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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건 저격사건
2002-06-26

‘파워게임’이란 이런 것이다

The Day Reagan was Shot, 2001년감독 사이러스 노라스테 출연 리처드 드레퓌스, 리처드 크레나, 홀랜드 테일러 장르 드라마 (파라마운트) 백악관에서 벌어지는 일 따위는 관심없어! HBO에서 방영했던 <웨스트 윙>을 보기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몇번을 흘려보내다가 우연히 들여다본 <웨스트 윙>은 그러나, 무척 재미있었다. 일단 눈에 들어온 건, 천재거나 적어도 수재급의 인간들이 토해내는 말의 향연이다. 논쟁이 아니라 농담 하나를 해도, 개인의 특성과 이력까지 진하게 배어 나온다. 언변에 혹해 드라마를 보다보면, ‘파워게임’의 묘미에 빨려든다. 백악관은 파워게임의 현장이다. 야당만이 아니라 집권당 내에서도 사소한 다툼과 합의가 연일 벌어지고, 백악관 스탭들 사이에서도 밀고당기는 신경전이 대단하다. 그걸 보고 있으면, ‘국가’ 같은 것은 잊어버린다. 그건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 어디에서나 벌어지는 ‘파워게임’인 것이다. 친구들과의 사교모임, 행복한 가정에서도 파워게임은 언제나 벌어진다.

<레이건 저격사건>은 81년에 벌어진 레이건 암살미수 사건이 소재이긴 하지만, 스릴러는 아니다. 스릴있게, 죽느냐 사느냐 하는 레이건의 수술장면이 있기는 하다. 수상쩍은 사람이 수술대의 레이건에게 접근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건 다 장난이다. <레이건 저격사건>의 핵심은, <웨스트 윙>이 파란만장하게 펼쳤던 ‘파워게임’의 진수다. 레이건이 병원에 실려간 뒤, 백악관의 책임을 누가 맡을 것인가를 둘러싼 엄청난 파워게임이다. 주인공은 헤이그 국무장관이다. 전쟁영웅이며, 야심적이고 독단적인 헤이그는 사건 소식을 듣자 바로 백악관으로 달려간다. 그리고 비상대책위원회의 책임자가 된다. 평소에 헤이그를 견제하던 레이건의 측근 3인방도 병원에서 상황을 바라만 보고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은 엉망진창이다. 저격한 총이 몇 구경이냐는 의사의 질문에, FBI는 극비라며 답을 거부한다. 국방장관은 덜컥 군대에 경계령을 내리고, 소련군의 정기 훈련을 위협으로 착각한다. 내무부 관할의 시크릿 서비스와 FBI는 사사건건 충돌하고, 기자들과 만난 백악관 스탭은 엉뚱한 소리를 한다. 부통령은 책임을 회피하기에 급급하다. 자신만만하게 큰소리치고 조롱하며 위원들을 이끌던 헤이그마저, 실수를 저지르며 자충수에 빠져버린다. <레이건 저격사건>은 절박한 상황에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는, ‘지도층 인사’들의 비열하면서도 인간적인 모습을 처절하게 보여준다. 먼 나라 이야기 같지만, 그건 우리 모습이기도 하다. 김봉석/ 자유기고가 lotusid@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