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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 힘으로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운 신문을 만든다는 건 80년대 말, 믿기 힘들 만큼 엄청난 창조적인 꿈이었다. ‘6만주주’가 성금을 모아서 정말로 하나의 신문을 만든 사건은 세계언론사에도 없는 일이었다. 프랑스의 <르 몽드>도 시민이 만든 신문은 아니었다. 나치에 협력한 신문사를 정부가 접수하여 양심적 지식인들에게 불하해서 태어난 신문이었고, 스페인의 <엘 파이스>는 프랑코 독재에 저항하던 이들이 만들었다지만 한국과 같은 폭넓은 열망과 지지 위에서 출발하지는 않았다. 알다시피 한국 민주화운동의 결실이라고 해도 과히 틀리지 않는 그 신문이 <씨네21>의 모태이다.출발 때의 목적과 의지가 출발 이후 과정 모두를 물론 합리화하지는 않는다. 다만 어떠한 시행착오를 했더라도 본질을 놓치지 않으려는 노력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 이 신문의 하루하루에는 애초 신문을 탄생시킨 우리 사회의 이상을 발전시켜가는 의무와 권리가 새겨져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제는 시민의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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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VS 영화] 미녀 삼총사
[만화 VS 영화] 미녀 삼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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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취재를 마치고 도쿄로 돌아가는 길에 <키네마순보>의 전 편집장 겸 현 사업담당 책임자인 가케오씨가 <씨네21> 사무실에 들렀다. 그는 일본, 중국, 이란 등을 거쳐온 아시아영화열이 앞으로 몇년 동안 한국 위에 머물 거라고 관측하는 영화평론가다. 그는 <쉬리>나 <공동경비구역 JSA>처럼 할 얘기를 하면서 대중을 휘어잡는 영화가 불행하게도 일본에는 없다고 아쉬워해왔다. 그런 그가 진지하게 물었다. 왜 한국에는 허우샤오시엔이나 에드워드 양이 없는 것일까. 사회 자체가 정체돼버려서 영화소재도 빈곤해진 유럽이나 일본과 달리 한국은 아직 천착할 역사적 정치적 사안들이 풍부한데. 통일이 된다면 한국영화의 폭발이 다시 일어나게 될까. 전주에서 <필름컬처> 임재철 주간과 마주 앉아 영화를 논하던 <카이에 뒤 시네마>의 샤를 테송 편집장도 비슷한 질문을 던져왔다. 한국에는 작가영화의 전통이 없는 것 같다, 왜?이들에게 모종의 우월
허우샤오시엔은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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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VS TV] 별난행운 인생대역전
[만화 VS TV] 별난행운 인생대역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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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99호에서 <씨네21>은 지나간 영화들에게 늦은 편지를 부쳤다. 그렇게 어제의 서랍을 뒤져, 정리를 하고 나니 창간호부터 시작한 오늘의 그림을 그릴 시간이 됐다. '한국영화산업 파워50'은 처음 등장할 때부터 화제도 많이 불러일으켰고, 영화인을 서열을 매겨 줄세우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많이 받았다.그런 평가와 관계없이 가장 재미있는 건 영화인과 관게자, 영화기자들로 구성된 추천인들의 목소리를 청취해 가감없이 작성하는 이 충무로 조감도가 해를 거듭하며 한국영화산업의 변화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충무로 토착자본들이 대부분 사라진 가운데 극장과 배급을 장악한 곽정환씨나 임권택 감독과 참으로 예술적인 콤비를 이뤄 한국영화의 진정한 세계화에 기여한 명제작자 이태원도 하나의 영화적 상징이라 하겠다. 이 여론조사의 대상이 되는 '영화산업'이 자본과 예술을 두 축으로 하고 있다는 기초상식을 강조하느 듯한 상징말이다. 그래서 산업적 지략과 영화감각을 두루 갖춘 강우석씨가 연속 1위를
한국영화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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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과 실화
사건과 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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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작이다. 창간 6주년을 맞으며 <씨네21>은 우리의 발밑에 새로 출발선을 긋는다. 돌아보면 지난 길은 <씨네21> 혼자 만든 것이 아니었다. 영화를 '우리들의 예술'로 채택한 시대가 있었고, 사람들이 있었다. 물론 영화가 있었다.그 영화들을 우리는 온전히 읽은 것일까. 그것이 품고 있는 의미와 가치를 놓치지 않고 포착해 독자들에게 제대로 전달한 것일까. 혹시 다가올 시대의 전령을 문전박대하여 거리로 내쫓은 우를 범한 적은 없을까. 출발선에서 우리는 그런 질문을 우리 자신에게 던져본다. 반대의 경우도 있을 것이다. 지적 유희에 휘말려, 아니며 일시적 환호에 휩쓸려, 감각의 새로움에 미혹되어 안 그래도 좋을 영화에 과도한 찬사를 보냈을 수도 있을 것이다.신발끈을 다시 매며, 우리는 그 답을 찾기로 했다. 298권의 <씨네21>을 거슬러 창간호에 가닿기까지, 예상은 했지만, 작업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영화의 두 주체, 만드는 이와 보는 이의 중간지
영화를 다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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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VS TV] 호텔리어
[만화 VS TV] 호텔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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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더위에 때이르게 벚꽃이 피고, 황사 바람에 비까지 찾아들어 또 꽃들이 진다. 에이, 버얼써 졌지요, 출장을 다녀온 동료는 남녁 꽃소식을 묻자 타박을 한다(진짜 타박은 아니고, 웃으면서). 집으로 돌아가려면 여의도를 지나야 하는데, 늦은 밤 꽃가지 아래로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며 쌍쌍의 남녀가 끝없이 줄을 잇는다. 그래, 봄밤나들이구나.<씨네21>도 계절을 못이겨 나들이를 준비했다.길은 두 갈래다. 창간 6주년을 앞두고 여는 씨네21영화제가 그 하나. 지난 해 조선희 창간편집장이 시작한 이 행사의 출발배경은 단순하고 소박했다. 부산국제영화제를 시작으로 국제영화제들이 생겨났고, <친구>처럼 부산에서 출발해 전국을, 영호남의 경계까지 넘어서 휩쓰는 영화가 늘어나고 있지만 아직도 문화의 서울편중현상은 가시지 않았다. 좀더 단순하게 말하자면, <씨네21>의 독자들 가운데 많은 분들이 영화를 기사로만 읽는다는 얘기다. 독자시사회 같은 소소한 즐거움도 모두 서
봄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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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VS 영화] 단적비연수
[만화 VS 영화] 단적비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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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칸의 민족주의자 밀로셰비치가 전쟁범죄자로 낙인찍힌 일을 패권주의의 승리라고 말할 생각이 적어도 내게는 조금도 없다. 무자비한 인종청소, 그 과정에서 인종개량의 이름으로 자행된 강간, 그건 어떤 말로도 변명할 수 없다. 오늘 과거를 반성한다한들, 그 잘못을 되풀이하는 바보짓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나마 회복한 ‘건강한 정신’으로 세상과 삶을 일으켜 세우려 안간힘을 쓰는 동안, 우리는 한뼘씩 사람답게 사는 영역을 확장시켜나갈 수 있다.제3회 여성영화제가 ‘쟁점’이라는 부문을 따로 만들어놓고, ‘포화 속의 여성들’을 초청해들였다. 그 ‘여성’들은 때로 남편과 아들을 전쟁에서 잃어버린 아내거나 어머니이다. 직접 싸움터에서 목숨을 잃지는 않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린 사람의 슬픔과 비탄은 전쟁의 비극을 정서적으로 환기시키는데 더없이 적절하다. 전쟁은 물론 그러한 상실만 강요하지는 않는다. 아이다처럼, 환향녀들처럼 남자들이 패배하면 그들의 여자들은 승리자의 전리품이
제3회 여성영화제를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