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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PART ONE> 개봉 이후 톰 크루즈가 없는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는 상상도 할 수 없다는 말을 여기저기에서 종종 듣는다. 그 말에 100% 동의하지만 그래도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지 어리둥절해하며 머리를 긁적일 수밖에 없다. 오리지널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의 설정은 캐릭터가 몽땅 바뀌어도 이야기 진행에 아무 지장이 없는 종류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시리즈의 배우들은 꾸준히 바뀌었고 1988년에 나온 속편 시리즈까지 포함한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고정으로 출연한 배우와 캐릭터는 단 한명도 없다. 피터 그레이브스(영화에서는 존 보이트)가 연기한 팀의 리더 짐 펠프스도 시즌2부터 등장했다(첫 번째 리더인 댄 브릭스는 배우 스티븐 힐이 안식일에 일하는 걸 꺼려하는 정통주의 유대교도라 하차했다). 설정에서 캐릭터보다 더 중요한 건 그 캐릭터들의 역할이었다. 리더, 변장의 명수, 테크 전문가, 근육 그리고 여자의 역할만 확
[비평] ‘여자’는 팀이 될 수 있는가,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PART 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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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최근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진행한 한국영화 베스트 10편을 꼽는 설문조사에 참여했다. 베스트 목록은 어쩔 수 없이 뻔해지기 마련이지만, 나의 개성을 드러내고 싶었다. 시대를 고루 반영하기 위해 지난 베스트 목록을 살피며 연도별 대표 영화를 꼽아보거나 빼놓을 수 없는 감독의 이름을 떠올리기도 했다. 그러다 결국은 ‘누가 봐도 괜찮은 리스트는 존재하지 않는다’와 ‘그럴 수 없다’ 사이에서 나의 한계와 부끄러움을 드러낸 목록을 제출했다. 베스트 목록에 포함하진 못했지만, 1970년대를 생각할 때 떠오른 작품은 김기영의 <이어도>(1977)였다. ‘이어도’라는 환상의 섬에서 벌어진 실종 사건의 진실에 다가가는 영화 안에서 누구라도 자신이 체험하지 못한 1970년대를 발견한 듯 느끼게 된다. <이어도>가 가진 에너지는 민자를 연기한 이화시 배우의 존재감으로 능히 환원된다. 이화시가 연기한 민자는 뭍에서 온 남자들의 시선을 끄는 대상이지만, 그 역시
[비평] 류승완이 김기영의 ‘이어도’에서 ‘밀수’한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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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엘리멘탈>에 관한 흥미로운 사실들. 6월14일에 개봉한 이 영화는 개봉 24일째인 7월8일 토요일에 자신의 일일 최다 관객수(33만명)를 경신했다. 종전의 기록은 7월1일(개봉 17일차)의 28만명이었는데, 이 수치는 개봉 후 주말마다 우상향하는 중이었다. 개봉 31일차인 7월15일 토요일엔 그 기세가 26만명으로 다소 줄어들긴 했지만 이는 여전히 개봉 첫주 토요일의 수치(17만명)보다 높다. 이 숫자들이 뜻하는 바는 명백하다. <엘리멘탈>은 지금 역주행 중이다.
<엘리멘탈>과 관련해 두 번째 흥미로운 사실은 개봉 한달이 지난 시점에 새롭게 열린 특별 상영관이 있다는 것이다. 그 이름은 ‘극공감에프(F)관’이다. 이는 CGV에서 마련한 특별 상영으로, 7월15일과 16일 이틀간 수도권 5개 관에서 하루 1~2회차씩 진행됐다. 이 기획은 제목에서도 드러나듯 MBTI 성격 유형 검사에 익숙한 사람들을 타깃으로 한 것으로, 예매 진행 시 안내되는
[비평] ‘엘리멘탈’의 흥행 역주행에 대하여(feat. MB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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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든 되더라.” 새로 팀에 합류한 그레이스(헤일리 앳웰)가 상식을 벗어난 작전의 성공 가능성에 대해 묻자 벤지(사이먼 페그)는 농담처럼 답한다. 실은 그 농담 같은 진심이야말로 불가능한 작전을 수행해온 팀의 비결이자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가 CG가 점령한 스크린에 저항해온 방식이다. 에단(톰 크루즈)은 달리는 기차에 침입하기 위한 작전을 짠다. 나름 정교한 작전을 짠다고 하지만 늘 그렇듯 계획은 틀어지고 결국 바이크를 탄 채 절벽에서 뛰어내려야 할 상황에 직면한다. 너무 위험해서 제일 먼저 찍었다고 하는 절벽의 활강 장면은 아찔하면서도 이상하다. 에단의 멋들어진 질주와 스피드 플라잉을 생생한 각도로 찍은 장면은 최근 CG가 잃어버린 중력의 존재감과 진짜 같은 생동감을 전한다.
문제는 이어지는 장면이다. 에단의 낙하와 활강을 멋지게 찍은 카메라는 정작 중요한 기차로의 돌진 과정을 건너뛴다. 그레이스가 위기에 빠진 절체절명의 순간, 에단은 마치 달리는 옆 차량에서
[비평] 몸으로 저항하고 규모로 버티는 스펙터클의 고향,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PART 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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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결말에 대한 자세한 언급이 있습니다.
극장에서 영화를 보면서 작성한 메모를 확인해 보니, ‘관객이 웃지 않는다’고 적혀 있었다. 정말 웃지 않았을까? 물론 누군가 조용히 폭소를 터뜨렸으나 내가 듣지 못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일은 항상 일어난다. 그러나 설령 이 메모가 영화의 혼란스러움에 휩싸여 날조된 픽션이라 하더라도, 이런 픽션을 쓰게끔 했던 어떤 충동이 영화에 있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장면에서. 보(호아킨 피닉스)가 벌거벗은 채로 (화면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남근을 덜렁거리면서 거리를 달릴 때, 자신의 아들 앞에서 한번도 섹스를 한 적 없다고 고백하는 아버지가 등장할 때, 죽은 줄 알았던 보의 아버지가 대뜸 고추괴물의 모습으로 나타나 울부짖을 때. 아리 애스터는 루저 남성의 자아를 박살냈다. 거세공포라는 유산을 받아들이고 있지만 초라한 파편들로 해체시켜놓고 있다. 분명 이 장면들이 조롱을 동반한 웃음을 유발하는 농담임을 알지만, 관객은 (거의) 웃지
[비평] 영화에 새겨진 감각과 체험의 오차들, ‘보 이즈 어프레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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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으레 거짓말하게 마련인 어린이의 성장담으로만 이야기한다면 설명이 부족할 것이다. 생각 많은 여자아이의 마음 깊은 곳을 살핀 작품이라 말하고 나서도, 이 영화를 보고 나온 당신에겐 할 이야기가 넘치도록 남아 있을 것이다. <비밀의 언덕>은 인간 사회의 아주 넓은 땅에 창피함과 자랑스러움, 숨김과 드러냄, 거짓말과 참말 사이의 경계가 자리한다는 점을 짚는 영화다. 그러고는 그곳에 처한 인물들을 꼬옥 끌어안는다. 우리는 저 어정쩡한 경계에서 어느 쪽으로든 즉시 결정하고 다음 단계의 의사소통을 향해 발을 내딛어야만 하는 사회적 동물이다. 그때의 즉흥적인 선택이 얼마나 적절했는지 우리 대부분은 알지 못한다. 그렇게 충분히 아름다웠을 인생의 소중한 순간들 역시 지나치곤 한다. 영화는 10대 초반의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도, 나이와 성별을 불문한 우리의 평소 언행 중 대개의 경우가 눈치와 염치, 수치 등등이 머릿속에 오가는 가운데 자동기술적으로 행해진다는 점을 꼼꼼히
[비평] 트루 라이즈, ‘비밀의 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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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은 낭만화되기 십상이다. 한국영화 속 풍경으로 국한하면, 폭력은 학창 시절의 추억(<친구> <말죽거리 잔혹사>)이고, 상처 입은 가여운 영혼의 초상(<아저씨>)이며, 최근 사례로는 능청스러움이나 가벼운 농담과 동일한 값을 지닌다(<범죄도시> 시리즈). 추억과 놀이, 심지어 향수와 애상마저 포괄하는 낭만화한 폭력에 반성이나 통찰 따위는 희미하다. 다르게 말하면 폭력은 주어진 질서 안에서 태생하는 동시에 이 질서를 영속시키는 수단이다. 생각해보라. 농담처럼 가볍고 통쾌한 <범죄도시> 시리즈 속 마석도(마동석)의 펀치가 범죄자를 때려눕혀도 범죄자를 양산하는 사회구조는 바뀌지 않는다. 참혹한 복수에 나서는 특수부대 출신의 인간 병기는 흠모의 대상이 되고, 학교 폭력 가해자는 우상이 된다. 폭력의 낭만화와 관련해 사회는 분명 개인과 공모 관계에 있다.
오로지 개인만이 낭만화하는 폭력
박훈정 감독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폭력의 쓰임도
[비평] 폭력을 낭만화하는 또 다른 방식, 박훈정 감독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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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소모할 수 있다는 느낌, 이 느낌에서야말로 우리는 잘게 썰어지고 다른 배열 속으로 내팽개쳐질 수 있다.”
- 마니 파버, <흰 코끼리 예술 vs. 흰 개미 예술>
사막이 흔들린다. 종군 사진작가인 오기(제이슨 슈워츠먼)와 그의 아이들이 작은 카페에 찾아올 때, 원자폭탄 실험의 여파로 실내 공간이 크게 진동한다. 카페에 앉은 사람들은 바깥의 굉음과 폭발이 무슨 전모로 벌어진 것인지 명확하게 알지 못한다. 오기는 단지 눈앞의 연기구름을 카메라에 담을 뿐이다. 웨스 앤더슨의 <애스터로이드 시티>에서 제목에 명시된 ‘애스터로이드 시티’는 미국 서부의 사막에 세워진 모형 도시이자 1950년대 브로드웨이 연극의 무대 배경이다. 앤더슨은 스페인 마드리드 근교의 작은 마을을 로케이션 삼아, 50년대 미국의 기호적 요소들을 덧씌운다. 몇겹의 가상이 겹쳐진 틀로 형성된 사막이 그곳에 있다. 흩날리는 모래 먼지와 탁한 공기가 없는 무대로서의 사막. 영화가 직면하고
[비평] ‘애스터로이드 시티’, 영화의 출구는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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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보다 보면 가끔 해당 영화와 관련된 굿즈를 수령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굿즈의 유형은 크게 둘로 나뉜다. 첫째는 등장인물이 그려진 다양한 형태의 판촉물이고, 둘째는 영화에 등장하는 소품(의 모형)들이다. 지난해 개봉한 <범죄도시2>의 시사회에서 캐릭터 딱지를 제공했던 <범죄도시>는 올해엔 영화에 나온 아주 사소한 소품 몇 가지를 굿즈로 증정했다. 굿즈는 <범죄도시3>에서 형사 마석도(마동석)가 한번쯤 손에 쥐었던 물건들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그중 이 글을 통해 특별히 언급하고 싶은 두 가지는 바로 손거울과 증거 수집용 지퍼백이다. 그 둘이 어떤 측면에서 올해 첫 ‘천만 영화’ (예정)인 <범죄도시3>의 성질을 잘 드러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손거울과 지퍼백 같은 영화
둘은 여러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우선 가장 특징적인 것은 두 소품이 영화와 딱히 큰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거울과 지퍼백은
[비평] ‘범죄도시’라는 프랜차이즈와 한국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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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와 올해 칸영화제에서 소개된 루벤 외스틀룬드의 <슬픔의 삼각형>과 웨스 앤더슨의 <애스터로이드 시티>는 폐쇄된 장소를 무대로 삼는다. <애스터로이드 시티>의 배경은 미지의 소행성이 발견된 건조한 평원이다. 혜성 관측일에 외계인을 태운 우주선이 출몰하는 일이 일어나면서 그 자리에 참석한 인물의 이동이 통제된다. <슬픔의 삼각형>은 망망대해 위의 크루즈와 크루즈 폭발 사고 이후 생존자들이 모인 외딴섬을 주된 장소로 삼는다. 영화에서 특정 장소에 갇히거나 이동이 통제된 인물을 보여줄 때, 그것은 영화관에 모인 관객의 비유로 인식되곤 한다. 영화를 보는 동안 움직임이 제한된 채 화면에 시선을 고정해야 하는 관객은 갇힌 이들을 통해 자신의 현 상태를 자각한다고 이야기된다.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동시대 상황 속에서 한정된 장소와 이동의 통제는 일상에 가까운 것이 되었다. 거의 동시적이라 말해지는 극장의 위기와 팬데믹은 영화적이라고 인식된 행위를
[비평] 마주 보기의 불가능성을 마주보기, ‘애스터로이드 시티’와 ‘슬픔의 삼각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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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품고 있는 리듬을 담은 영화라고 말해도 될 것이다. 공간과 그 안의 사물들과 사람들, 그들의 물질성과 운동이 자아내는 리듬이 하나의 세계를 이뤄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으로 이름 지어졌다고 보아도 될 것이다. 미야케 쇼는 느린 걸음으로 세상을 응시하며 온몸의 감각으로 느낀 세상의 리듬을 영화 속으로 흘려보낸다. 그러고선 도쿄에 자리한 아담한 복싱 체육관에서 들려오는 소리들이 리듬을 형성하고, 전철의 기척을 알리는 소리가 도시의 순환하는 리듬을 일깨우며, 도심지의 소음과 작은 동네의 고요함이 개별적인 리듬으로 흘러가고 있음을 부드럽게 각인시킨다.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은 깊고 단단하며 신비롭다. 이 영화엔 사사롭지만 눈길을 끄는 장면들과 주인공 게이코(기시이 유키노)의 세계를 이루는 순간들이 느슨하게 들어찬다. 영화는 복싱 선수 게이코뿐만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의 게이코의 삶과, 그녀와 이어진 인물들과 그들이 스쳐가는 사람들과 공간의 모습들까지 모든 풍
[비평] 너의 눈에 시간을 새긴다는 것,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