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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귀의 본산, 서울종합촬영소
2002-06-21

화장실의 울음소리 들어봤어?

흔히 양수리라 칭하는, 서울종합촬영소(종촬소)는 원귀의 본산이라 해도 무리가 아니다. 40만240평 규모에 세워진 6개의 스튜디오뿐 아니라 심지어 입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음식점의 커브길, 올라서는 것만으로도 뒷목이 당긴다는 꼭대기 운단에 이르기까지 괴담이 끊이질 않는다. 심지어 <취화선>의 음악을 담당했던 국악가 김영동씨도 “이곳에 오기만 하면 맥이 풀린다”는 하소연을 늘어놓았을 정도다.

1스튜디오의 귀신은 형체는 분명치 않지만, 주로 세트 작업을 위해 만들어놓은 아시바 위에 걸터앉아 내려다보는 것으로 유명하다. 2스튜디오와 3스튜디오를 갖춘 건물의 터줏대감은 다름 아닌 처녀귀신. 정재은 감독의 <도형일기> 촬영시에는 세트로 만들어놓은 다락 안에 숨어서 한 스탭을, 최근에는 조명 설치를 위한 바탱이라는 장치 위에 매달리는 기예를 선보여 종촬소 직원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5스튜디오와 6스튜디오는 화장실을 경계해야 한다. 특히 여배우들은 몸을 사릴 필요가 있다. 이미 <가위>의 김규리가 화장실에서 나와 머리를 매만지다 거울을 본 순간 귀기어린 형체의 모습을 봤고, <러브 러브>의 이지은 역시 흐느끼는 여자의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아 화장실 문을 열었으나 그 안에 아무도 없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는 일화가 전해져 온다. 7스튜디오는 <올가미> <물고기자리> 등의 촬영에 합류했던 스탭들에 따르면 아기귀신이 출현하는 곳이다.

이 밖에 동남장과 유니온 모텔 등 촬영스탭들이 자주 묵는 인근의 숙박시설 역시 양수리 귀신들의 영역이다. 1년 전 누군가 그곳에서 자살했다는 풍문을 가진 일부 객실에 들었을 경우, 가위 눌려 밤잠을 설친 이가 적지 않다. 스튜디오 뒤편에 자리한 <공동경비구역 JSA>의 판문점 세트. 이제 툭 터진 관광용 오픈 세트로 남아 원귀를 봤다는 속보는 더이상 전해져오지 않지만, 세트를 만들 당시에는 갑작스런 회오리 바람이 일어 사고가 일어나는 위험이 있기도 했다. 아트서비스 오상만 대표는 “아내가 다니던 절의 스님을 모셔다 한 차례 고사를 지낸 뒤에야 잠잠해졌다”고 그때를 회고한다.

종촬소의 원령 중 기가 센 것은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녹음실이 자리잡은 건물에 있다. 이곳에서 지난 3년간 사운드 작업을 해온 정지영씨는 풍악이 울리면, 귀신이 따른다는 지론을 펼친다. 일단 이 건물을 지키고 있는 사천왕은 투명해서 밖이 내다보이는 엘리베이터에 가부좌를 튼 채 붙어사는 할아버지 귀신. <아프리카> 촬영 당시 한 연출부가 본 것이 유일하긴 하지만, 긴장을 늦추어선 곤란하다. <동승>의 후시녹음 작업에서 일어났던 소동도 녹음실에서 일어난 불가해한 사건. 당시, 주인공으로 출연했던 아역 남자배우는 똘망똘망한 초등학교 6년생. 칭얼대는 것도 없었고, 감독이 요구하는 대로 곧잘 연기를 해내는 영민한 아이였다.

그런데 문제의 그날. 아이는 벼랑 끝에 선 장면에 맞추어 “엄마, 엄마!”하고 대사를 쳐야 하는데, 아이는 대사 대신 “집에 가고 싶다”는 말만을 반복했다. 마침 아역배우와 친하게 지냈던 정지영씨가 나서서 “왜 그러냐”고 물었다. 그런데 정작 아이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녹음본을 재생해본 결과, 아이의 말대로 대사는 그대로 흘러나왔다. 하지만 정작 프로그램에 저장된 파동을 확인했을 때는 분명 모든 사람들이 다 들었던 “집에 가고 싶어!”의 그것이었다. 그렇다면 누가 외쳤던 것일까. 하여튼 정지영씨는 이 일을 겪은 이후 한동안 “목이 잘려나간 시체가 비명을 지르는” 꿈에 여러 번 가위 눌렸다고 한다.

물론 대부분의 종촬소 직원들은 이를 허무맹랑한 소리로 치부한다. 원천식 관리부장은 1991년 착공한 뒤로 직접 주인없는 무덤을 여러 차례 이장했으나 그런 기운과 맞닥뜨린 적이 단 한번도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호사가들은 종촬소가 위치한 지명이 조안(鳥安)면 삼봉(三峰)리 라는 것에 주목한다(행정구역상 종촬소가 위치한 곳은 양수리가 아니라 삼봉리다). 새가 편히 깃들 만한 봉우리가 셋이라는 뜻의 이름. 동서양을 막론하고 새는 넋을 물어 운반하는 전령이 아니었던가. 지형 역시 움푹 팬 골의 모양을 띤 데다 그 주위를 산들이 병풍처럼 에워싸고 있어 노여움으로 가득 차 떠도는 원귀들이 모여들기에 딱 좋은 곳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어떤 이는 1930년대 사이비 종교였던 백백교의 교도들이 죽임을 당한 뒤, 그 원귀들이 교주의 혼을 쫓다 도중에 이곳까지 흘러들어왔다는 설을 내놓는다. 실제로 이곳은 우연히도 교도들이 떼죽음을 당했던 곳과 결국 쫓기는 신세가 된 교주가 죽은 곳의 중간지대이기도 하다.

땅의 힘일까. 설이야 분분하지만, 그래도 다들 수긍하는 것이 있다. 이곳 귀신들을 보았다고 해서 살을 맞거나, 액을 타는 이가 없다는 것이다. 이덕행 종촬소장이 웃으며 한여름에 귀곡영화제를 열 계획이라고 말하는 것도 다 그런 이유에서다. 혹 영화제를 찾은 이들 중, 귀신들의 품평까지 듣는 보너스를 차지하는 이도 있을지 모르겠다. 이영진 anti@hani.co.kr▶ 한국영화 제작현장 미스터리 X파일(1)

▶ 한국영화 제작현장 미스터리 X파일(2)

▶ 한국영화 제작현장 미스터리 X파일(3)

▶ 충무로 영계 연구가 이광훈 감독

▶ 괴담의 해외 사례들

▶ 원귀의 본산, 서울종합촬영소

▶ 영상원의 유령 목격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