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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달력을 들춰본다. 노동절인 5월1일은 월요일, 어린이날인 5월5일은 금요일. 이러면 대체 5월 첫째 주는 어떻게 마음을 다잡고 일해야 하는가. 가만, 5월의 황금연휴를 이제야 눈치챈 건 나뿐인가. 포털 사이트에 ‘5월 황금연휴’를 검색하니 제주행 비행기표가 일찌감치 동났다는 기사가 우수수 뜬다. 놀지 못할 운명을 직감한 내 마음도 우수수 떨어진다. 아니다. 어차피 매년 4월 말 5월 초는 전주국제영화제(이하 전주영화제)와 함께했고, 올해도 이변은 없을 것이다. 긍정 회로를 가동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전주에 가면 좋은 영화와 맛있는 음식과 반가운 사람들이 있다. 콩나물국밥과 모주 한잔, 가맥집에서 청양고추간장마요 소스에 찍어 먹는 황태포는 언제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전주 경기전에서 쉬엄쉬엄 광합성하며 산책하는 것도 좋아한다. 어느새 전주는 여행 로드맵이 자연히 그려지는 친근한 도시 중 하나가 되었다.
무엇보다 올해 전주에서 만날 영화들에 대한 설렘이 크다. 진지하고 아름답
[이주현 편집장] 5월 황금연휴도 영화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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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을 찢어놓는 것은 언제나 행복의 낱말들이다. 사랑, 축하, 벚꽃, 여행 같은 말들. 소박하고 아름다운 말들이 그렇게 나를 낭떠러지로 끌고 가곤 했다. 예를 들면 내가 빌리지도 않은 돈을 갚아야 하던 시절에 그랬다. 한번도 거래한 적 없는 은행에서 걸려온 독촉 전화를 받느라 사무실을 뛰쳐나가던 시절에는 가족에 대해 생각하는 게 두려웠다. 가족이 두려웠다.
그 무렵 어느 날, 친구가 대여섯살 된 아이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뒷모습을 본 적이 있다. 아무렇지도 않은 그 장면이 눈이 아플 만큼 부러웠다. 다시는 그 길로 다니지 않았다. 나의 좌절과 슬픔이 남의 희망과 기쁨을 해칠 것 같았다. 적어도 나 자신은 해쳤다. 많은 시간이 흘렀고 그럭저럭 이겨냈으며 그보다 더한 일들을 겪기도 했다. 이제는 확실한 행복을 느낄 때도 있지만, 저 아래엔 그때의 서늘함이 남아 있다. 웃을 때 조심하게 된다.
봄은 왜 매번 갑자기 올까. 마음이 아직 겨울에 있는 사람에게 봄은 어려운 계절이다. 밝
[김소영의 디스토피아로부터] 꽃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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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외계인, 아기, 임신, 자신, 복제, 출산, 탈피, 수영장, 반복…
인터넷을 처음 사용할 수 있게 된 10살 무렵부터 나는 종종 위의 키워드들을 나열해 검색했다. 위 키워드들은 텔레비전으로 본 어느 영화 속 한 장면이자 아주 긴 시간 간헐적으로 꿨던 꿈 장면의 요소이다. 중학생 때 수업이 시작하기 전 쉬는 시간에 컴퓨터실로 뛰어가 학교 컴퓨터로, 대학 신입생 때 도서관 컴퓨터로, 늦은 새벽 카페에서 과제를 하다 노트북으로, 지하철을 타고 가며 휴대폰으로 장면의 근체를 찾기 위해 검색했다. 이 미스터리는 장시간에 걸쳐 불현듯 얼굴을 드러내고 검색창에 나를 풍덩 빠뜨렸지만 재능 없는 탐정인 나는 여전히 어떤 영화의 장면인지 알지 못한다.
유치원 등원 중 작은 사고가 난 이후로 어린이 시절은 집에서 홀로 영화를 보며 지냈다. 영화 채널에서 나오는 영화들이었는데 팀 버튼 감독의 영화들, <애들이 줄었어요> 같은 가족 코미디 영화, <죽어야 사는 여자> &
[김세인의 데구루루] 굴러가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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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근영은 별 미동도 없이 정물처럼 앉아 임수정을 기다렸다. <장화, 홍련> 이후 두 사람이 사석에서 따로 만난 적이 없다고 하니 실로 오랜만의 만남인데도 문근영은 들뜬 내색 없이 차분히 ‘언니’를 기다렸다. 거침없이 반가움을 표한 쪽은 오히려 임수정이었다. 초여름 같았던 봄날의 더운 공기를 상쾌하게 가르며 두팔 벌려 문근영과 인사를 나눈 임수정은 곧장 종달새처럼 반가움의 말들을 쏟아냈다. 그런 언니를 문근영은 촉촉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런 자리를 마련해줘서 심장이 콩닥콩닥했어요. 처음엔 ‘무슨 이야기로 시작하지?’라고 생각했는데 만나는 순간 모든 걱정이 사라졌어요.”(임수정) “20년 전 언니랑 지금 언니가 너무 똑같아서 울컥했어요.”(문근영) 문근영의 눈동자에 물기가 고인 순간을 몇번 목격했지만 다행히 이날 두 사람은 내내 웃으며 과거와 현재로의 시간 여행을 왕복했다.
<씨네21>이 창간 28주년을 맞아 반가운 만남을 주선했다. 임수연 기자가 기사에 썼
[이주현 편집장] ‘장화, 홍련’, 20년의 시간을 거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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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에 기고를 하게 되었다는 나의 자랑에 그러던지, 라며 심드렁해하던 친구에게 코너의 이름이 ‘디스토피아로부터’라고 하자 눈을 반짝이던 것이 기억난다. 영화광은 아니지만 디스토피아 장르는 빠지지 않고 챙기는 그에게 중요했던 것은 칼럼의 내용보다 제목이었던 것이다. 왜 그런 영화들을 좋아하냐고 물으니 진지한 얼굴로 “모두 다 함께 망했으면 좋겠어”라는 답이 순식간에 나와서 실소가 나왔다. 하지만 곧 살면서 누구나 한번쯤은 공감할 수밖에 없는 대답이란 생각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넷플릭스에 같은 키워드를 검색해보면 수많은 영화들이 우르르 쏟아지는 것을 보아 친구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 상당한 듯하니 앞으로도 이 시장은 굳건할 것임을 짐작게 해준다. 섬네일을 하나씩 들여다보면 우리가 상상한 암울한 미래의 원인은 제각기 다르다. <투모로우>처럼 기상이변으로 빙하로 뒤덮일 수도, <블랙 미러>처럼 초연결 사회에서 각자의 정보가 기록되고 감시
[송길영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미래는 디스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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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스럽지만 한번쯤은 내 소설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내가 쓴 장편소설 <그날, 그곳에서>는 원전 사고로 엄마를 잃은 자매가 엄마를 되살리기 위해 과거로 시간 여행을 반복하는 이야기다. 이야기 속 주인공인 해미와 다미는 일종의 웜홀을 통과해 사고 현장으로 되돌아간다. 하지만 엄마를 구출하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고, 자매는 몇번이고 같은 재난의 순간을 반복해 경험하게 된다.
처음에 이 이야기는 단편으로 쓰였다. 그 버전에서 이 소설은 ‘구조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구조를 방해하는 이야기’였다. 더 큰 재난을 막기 위해 누군가의 생존을 가로막고 희생을 강요하는 이야기. 억지로 완성은 했지만 쓰는 내내 어딘가 어색하고 맞지 않음을 느꼈다.
장편으로 소설을 확장하며 나는 <그날, 그곳에서>를 ‘구조하는 이야기’로 고쳐 썼다. 주인공을 자매로 바꾸고, 구조 대상을 엄마로 설정했다. 그러자 당황스러운 일이 벌어졌다. 이 소설이 2014년 4월의 어떤 사건을 아주 강
[이경희의 오늘은 SF] SF로 세계를 치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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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블루베리가 들어간 견과류를 먹으며 눈 건강과 뇌 건강을 챙긴다. 홍삼도 한포 뜯는다. 이주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체력 관리가 필요하다. <씨네21>은 올해도 창간 28주년을 기념해 평소보다 두툼하고 특별한 잡지를 선보인다. 20세기의 기운을 가득 담은 촌스럽기도 멋스럽기도 한 이번호의 제호는 <씨네21>의 시작을 알린 첫 번째 제호 디자인이다. ‘첫’ 제호 디자인을 특별히 꺼내본 이유는 역시나 초심 때문이다. <씨네21>의 초심을 알기 위해 1호를 찾아 읽어본다. 잡지의 마지막 쪽에 실린 ‘편집자에게 독자에게’ 지면의 마지막 문장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씨네21이라는 제호가 누구든 영화에 관한 정보나 비평을 말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그로부터 28년이 흐르는 사이 <씨네21>은 ‘영화에 관한 정보나 비평을 말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이 되었나? 그보다도 요즘 사람들은 영화에서 무엇을 기대하
[이주현 편집장] 다시 초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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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일본의 로봇공학자 모리 마사히로는 인공물이 사람을 닮을수록 호감도가 증가하다가 어느 순간 오히려 사람을 닮은 모습이 불쾌함을 불러일으키게 된다는 가설을 내놓았다. X축에 표시된 인간과의 유사성이 50%를 넘어가면서 호감도를 나타내는 Y값이 갑자기 음(-)의 영역, 즉 비호감의 영역으로 떨어지며 그래프는 움푹 파인 골짜기 같은 모양이 된다. 어설프게 인간을 닮아서 오히려 기괴해 보이는 로봇이나 사이보그를 두고 ‘불쾌한 골짜기’에 빠졌다는 표현을 쓰는 이유이다. 예를 들어 <알리타: 배틀 엔젤>에서 컴퓨터그래픽으로 만들어진 알리타의 과하게 큰 눈은 ‘예쁘장한 소녀’ 사이보그를 불쾌한 골짜기로 미끄러지게 만든다.
‘대유쾌 마운틴’은 이 불쾌한 골짜기를 지나 인간과의 유사성이 100%에 근접하여 호감도가 다시 급격히 상승하는 부분을 가리키는 인터넷 밈이다. 나는 최근에야 대유쾌 마운틴이라는 용어를 알게 되었다. 원하는 외모와 복장, 포즈 등을 텍스트로 주면 그에 딱
[임소연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불쾌한 골짜기 너머 ‘대불쾌 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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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은 작가의 에세이집을 읽었다. <당신께>는 같은 제목으로 독자들에게 보내던 뉴스레터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한편의 글이 한통의 편지가 되는 구성을 가지고 있다. 언제나 그렇듯이 공들여 쓴 글이다. 그의 글은 술술 읽히면서도 왠지 쓸쓸하다가 웃기고 힘이 나곤 한다. 책을 펼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페이지가 슬금슬금 넘어가는 바람에 열심히 오랫동안 만든 음식을 한입에 홀랑 먹어버린 것만 같았다. 괜히 감자튀김 봉투를 뒤집고 손가락을 한번 빨게 되는 기분이다. 항상 그랬지만 유독 이번에 더 그렇게 느낀 것은 왜일까. 정확한 이유를 알 순 없지만 전자책으로 읽었던 것이 어느 정도 작용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새로 산 아이패드에서 전자책으로 보는 <당신께>는 놀라웠다. 두쪽을 모아 읽으니 작은 크기의 책을 펼친 것과 비슷해서 이질감이 들지 않았다. 화면의 해상도나 터치에 반응하는 것도 내가 알던 것보다 자연스러웠다. 한편의 글이 보통 두어 페이지 정
[윤덕원의 노래가 끝났지만] 연재가 끝났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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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바이는 추리의 기본이다. 사건 발생 시각에 어떤 사람이 다른 장소에 있었다는 말은 곧 그가 사건 장소에 없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20세기 초에 등장한 과학 이론인 양자 이론은 알리바이가 모든 물체에 대해서 항상 옳은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바탕에 깔고 있다. 양자 이론은 무엇이든 정밀하게 따져 계산할 때에는 한 물체가 동시에 두 군데 이상의 위치에 있을 수도 있다고 치고 계산하는 방식을 택한다. 상식을 초월하는 생각이고, 이해하기 어려우며, 그게 말이 되나 싶어 어디인가에 잘못 생각한 것이 있을 것 같다는 의심도 든다. 그러나 긴 세월 동안 양자 이론은 검증을 견뎌냈고 지금은 가장 믿을 만한 과학 이론으로 자리 잡고 있다.
양자 이론과 함께 현대 과학의 두축으로 인정받는 다른 이론으로 상대성이론이 있다. 이해하기 어렵기로는 상대성이론도 양자 이론 못지않다. 상대성이론은 돌을 허공에 던지면 땅에 떨어진다는 아주 단순한 움직임에 대해서도, 돌의 속도와 날아간 거리를 정밀하게 계산하기
[곽재식의 오늘은 SF] 양자 중력 이론으로 보는 별나라 삼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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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생각하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최고작 5편은 무엇인가요?’ 스필버그의 유년기가 담긴 자전적 영화 <파벨만스> 개봉을 앞두고 국내의 영화감독 및 제작자들에게 설문을 청했다. 영화 창작자의 시선으로 본 스필버그의 역작은 무엇인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역시나 “스필버그 감독님 영화 중 다섯편만 뽑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일 줄이야. 진짜 고문도 이런 고문이 없다”(류승완 감독)는 답이 날아왔다. 끝내 순위까지는 못 정하겠다며 무순으로 응답한 이들도 여럿이었다. 바쁘기로 소문난 감독들이 고통스러워하면서도 기꺼이 응답해준 건 스필버그가 영화인들이 존경해 마지않는 ‘감독들의 감독’이기 때문이리라. 설문의 결과도 흥미로웠다. <죠스>와 <E.T.>는 상위권에 포함되었지만 스필 버그에게 7개의 오스카 트로피를 안긴 <쉰들러 리스트>는 10위 안에 들지 못했다. 197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스필버그의 초창기 영화부터 비교적 최근작까지, 반세기를 아
[이주현 편집장] 당신의 스필버그 영화 베스트5는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