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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텔레콤과 KTF 등 경쟁업체들의 월드컵 광고 대결
2002-06-27

오, 필승 라이벌!

제작연도 2002년광고주SK텔레콤대행사TBWA한·일월드컵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이 글이 실릴 때쯤이면 한국 대표팀이 4강에 올랐는지 여부에 따라 전국을 점령한 붉은 바람이 새 국면에 들어가 있겠지만, 어쨌든 8강전에 진출한 현 결과만 갖고도 충분히 벅차고 감격스럽다. 생애에 또 다시 이렇게 열광적인 이벤트를 경험할 수 있을지 싶다.

월드컵이 막을 내리면 광고계는 주판알 튕기는 소리로 요란할 전망이다. 월드컵 기간 내내 월드컵 특수를 겨냥한 광고로 브라운관과 신문 지상을 방문해온 업체들이 손익계산서를 작성하느라 바쁠 터이기 때문이다. 사실 손해났다고 울상 짓는 곳은 없을 것 같다. 월드컵을 향한 국민들의 놀라운 집중력으로 영화계 및 음반업계가 찬바람을 맞은 가운데 광고계만큼은 월드컵을 화제로 소비자들과 어깨동무한 채 앞으로 행진했다.

그럼에도 광고비 대 효과를 따졌을 때 분명 희비는 엇갈릴 것이다. 특히 이 현상은 ‘오~, 필승 라이벌’을 외치며 ‘눈치 코치’ 게임을 펼쳐온 경쟁업체들간에 두드러질 것으로 보인다. 이동통신서비스 분야의 쌍두마차로 누구보다 왕성하게 월드컵 관련 CF를 배출한 SK텔레콤과 KTF를 사례 삼아 월드컵 광고의 라이벌전을 엿본다. 먼저 SK텔레콤은 아직 총평을 내놓기가 이른 시점임에도 광고사에 남을 만한 사례를 제공했다는 기분 좋은 소리를 듣고 있다.

SK쪽은 자사 브랜드인 스피드011이 한국대표팀의 공식응원단 ‘붉은 악마’를 후원한다는 사실을 광고의 무기와 방패로 십분 사용했다. ‘Be the reds’를 캠페인 주제로 정한 SK쪽은 월드컵의 막이 오르기 전 전속모델인 한석규를 내세운 일종의 계몽 광고로 눈길을 모으기 시작했다. ‘대한민국’, ‘오 필승 코리아’ 같은 붉은 악마의 응원구호를 가르치며 전 국민을 통일된 규격의 붉은 악마로 만드는 데 톡톡히 기여한 것이다.

월드컵 열기를 형성하는 대표적인 세축으론 히딩크 감독과 대표선수들, 그리고 붉은 악마가 있을 터. 이중 SK쪽이 붉은 악마를 고른 것은 지혜로웠다. 이는 소비자의 편에 섰다는 뜻이나 다름없으며, 비록 결과론이지만 상상을 뛰어넘는 응원열풍에 힘입어 국민정서를 대표한다는 상징성마저 갖추게 됐으니 말이다. 월드컵 기간 구사된 SK광고의 순발력 있는 변신술도 돋보였다. 경기 시작 전 양국 선수들이 입장하고 국가가 연주되는 순서에서 진행되는 ‘국기세리머니’(관중석에서 출전국의 대형 국기를 펼치는 진풍경)를 활용한 광고는 심장박동 수를 높이는 멋진 예고편 역할을 담당했다. 게다가 한국전의 상대국에 따라 국기를 교체한 ‘타이밍’(timing) 전략은 절묘했다. 폴라드전을 앞둔 시점에는 ‘마침내 폴란드입니다’라며 폴란드 국기의 세리머니 장면을 선보이더니, 폴란드전 중계가 끝난 직후 광고시간대부터는 미국 국기로 상대국 국기 세리머니 장면을 발빠르게 교체한 채 ‘이번엔 미국입니다’라는 문구로 다음 경기에 대한 기대감을 부추겼다. 이는 새로운 광고를 선보이기 위한 제작비를 최소화하면서 생방송 뉴스처럼 실시간으로 소비자의 관심사를 파고든 효율적인 수였다.

16강 진출 여부를 가름하는 포르투갈전이 종료한 뒤에도 마치 16강 진출을 예상했다는 듯 ‘하나된 사천만이 이루어냈습니다’란 자막 아래 환호하는 시민의 모습을 극적으로 포착한 다큐 형식의 광고를 내보냈다. 물론 16강 진출 좌절이란 결과를 얻었다면 준비된 다른 광고가 이 시간을 메웠을 것이다. 이렇게 SK텔레콤 광고는 월드컵과 남다른 친분이 있음을 소비자의 뇌리에 심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SK텔레콤은 CF를 통해 단 한번도 월드컵을 언급한 적이 없다. 국제축구연맹인 FIFA의 후원기업이 아니면 ‘월드컵’이란 용어를 사용할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월드컵을 말하지 않으면서 월드컵 시류를 가장 역동적으로 대표한, 독특한 예가 아닐 수 없다.

제작연도 2002년 광고주 KTF 대행사웰콤

반면 FIFA 공식파트너인 KTF는 월드컵을 맘놓고 얘기할 수 있는 좋은 여건에서도 처음엔 이렇다 할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붉은 악마를 후원하면서 SK쪽이 투자한 금액보다 십여배나 높은 액수를 FIFA쪽에 들인 KTF쪽으로서는 적잖게 애가 타는 상황이었다.

다만 국민의 입에서 ‘한국팀 파이팅’ 대신 ‘코리아팀 파이팅’이란 외침이 나올 때마다 광고효과를 실감하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한국대표팀 23인의 사진을 모자이크처럼 배치한 CF 등으로 KTF란 브랜드와 ‘Korea Team Fighting’의 관계를 알려왔기 때문이다. 근데 뜻밖에도 좀더 강력한 대박은 변방에서 터졌다. 조연 정도로 투입한 장나라 주연의 16강 진출 기원 상금프로모션 CF가 친근한 화젯거리로 떠오른 것이다. 장나라가 깜찍하게 뽀뽀세례를 퍼붓으며 ‘황선홍 아저씨 한골’, ‘안정환 오빠 한골’ 등을 외친 광고의 내용이 한국전에서 골을 넣은 주역과 일치하는 통에 장나라, 곧 KTF 광고가 점쟁이처럼 경기내용을 예견했다는 예상치 못한 결론으로 이어졌다. KTF측은 퍼블리시티(언론 홍보) 작업 및 장나라의 길거리 응원전 프로모션 등으로 이 화젯거리를 적극 확대 재생산하면서 마케팅 위세를 자랑했다.

월드컵 관련 CF의 서바이벌 게임은 나름대로 치열했다. 그렇다고 설마 그 장외경쟁의 열기가 월드컵의 한국전에 비하겠는가. 스포츠는 재미나게 즐기라고 존재하는 것인데 마치 국가의 흥망을 책임지고 있는 듯 비장함과 처절함을 내뿜는 한국팀의 월드컵 출전기를 보면 이들 광고의 힘겨루기는 부담없이 감상할 수 있는 작은 전쟁에 불과한지도 모르겠다. 조재원/ <스포츠서울> 기자 jone@sportsseoul.co.kr