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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영웅심 내세운 <배드 컴패니>
2002-06-25

할리우드 최고의 흥행작 제작자인 제리 브룩하이머가 올 여름 세계 동시개봉을 위해 내놓은 작품은 조엘 슈마허 감독의 〈배드 컴패니〉다. 이 두 사람을 22일(현지시각) 뉴욕에서 잇따라 만났다. 면도도 하지 않은 까칠한 얼굴에 수수한 스웨터 차림의 브룩하이머는 미다스의 손을 가진 사내라기보다는 고시 공부하는 수험생처럼 보였다.

9·11 테러가 터지기 전에 완성한 〈배드 컴패니〉엔 아랍 계열로 보이는 자살테러범이 등장한다. 영화가 〈아마겟돈〉 〈진주만〉에 이어 또다시 미국의 애국주의와 영웅주의를 고취하는 내용이어서 외국에서 개봉할 땐 거부감을 줄 수 있지 않겠느냐는 질문을 던지자 이 노련한 흥행의 귀재는 약간 모르쇠 반응을 보였다. “〈진주만〉은 일본에서 1억달러를 벌고, 〈아마겟돈〉은 전세계에서 5억5천만달러를 벌어들이는 등 흥행에 크게 성공했다. 이런 걸 보면 이 영화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그는 이어 세계 동시 배급하는 할리우드 대작을 아시아와 남미 등 각국의 문화 정체성을 침해할 수 있지 않으냐는 질문에 대해선 경제 논리로 맞섰다. “엔터테인먼트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건 대중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거다. 미국은 (블록버스터에)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보아 그런 영화를 만들어 세계에 배급하는 거다. 가령 우린 〈진주만〉에 4억달러를 투자했다. 다른 나라는 이런 작품에 그만한 돈을 투자할 가치가 없다고 보는 거다. 그 차이일 뿐이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다른 나라의 문화 정체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가 믿는 건 철저하게 자본의 논리다. 그러나 이번 작품에 등장하는 아랍계 테러리스트들의 모습이 개성이 부족하고 그 때문에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영웅을 만드는 영화에서 가장 어려운 건 사악한 반대편을 묘사해내는 거다. 가령 나치 같은 경우는 누구나 악의 세력인 줄 알고 있으므로 설명이 필요없지만, 다른 경우는 매우 어렵다.”

〈플릿라이너〉 〈8Ŧ〉 등 저예산 작품에서 〈배트맨 포에버〉 같은 영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를 소화해온 슈마허는 “뭔가 대작을 만들어보고 싶어서” 브룩하이머의 제안에 응했다고 밝혔다. 그는 자신의 93년작 〈폴링 다운〉이 로스앤젤레스의 한국인 상인을 부정적으로 묘사한 점이 논란이 됐던 걸 많이 인식한 듯했다.

“〈폴링 다운〉이 한국에서 상영 금지되는 바람에 홍보차 한국에 방문할 기회를 놓쳤다. 그 영화가 겨냥한 건 한국인 상인만이 아니라 한가하게 골프나 하러 다니는 백인, 라틴계 사람들과 동성애자 등 다양한 계층의 정치적으로 잘못된 행태를 꼬집었다.”

〈폴링 다운〉 이후 그는 다른 문화권에 대해 좀더 많이 생각할 기회를 얻은 듯했다.

“〈진주만〉 개봉했을 무렵 미국 대학생들에게 설문조사를 했는데, 일본 하면 생각나는 걸 꼽으라 했더니 1위가 ‘천안문 사태’였다. 비극적인 일이다. 미국에서 아시아 인구가 늘고 그에 따라 학교 교육내용도 달라지면 개선될 거라고 생각한다.”

〈배드 컴패니〉에서 서로 호흡이 매우 잘 맞는 파트너임을 확인한 브룩하이머와 슈마허는 이미 다음 작품 〈베로니카 게린〉을 함께 만들기로 약정한 상태다. 아일랜드의 범죄조직을 취재하다 목숨을 잃은 더블린 기자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은 슈마허와 브룩하이머의 또 다른 면모를 보여줄 기대작이다.

뉴욕/이상수 기자leess@hani.co.kr

(사진: <배드 컴패니〉의 제작자 제리 브룩하이머(왼쪽)와 감독 조엘 슈마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