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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년이 놀라웠다면 앞으로 20년은 공상 과학이나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메타버스의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2020년 10월, 그래픽카드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가진 엔비디아의 CEO 젠슨 황은 인간의 아바타와 AI가 공존하는 가상현실 공간 메타버스가 인류의 미래를 만들어갈 것이라고 선언했다. 가상현실 세계에 접속해 도시를 건설하고 지인들과 교류하고 콘서트와 이벤트를 위해 모이는 것이 일상이 될 거라는 그의 말은 혁신적이었지만 피부에 와닿지는 않았다.
그로부터 채 1년이 지나지 않은 지금, 메타버스는 다가올 미래가 아니라 상당 부분 현실이 된 것처럼 느껴진다. 적지 않은 기업들이 메타버스 플랫폼으로의 출근을 권장하고 있으며 지난해 연말에는 현실 세계의 아이돌과 가상 세계의 아바타로 나뉘어 활동하는 걸그룹(에스파)이 등장했다. 돌아오는 광복절에 메타버스 게임 <마인크래프트>에서 독립운동 이벤트를 연다는 인천시의 사례나 메타버스 내에 캠퍼스를 개설하는 여
[장영엽 편집장] 영화는 메타버스를 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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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달간 좌파 에세이를 쓰면서 진보라는 개념과 좌파라는 개념에 대해서 깊게는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기회를 가졌다. 좌우 구분이 기본이고, 진보는 보완적으로 쓰이는 개념이다. 우리에게는 북한이라는 민족사의 비극과 함께 보도연맹 사건으로 좌익으로 몰리면 그냥 사형시키던 시절이 있었다. 좌파라는 말을 쓰지 못했고, 그러다 보니 진보라는 애매한 개념으로 자본주의 모순에 대처했다. 보수는 상대적으로 정의하기가 쉽다. 그렇지만 진보는 정의하기가 아주 어렵다.
이 고민을 하다가 AI라면 어떻게 생각할까, 그런 질문을 해보았다. 영화 <아이, 로봇>에 나오는 AI인 비키(VIKI)는 인류의 미래에 대해서 고민하다가 인간을 통제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유사한 결론은 <매트릭스>에서 이미 본 적이 있다. 인간을 살려주겠다는 약속을 어떻게 믿느냐는 네오의 질문에 소스 코드는 “우리는 인간이 아니니까”, 이런 뒤통수 때리는 얘기를 한다.
현실의 세계에
[우석훈의 디스토피아로부터] AI 시대, 좌파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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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 화천공사 / 감독 하길종 / 상영시간 102분 / 제작연도 1975년
1970년대 한국영화의 대표작을 단 한편만 꼽으라면 그 자리에는 <바보들의 행진>이 있어야 할 것 같다. 당시 한국 사회의 경직된 분위기, 그로 인한 참담한 제작 환경을 몸소 새기고 있는 이 영화는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대표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화분>(1972)과 <수절>(1973)의 흥행 실패로 절치부심했던 하길종은 최인호의 원작을 각색하고 연출한 <바보들의 행진>이 흥행과 비평에서 찬사를 받으며 충무로 감독으로서 확실한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1970년대 청년들의 한없이 밝은 기운과 끝없이 우울한 감정을 그리고 불우한 시대의 공기까지 포착해낸 걸작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영화적 완성도를 충분히 성립시키지 못한 채 관객과 만났다. 영화는 117분으로 완성됐지만 20분 가까이 장면이 잘려나간 99분으로 개봉한다. 파편적으로 에피소드가 진행되다 그마저도 후반부에는
[정종화의 충무로 클래식] 검열을 딛고 선 한국의 뉴시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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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는 곳은 강원도 평창이다. 강원도의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잠시나마 일상에서 벗어난 한때를 보내고 있다. 최근 이곳에서는 평창대관령음악제가 한창인데, 연주자의 숨소리와 미세한 제스처의 변화까지 시시각각 느낄 수 있는 라이브 공연의 매력을 실감하는 중이다. 연출자의 의도대로 보여줄 것과 보여주지 말아야 할 것을 명확히 구분하는 ‘편집의 예술’인 영화와 달리 클래식 음악제의 공연은 그야말로 각본 없는 드라마다. 동료 연주자와 눈을 맞추며 타이밍을 조절하고, 페이지를 잘못 넘기거나 (악기를 위한) 어깨 받침이 떨어지는 등의 예기치 못한 난관에 물 흐르듯 대처하는 연주자들의 집중력과 유연함으로부터 새롭게 얻게 되는 자극이 있었다.
익숙한 일상으로부터 한 발짝 벗어날 때 새삼 눈에 보이는 것들이 있다. 8월 12일 개봉하는 <생각의 여름>은 공모전에 출품할 마지막 시를 완성하지 못한 채 무작정 거리로 나서는 시인 지망생의 모습을 비추는 영화다. 기다렸던 시상이 떠오르기
[장영엽 편집장] 잠시, 쉼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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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할 게 있다. 나는 이중생활을 하고 있다.
무슨 소리냐면, 진짜 무슨 스파이로 이중생활을 하고 있다거나 그런 건 아니고, 사람들이 잘 상상하지 못하는 취미를 갖고 있다는 뜻이다. 주야장천 앉아서 책만 읽고 글만 쓸 것이라는 사람들의 짐작과는 달리 나는 스포츠를 매우 좋아하고, 꽤 오랫동안 춤을 춰왔다. 춤의 종류가 바뀌기도 했고, 바빠서 놓았던 적도 있지만 춤을 좋아하지 않았던 적은 없다. 7살 때 유치원에서 처음 발레를 배우고, 13살 때 힙합 댄스를 처음 배운 이후로 한번도.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 춤추는 영상을 올려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는 일을 무슨 연례행사처럼 하고 있다. 책으로 가득한 배경 앞에서 조곤조곤 말하는 것만 봐왔던 신규 구독자들은 어김없이 놀란다. 몇달 전에 올렸던 스트리트 댄스 영상에는 ‘당신 누구야… 김겨울 어디 갔어…’라는 댓글이 달려 한참 웃었다. 보통은 서브 채널에만 춤 영상을 올리지만 이번엔 본채널에도 아주 짧게 몇초의 영상을 올렸고, 댓글창에
[김겨울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작가의 이중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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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게임인가 영화인가, 지금껏 이런 콘텐츠는 없었다’. 이다혜 편집팀장이 이번호 기획 기사를 위해 멋지게 뽑아준 제목이다. 게임 회사 크래프톤이 얼마 전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공개한 영상 콘텐츠 <그라운드 제로>와 <미스터리 언노운>을 보면 기사의 제목처럼 이들 작품을 어떻게 명명해야 할지 혼란스럽다.
일례로 크래프톤의 인기 게임 <PUBG: 배틀그라운드>의 기원을 다루는 단편 <그라운드 제로>는 김지용 촬영감독(<남한산성> <밀정>)이 감독과 각본, 촬영을, 배우 마동석이 제작과 주연을 맡고 모그 음악감독과 허명행 무술감독 등 영화 스탭들이 대거 참여한 작품으로 흡사 한국 상업 액션영화의 한 대목을 보는 듯하다. 게임의 스토리와 맵이 단편 영상과 유기적으로 연결되며 ‘배틀그라운드’ 게임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호기심을, 팬들에게는 세계관을 알아가는 즐거움을 준다.
<씨네21>은 지난해에도
[장영엽 편집장] 너의 이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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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지 <도무스 코리아>와 3년 기한으로 진행해온 “꿈꾸다 만들다 그리고 묻다” 기획이 마침내 끝났다. 최욱, 이희문, 김보라, 장영규, 송은이, 김보람, 지니 서 등 자신만의 것을 남다르게 만들어오고 있는 분들을 만나 그들이 세운 뜻과 고집스러울 정도로 꾸준한 실행의 비결을 묻는 인터뷰 코너였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잡지를 핑계로 만남을 청해 꼭 뵙고 싶었던 분들의 노하우를 엿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는 나에겐 행운과 같았다. 호기심에 무모한 질문을 마구 해대며 몇 시간씩 이야기를 듣는 시간은 너무나 즐거웠으니, 역시 사심이 투영된 일이 성과가 큰 법이다. 바둑의 대가에게 지도 대국을 받은 것처럼 내 문제 중 많은 부분이 해결될 뿐 아니라 근원적으로 제거되는 느낌도 들었다. 언어를 사용할 수 있도록 진화한 우리 종은 다른 사람이 미리 한 고민의 답을 건네받고 그가 한 수고로움을 면제받을 수 있는 엄청난 혜택을 선물처럼 얻었다.
돌이켜보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워낙 새
[송길영의 디스토피아로부터] 三人行必有我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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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 국제영화흥업 / 감독 이장호 / 상영시간 102분 / 제작연도 1974년
이장호는 그 누구보다 화려하게 데뷔했던 감독이다. 20대 때 만든 <별들의 고향>(1974)은 개봉관인 국도극장에서만 46만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그때까지의 한국영화 최고 흥행 기록을 세웠다. 이 영화의 성공은 기성 제작 시스템에서 나온 결과가 아니었다. 신상옥의 연출부 출신이었지만 감독이 카메라를 직접 잡는 특유의 촬영 현장에서 실질적인 연출 수업을 받지 못했던 이장호는 감독 데뷔의 기회를 잡은 순간 백지 상태의 자신을 깨닫고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이것이 한국영화의 새로운 분기점을 만들어낸 배경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렵게 원작 판권을 확보한 일부터 촬영 현장에서의 즉흥적인 연출, 편집실에서 비로소 완성된 구성 그리고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의 창작까지 배짱 반, 행운 반으로 돌파한 첫 연출 행보는 이젠 꽤 알려졌지만 여전히 흥미로운 스토리다.
불세출의 데뷔작 <별들의 고향>
[정종화의 충무로 클래식] 신인감독 이장호의 역동적인 장르 탐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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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말, 여름 휴가철을 앞둔 한국영화계의 분위기는 비장하다. 코로나19 확산세가 주춤한 틈을 타 신속하게 개봉을 추진했던 지난해의 여름영화, <반도>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오케이 마담>과는 상당히 다른 분위기다. <블랙 위도우>가 열어젖히고 <랑종>이 바통을 이어받은 올해 여름 영화시장은, <모가디슈> <방법: 재차의> <싱크홀>이 공개되기 전 코로나19 확진자 수 역대 최다라는 난관에 부딪혔다. 그러나 더이상 물러날 곳은 없다는 게 영화 관계자들의 생각인 것 같다.
한국상영관협회(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와 한국IPTV방송협회(KT,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 홈초이스(케이블TV VOD)는 대작영화 <모가디슈>와 <싱크홀>이 제작비 50%를 보전할 때까지 티켓 매출을 가져가지 않겠다고 밝혔고, <모가디슈>와 <방법: 재차의>는 7월
[장영엽 편집장] 여름의 승부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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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만한 영상을 찾아 스트리밍 사이트의 목록을 훑는다. 새로고침을 할 때마다 ‘시원한 여름을 위한 공포 특집’, ‘혼밥족을 위한 드라마’ 같은 분류명이 붙은 포스터 목록이 나타난다. 여기도 남자, 저기도 남자, 여기는, 어디 보자, 남자 다섯에 여자 하나…. 몇번이나 화면을 다시 당겨 보다가, 결국 포스터에 남자만 있어도 장르상 납득은 된다 싶은 선협물을 고른다. 은거해 음악으로 마음을 나누며 산다는 노인이 네명 등장한다. 남자 셋에 여자 하나다. 심지어 남자1은 현을 타고 남자2는 무공이 높고 남자3은 높은 벼슬을 했고 어쩌고인데, 여자1은 남자1의 아내란다. 이 조연 네명은 2화 만에 습격을 받고 사라졌지만, 개운치 않은 마음은 남는다.
성비가 맞지 않는 콘텐츠는 더이상 즐겁지 않다.
의식해 추구한 변화가 아니다. 소비자운동적인 행동도 아니다. 재미있는 것은 보고 재미없는 것은 피하다가 어느 순간 깨달았다. 전체 등장인물들의 생물학적 성비가 맞지 않는 영화나 드라마, 남자들끼
[정소연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설정 구멍, 재미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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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아무래도 글을 더 쓰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담당을 맡고 있는 김성훈 기자에게 문자를 보냈다. 새 앨범 작업과 여름 공연 준비를 동시에 하면서 매번 능숙지 못한 글을 쓰는 일이 버거웠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글을 쓰는 자신과 음악을 하는 자신은 아주 다른 사람처럼 느껴진다. 일종의 변신을 해야 하는 셈이다. 그런데 그 스위치가 정확하게 작동하지 않는다. 오래되어서 작동이 되다 말다 하는 기계에 시동을 거는 것처럼 컴퓨터를 켜놓은 채로 한숨을 쉬면서 밤과 낮이 바뀌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새로운 모드가 켜지기라도 하면 다행인데 문제는 글 쓰는 모드에 들어선 다음에 있다. 도무지 자신감이 생기지 않는 것이다. 그 이유는 잘 알고 있다. 나는 나의 글에 자신이 없고, 지면은 언제나 과분한 자리이기 때문이다.
내가 가진 창작 능력이 아주 제한적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것으로 지금껏 밥벌이를 해온 것이 용하다고 생각할 정도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것에
[윤덕원의 노래가 끝났지만] 수제비처럼 쓰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