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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 앙겔로풀로스 감독의 <율리시즈의 시선>
2002-06-05

영화로의 오디세이

1995년, Ulysses’ Gaze 감독 테오 앙겔로풀로스 출연 하비 카이틀 <EBS> 6월9일(일) 낮 2시

“신이 세상을 만들 때 처음에는 여행을, 그리고 두 번째로는 의심과 유토피아를 만들었다.” 대사 그대로, <율리시즈의 시선>은 어느 남자의 여행담이다. 발칸반도를 돌아다니며 이곳저곳을 떠도는 남자는, 여러 풍경을 눈앞에 두게 된다. 아름다움과 추함, 폭력과 증오가 펼쳐진다. 영화를 만들기 전 앙겔로풀로스 감독은 <안개 속의 풍경>과 <시테라 섬으로의 여행> <양봉업자> 등에서 등장인물의 고단한 발걸음을 심미적인 리얼리즘의 세계로 옮긴 바 있다. 다시 한번 길을 재촉하면서, 그는 좀더 복잡한 경험을 제안한다. 신화와 역사, 그리고 영화의 기원이 의미심장하게 뒤섞인 여정이다.

미국에서 활동하던 그리스 출신 영화감독 A는 고국으로 돌아온다. 영화사 초창기의 영화감독인 마나키아 형제가 찍은 세통의 필름을 찾기 위해서다. 택시를 기다리던 A는 과거의 연인을 만난다. 하지만 여인은 곧 사라지고 A는 그녀의 모습을 놓치고 만다. 베오그라드에서 A는 필름이 사라예보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곳에서 이보 레비를 만난다.

<율리시즈의 시선>을 보면, 고전 한편이 연상된다. 호머의 <오디세이>. 서구 서사극의 영원한 모태다. 저주받은 채 방황을 거듭하던 영웅의 모습은 영화 속 A와 그대로 겹친다. 길에서 A가 만나는 여성들은 곧 오디세우스의 편력기와 닮은 꼴인데 이렇듯 영화는 신화와 현실을 오가며 상실된 사랑, 그리고 전쟁의 덧없음을 말한다. <율리시즈의 시선>에서 앙겔로풀로스 감독은 다른 작업과 마찬가지로 시간과 공간에 관한 인상적인 스케치를 담는다. 현재는 곧잘 과거의 어느 한 시점과 나란히 공존하기도 하고, 시공간의 연속성은 간헐적으로 파괴된다. 발칸반도를 여행하는 A는 현재에서 거슬러올라가 1940년대 가족의 모습을 아련하게 본다. 이는 “현실은 한낱 이미지에 다름 아니고 상상의 것이 좀더 중요할 수 있다”는 연출자의 일관된 신념에 기반한 것이다.

<율리시즈의 시선>에선 배우들 연기도 중요하다. <비열한 거리> 등에 출연해서 스코시즈 감독과 각별한 친분관계를 유지했던 하비 카이틀이 특유의 ‘메소드’ 연기를 보여주고 있으며 루마니아 출신의 여배우인 마야 모겐스턴 역시 모습을 비친다. A(물론 이는 앙겔로풀로스 감독의 이니셜이다)를 연기한 하비 카이틀은 찾아헤매던 영화필름을 직접 마주하게 된다. 다시 말해서 <율리시즈의 시선>은 영화의 기원으로의 여행이며 현대적인 신화의 역사를 되짚는 과정이다. 여기서 앙겔로풀로스 감독은 다른 어느 연출작보다 ‘풍경’에 집착한다. 발칸반도 여러 곳의 다양한 풍경이 비쳐지는 장면은 상영시간에서 꽤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진경의 연속이다. 김의찬/ 영화평론가 wherever70@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