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컬처잼 > e-윈도우
닌텐도 사장 야마우치 히로시, 53년만에 경영일선에서 물러나다
2002-06-07

거인의 은퇴

1982년 크리스마스, 미국 게임시장이 무너졌다. 질보다는 양, 수준 낮은 게임의 범람은 게임시장을 지배하던 제작사 아타리의 기업 가치를 하루아침에 5억달러에서 200만달러로 끌어내렸다. 이른바 ‘아타리 쇼크’ 이후 10년간 번성을 누리던 미국 게임산업은 몰락했고 대신 일본의 시대가 열렸다. ‘닌텐도’는 화투나 트럼프 같은 것들을 만들던 전통있는 교토 기업이다. 1949년 와세다 대학생이던 야마우치 히로시는 조부의 갑작스러운 병환으로 학교를 그만두고 21살의 나이로 닌텐도의 사장 자리에 앉았다.전통적인 상품 라인업으로는 장래가 없다고 생각한 야마우치는 새로운 장난감 개발에 열을 올렸다. 닌텐도의 변화는 손으로 만들던 전래 장난감을 공장에서 생산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점차 간단한 전기 장치 장난감을 내놓기도 했다. 처음에는 버튼을 누르면 번쩍번쩍하는 장난감 칼 정도였지만 나중에는 미국 게임회사의 전자오락 기기들을 만들기도 했다.

70년대 후반만 해도 일본 기업들은 미국 비디오 게임기의 라이선스를 따서 일본판을 출시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군소 회사도 아닌 이름있는 대형 가전업체들 얘기다. 하지만 야마우치 사장은 승부수를 던졌다. 닌텐도는 독자적인 게임기 생산을 시작했다. 이때 야마우치가 내건 두 가지 원칙이 있다. 첫째, 무조건 그래픽이 좋아야 한다. 둘째, 그러면서도 가격은 3만엔을 넘어서는 안 된다. 다른 게임기들은 3만5천엔을 훨씬 넘어서고 있었지만 닌텐도는 16비트 대신 그래픽 능력을 강화한 8비트 CPU를 채택해서 가격을 낮췄다. ‘패밀리 컴퓨터’(줄여서 ‘패미컴’)는 불과 1만4천엔이라는 저가인데도 그래픽 능력은 다른 게임기를 압도했다.

닌텐도의 새로운 출발의 또 다른 주역이 미야모토 시게루다. 훗날 닌텐도 게임의 아버지라는 영광스러운 자리를 차지할 운명을 타고 난 미야모토가 닌텐도에 취직한 건 그저 뭔가 창조적인 일을 해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에서였다. 전통을 중시하는 전형적인 교토 기업 닌텐도에 청바지에 장발을 하고 나타난 미야모토가 입사할 수 있었던 것은 야마우치 사장의 안목을 보여준다. 미야모토는 81년 혼자서 북치고 장고치는 격으로 게임을 하나 만들었다. 악당에게 납치된 공주를 원숭이가 구하는 이 게임을 보고 수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야마우치 사장은 독단적으로 게임화를 관철시켰다. 이 게임이 뭔지 30대라면 짐작이 갈 것이다. <동키콩>은 6만대 이상 팔려나가며 닌텐도를 세계적 게임 제작사의 위치로 끌어올렸다.

85년 닌텐도는 미국 시장에 성공적으로 입성했다. 83년 ‘패미컴’ 출시 이후 지금까지 비디오게임 산업 역사는 일본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말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야마우치의 결단력과 카리스마는 한편으로는 독선적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기형적인 수익분배구조 등 협력사들에 대한 강압적 태도와 불공정 계약은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에 왕자 자리를 내놓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기도 했다.

닌텐도는 그뒤 1인자 자리를 되찾지 못하고 휴대용 게임기에 주력하고 있다. 영원히 닌텐도를 쥐락펴락할 줄 알았던 야마우치가 최근 74살의 나이로 사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후임자는 이제 겨우 42살로, 닌텐도 입사한 지 2년밖에 안 되는 신참이다. 새로운 흐름이 필요한 때라고 스스로 한계를 느낀 것일까? 그렇지만 집에서 편안히 수석이나 분재 등을 즐기기보다는 여전히 매일 출근해 꼬장꼬장 온갖 일을 손수 챙길 거라는 생각이 든다. 박상우/ 게임평론가 MadOrDead.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