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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5회 칸 영화제 수상작(자)들(3) - 아키 카우리스마키(심사위원 대상)
2002-06-07

“현실이 너무 비극적이라 영화는 해피엔딩을 바랬다”

아키 카우리스마키는 이제 본인이 원하든 원치 않든 ‘컬트감독계’를 떠나야 할 모양이다. 물론 그의 영화가 미국의 메이저영화사를 통해 와이드 릴리스되는 기적은 이번에도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올 칸영화제에서 그의 신작 <과거없는 남자>는 만장일치에 가까운 환대와 지지를 받았다. 무뚝뚝한 인물들, 천연덕스러운 유머, 신랄한 풍자가 어우러진, 북구의 기이한 희비극이 칸에서만큼은 대중적으로도 어필하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올해 칸이 사랑한 카우리스마키 특유의 예측불허 블랙유머는 시상식장까지 이어져, 그는 역대 수상자 중 가장 황당한 소감을 말한 이로 꼽히게 됐다. “가장 먼저, 내 자신에게 고맙다. 그 다음은 심사위원들. 그럼 이만 안녕.”

<과거없는 남자>는 기억을 잃은 남자가 다시금 세상에 뛰어드는 과정을 코믹하게 그려내고 있다. 직장을 구하기 위해 헬싱키로 떠나온 남자는 밤길에 불량배들을 만나 돈을 빼앗기고 죽도록 얻어맞는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남자는 구타의 충격으로 기억상실증에 걸려 자신이 누군지조차 모른다. 마음 좋은 홈리스가 그를 거둬주고, 남자는 곧 홈리스들을 돌보는 구세군 아가씨와 사랑에 빠진다. 우연히 자신의 신원을 파악하게 된 남자는 자기에게 번듯한 집과 부인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되지만, 부부생활이 이미 파경에 이르렀다는 데 반색하며, 구세군 아가씨에게로 돌아온다.

카우리스마키는 직업도 돈도 기억도 없는 남자의 생존을 향한 몸부림이 번번이 자본주의라는 벽에 부딪히지만, 결국 사랑이 그를 구원한다는 이야기를, 쓸쓸하고도 우스꽝스럽게 풀어간다. ‘레닌그라드 카우보이’를 연상시키는 구세군 밴드의 흥겨운 연주에 어깨를 들썩이고, 감독의 페르소나인 남녀 배우들의 포커 페이스에 킬킬거리고, 세상 어디에도 안착하지 못하는 무정부주의자의 뒷모습에 탄식하다보면, 카우리스마키가 엔터테인먼트와 작가주의의 양날 위에 우뚝 서 있는 드문 감독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 이야기를 어떻게 구성했는가.

__내 영화는 실제 삶의 모방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실제 삶은 훨씬 힘들기 때문이다. 내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는 동화 같은 이야기일 뿐이다. 분산된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하지는 않았다. 내가 산만하다고 해서, 영화를 보는 남들도 산만해질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나는 과거에 만났던 배우들을 쓰거나, 길거리에서 마주치게 되는 사람들과도 일한다.

배우들의 리허설은 어떻게 진행되는가.

__첫 리허설부터 직접 촬영으로 들어간다. 이것이 우리와 할리우드의 차이다. (웃음) 남자주인공에 대해서는 배우와 촬영이 다 끝난 뒤에야 신들을 보면서 비판적 의견을 주고받았지만, 이미 때는 늦었었다. (웃음) 나는 신선한 대사를 좋아한다. 주로 카메라를 고정시켜 촬영하는데, 이는 예산절감에도 효과적이고 제작자이기도 한 나에게는 매력적인 방법이다. 나는 배우들이 촬영이 어떻게 진행되고 끝나는지를 모르게 한다. 주로 첫 테이크를 사용한다.

촬영과 조명은 미리 치밀하게 구상된 것으로 보이는데,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결정되는 부분들도 있는가.

__배우와 카메라를 제외하고는 현장에서 결정하는 부분이 많다. 나는 배우들의 신선한 모습을 원하고, 정말 첫 리허설부터 촬영에 들어간다.

칸에 와서 행복한가.

__내 나이에는 아주 좋은 기회다. 항상 젊게 살아야 한다.

영화 속에서 로큰롤을 즐겨 사용한 이유는.

__음악은 종종 대사를 대신한다. 유감스럽게도 내가 노래를 못하기 때문에 다른 가수들의 노래를 사용해야 했다. (웃음) 서너개의 큰 음반사를 접촉했지만, 저작권 때문에 결국 반값으로 살 수 있는 노래를 사용했다.

영화에서 보여준 풍경이 바로 천국이라고 생각하는가.

__삶이 실제로 천국 같은 경우는 거의 없지만, 천국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당신의 모습에서는 인생의 슬픔이 배어나오는데, 왜 그런가.

__누군가 “자신의 이야기가 가장 슬픈 이야기”라고 말한 바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행복하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물론, 내가 행복하지 않다면 그 원인은 나에게 있다. 그러나 그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다.

전작들에 비하면, 이번 영화는 낙관적인 비전을 보인다.

__현실이 너무 비극적이기에 영화라도 해피엔딩으로 하고 싶었다.

세상이 절망적이라면 왜 저항하지 않는가. 켄 로치를 봐라.

__나는 돈 벌고 살찌기 위해 영화를 한다. (웃음) 켄 로치같이 현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영화인의 본분이지만.

당신만의 촬영방식이 있다면.

__여자와 남자가 회색 벽을 배경으로 서 있다. 카메라가 이들을 보여준 뒤, 남자가 화면에서 빠진다. 여자와 벽이 남았을 때 여자마저 화면에서 빠지면 벽만 남는다. 벽을 비추는 빛과 그림자에서 조명을 빼버리면 그림자만 남는다. 조명은 비현실화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나는 그림자를 조명없이 만든다.

헌팅에 공을 들이는 편인 것 같다.

__시나리오는 3일 만에 쓴 반면 장소 헌팅에는 1년이 걸렸다. 내가 대충 일한다는 소문이 퍼져 있지만, 사실 나는 굉장히 정확하고 세심하다. 인물들의 옷색깔과 배경이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데 신경을 많이 썼다. 배우들의 옷에 맞는 배경을 구하는 것이 힘들었기 때문에 결국 배경을 페인트로 칠하고 말았지만.

당신의 영화는 <투명인간>(Invisible man)의 리메이크 같은 구석이 있다. 보이지 않던 인간이 보이게 되는 과정이 있다.

__어떤 신문에서 내 영화에 대해 주인공이 죽은 뒤 꾸는 꿈이라고 평한 바 있다. 원래 시나리오에는 주인공이 죽은 척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칸영화제 5월26일 폐막, 황금종려상에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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