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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스코시즈, 신작 <갱스 오브 뉴욕>을 말하다
2002-06-14

"미국은 무엇인가, 미국인은 누구인가를 묻고 싶었다"

“내 나이 여덟살 때 <선셋대로>를 처음 봤는데, 그땐 그냥 웃긴 영화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호러영화라고 결론짓게 됐다. <선셋대로>는 할리우드를 가장 정직하게 묘사한 영화고, 할리우드는 그 자체로 충분히 공포스럽기 때문이다. 그 영화는 나로 하여금 카메라 뒤의 삶은 어떤 것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모든 위대한 호러영화는 관객이 영화 속 괴물 캐릭터에 공감하고 연민하게 만드는데, 이 영화 역시 글로리아 스완슨과 나를 동일시하게 만든다.” 칸영화제가 오매불망 기다리던 감독 마틴 스코시즈의 첫 마디에 많은 이들이 웃음을 터뜨렸지만, 그들 대부분은 웃은 것을 금세 후회한 것 같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3천명이 운집한 뤼미에르 대극장의 폭소가 삽시간에 수그러질 수는 없었을 것이다. 마틴 스코시즈와의 만남은 그처럼 거장의 긴 한숨을 엿들은 불경, 그 죄책감으로부터 시작됐다. 알려지지 않은 뉴욕의 과거를 찾아서 마틴 스코시즈는 올해 칸을 찾은 게스트 중에서 가장 바쁜 일정에 쫓겼다. 영화학교 학생들의 단편경쟁부문인 시네파운데이션의 심사위원장으로서의 역할이 그중 하나. 그리고 빌리 와일더 특별전을 기념해, 빌리 와일더와 그의 작품을 기리는 특별행사의 호스트로서의 역할도 주어져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를 힘들게 한 것은, 무려 7주 동안의 사전 준비를 필요로 했던 <갱스 오브 뉴욕>의 20분 버전 시사 이벤트였다. 2000년 봄 크랭크인해 여전히 보충 촬영중인, 개봉일자가 세번이나 번복된, 그래서 온갖 루머와 억측을 불러일으킨 그의 신작을 공식적으로, 그것도 20분짜리 버전으로 선보인다는 사실은, 완벽주의자인 그에게 적잖은 부담이 됐을 것이다. “완성하지도 않은 작품을 대중 앞에 공개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더라. 솔직히 나이를 먹을수록 작품을 완성하는 데 더 많은 집중력과 에너지가 소모된다. 아마도 칸 이후에 많이 고전할 것 같다.”

<갱스 오브 뉴욕>의 시사를 전후로, 현지에서의 가장 큰 이슈는 제작사인 미라맥스의 수장 하비 와인스타인과 스코시즈의 불화, 그 소문과 진상에 관한 것이었다. 스코시즈는 <갱스 오브 뉴욕>을 오래 품고 있었다. 허버트 에스베리의 동명 소설을 읽은 것이 32년 전이고, 영화로 기획을 시작한 것이 25년 전이고, 촬영을 시작한 것이 2년 전의 일이다. 제작비와 제작기간과 러닝타임이 늘어나면서, 스코시즈와 와인스타인의 불화설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있었다. 이에 대한 스코시즈의 답변은 명쾌하다. “하비는 개성이 강한 사람이고, 나도 다혈질적인 사람이다. 한때 충돌했지만, 지금은 화해했다.” 그리고는 <갱스 오브 뉴욕>의 촬영과정만 다사다난한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갈등과 충돌은 영화를 완성하는 과정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한다. 제작비는 정해져 있는데, 영화를 찍다보면 더 하고 싶은 게 생기게 마련이다. 그럴 때 현실을 일깨워주는 게 제작자의 일이다. 제작자와 감독은 서로 주고받는 관계다. 잡음이 생기는 건 당연하다. 모든 영화가 다 그렇다. 예를 들어 <비열한 거리>의 경우는 24일 동안 다 찍었지만, 촬영 내내 전투를 치러야 했다.” 마틴 스코시즈에게 <갱스 오브 뉴욕>은 ‘오래 고전한 작품’이라거나 ‘1억달러가 넘는 대작’이라는 차원을 넘어서, ‘필생의 작품’이라는 의미로서 더욱 각별하다. 이탈리아 이민자의 자손으로서, 그리고 뉴요커로서, 그는 알려지지 않은 뉴욕의 지난 역사를 되짚어보는 일을, 자신의 사명으로 여기고 있는 것 같았다. “맨해튼에서 자란 나는 뉴욕의 옛 시절에 관한 전설을 줄곧 가슴에 담고 있었다. 그러면서 뉴욕이라는 도시의 알려지지 않은 역사의 흔적을 찾아 헤맸다. 1860년대 초반의 뉴욕은 이민자들로 들끓었고, 종교와 정치가 분리되고 있었다. 자유로운 사회를 건설하고, 미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만들어내려는 시도 속에서 싸움이 벌어졌고 시행착오가 거듭됐다. 종교와 국적과 신념과 지식 수준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 공존하기까지, 기이하고 비범한 실험이 이어졌다. 이 영화를 통해 나는 궁극적으로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미국은 무엇인가. 미국인은 누구인가.” 9·11보다 이민문제에 초점

옛 뉴욕을 배경으로, 미국의 뿌리와 정체성을 파헤치려 했다는 이야기는 ‘마틴 스코시즈니까’ 미덥게 들린다. 그는 뉴욕이란 도시의 본질과 미국 현대사의 굴곡을 꿰고 있는 아주 드문 감독이다. 따라서 그가 뉴욕을 이야기할 때 뉴욕은 단순히 이야기에 둘러쳐진 배경그림에 머물지 않는다. <택시 드라이버>에서는 베트남전쟁의 상흔을 들춰냈고, <특근>에선 소호 밤거리 여피족의 수난을 따라갔으며, <비상근무>에서는 범죄의 천국에 던져진 구급대의 고뇌를 다뤘다. 이번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뉴욕’까지. “좋은 영화는 많지만, 여러 번 반복해서 보고 싶게 만드는 영화는 드물다. 그런데 마티(스코시즈의 애칭)의 영화는 그렇다. 그의 영화는 리얼 라이프 다큐멘터리 그 이상의 리얼리티와 재미가 있다. 실제로 겪어보니, 마티는 영화를 사랑하고 역사를 사랑하는 사람이더라. 그와 식사를 할 때마다 1시간 넘게 영화와 역사에 대한 아주 특별하고도 재미난 강연을 들을 수 있었다.” 특별 기자회견에서 만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촬영하는 동안 스코시즈의 영화와 역사에 대한 식견에 연일 감탄했다고 고백했다. 이번 작업을 통해 스코시즈의 뉴욕 사랑은 더욱 공고해졌다. 촬영 도중 맞닥뜨린 9·11 사건의 충격은 그에게 물리적인 손익 차원에서 논하기 어려운 문제였다. “그 비극은, 그 충격은 말로 형용할 수가 없었다. 내 영화가 뉴욕이라는 도시와 그 역사를 깊이 껴안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9·11에 대해 난 감상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 영화가 ‘미국 만세’를 외치며 9·11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데 봉사할 것 같진 않다. 스코시즈는 그런 이유로 영화가 흥행하는 것을 기대하거나 상상해본 일조차 없는 것 같았다. “이 영화는 자유와 독립을 향한 투쟁, 오히려 개인의 투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또 영화가 시의적절할 수 있다면, 그것은 9·11 때문이 아니라, 미국뿐 아니라 유럽지역에서 새로운 이슈로 떠오른 이민문제의 역사를 다루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특별 기자회견을 마친 뒤, 경호원인 듯한 덩치들과 스튜디오 관계자들에 둘러싸인 마틴 스코시즈가 1m 가까이로 다가왔다 사라져 갔다. 동석한 주연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카메론 디아즈의 어깨에 닿을 듯 말 듯한 작은 키, 숱 많은 검은 눈썹을 유난히 돋보이게 하는 백발의 스코시즈는 어느새 기자들의 시야를 벗어나고 있었다. 피로와 슬픔을 접고, 현대 미국영화의 대부라 불리는 사나이의 위풍당당한 행진은 그렇게 계속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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