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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 `지브리`, 꿈과 환상속의 세계
2002-06-07

푸른 수국이 흐드러지게 핀 작은 마을, 도쿄 고가네이. ‘아니메’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61) 감독이 이끄는 ‘스튜디오 지브리(지브리)’가 자리잡은 곳이다. 베를린영화제 대상 수상작인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도 이곳이 고향이다. 지난 4일 그는 토시오 스즈키 프로듀서와 함께 지브리를 공개했다. 지브리는 꿈과 팬터지의 산실. <센과 치히로…>에선 신들의 온천장에서 길을 잃은 소녀 치히로가 겪는 모험담을 빚어낸다. 엄마 아빠를 구하기 위해 마녀가 주인인 온천장 종업원이 되어 온갖 모험 끝에 인간 세상으로 돌아가는데 성공하는 이야기이다. 치히로를 돕는 신비스런 소년 하쿠와 머리 큰 마녀 유바바, 얼굴없는 요괴 가오나시 등 매혹적인 캐릭터들이 쉴새없이 등장한다. 소년의 웃음과 개구진 유머를 지닌 두 사람은 그 ‘매혹의 비밀’을 유쾌하게 들려줬다. <센과 치히로…>는 28일 한국에서 개봉된다. “지브리에서 열살짜리 꼬마가 일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생각해봤어요. 열살짜리 아이가 처음 집을 떠나 처음으로 다른 사람이 주는 다른 밥을 먹게 됩니다. 아이는 (그런 상황을) 어떤 진실로 받아들일까요? <센과 치히로…>는 그 진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열살짜리 친구 딸을 위한 영화를 떠올렸다는 미야자키 감독은 치히로를 부려먹는 마녀 유바바가 하는 일이 토시오 프로듀서를 닮았다고 해서 사람들을 웃겼다. 토시오 프로듀서는 “미야자키는 자기가 만들면서도 자기 작품을 잘 모른다”는 말로 자신의 역할을 표현했다. 감독의 의견과 달리 수줍음 많은 ‘왕따’ 요괴 가오나시를 작품 홍보의 전면에 내세웠고, 이는 경제불황으로 고통받는 일본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토시오 프로듀서는 ‘재능있는 한 사람’의 카리스마를 강조했다. “좋은 작품은 재능이 있는 한 사람에 모두의 힘이 합쳐질 때 나오지만, ‘그 한 사람’이 없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또다른 애니메이션 왕국인 디즈니에는 ‘그 한 사람’이 없는 게 지브리와의 차이라고 그는 못 박았다. <센과 치히로…>는 이런 ‘미야자키의 지브리’에서 태어났다. 실제로 교외 주택가에 자리잡은 스튜디오 지브리는 미야자키 감독의 꼼꼼한 수공예 작품 같다. 제1~3스튜디오와 감독의 개인 아틀리에는 미로 같으면서도 곳곳이 계단과 문으로 연결된 열린 구조인데, 구석구석이 그의 손길을 거쳤다. 실제로 유난히 많은 창문과 옥상 정원, 숲으로 둘러싸인 따뜻한 질감의 목조건물 등은 붉은 돼지 간판과 토토로 인형 등 작품 속 캐릭터들과 어울려 지브리를 하나로 묶는 어떤 정서를 만들어 놓는다.

미야자키 감독은 최근 자연과 팬터지로 이뤄진 이런 세계에 한가지 색깔을 덧입혔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천공의 성 라퓨타> 등에선 무국적의 세계를 선보였던 그가 <이웃집 토토로> <원령공주> 등을 거치며 <센과 치히로…>에선 일본의 전통 안으로 더 깊숙히 들어간 것이다. “내가 자라난 땅은 일본이고, 일본이란 풍경을 더 많이 드러내고 싶습니다. 하지만 일본만 고집할 수 없는 현실도 있으니, 어디든 무대가 될 수는 있겠지요. 사실 일본 젊은이들은 일본 전통을 잘 모릅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아는 사람으로서 더 알리고 싶은 마음은 있습니다.” 미야자키 감독은 최근 “신작 구상으로만 머리가 가득 차 있다”고 했다. 디즈니의 테마파크가 싫어서 애니메이션 미술관을 만들고, 젊은 애니메이터들의 작업실에서 직접 그림작업을 하기도 하는 육순 청년의 상상력은 여전히 넓은 여백으로 뻗어간다. 그에게 “<센과 치히로…>는 벌써 이전 영화”가 되고 미야자키의 이미지 포스터가 널린 ‘지브리’는 이제 또 새로운 경계를 향해 가고 있다. 도쿄/정세라 기자seraj@hani.co.kr[사진설명]수풀이 우거진 스튜디오 지브리의 전경/ 워크 스튜디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