영화감독 노동주의 단편영화 <그냥 걸었어>의 촬영기를 담아낸 다큐멘터리다. 노동주 감독은 고등학교 2학년 때 발병한 다발성경화증으로 시각을 잃었다. 영화를 촬영할 때 중도 시각장애인이라는 것은 이점으로 작용한다. 장면을 머
[리뷰] '영화감독 노동주', 노동주의 상상은 영화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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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혼자 눈뜨고 잠드는 18살 유진(황보운)은 엄마(서영희)가 유부남과 사랑에 빠져 집을 나가버려도 꽤 담담하다. 더이상 지체할 수 없다는 듯 자신 또한 사랑할 상대를 찾아나서는 모습은 열정적이기까지 하다. 피자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돈을 벌기 시작한 유진은 대학생 오빠 강우(김민철), 그리고 순진한 동급생 현욱(홍사빈)을 동시에 만난다. 강우에겐 동등한 성인으로 인정받길 원하고 현욱에겐 멋대로 기대고 싶은데, 제각기 꿈틀대는 욕망은 서로를 상쇄하긴커녕 점점 크고 대담한 성질을 띤다. 끌리는 남자에게 저돌적으로 키스하거나 자신을 모욕한 어른을 돌려세워 쏘아붙일 줄도 아는 당찬 10대이지만, 유진에게도 가끔은 자기 안의 결핍과 변덕에 맞서다 주저앉는 날들이 있다. 엄마의 사정도 크게 다를 바 없다. <만인의 연인>은 결국 단 한 사람의 연인이 되는 일에도 서툰 여자들의 겨울 이야기다.
미성년의 시간은 아름답기보다 대개 축축하고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따르는 <
[리뷰] '만인의 연인', 쾌감과 부끄러움 사이를 오가는 열여덟 욕망의 다이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