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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넷플릭스 예능 <먹보와 털보>의 인터뷰로 만난 노홍철은 ‘떠나고 싶을 때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여행’이 자신이 꿈꾸는 여행이라 했다. ‘너 커서 뭐 될래 했는데 뭐가 된 노홍철’은 지금도 그 꿈을 열심히 실천하며 사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어려서 TV 앞에서 코 박고 살았던 나도 ‘너 커서 뭐 될래’ 소리를 적잖이 들었다. 어른이 되어서도 ‘뭐가 되려고 이러느냐’는 얘기를 종종 들었는데, 결국 영화 잡지를 만들며 살고 있다. 어쨌든 뭐라도 되었다는 얘기다.
이번주 <씨네21>에는 좋아하는 것을 열심히 좋아하다 무언가 이룬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득 담겨 있다. 우선 <문라이즈 킹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프렌치 디스패치> 등을 통해 영화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확고한 스타일리스트 웨스 앤더슨 감독과 그의 신작 <애스터로이드 시티>에 대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유전> <
[이주현 편집장] 덕업일치의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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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참 천박해졌다. 이 낡고 지나치게 단정적인 문장을 써야 할까 잠시 멈칫했지만, 달리 표현할 길을 찾지 못하겠다. 더 맛나고, 더 멋지고, 더 화려하고, 더 높은 것을 얻으려는 데 거리낌이 없다. 죽어라 공부하고, 더 좋은 대학에 가고, 더 높은 학점을 따고, 더 좋은 데 취업하고, 더 빨리 승진하려는 이유는 그거다. 이들 여러 이유마저도 실은 한 가지 욕망으로 요약된다. 남한테 꿀리고 싶지 않다는.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데, 정작 중요한 건 꿀리지 않을 욕망인 시대.
2000년대 초반 유학 시절, 고국에서 찾아온 이들과 친분이나 일로 엮였을 때 받았던 느낌이 딱 그랬다. 신기하게도 그들은 하나같이 불만투성이였다. 묵는 호텔의 추레함에 대해, 먹는 영국 음식의 맛없음에 대해, 그래서 찾아간 한인식당의 비싼 가격에 대해. 그들은 현지에서 만난, 자신보다 싼 옷을 걸치고 있는 영국인을 대놓고 무시하지는 못했지만, 외양과 옷차림에선 거의 차이도 없는 한인식당 종업원을
[정준희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중꺾마가 아닌 중꿀욕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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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힘들 때마다 온갖 신통한 말들을 찾아다니지만 삶은 결국 늘 유행가 가사 한줄에 관통당하고 만다. ‘서른이 넘기 전에 결혼은 할는지’라는 충격적인 도입부를 떠올려보라. 서른도 안된 여자가 실연 좀 당했다고 부모에게 잔소리로 들을 법한 말을 자학처럼 뱉는다. 그런데 딱 10년이 지난 지금 어떻게 되었나? 그 가사는 역대 최고 수치라는 한국의 30대 미혼율을 예언하고 만다….
내 이성의 심의에 따르면 그 가사는 여러모로 옳지 않았다. 청소년이 듣기에도(조혼을 장려함), 서른이 듣기에도(불안을 조장함), 노인이 듣기에도(가소로움), 페미니즘적으로도(말할 것도 없음). 씨스타가 누구인가? 여름 평균 기온이 상승한 것은 그들의 해체 때문일 거라는 음모론도 수긍하게 만들었던 한국 최고의 걸그룹…! 재앙의 위기에서도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폭발적인 가창력과 퍼포먼스를 지닌 아이돌…! 그런데 그들의 노랫말은 나쁜 남자들만 만나다가 서른 넘어서까지 결혼도 못하는 노처녀가 되면 어쩌나 고민
[복길의 슬픔의 케이팝 파티] 서른이 넘기 전에 결혼은 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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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왜 무서운 이야기를 좋아할까. 아이들은 왜 즐겁고 행복하고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니라 무섭고 이상한 이야기에 더 귀를 쫑긋 세울까. 공포에의 매혹을 심리학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설명할 지식은 없지만, 아이들이 무서운 이야기를 즐기는 것은 겁쟁이가 아니라는 증명 혹은 어른스러움을 입증하는 행위 혹은 담력 테스트인 측면도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고 보면 나는 심장을 죄어오는 공포를 즐길 줄 모르는 겁쟁이였다. 겁쟁이인 걸 들키는 것도 싫어하는 겁쟁이였지만 어릴 적 <전설의 고향> 중 <내 다리 내놔> 편을 봤을 때의 충격과 뭣 모르고 봤던 <오멘>의 공포는 쉽사리 떨칠 수 없었다. ‘김세인의 데구루루’를 연재하고 있는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의 김세인 감독은 자신이 괴담 마니아였다고 이번호에 실린 에세이 ‘무서운 이야기’에서 밝힌다. (“중학생 때 흔히 그렇듯 비 오는 날이면 선생님을 설득해 수업 대신 무서운 이야기를 했다. 그 순간만
[이주현 편집장] 괴담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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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이 아니라 응용통계라고 부르자. 세계적으로 유명한 SF 작가 테드 창이 최근 <파이낸셜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는 인공지능 개발자나 기자들이 챗지피티와 같은 챗봇을 “나”와 같은 인칭 대명사로 칭하게 하거나 인공지능 기술을 묘사할 때 “학습”이나 “이해” 등과 같은 인간 중심적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인공지능에 대한 환상을 만들었다고 지적한다. 응용통계라니, 그동안 인공지능을 둘러싸고 과도하게 불붙었던 기대와 두려움 둘 다에 찬물을 끼얹는 이름이 아닌가. 테드 창의 표현을 빌리면 “섹시하지 않은” 이름이기 때문에 아마 아무도 사용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마침 또 이런 소식들이 들려온다. 자신을 본뜬 ‘인공지능 여자 친구’ 서비스를 출시한 미국의 인플루언서. 인공지능 앱에서 만난 가상 남성을 완벽한 남편으로 소개하는 여성. 챗지피티를 이용해서 나만의 여자 친구를 만드는 걸프렌드지피티 프로젝트를 개발하는 남성. 지난 화에서 이미 밝혔듯이 나는 인간을 닮은
[임소연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윌슨도 아니고 사만다도 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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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기사를 쓰기 위해 어디론가 떠나는 삶은 일종의 환상이다. 현실은 하나의 기사를 위해 모든 것을 아껴야 한다. 제주에서의 삶도 그랬다. 특별한 것도 없이 나는 취재를 위해 가장 저렴한 숙소를 예약하고, 한잔에 2천원하는 커피를 주는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다, 하루 종일 취재를 위해 근방을 돌아다니다 잠이 든다. 이것을 여행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것은 그저 일일 뿐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환상만 찾는다. 그리고 여행 기사는 어떻게든 환상을 만들어야 한다. 정작 환상을 만드는 에디터 대부분은 환상적이지 못한 삶을 살지만. 이제 더이상 나는 환상을 바라지도, 기대하지도 않는다. 벌어지는 삶의 순간들에 그럴 수 있지라며 끄덕이고, 예상하지 못하는 사건에 그럼 그렇지 하며 순응할 뿐이다. 에디터에게 중요한 건 멋진 글솜씨나 찬란한 묘사 따위가 아니다. 마감을 지키는 능력, 충분한 수면 시간, 오래도록 걸을 수 있는 여유, 고요와 적막.
영화를 찍고 있는 다름씨와 함께 제주에 있는 한 예
[김민성의 시네마 디스패치] 지역과 여행 섹션: 제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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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플래시>의 공통점은? 모두 멀티버스(다중우주)를 활용하는 영화들이라는 점이다. 멀티버스의 개념을 요약하면, 내가 살고 있는 우주 말고 또 다른 우주에 내가 아닌 내가 살고 있다는 것이다. 시간여행이 유행이었던 시대가 저물고 이제는 우주와 우주를 가로지르는(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이야기가 유행하고 있다. 멀티버스 서사의 유행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시간여행을 통해 과거 혹은 미래의 나를 만나는 것과 우주의 차원 이동을 통해 또 다른 나를 만나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두 경우 모두 동일한(혹은 동일하다고 보이는) 자아와의 대면, 즉 거울 효과를 통한 셀프 코칭의 서사라는 점에서 유사하다. 반면 전자는 현재로의 수렴과 시간의 유한함을 얘기한다면 후자는 시공간의 우주적 확장을 통한 무한과 팽창의 서사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우리는 유한한
[이주현 편집장]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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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요즘 윤석열 그분을 대통령으로 뽑은 사람들이 싫어 죽겠어요.”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푸념이다. 국민의힘 극성 지지층은 “무조건 민주당 찍는 좌파 콘크리트 40%는 인간이냐”고 조롱한다. ‘1찍(기호 1번 민주당 찍은 사람)’, ‘2찍(기호 2번 국민의힘 찍은 사람)’의 종특(종족 특성)을 운운하는 글과 말이 난무한다. 2022년 대선 직후 만난 유권자 몇몇에게 들은 말이다. “저는 국민의힘 지지자입니다만, 이재명에게 투표했어요.”(30대 초반 여성 A) A는 ‘2번’이 국정을 운영할 최소한의 자세도 안됐다고 보았다. ‘법인카드 유용’에 충격을 받았지만 ‘허위 이력’과 ‘주가 조작 의혹’에 더 경악했단다. “제 자신을 진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윤석열 찍었습니다.”(20대 후반 남성 B) 그는 조국 사태와 대장동 의혹을 거치며 ‘이번에는 1번이 져야 한다’고 생각을 굳혔다. 그는 여소야대가 여대야소보다 훨씬 낫다고 봤고 앞으로도 여소야대이길 희망했다.
세상에는 n개의
[김수민의 디스토피아로부터] 1찍과 2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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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 앞에서 글을 쓰려고 했다. 계획을 들은 사람들은 ‘그곳은 그럴 만한 곳이 아니에요!’라며 손사래를 치며 웃었다. 익히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정신없는 관광지인 것을 확인했던 터라 그곳이 글을 쓰기에 적합하지 않은 공간인 것은 나 또한 알고 있었다. 그래도 화산 앞에서 글을 써보고 싶었다. 또 ‘화산 앞에서 글을 쓰려고요’라고 말해보고 싶었다. 어쩐지 그렇게 말하는 것이 스스로 좀 근사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자아도취에 빠져 케이블카를 타고 산등성이를 한차례 넘자 정거장에 도착했다. 예상했던 것보다도 더 별 볼 일 없었다. 그날따라 날이 좋아서 역시 나는 운이 좋다며 신나게 숙소를 나섰는데 날이 심하게 너~무 좋아서 내리쬐는 태양 아래 증기도 연기도 신묘한 기세도 아무것도 없이 거대한 공사판 같은 날것의 흙바닥만 먼지를 피우고 있었다. 뭘 해야 할지 몰라 일단은 수명을 7년 늘려준다는 검은 달걀을 사서 먹었다. 따가운 햇볕 아래서 먹자니 목이 막혀 수명이 더 줄어드는 기분이었다.
[김세인의 데구루루] 일곱시에 열두번 우는 뻐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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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무주산골영화제에 다녀왔다. 시외버스에 몸을 싣기 전 터미널에서 김밥까지 사먹었더니 그야말로 제대로 ‘영화 소풍’을 떠나는 기분이었다. 영화제 행사장 일대를 어슬렁거리며 오랜만에 만난 영화인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것도 좋았지만, 사람들이 모인 곳을 조금만 벗어나면 인구밀도가 급격히 낮아지는 소도시의 특성상 발길 닿는 대로 이동하다 온전히 혼자 된 기분을 만끽하는 일이 무엇보다 좋았다. 그러다 유난히 키 큰 나무 한 그루를 만났다. 다가가 안내 푯말을 보니 수령이 500년이다. 무주에서만 500년을 산 이 나무는 다른 땅, 다른 하늘이 궁금하지는 않았을까. 나무가 품은 경이로운 시간에 감탄하며 무주를 산책하자 어쩐지 <박하경 여행기>를 찍는 기분이 들었다.
미야케 쇼 감독도 신작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을 들고 무주산골영화제를 찾았다. 어깨너머로도 그를 보진 못했지만 이번주 특집 기사를 읽으며 그를 꽤 잘 알게 된 느낌이다. <씨네21>
[이주현 편집장] 청춘영화의 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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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식간이었다. 채도와 명도가 높은 파란색 파도가 휘몰아쳤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비슷한 느낌이었는지 주위 사람들도 웃거나 탄성을 질렀다. 공항 건물이 살짝 흔들린 것도 같았다. 귀국한 아티스트 J가 공항 출구에서 자신의 차로 향하는 시간은 10여초였다. 몇 시간을 기다린 팬들이 그를 따라가며 환호한 것은 물론이고, 나처럼 누군가를 마중 나왔다가 난데없이 그 파도를 맞은 사람들도 왠지 들떠 웅성거렸다. 누군가 말했다. “와, 정말 대단하다.” 그건 K팝 스타의 인기라든가 팬들의 ‘열성’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었다. 갑자기 공기를 눈부신 것, 차가운 것, 또는 열렬한 것, 간지럽고 조금 눈물 나는 것으로 만들어버린 사랑이 대단하다는 뜻이었다. 이만한 에너지를 가진 건 사랑밖에 없다.
사실 팬덤 문화에 대해서라면 나도 모르지 않는다. 한반도의 팬덤 역사에서 나는 신석기인쯤 될 것이다. 90년대 초 ‘뉴 키즈 온 더 블록’의 열풍이 시작되기도 전, 종로 어느 레코드 가게에서 재
[김소영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사랑의 기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